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82)-820

근와(槿瓦) 2016. 1. 4. 00:30

대집경(82)-8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11 / 1773] 쪽

...러한 바른 염 속에 머물러서 바른 정취(定聚) 사문의 바른 과(果)를 얻는다면, 이를 바른 염이라 하느니라.

 

바른 선정[正定]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성행(聖行)을 수행하여서 괴로움을 알고 원인[集]을 여의고 멸함[滅]을 증득하고 길[道]을 닦는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다시 바른 선정이 있으니, 일체 법은 다 평등하다고 관찰하여 내가 깨끗하므로 온갖 것도 깨끗하고 내가 공(空)하므로 온갖 것도 공하다고 관찰하되 이런 관찰을 하여도 공의 정위(正位)에 들어가지 않는 이것을 보살의 바른 선정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선정 속에 머물러서 한 찰나 사이에 온갖 지혜를 얻으므로, 이를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이 법을 연설하실 때에 1만 6천의 하늘과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한 신통의 행인가 하면, 선남자야, 다섯 가지 하늘 눈[天眼]으로써 시방세계를 다 보고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뵈옵고 또 중생들의 출생과 퇴몰(退沒)하는 것을 보아서, 시방을 두루 보는데 걸림 없음이 온갖 성문·연각과 모든 하늘·사람보다 뛰어나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다섯 가지 일을 원만히 갖추어 능히 일체 법을 분명히 봄으로써 이를 보살의 청정한 하늘 눈의 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또 하늘 귀[天耳]의 신통을 얻어 사람의 소리, 사람인 듯하면서 사람 아닌 소리, 지옥의 소리, 시방 여러 부처님의 설법하는 소리, 온갖 중생의 말하는 소리, 이 다섯 가지의 소리를 들으므로 이를 보살의 청정한 하늘 귀의 행이라 하느니라.

 

보살의 다른 사람 마음 아는 지혜의 행이란 무엇인가 하면, 다른 사람 마음 아는 지혜가 다섯 가지 있어 온갖 사람·하늘의 마음을 알고 지옥·아귀·축생의 마음을 알고 과거의 마음을 알고 미래의 마음을 알고 현재의 마음을 앎으로써 이를 보살의 다른 사람 마음 아는 지혜라 하며, 또 다른 사람 마음 아는 지혜가 중생의 바른 정취[定聚]와 삿된 정취[邪聚]와 정취 아닌 것을 알고 중생의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알고는 따라 설법하여 중생들이 듣고서 번뇌를 부수게 되므로, 이를 보살의 다른 사람 마음 아는 행이라 하느니라.

 

                                                                                [812 / 1773] 쪽

어떤 것이 보살의 전생 일 아는 지혜[宿命智]의 행인가 하면, 보살은 이 몸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인연을 따라 남을 분명히 알고, 이 몸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자·비·희·사의 인연을 따라 남을 분명히 알고, 이 몸의 원만히 갖춤과 원만히 갖추지 못함을 분명히 알고, 이 몸이 무명과 애욕과 네 가지 뒤바뀜을 인연하여 남을 분명히 알고, 이 몸이 보시의 인연으로써 재물과 권속을 원만히 갖춤을 분명히 아나니, 이러한 지혜를 일러. 보살의 전생 일 아는 지혜의 행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한 신통의 행인가 하면, 5신통의 행이 있으니, 색을 보임이 그 하나요, 갖가지의 말을 알아 설법함이 그 둘이요, 마음과 뜻과 식별을 잘 아는 것이 그 셋이요, 모든 법을 깨달아 설법함이 그 넷이니, 이를 보살의 청정한 신통의 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다섯 신통은 번뇌를 다 없애기 위한 때문이지만 보살이 이를 닦아도 번뇌를 다하지 못하고 온갖 번뇌를 분명히 알고자 함이니, 왜냐하면 중생을 조복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성(城)이 가로와 세로가 1유순이고 사방 문이 많고 길이 험하고도 어두워 매우 겁나고 두려울 정도이나 그 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많은 안락을 받게 되는데, 때마침 사랑하는 외아들을 거느린 어떤 사람이 저 성이 이같이 쾌락하다는 소문을 듣고 곧 외아들을 버리고는 성에 들어가고자 하여, 이 사람이 방편으로 험한 길을 거쳐 저 성문에 이르러 한 발[足]은 성문 안에 들여 놓고 한 발을 미처 들지도 않은 찰나에 그 외아들 생각이 나서 ‘내가 올 때에 어떻게 외아들을 데리고 함께 오지 않았던가, 누가 나의 외아들을 양호하여 괴로움을 없게 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곧 쾌락한 성을 버리고 도로 외아들 있는 곳에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다섯 신통을 닦고, 이미 닦고는 번뇌를 다 없애려고 하면서도 증(證)을 취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번뇌 다한 신통[漏盡通]을 버리고 내지 범부의 자리 속에 다니느니라.

 

                                                                               [813 / 1773] 쪽

선남자야, 저 성은 큰 열반에 비유하고 많은 문은 8만 삼매문에 비유하고 험한 길은 악마의 업에 비유하고 성문에 이르는 것은 다섯 신통에 비유하고 한 발을 들여 놓음은 들은 지혜에 비유하고 한 발을 들지 않음은 보살이 해탈을 증하지 않음에 비유하고 외아들을 말함은 다섯 갈래의 온갖 중생에 비유하고 외아들을 생각함은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에 비유하고 외아들 있는 곳에 돌아감은 중생을 조복하는 것에 비유함이니, 능히 해탈을 얻고서도 증하지 않는 것은 바로 방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대자대비는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느니라.”

 

보계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대자대비는 헤아릴 수 없나니, 진실로 성스러운 가르침과 같나이다. 다만 자비를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착한 방편의 힘도 헤아릴 수 없나이다. 보살은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줄 분명히 알고서도 이를 증하지 않으며, 중생을 위함으로써 생사에 다녀도 생사에 더럽히거나 물들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법을 갖추었기에 생사 가운데를 다녀도 마음에 싫어하거나 후회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스물한 가지의 법을 갖추었으므로, 생사 가운데에 있어도 후회하지 않나니, 첫째는 닦은 착한 법이 큰 자애[大慈]와 함께 행함이요, 둘째는 닦은 사랑하는 마음이 큰 슬픔[大悲]과 함께 행함이요, 셋째는 닦은 큰 슬픔이 중생을 조복함과 함께 행함이요, 넷째는 중생을 조복함이 정진과 함께 행함이요, 다섯째는 닦은 정진이 착한 마음과 함께 행함이요, 여섯째는 닦은 착한 마음이 방편과 함께 행함이요, 일곱째는 닦은 방편이 지혜와 함께 행함이요, 아홉째는 닦은 4선(禪)이 신통과 함께 행함이요, 열째는 닦은 신통이 슬기와 함께 행함이니라.

 

열한째는 닦은 슬기가 낙욕(樂欲)과 함께 행함이요, 열두째는 닦은 염(念)이 보리의 마음과 함께 행함이요, 열넷째는 닦은 보리가 4섭(攝)과 함께 행함이요, 열다섯째는 닦은 4섭(攝)이 계(戒)와 함께 행함이요, 열여섯째는 닦은 계가 많이 들음과 함께 행함이요, 열일곱째는 닦은 많이 들음이 참다운 법의 머묾과 함께 행함이요, 열여덟째는 닦은 참된 법이 다라니에 머묾과 함께 행

 

                                                                                 [814 / 1773] 쪽

함이니라. 열아홉째는 다라니는 걸림 없는 지혜와 함께 행함이요, 스무째는 걸림 없는 지혜는 공덕의 장엄과 함께 행함이요, 스물한째는 공덕의 장엄은 지혜의 장엄과 함께 행함이니, 이를 일러 보살이 스물한 가지의 법을 갖추어 생사 가운데 있어도 싫어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보계보살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자기 몸을 장엄하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한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약에 들음이 많다면 장엄이라 하고 남을 위해 연설한다면 큰 이익이라 할 것이며, 또 큰 다라니를 얻는다면 장엄이라 하고 그리고서 남을 위해 연설한다면 큰 이익이라 하며, 또 방일함이 없다면 장엄이라 하고 남을 위해 연설한다면 큰 이익이라 하며, 또 서른두 가지 상호를 갖추었다면 장엄이라 하고 큰 지혜를 갖추었다면 큰 이익이라 하며, 또 말씨가 부드럽고 연하다면 장엄이라 하고 말씀과 같이 실행한다면 큰 이익이라 하며, 또 온갖 것을 보시한다면 장엄이라 하고 그리고도 과보를 구하지 않으면 큰 이익이라 하리니,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보살이 자기 몸을 장엄하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희락(喜樂)이란 겁이 있었는데, 그 겁에 일체중생락념(一切衆生樂念)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란 부처님이 계셨고, 그 부처님의 세계를 천관(天觀)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무슨 까닭으로 그 겁을 희락이라 하였느냐 하면, 저 큰 겁 가운데에 6만의 부처님이 출세하셨고, 저 겁의 처음에 수타파천(首陀婆天)이 외치기를 ‘이 겁에는 마땅히 6만의 부처님이 출세하시리라’고 하여, 중생들이 듣고는 마음껏 다 기뻐하고 즐겨하였기 때문에 저 겁의 이름을 희락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그 부처님 세계의 장엄은 미묘하기가 한량없고 쾌락함과 훌륭함이 하늘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세계의 이름을 천관이라 하였고, 그 불토는

 

                                                                               [815 / 1773] 쪽

다 전단(栴檀)으로서 땅을 삼아 온갖 흙·모래와 티끌·안개 따위가 없고, 전단의 향기만이 한량없는 불토에 두루 풍기었다. 그 땅의 주변에는 여러 연꽃이 피었는데, 낱낱 연꽃에서 큰 광명을 내어 그 국토에 두루 비추므로, 그 국토의 중생이 다 신통을 얻어 발을 땅에 밟지 않았으며,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도 모태에 태어나지 않고 다 바꿔나서 온갖 여자의 이름을 듣지 않았느니라.

 

또 괴로움과 3악취의 이름도 듣지 않으며, 온갖 중생은 선정과 기쁨을 먹이로 삼아 3승(乘)의 이름이 없으며, 모두 진금(眞金)의 영락과 천관(天官)과 보배 꾸밈으로써 스스로 장엄하여 일부러 머리털을 깎고 물들인 가사를 입지 않아도 출가한 사람이란 이름을 얻었으니, 그 까닭은 온갖 물질을 버리어 탐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 불토의 여래는 빛이 범천과 같아 범천의 몸을 나타내어 법요를 연설하시므로, 다른 세계의 보살들도 저 부처님을 보고 나서는 큰 기쁨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야, 저 부처님이 만약에 법을 널리 연설하여 교화하려고 한다면 큰 법좌에 올라 대중의 위 6다라수 높이에 계시어 항상 요약하여 설법하셨으니, 왜냐하면 온갖 중생의 근기가 뛰어나고 영리하기 때문이니라. 여래의 말씀은 다만 한 글귀이지만 중생들은 백천 글귀로 해석하느니라. 여래는 항상 네 가지 청정한 법을 말씀하셨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바라밀의 청정함이요, 둘째는 보리의 청정함이요, 셋째는 신통의 청정함이요, 넷째는 중생을 조복하는 것의 청정함이니라.”

 

이때 보취(寶聚)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자기의 몸을 장엄하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한다 합니까?”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 걸림 없는 지혜를 갖춘다면 장엄하다 하며, 밝은 지혜를 일으킨다면 큰 이익이라고 이르리라.”

 

그때 그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자, 5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느니라.

 

그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816 / 1773] 쪽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보리수를 장엄한다 합니까?”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방일하지 않음을 닦는다면 보리수를 장엄한다 하리니, 방일하지 않는 것이라 함은 법과 같이 머무름이요, 법과 같이 머무름이라 함은 말씀과 같이 머무름이며, 다시 방일하지 않는 것이라 함은 한량없는 장엄, 한량없는 보시, 한량없는 지계, 한량없는 인욕, 한량없는 정진, 한량없는 선정, 한량없는 지혜, 한량없는 불법, 한량없는 조복,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의 장엄,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함이니,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한량없이 많이 듣고, 지혜를 더하려고 하기 때문에 한량없이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는지라, 이러한 한량없는 법을 성취함으로써 보리수를 장엄한다 하고, 또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리를 돕는 모든 법은 방일하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지라, 큰 장엄과 온갖 지혜를 갖추고 온갖 착한 법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고 일체 법을 성취하고 일체 법에 걸림이 없고 모든 감관을 조복하되, 착한 법을 옹호하여 물러나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며 때[時]와 때 아님[非時]을 알고 10력과 4무소외와 부처님 법 가장 으뜸 되는 법(頂法)을 원만히 갖추는 것이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1만 2천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으니, 그때의 보취보살은 바로 너의 몸이었느니라.

 

선남자야,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 둬라. 방일하지 않음을 갖춘 보살마하살은 곧 보리수를 장엄할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조복을 깨끗이 함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중생의 행은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헤일 수 없고 조복도 그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어 헤아릴 수 없으며, 보살의 행도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어 헤아릴 수 없으므로, 보살마하살은 전일한 마음, 지극한 마음으로 중생을 조복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은 혜시(惠施)하는 말씀을 듣고서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지계(持戒)하는 말씀을 듣고서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혜시·지계 두 가지 말씀을 듣고서 조복하며, 다시 어떤 중생은 부드러운 말로써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성내는 말로써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두 가지 말을

 

                                                                                 [817 / 1773] 쪽

갖추어야 조복하느니라.

 

또 어떤 중생은 몸의 업(身業) 말씀함을 듣고서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몸을 버리는 말씀을 듣고서 조복하며, 어떤 중생은 뛰어나게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무리하게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꾸지람을 듣고서 조복하기도 하며 또 어떤 중생은 묘한 빛을 보고 나서 조복하나니,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도 그와 같으며, 다시 어떤 중생은 항상 친근함으로써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항상 머무름으로써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부처님을 보고서 조복하느니라.

 

어떤 중생은 법을 듣고서 조복하고 어떤 중생은 덧없는[無常] 법을 듣고서 조복하게 되나니, 괴로움[苦]과 공(空)과 나 없음[無我]도 그와 같으며, 또 어떤 중생은 보시하는 소리만 듣고서 조복하게 되나니,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또 어떤 중생은 온갖 함이 있음과 덧없음 말씀함을 듣고서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사람과 하늘에 찬탄하는 말씀을 듣고서 조복하게 되고 어떤 중생은 성문승(聲聞乘)을 듣고서 조복하게 되나니, 벽지불승(辟支佛乘)과 불승(佛乘)도 그와 같으며, 혹은 네 가지 거둬줌[四攝]으로써 조복하게 되고 혹은 세 가지나 두 가지나 한 가지의 거둬줌으로써도 조복하게 되느니라.

 

혹은 4섭법(攝法)을 힘입지 않고서 조복하기도 하고 혹은 안의 보시[內施]로 인하여 조복하게 되나니, 바깥 보시[外施]와 안팎 보시도 그와 같으며, 혹은 지옥 속의 괴로움을 듣고서 조복하나니, 아귀·축생·사람·하늘도 그와 같으며, 순수한 즐거움을 듣고서 조복하고 혹은 순수한 괴로움을 듣고서 조복하고 혹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다 듣고서 조복하고, 혹은 비구의 모습을 보고서 조복하게 되고 혹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모습을 보고서 조복하게 되고, 혹은 갖가지의 광대·풍악을 듣고서 조복하게 되나니, 선남자야, 보살이 능히 이러한 갖가지 중생을 조복하는 행을 안다면, 이를 일러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고 보리 돕는 법을 원만히 갖추고 신통을 원만히 갖추어 중생을 조복한다 하리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갖추어도 능히 온갖 중생을 조복하리니, 첫째 마음에 뉘우치거나 싫어하지 않고, 둘째는 모든 즐거움을

 

                                                                                [818 / 1773] 쪽

탐내지 않고, 셋째는 때[時]와 때 아님[非時]을 알고, 넷째는 모든 마음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그 네 가지 법이란, 바른 말·사랑하는 말·깨끗한 말·법다운 말이며,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모든 중생에게 마음으로 거리낌 없음이 그 하나요, 슬퍼하는 마음이 그 둘이요, 이익 되게 하는 마음이 그 셋이요, 스스로 모든 감관을 조복함이 그 넷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함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엾이 여김과 정진을 부지런히 행함과 즐거움을 멀리 여의는 것이, 이 네 가지이니라.

 

선남자야,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조복하는 행이 한량없고 그지없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사랑이라 하는 겁이 있었는데, 그 겁 가운데 호를 광광명(廣光明)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는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세계의 이름은 적정(寂靜)으로서, 저 부처님은 9만 5천억의 성문 대중과 7만 4천의 보살 대중을 거느리셨고, 그 불토의 인민들은 17만 2천세의 수명을 누렸느니라.

 

그때 재공덕(財功德)이라 하는 한 대왕의 아들이 있었으니, 그는 바라문의 종족으로서 용모가 단정하여 중생들이 보기를 즐겨하였는데, 그가 15세 때에 자기의 용모 단정함을 믿고 교만을 부려 당초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하지 않자,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느니라.

‘이러한 왕자는 이제 앞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잃어버리고 착한 근기가 성숙되지 못하리니, 만약에 착한 법을 얻는다면, 부처님께 나아가 법을 듣고 받아 지니게 되리라.’

 

그리고는 그 부처님께서 곧 8만 4천의 보살 대중에게 셈대[籌]를 돌리면서 말씀하셨느니라.

‘누가 이 바라문의 아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 8만 4천 년 동안 항상 왕자의 집을 드나들면서, 욕설과 구타, 그 어떤 괴로움을 받더라도 마음에 뉘우침이 없겠는가?

 

이와 같이 두세 번을 되풀이하였으나 8만 4천의 보살 중에 한 사람도 셈대

 

                                                                                [819 / 1773] 쪽

를 잡는 이가 없다가, 세 번째 외친 끝에 정정진(淨精進)이라 하는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저 왕자 집에 나아가서 달게 뭇 괴로움을 받겠나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 삼천대천세계가 크게 진동하고 온갖 사람과 하늘은 같은 소리로써 함께 외쳤느니라.

‘거룩합니다, 대사여.’

 

그때 정정진보살이 곧 저 왕자의 문전에 가서 서자, 왕자가 보고는 욕설을 퍼붓고 흙으로써 낯을 더럽히고 칼·몽둥이·기와·돌 따위로 그 몸을 해쳤다. 그러나 보살은 그때 성내지 않고 가지도 않고 마음에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고서 1천 년을 지나도록 이러한 괴로움을 받았으며, 2만 세를 거쳐 겨우 왕자의 둘째 문하(門下)에 이르고, 7일 미만인 8만 4천 년에 바야흐로 그의 일곱째 문하에 이르자, 그때야 왕자가 이 보살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느니라.

‘도사가 여기에 온 것은 무엇을 구하고자 함인가?’

 

그리고는 곧 보살에게 이상한 마음을 내어,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이 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마음으로 싫어하지 않을까’라고 되풀이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그 왕자의 마음이 조복된 줄을 알고 나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 세간의 모든 보배

금·은·유리·파리(玻璃)와

어떠한 공양도 나는 필요 없고

오직 법을 위하여 여기에 왔네.

이 세간에 광광(廣光)부처님 계시어

중생 위해 더 없는 법 말씀하시니

중생들 듣고 나서 번뇌 여의고

 

                                                                                [820 / 1773] 쪽

또 한량없는 단 이슬 맛 받네.

어렵도다, 세존의 출세하심은

저 우담꽃 보기보다도

이제 더 없는 높은 이 출세하셨거늘

그대는 방일하여 욕해(欲海)에 잠겼도다.

온갖 중생 언제나 어둠에 다니므로

더 없는 부처님 지혜 횃불 켜시는데

어쩌다 재색(財色) 믿고 교만을 부려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지 않는가.

온갖 재보(財寶)와 중생의 수명

부처님 말씀하되, 둘 다 덧없다 하네.

중생이 만약 이 단 이슬을 들고도

부처님께 나아가지 않음 방일이라 하나니,

그대는 옛날 보리를 행하여

모든 중생에게 법 맛을 허락했거늘

이제 오히려 번뇌에 매였으니

어떻게 방일을 조복했다 하랴.

나 이제 그대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교만을 끊고 번뇌를 여의며

부지런히 정진하고 국사를 버리어

그대로 하여금 끝내 뉘우치지 않게 하리라.

때마침 왕자 이 말씀 듣고는

교만을 여의고 신심을 내어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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