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참마음은 아는 바 없이 안다

근와(槿瓦) 2015. 12. 27. 00:35

참마음은 아는 바 없이 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과 허망한 마음이 대상을 대할 때에 어떻게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가?”

 

나는 답하였다.

“허망한 마음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은 앎이 있으므로써 아는지라 거슬리고 순하는 경계에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등의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미 경계에 대하여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등 삼독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망심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조사는 말씀하시기를 ‘거슬림과 순경이 서로 다투는 것은 마음의 병 때문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을 대립시키는 것이 바로 망심임을 알 것이다. 또 만일 그것이 참마음이라면 앎이 없이 알아서 공평하고 원만히 비추므로 초목과 다르고,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망심과 다르다. 대상을 대하여도 마음이 비고 밝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앎이 없이 아는 것이 참마음이다.

 

그러므로 <조론(肇論)>에 ‘대개 성스러운 마음은 미묘하여 형상이 없으므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쓸수록 더욱 부지런하므로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나아가서는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도 앎이 없고,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앎이 없이 안다’하였다. 그러므로 앎이 없이 아는 것은 성인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또 허망한 마음은 있음(有)에 있어서는 있음에 집착하고 무(無)에 있어서는 무에 집착하여 항상 양쪽에 치우치므로 중도(中道)를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영가스님은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참마음을 취하면,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행할 줄 알지 못하여 도적을 자식으로 아는 것이 된다’하였다. 만일 그것이 진심이라면 유무(有無)에 있으면서도 유무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중도에 있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있음의 반연을 쫓지도 말고, 공(空)이라는 생각도 머무르지 않아 한결같이 생각을 공평히 하면 모두가 저절로 없어진다’하였다.

 

또 <조론>에 ‘그러므로 성인은 있음에 처하되 있음에 집착하지 않고 무(無)에 있어도 무에 집착하지 않는다. 비록 유무를 취하지 않으나 또 유무를 버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번뇌에 빛을 혼동하여 다섯세계(五趣)에 두루 돌아다니되 고요히 갔다가 갑자기 와서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하였다. 이것은 성인이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어 다섯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중생을 교화할 때에 비록 갔다 왔더라도 갔다왔다 하는 상(相)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허망한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진심과 망심은 다른 것이다. 또 진심은 평상(平常)의 마음이요 망심은 평상의 마음이 아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평상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나는 답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한 점의 신령한 밝음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맑고 고요하기가 허공과 같아 어디나 두루 있다. 세속 일에 대해서는 방편으로 이성(理性)이라 이름하고, 행식(行識)에 대해서는 방편으로 진심이라 부른다. 털끝만큼의 분별이 없지마는 만나는 물건마다 부딪히면 모두 포섭하여 모든 대상을 따라서 옮기지 않으며, 비록 흐름을 따라 묘한 작용을 얻더라도 제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고요하다. 그러므로 ‘찾으려면 그대는 곧 보지 못한다’하는 것이 곧 참마음이다.”

 

그가 또 물었다.

“평상이 아닌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요?”

 

나는 답하였다.

“경계에는 성인과 범부가 있고 경계에는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으며, 경계에는 단(斷)과 상(常)이 있고, 경계에는 이론과 현실이 있으며, 태어남과 사라짐, 움직임과 고요함, 감과 옴, 예쁨과 미움, 선과 악, 원인(因)과 결과(果) 등이 있나니 자세히 논한다면 천만가지 차별이 있거니와 모두가 평상치 못한 경계이다.

 

마음은 이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생기고 또 그것을 따라 사라진다. 평상이 아닌 경계의 마음이란 앞의 평상의 참마음에 대립시키기 때문에 평상이 아닌 망심이라 하고, 진심은 본래 갖추어져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갖가지 차별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평상의 진심이라 하는 것이다.”

 

그는 또 물었다.

“진심은 평상하여 모든 인과가 없거늘 어찌하여 부처는 인과와 선악의 응보를 말했는가?”

 

나는 답하였다.

“허망한 마음이 갖가지 경계를 좇으면서 그 경계들을 알지 못하고 갖가지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부처는 갖가지 인과의 법을 설명하여 그 갖가지 망심을 다스리려 하였기 때문에 인과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심이라면 온갖 경계를 따르지 않으므로 온갖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도 가지가지 법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니, 거기에 무슨 인과가 있겠는가?”

 

그는 또 물었다.

“진심은 평상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나는 답하였다.

“참마음은 작용할 때가 있지마는 경계를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요, 다만 묘한 작용으로 유희하여 인과에 어둡지 않을 뿐이다.”

 

 

출전 : 선문촬요(진심직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