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81)-810

근와(槿瓦) 2016. 1. 3. 00:32

대집경(81)-81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01 / 1773] 쪽

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세간에 착한 행을 닦으므로 성품이 착하여 어떤 방편으로 나쁜 짓을 생기지 않게 하지는 않느니라. 만약에 보살이 4정근(正勤)을 닦는다면 마음이 자재롭게 되리니,

 

4정근이라 함은 보살은 어느 때나 심(心)과 심수(心數), 대자대비를 함께 행함으로써 정근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그때를 따라 또 4신족(神足)을 닦나니, 그 네 가지란 욕심과 마음과 정진과 지혜이다. 전일한 생각과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를 염하므로 욕심이라 하고, 큰 슬픔[大悲]을 닦음으로 깨닫는 마음이 가뜬함을 마음이라 하고, 나쁜 법을 멀리 여의므로 정진이라 하고, 방편을 얻으므로 지혜라 하나니, 보살은 이 4신족을 닦고 나서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첫째는 수명의 자재로움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비록 짧은 수명으로 태어났더라도 스스로 긴 수명을 얻을 수 있느니라. 또 중생을 조복하여 긴 수명을 주기 위해서는 바른 법을 연설하고 긴 수명에서도 짧은 수명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보살의 태어나는 곳에 따라 사람이든 하늘이든 수명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둘째는 몸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마음대로 몸을 만들고 마음대로 색을 만들며, 중생을 위하여 위의를 나타내 보이므로 보살이 만약에 여러 중생들과 그 몸을 동등하게 하고자 한다면, 높고 크거나 가늘고 적은 것을 모두 만들 수 있느니라.

 

셋째는 법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온갖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온갖 세간의 일을 보여 주어도 출세간의 행에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깊고 깊은 12인연을 분명히 알고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능히 중생들에게 갖가지 법을 연설하므로, 중생들이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넷째는 서원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사방의 큰 바다를 합하여 한 개의 바다를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합하여 한 개의 산을

 

                                                                                [802 / 1773] 쪽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고, 사천왕과 삼천대천세계에서도 방해되거나 걸림이 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모두 금보배나 7보, 전단·꽃·향·영락과 허공·물·불을 만들고자 하더라도 다 마음대로 이룩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네 가지의 신족을 얻는다면, 곧 시방 여러 부처님을 직접 뵈옵고 함께 말하고 한 곳에서 거처할 수 있을 것이며, 온갖 범천·제석·사천왕과 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또한 그러하느니라.

 

어떤 것이 4신족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만약에 부모·스님·화상·어른·덕 있는 이를 공양하며, 중생을 보고는 마음껏 문안하되 부드럽고 연하게 말하고 말과 같이 행동하며, 여러 중생을 대함에는 그 마음을 평등이 하여 착한 마음·바른 마음·공경하는 마음·부끄러운 마음으로 대하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고 속이거나 탐내거나 더럽히거나 인색함이 없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의 사업을 자기 사업처럼 경영하고 세력 없는 자에겐 그 세력을 도와주며, 진흙탕이 된 곳에는 흙과 돌로써 다스리고, 강이나 시내, 개천과 도랑에는 다리[橋]를 만들어 주거나 몸으로 업기도 하고 배[船]에 태워 건네주기도 하여 언제나 중생의 필요한 문자를 베풀며 입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을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의 범죄를 비웃지 않고 죄지은 자가 있더라도 법답게 다스리고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하며,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베풀어 주더라도 이미 베푼 뒤에는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느니라.

 

중생들을 위해 발원 회향하고 신심으로 착한 일을 중생에게 권하고, 목숨[身命]을 아끼지 않아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을 알아서 다른 사람의 이끗[利養]에 바라는 것이 없으며, 항상 출가하기를 염하여 중생에게 권하고, 선지식을 염하되 마음에 버리는 일이 없으며, 원수나 친한 사람이나 평등이 보아 둘이 없고, 갖가지 승(乘)으로써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베풀며, 여위고 약한 사람에겐 평상과 친구를 보시하고, 공포를 느끼는 자에겐 구호하여 주고, 여러 중생 보기를 부모처럼 생각하며, 훼계(毁戒)한 이를 깔보지 않고, 가

 

                                                                              [803 / 1773] 쪽

난한 이에게 재물을 보시하고, 병든 자에게 약품을 공급하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서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끝까지 삼보의 종성(種性)을 끊지 않으며, 항상 함이 없음[無爲]을 염하고, 세간의 일과 온갖 착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어 세간법에 물들지 않고, 보리를 잃어버리지 않고서 지심을 염한다면, 이를 일러 4신족의 행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804 / 1773] 쪽

대방등대집경 제26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1. 보계보살품 ②

“보살이 5근(根)의 행을 깨끗이 함이란 무엇인가 하면, 보살의 신심은 움직이거나 흔들 수 없으므로 믿음의 뿌리[信根]라 하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정진을 행하므로 정진의 뿌리[精進根]라 하고, 항상 보리를 염하므로 염하는 뿌리[念根]라 하고, 항상 크게 슬픔[大悲]을 닦으므로 선정의 뿌리[定根]라 하고, 착한 법을 섭취하므로 지혜의 뿌리[慧根]라 하느니라.

 

다시 모든 불법을 믿으므로 믿음의 뿌리라 하고, 모든 불법을 구하므로 정진의 뿌리라 하고, 모든 불법을 염하므로 염하는 뿌리라 하고, 부처님의 삼매를 얻으므로 선정의 뿌리라 하고, 또 모든 의심을 끊으므로 지혜의 뿌리라 하느니라.

 

또 마음이 보리에 나아가되 의심이 없으므로 믿음의 뿌리라 하고, 착한 법을 더 자라나게 하므로 정진의 뿌리라 하고, 착한 방편을 구하므로 염하는 뿌리라 하고, 중생들 보기를 그 마음이 평등하므로 선정의 뿌리라 하고, 중생들 상·중·하의 근기를 관찰하므로 지혜의 뿌리라 하느니라.

 

다시 마음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으므로 믿음의 뿌리라 하고, 중생들의 혼탁한 마음을 파괴하므로 정진의 뿌리라 하고, 청정한 법을 염하므로 염하는 뿌리라 하고, 심성의 청정함을 관찰하므로 선정의 뿌리라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법에 머물게 하므로 지혜의 뿌리라 하느니라.

 

또 온갖 나쁜 법을 멀리 여의므로 믿음의 뿌리라 하고, 모든 착한 법을 구

 

                                                                               [805 / 1773] 쪽

하므로 정진의 뿌리라 하고, 얻고는 잃어버리지 않으므로 염하는 뿌리라 하고, 이미 착한 법을 얻고 나서 법답게 머무르므로 선정의 뿌리라 하고, 착함과 착하지 않음과 착하지도 착하지 않음도 아닌 중간성(中間性)을 생각하므로 지혜의 뿌리라 하느니라.

 

다시 믿음의 뿌리란 곧 보시하는 마음이요, 정진의 뿌리란 곧 보시하기를 즐겨하여 쉬는 적이 없음이요, 염하는 뿌리란 이미 보시한 뒤에 과보를 요구하지 않음이요, 선정의 뿌리란 곧 평등하게 보시하여 마음에 분별함이 없음이요, 지혜의 뿌리란 복밭[福田]과 복밭 아닌 것을 관찰하지 않음이니라.

 

다시 믿음의 뿌리란 곧 처음으로 착한 법에 들어가는 마음이요, 정진의 뿌리란 능히 교만을 파괴함이요, 염하는 뿌리란 나[我]와 내 것[我所]을 여읨이요, 선정의 뿌리란 예순두 가지의 견해를 모두 여읨이요, 지혜의 뿌리란 온갖 나쁜 번뇌를 멀리 떠남이니, 이를 보살이 5근(根)의 행을 깨끗이 함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다섯 가지의 힘을 깨끗이 함이란 무엇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힘을 원만히 갖추어 어떤 악마에게도 파괴되지 않으므로 힘이라 하며, 온갖 성문·벽지불의 승으로서는 미치지 못하고 어떤 주생으로서도 그 대승의 마음을 물리칠 수 없고 모든 번뇌가 파괴할 수 없어 능히 그 마음으로 하여금 만족을 알아 욕심을 적게 하며, 몸은 큰 힘을 얻어 모든 감관을 잘 조복하여 금강의 몸을 얻으므로 이를 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믿음의 힘에 머무를 때에는 조그마한 나쁜 일도 짓지 않고, 정진의 힘에 머무를 때에는 모든 착한 일을 이룩하고, 염하는 힘에 머무를 때에는 착한 법을 잃어버리지 않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5욕의 즐거움에 파괴되지 않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다른 말에 따르지 않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착함을 구하되 쉬지 않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다라니를 얻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법의 평등함을 연설하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온갖 중생의 의심을 부수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정진의 힘에

 

                                                                               [806 / 1773] 쪽

머물 때에는 정진하는 힘을 갖추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해탈의 힘을 갖추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원력을 원만히 갖추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모든 행의 힘을 갖추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인색한 죄과(罪過)를 보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인색과 탐욕을 멀리 여의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착함을 닦은 것으로써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그 마음이 평등하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마침내 마음을 보시·지계·선정의 갚음을 요구하지 않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온갖 파계의 더러움을 여의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지심으로 계율을 갖추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계율을 지닌 것으로써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의 힘에 머무를 때에는 계율을 조작하지 않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무를 때에는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참음을 닦아 익히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참음을 닦은 것으로써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모든 중생을 옹호하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중생과 수명과 장정이란 것을 관찰하지 않느니라.

 

또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게으름을 멀리 여의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닦은 모든 행으로써 궁극의 언덕[畢竟岸]에 이르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닦은 정진으로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착함과 나쁜 것을 조작하지 않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온갖 번잡된 일을 멀리 여의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선의 갈래[禪支]를 부지런히 구하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닦은 선정으로써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에 머물 때에는 그 마음이 항상 안정되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모든 선정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무명을 멀리 여의고, 정진의 힘에 머물 때에는 모든 착함을 부지런히 구하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지혜를 닦은 것을 보리에 회향하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착한 생각을 닦고, 지혜의 힘에 머물 때에는 법답게 머무느니라.

 

다시 믿음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일곱 가지 힘[七力]을 원만히 갖추고, 정진

 

                                                                                [807 / 1773] 쪽

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일곱 가지 깨달음[七覺]에 머물게 되고, 염하는 힘에 머물 때에는 여덟 가지 염하는 대상[七念處]을 얻고, 선정의 힘에 머물 때에는 일곱 가지 앎의 대상[七識處]을 여의고, 지혜의 힘에 머무를 때에는 여덟 가지 삿된 갈래[八邪支]를 여의느니라.

 

보리에서 물러나는 마음이 없음을 믿음의 힘, 또는 믿음의 힘을 깨끗이 하는 행이라 하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음을 정진의 힘, 또는 정진의 힘을 깨끗이 하는 행이라 하고, 4념처(念處) 닦음을 염하는 힘, 또는 염하는 힘을 깨끗이 하는 행이라 하고, 마음을 조복함을 선정의 힘, 또는 선정의 힘을 깨끗이 하는 행이라 하고, 모든 소견을 멀리 여의고서 착한 방편을 아는 것을 지혜의 힘, 또는 지혜의 힘을 깨끗이 하는 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행을 깨끗이 함이란 무엇인가 하면, 보리 돕는 법을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음을 염하는 각분[念覺分]이라 하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고서 고요함을 가리는[擇] 각분이라 하고, 온갖 나쁜 것을 여읨을 정진[進]하는 각분이라 하고, 모든 수심과 고뇌를 여읨을 기뻐[喜]하는 각분이라 하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을 제거하는[除] 각분이라 하고, 해탈과 맛을 얻음을 선정[定]의 각분이라 하고, 하는 일이 이미 끝남을 버림[捨]의 각분이라 하느니라.

 

다시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음을 염(念)하는 각분이라 하고, 지심으로 법을 옹호함을 가리는 각분이라 하고, 모든 중생을 조복하되 쉬는 일이 없음을 정진하는 각분이라 하고, 착한 법을 원만히 갖춤을 기뻐하는 각분이라 하고 모든 번뇌를 여읨을 제거하는 각분이라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삼매 속에 머물게 함을 선정의 각분이라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다 법계를 알게 함을 버림의 각분이라 하느니라.

 

다시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염하지 않음을 염하는 각분이라 하고, 일체 법의 자구와 이치를 분별함을 가리는 각분이라 하고, 착한 법을 구할 때에 세 가지 업을 쉬지 않음을 정진하는 각분이라 하고, 원수라든가 친하다는 따위의 마음을 버림을 기뻐하는 각분이라 하고, 법답게 머무는 것을 제거하는 각분이라 하고, 세간을 따르되 조복할 수 있음을 선정의 각분이라 하고, 두 가지 법을 관찰하지 않음을 버림의 각분이라 하느니라.

 

                                                                               [808 / 1773] 쪽

선남자야, 보리를 돕는 것이란 일체 법을 깨달아 알고 모든 법을 분별하여 헤아리며, 중생의 심성(心性)과 심행(心行)을 아는 것을 보리라 하고 또 성행(聖行)이라 하나니, 이러한 성행은 온갖 범부와 악마 무리[魔衆]의 삿된 소견으로서는 행할 바가 아니고 색·소리·냄새·맛·촉감의 행함도 아니고 온갖 모양과 온갖 느낌도 아니며, 마음과 식별의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생각[想] 있는 것이나 생각 없는 것의 모든 법행(法行)이므로, 이를 성행이라 하느니라.

 

무릇 성행이란 것은 깨달음이 아니고 깨달음 아닌 것도 아니고, 큰 깨달음도 아니면서 능히 일체 법을 다스리며[對法], 또한 모든 법과 더불어 싸우지 않으므로 이를 성행이라 함이니, 성행이란 것은 곧 보리를 돕는 법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여덟 가지 도(道)의 행을 깨끗이 하나니, 여덟 가지 도는 이른바 바른 소견이니라. 바른 소견은 일체 법을 다 평등하다고 보므로, 이러한 바른 소견은 공 보는 소견[空見]이라 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스스로 바른 소견을 지니므로 공 보는 소견이 아닌 동시에 이 두 가지 소견은 또한 같은 소견이며, 다시 나의 소견과 중생의 소견과 공 보는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하지 않는 동시에 이 세 가지 소견은 또한 같은 소견이며, 또 중생의 소견과 수명의 소견과 공 보는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하지 않는 동시에 이 세 가지 소견은 또한 같은 소견이라 하지 않는 동시에 이 세 가지 소견은 또한 같은 소견이니라.

 

다시 부처님의 소견과 법의 소견과 스님의 소견과 공 보는 소견, 이 네 가지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하나니, 이러한 네 가지 소견은 공 보는 소견이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어떤 사람이든지 이러한 소견에 집착한다면 바른 소견이라 할 수 없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곧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바른 소견은 분별이 없고 평등하여 둘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니라. 그 평등한 소견은 무엇인가 하면, 만약에 생각하기를, 범부의 법과 하학(下學)의 법을 훌륭하다 하면, 이는 평등한 소견이 아니라 하며, 범부의 법은 번뇌이고 배워야 할 이의 법은 번뇌가 없다거나, 범부의 법은 먹을 것[食]을 위한 것이고 연각의 법은 먹을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거나, 범부의 법은 더럽고 보살의

 

                                                                               [809 / 1773] 쪽

법은 깨끗하다거나, 범부는 함이 있고 부처님은 함이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소견도 평등한 소견이 아니니라.

 

만약에 범부의 법 내지 부처님의 법을 관찰하되 차별함이 없다면 곧 평등하다 하며, 범부의 법도 공하고 부처님의 법도 공하다고 본다면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며, 범부의 법은 인연을 따라 나고 벽지불의 법도 인연을 따라 난다고 본다면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며, 범부의 법도 고요하고 보살의 법도 고요하다고 본다면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며, 범부의 법도 원만히 갖추지 못하고 부처님의 법도 원만히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면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며, 나와 나 없음은 차별이 없고 차별하여 보는 것도 없다고 관찰한다면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리니, 이와 같이 본다면, 상·중·하의 법을 보지 않고 일체 법에도 각(覺)과 관(觀)이 없으리니, 이를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바른 소견이란 아무것도 보는 것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보는 것이 없는 그것이 바로 바른 소견이니, 만약에 이와 같이 본다면 이 사람은 한 법이나 한 법의 모양과 한 법의 광명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이와 같이 본다면, 이는 불법의 바른 소견이라 하리라.”

 

이 법을 연설하실 때에 5백의 비구가 아라한과를 얻었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바른 깨달음[正覺]이라 하느냐 하면, 바른 깨달음이란 온갖 깨달음을 여의는 것이니라. 깨달음을 지혜 방편이라 하고 법을 관찰하여 법을 아는 것을 바른 깨달음이라 하며, 어떤 법은 더럽고 어떤 법은 깨끗한 것임을 관찰하되 관찰하고는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을 도무지 깨달아 알지 않고서 온갖 깨달음을 여의는 것을 바른 깨달음이라 하느니라.

 

바른 말[正語]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입에서 내는 말을 스스로가 초조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초조하게 하지도 않으며, 스스로가 더럽히거나 욕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교만을 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교만을 내게 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속이거나 의혹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의혹되게 하지도 않는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다시 바른 말이란 것은 모든 하는 말에 있어서 일체 법은 다 평등하다고 말하되, 함이 있는 것의 모양을 잘 분별하는 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다시 바른 말이란 것은 공하고 모양이 없고 원이 없고 나거나 사람

 

                                                                                [810 / 1773] 쪽

이 없고 나오거나 들어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바른 말이라 하며, 다시 바른 말이란 것은 함이 있음의 괴로움과 덧없음과 나 없음과 열반과 고요함을 말하는 것을 바른 말이라 하며, 중생으로서 말하기를 중생에게는 온갖 수명과 장정이 없고 일체 법은 인연에 따라 나고 인연에 따라 멸함이 마치 종자와 열매 같다고 말하는 것을 바른 말이라 하며, 청정한 바른 말이란 것은 곧 부처님 말씀이므로 이것을 청정한 바른 말의 행이라 하느니라.

 

바른 업[正業]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업으로서 온갖 업을 능히 파괴할 수 있더라도 이는 업이라 하지 않고, 그 업이 고요한 원인에서 일어나 더럽거나 깨끗하지도 않아 능히 번뇌를 파괴하여 더 자라지 못하게 함을 바른 업이라 하느니라. 업을 이와 같이 알고서 착한 업을 짓고 또 모든 업은 다 비고 고요하여서 견실(堅實)함이 없고 괴로워 즐거움이 없다고 관찰한다면, 이것을 바른 업이라 하느니라.

 

바른 명[正命]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자기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방해하지 않고서 온갖 나쁜 번뇌를 더하지 않고 나쁜 업으로 살지 않는 것을 바른 명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에게 바른 명을 깨끗이 하여 이 바른 명으로써 보리에 나아가므로 이를 바른 명이라 하나니, 이러한 바른 명은 능히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하느니라.

 

바른 정진[正精進]이라 함은 부지런히 방편을 만들어 모든 착한 법을 구하되 낙욕(樂欲)심을 쉬지 않고서 싫어하거나 뉘우치지 않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모든 법의 평등한 성품을 추구(推求)하되 법의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을 관찰하지 않고 하는(作)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참다운 법[如法]의 성품과 실다운 성품을 분명히 안다면, 이를 바른 정진이라 하며, 바른 법을 연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삿된 정진을 여의게 하고 또 중생의 수행하는 행을 아는 것을 바른 정진이라 하느니라.

 

바른 염[正念]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4무량심을 염하는 것을 바른 염이라 하느니라. 다시 바른 염이 있으니, 모든 번뇌를 거둬서 망령되게 일어나지 않게 하며, 온갖 악마의 업에 가까이하지 않고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항상 모든 착한 법을 닦아서 삿되고 나쁜 법을 멀리 여읨을 바른 염이라 하나니, 보살이 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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