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진심의 정과 조(眞心正助)

근와(槿瓦) 2016. 1. 4. 00:26

진심의 정과 조(眞心正助)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질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망념을 쉬면 진심이 나타나겠지만, 만약 망념이 쉬지 못했을 때에는 망념을 쉬고 무심만을 공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망념을 다스릴 때 따른 법이 있는가?

(대답) ()과 조()가 같지 않다. 망념을 쉬는 것으로써 정()을 삼고, 여러가지 선()을 익힘으로써 조()를 삼는다. 비유를 들면, 거울이 티끌에 덮여 있으면 손으로 닦아내야 하겠지만, 세척제로 문질러야 비로소 빛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티끌은 번뇌고, 손의 힘은 무심의 공부며, 문지르는 세제는 여러가지 선행이고, 거울의 빛은 진심이다.

 

<기신론>에 말하였다.

'믿음을 성취한 발심이란 어떤 마음을 발하는 것인가. 대강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곧은 마음(直心)이니 진여의 법을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깊은 마음(深心)이니 모든 선행을 모으기 때문이며, 셋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이니 일체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질문) 위에서 말하기를, 법계는 한 모양(一相)이므로 부처의 체()는 둘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진여(眞如)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온갖 선행을 찾아 배워야 하는가?

 

(대답) 큰 마니보주(摩尼寶珠)가 그 실체의 성질은 밝고 깨끗하지만 광석(鑛石)으로서 더러운 때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보배의 성질을 생각하더라도 방편으로써 여러가지로 갈지 않으면 끝내 투명해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중생들의 진여법도 그 실체의 성질은 공하고 맑지만 한량없는 번뇌의 때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여를 생각할지라도 방편으로써 여러가지로 익혀 닦지(熏習) 않으면 청정해 질 수 없다. 번뇌가 한량없어 모든 법에 두루하기 때문에 온갖 선행을 닦아 거기에 대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모든 선법(善法)을 수행하면 저절로 진여의 법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기신론>에 따르면, 망심을 쉬는 것으로 정()을 삼고 여러 선법을 닦는 것으로 조()를 삼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선을 닦을 때에도 무심과 서로 어울려 인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인과에 집착하면 범부의 인간과 천상의 과보에 떨어져 진여를 깨닫기 어려우므로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무심과 서로 어울리면 그것은 진여를 깨닫는 방편이고 생사에서 벗어나는 긴요한 방법이므로 광대한 복덕을 함께 얻을 것이다.

 

<금강 반야경>에 말하였다.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공부하는 것을 보면, 본래 불성이 있음을 겨우 알고 나서는 스스로 천진(天眞)만을 믿고 여러가지 선행은 닦지 않으니, 어떻게 진심에 통달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게을러빠져 악도를 면하지 못할텐데 하물며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소견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진심직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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