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77)-77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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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정덕 우바새가 명성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능히 중생을 교화 조복하였으니, 조복함에 있어서 몸과 입과 뜻, 그 어느 것을 조복하였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몸이나 입을 조복한 것이 아니고 오직 마음의 업[心業]을 조복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마음의 업이라면, 과거·미래·현재 그 어느 때 마음의 업입니까?”
“선남자여,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오직 현재이므로 현재의 마음을 닦아서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오히려 현재의 마음으로 해탈을 얻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중생을 조복할 수 있습니까?”
명성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4무애지와 정목 다라니의 힘을 받아 가졌으므로, 온갖 중생을 조복할 수 있습니다.”
정덕 우바새가 말하였다.
“4무애지(無礙智)와 정목 다라니로서도 중생을 조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기 때문이니, 어떻게 중생을 조복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이제 그대에게 묻나니, 생각하는 대로 대답하여 주십시오. 선남자여, 거둬들임[攝人]과 얽어 묶음과 해탈과 청정한 도와 고요함은 비록 다 평등하다 하지만 평등하지 않음도 있나니, 이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이 어떤 인연으로 나고 어떤 인연으로 더 자라나는지를 그대는 모릅니까?”
정덕 우바새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러한 일은 나[我]와 내 것[我所]으로 인하여 나기도 하고 더 자라기도 합니다.”
명성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나와 내 것은 무슨 인연에서 나는 것입니까?”
“이 나와 내 것이란 바람의 인연에서 납니다.”
명성보살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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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
“선남자여, 바람은 허공에 머뭅니다.”
“허공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
“허공은 이르는 곳[至處]에 머뭅니다.”
“이르는 곳은 또 어느 곳에 머뭅니까?”
“이르는 곳이 어느 곳에 머문다는 것은 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처소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온갖 처소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며, 헤아림도 아니고 일컬음도 아니고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며, 각(覺)과 관(觀)이 아니고, 있거나 없는 것도 아니며, 다니는 것이 아니고 나는 것이 아니고 생하거나 멸함이 아니고 더 자라남도 아니며 문자가 아니고 염하는 것이 아니고 조작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며, 밝거나 어둠이 아니고 더하거나 덜함이 아니고 장성하거나 늙음이 아니어서 진실한 성품은 곧 걸림 없는 문(門)이기 때문에 이르는 곳은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명성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러한 것이 바로 4무애지이고 정목 다라니요, 만약 보살로서 이러한 다라니를 닦는다면, 온갖 번뇌는 타 버려 법 인연의 사랑에 들어가고 모든 법에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 법을 말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중생이 법 인연의 사랑[慈]을 얻고 한량없는 중생은 4무애지와 정목 다라니에 가깝게 되었다.
그때 세존께서 이 두 사람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능히 법답게 물었고 법답게 대답하였도다. 이 다라니 인연의 힘으로 사천왕들은 내가 멸도한 뒤에도 능히 법을 수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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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24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0. 허공목분 ③
6) 성목품(聖目品)
그때 명성(明星)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성문인은 성문승(聲聞乘)을 행하고 벽지불의 사람은 벽지불승(辟支佛乘)을 행하니, 이러한 두 사람은 어떤 슬픔을 닦고 어떤 법을 생각하고 어떤 번뇌를 여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행한다면, 중생들의 즐겨하는 모양[樂相]을 관찰하지 않고 원수나 친한 이나 부모 등의 모양을 하지 않고서, 중생을 가엾이 여겨 슬픈 마음[悲心]을 닦아 일으키고 나아가 시방에 이르기까지 다 그와 같이 하리라.
만약 내가 나쁜 중생에게 슬픈 마음을 닦지 못한다면, 이 사람의 태어나는 괴로움[生苦]부터 죽는 괴로움[死苦]까지 여덟 가지 괴로움의 모양을 관찰하여, ‘이 사람이 이러한 여덟 가지 괴로움을 갖췄는데, 내가 어찌 이 사람에게 슬퍼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는가’ 하며, 이 사람이 다시 세 가지 큰 괴로움을 지녀 3악도(惡道)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함에는, ‘내가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겠느냐’ 하리라.
어떤 것이 태어나는 괴로움을 관찰하는 것인가 하면, 업의 인연에 따라 부모가 화합함으로써 처음 뜻의 식별[意識]을 받고, 가라라(歌羅羅) 때에는 그 몸이 마치 두루미냉이 종자와 같아서 아직 드나드는 기식(氣息)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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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고 즐거움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깨달아 알지 못하며, 전생의 색상(色相)을 여의고 후생의 세상을 갖추지 못했으며, 힘과 욕심이 없어서 정진함이 없고 교만이나 훌륭한 색과 훌륭한 성품과 훌륭한 자재로운 모양이 없고 5욕(欲)의 모양이 없고 모든 감관[根]이 갖추어지지 않았나니, 이러한 중생을 내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하겠느냐.
이러한 중생들의 과거 애욕과 취함[取]을 무명(無明)이라 하고 과거 업의 존재[有]를 행(行)이라 하고 처음 모태(胎)에 들어가는 마음을 식(識)이라 하고, 가라라 속에서 처음 생기는 형태와 4음(陰)을 이름과 색[名色]이라 하나니, 이때는 아직 열두 가지 존재의 갈래[十二有支]를 갖추지 못하였으나 태어나는 인연을 지녔기에 12인연(因緣)이 있다고 설할 수 있느니라. 중생이 이와 같음에 어찌 슬기로운 자로서 가엾이 여기지 않겠느냐.
가라라의 시기는 42일 동안인데 이 시기를 지나면 그때의 이름은 알부타(頞浮陀)라 하고 모양과 색은 마치 작은 대추와 같으며, 다음 49일을 지나면 그때의 이름은 가나(伽那)라 하고 모양과 색은 호두 껍데기와 같으며, 다음 56일을 지나면 그때의 이름은 살덩이라 하고 모양과 색은 마치 빈바라과(頻婆羅果)와 같고 몸에는 머리·손·다리의 다섯 부분이 포태되며, 91일을 지나면 처음 창자[腸]의 모양이 생기고, 다음 140일을 지나면 남자와 여자의 부분이 구별되고, 147일을 지나면 처음 골절이 생기고, 252일을 지나는 동안에는 피·살·털 따위의 온몸이 갖추어지고, 266일에 가서는 온몸의 사지를 원만히 갖추고, 밤낮 4일 동안 배(腹)속의 더러운 곳에 머무느니라. 이 사람이 이러하나니, 내 어떻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하겠느냐.
그때 본생의 일을 돌이켜 생각하고는 수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이렇게 염하여 말하느니라.
‘내가 모태에서 나와서는 마땅히 착한 법을 닦을 것이니, 원컨대 다시는 이러한 곳에 태어나지 않기 위하여 방일하지 않고 태어남을 멀리 여의리라.’
처음 모태에서 나올 때는 온몸이 쭈그러드는 괴로움을 받고 바람의 닿임으로 몸은 또 괴로움을 받고 몸이 처음 땅에 떨어지자 물로써 씻어내므로 다시 큰 괴로움을 받음이 마치 지옥과 같으니라.
그때 도로 전생 일 생각하던 것을 잃어버리며, 이미 출생하고는 다시 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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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고 죽음의 괴로움이 끊임없이 따르며, 또 풍병(風病)·황수병(黃水病)·백수병(白水病)·화합병(和合病) 따위가 있어 이러한 네 가지 병마다 각각 101가지의 병이 항상 따르므로 이것을 출생의 큰 괴로움이라 하며, 출생한 뒤에는 늙음이 다시 따르게 되어 머리털이 희고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며 지혜를 잃어 부끄러워하고 털이 희소하고 모든 행이 낡으므로 모든 감관도 쇠하여 파괴되기 쉽고, 썩고 위태로우며 짜고 신 두 가지 맛만을 탐내고 안락한 몸의 근을 무너뜨려 쫄리고 근심하나니, 이것이 큰 괴로움의 바다니라.
능히 중생 3세의 장성한 빛을 파괴하여 망령스럽기는 어린아이와 같고 미치기는 귀신에 집착된 것처럼 하나니, 중생은 이러한 나쁜 일을 다 갖추었으니, 내 어떻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하겠느냐.
그때 다시 죽음의 침해를 받아 지혜와 수명과 모든 존재를 잃고 모든 음(陰)을 버리고 목숨[身命]이 무너지고 4대가 흩어지므로 이는 3세 중생의 수명의 원수라 온갖 중생은 이 죽음의 법을 성취하나니, 내가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하겠는가.
그때 또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나쁜 사람과 모진 짐승 따위의 사랑스럽지 못한 물질이 와서 친근하나니, 중생이 이러하니, 내가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장성한 연령과 좋은 보배와 건강·수명과 부모·처자·권속과 훌륭하고 미묘한 여섯 대상[六塵] 등의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이 있어 중생은 이미 이러한 괴로움을 받나니, 내가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하겠는가.
어떤 중생은 3세 동안에 훌륭한 여섯 대상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어 이 인연으로 괴로움을 갖추어 받나니, 만약 내가 이 나쁜 중생에게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며, 온갖 중생은 5음(陰)을 받는데, 나도 그러하니, 만약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을 닦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이러한 무거운 짐을 버린다 하며, 온갖 성인은 이미 5음의 무거운 짐을 멀리 여의었으니, 만약 세 가지 청정한 계율을 수행하지 않고 잘 생각하지도 않고 그 마음이 방일하여서 바른 도를 행하지 않고 해탈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백 가지의 괴로움을 받나니, 중생이 이미 이러한 백 가지 괴로움을 받는데, 내가 어찌 슬퍼하는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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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어떤 중생이 밤낮을 한결같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이 사람은 마음이 마치 허공처럼 되어 온갖 중생에게 큰 슬픔[大悲]을 닦고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되어 진정한 법계(法界)와 법성(法性)에 가까워지리니, 이러한 방편으로서 능히 성문·연각·중생 인연의 슬퍼함을 얻으리라.
또 보살로서 처음 수도할 적에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설사 내가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수미산 몸을 지녔다 하더라도 마땅히 이 몸으로써 한 사람을 위해 한량없는 세상에서 큰 괴로움을 받을 것이고, 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받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끝내 뉘우치지 않고 또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
다시 이런 생각도 하느니라.
‘가령 온갖 중생이 수미산과 같은 몽둥이를 가지고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나의 몸을 때리더라도 나는 마땅히 참고서 한 찰나라도 나쁜 마음을 내지 않으리라.’
또 생각하리라.
‘이 사람이 백 가지의 괴로움을 받는다면 온갖 중생도 다 이러한 괴로움을 받으리니, 그러면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염(念)할 줄 모르는구나. 내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움에 어찌 이와 같은 칼·불·돌을 받지 않으랴. 만약에 내가 온갖 중생에게 나쁜 마음을 낸다면, 여러 부처님과 현성(賢聖)께서 마땅히 꾸짖는 말씀으로 [이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서 어떻게 이와 같이 인욕하지 못하는가] 하시리라.’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뜻[淨意]을 닦음은 이것이 곧 인욕이며, 인욕이란 곧 영락(瓔珞)이고 정진의 도(道)이고 성품의 그릇[性器]이고, 네 가지 재보(財寶)이니, 보살이 이러한 인욕을 닦음으로써 능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깨끗하게 장엄하고 굳게 장엄하고 큰 지혜를 얻어 성문이나 벽지불과 더불어 같이하지 않느니라.
모든 중생에게 가장 뛰어나서 온갖 네 가지 악마로서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삿된 것이 흔들 수 없고 번뇌를 꺾어 없애므로 온갖 원수들이 나쁜 짓을 할 수 없으며, 하는 말씀은 다함없고 그 지혜는 아주 깊어 마치 큰 바다 같으며, 정진하고 견고하기는 마치 수미산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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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함은 바닷물이 한 맛인 것처럼 하고, 크게 이익 되게 함은 큰 땅처럼 하고, 뭇 더러움을 깨끗이 함은 맑은 물처럼 하고, 광명을 일으킴은 밝은 해[日]처럼 하고, 중생에게 걸림 없기는 사나운 바람처럼 하고, 세간법에 물들지 않음은 연꽃처럼 하고, 중생을 내려다봄은 금시조(金翅鳥)와 같고, 중생들이 보기를 즐겨함은 여름날의 구름과 같고, 중생들이 받기를 즐겨함은 여름의 비와 같으며, 만나 봄에 다른 요구가 없음은 병든 사람이 의사를 만남과 같고, 모든 빈궁한 이를 생각함은 여의주(如意珠)와 같고, 중생에게 선정을 베풂은 범천(梵天)과 같고, 생사에 걸림 없음은 허공과 같고,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을 보임은 밝은 등불과 같고, 사람·하늘이 공경함은 제석(帝釋)과 같으니라.
만약에 보살이 미워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온갖 원수와 적은 다 기회를 얻게 되므로 그들에게 모든 착한 근기와 재보(財寶)를 상실하고, 온갖 마군들도 기회를 얻게 되므로 모든 번뇌에 더럽혀지고 물들어, 아주 어두운 곳에 들어가 온갖 착한 근기를 잃고 여러 성인에게 책망을 받으리라.
만약에 보살이 한 찰나라도 성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온갖 착한 법을 상실하리라. 설사 내가 온갖 중생에게 한량없는 억수의 욕설과 구타를 받더라도 한 찰나의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은 자비를 배우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약에 저 중생이 성내거나 구타하는 마음이 없다면 내가 어찌 자비를 닦겠는가. 이런 이치이기 때문에 중생이 성낼 때 나는 기뻐해야 하나니,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나의 슬퍼하는 인연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능히 이렇게 관찰한다면, 곧 성문·연각과 같지 않은 중생 인연의 슬퍼함을 얻고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으리라.
선남자야, 다시 3악취 괴로움의 중생을 관찰하고 나서 슬퍼하는 마음을 닦기도 하고, 3세의 모든 괴로움의 중생을 관찰하고서 슬퍼하는 마음을 닦기도 하고, 5음(陰) 중생을 관찰하고서 슬퍼하는 마음을 닦기도 하나니, 입(入)과 계(界)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면, 마땅히 자비를 닦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자비란 것은 온갖 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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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종자인지라, 만약 중생이 색계(色界)의 몸을 얻음에는 역시 자비를 닦는 인연이요, 무색계[無色]의 몸이거나 성문의 도(道)이거나 연각의 도이거나 보살로서 장엄 견고하게 6바라밀을 행하며 중생을 조복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은 다 자비 종자의 인연 때문이니라.”
자비 인연의 법을 말씀하실 때에 명성보살은 연각·성문과 같이하지 않는 지혜, 이른바 무생법인을 얻고, 8만 4천의 중생은 참된 법의 지혜[如法忍]을 얻고, 5만 5천의 나유타의 중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10만 8천의 중생은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얻고, 2만의 중생은 자비를 성취하고, 5천의 비구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5백의 비구는 온갖 번뇌를 없애고, 10만억의 중생은 큰 삿된 소견을 깨뜨리고 바른 소견의 마음을 얻었다.
그때 세존께서 무승의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과거에도 발공덕의(發功德意)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셔서 이러한 대자대비를 말씀하셨느니라.”
무승의 동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실한 것[如] 이란 어떤 것을 말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몸 모양[身相]을 멀리 여읨을 여실한 것이라 하느니라.”
무승의 동자가 아뢰었다.
“말씀하신 몸이란 것은 바로 이 실다운 성품이며 고요함이며 법계이며 번뇌가 없음이며 다함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실한 몸[如身]이란 바로 이 중생의 몸으로서 과거와 미래의 막다른 곳[邊際], 곧 고요한 것이니라.”
무승의 동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부처님의 여실한 것[如]이 바로 이 몸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이러한 법계는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3세가 평등하여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여실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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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와 같으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3만의 중생이 여법(如法)한 지혜를 얻었다.
그때 세존께서 명성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떤 것이 중생을 인연한 기쁨을 닦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자비를 닦지 않고 중생의 모든 즐거워하는 모양을 염하지 않고 내지 3취(趣)와 삼계(三界)의 모든 괴로움을 관찰하지 않고서도 5음(陰)의 나고 멸함을 관찰하고는 기쁜 마음을 내되, 다만 법 관찰하기를 즐겨하고 관찰하고 나서는 기쁜 마음을 낸다면, 이러한 기쁜 마음은 그 서원이 중생에 미치리니, 이것을 기쁨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평정[捨]을 닦는다 합니까?”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자비와 기뻐하는 마음을 닦지 않더라도 부모 내지 성문·연각·보살·부처님께 평정을 닦고 평정을 염하며 이 평정을 닦을 때에 일체 법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멀리 여읜다면, 이 사람은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닦고는 오래지 않아 결정코 열반에 들 것이며, 만약 이 같은 4무량심(無量心)을 닦는다면, 이 사람은 시방 부처님·보살과 천(天)·용(龍)·야차(夜叉)·찰리(刹利)·바라문과 비사(毘舍)·수타(首陀)·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의 공양을 받고, 그 국토의 사부대중, 이러한 4무량심을 닦음에 따라서는 그 국토는 이미 온갖 쇠화(衰禍)된 모양을 멀리 여읠 것이고, 그 중에 중생들은 즐거이 나쁜 법을 버리고 착한 법을 받아 가지리라.
선남자야, 4무량심은 이러한 한량없는 복덕을 원만히 갖추느니라.”
7) 벽지불승품(辟支佛乘品)
무승의 동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연각승(緣覺乘)을 닦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선남자·선여인은 어떤 사랑과 슬픔과 기쁨과 평정을 닦는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에 벽지불의 승을 닦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선남자·선여인이 있다면, 중생의 즐겨함을 관찰하여 중생의 즐겨함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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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인연의 사랑을 염하되 마침내 중생을 인연한 사랑은 억념(憶念)하지 않으며, 자기 심중에 즐거운 일을 느끼는 것처럼 중생과 함께 즐거워하기를 원하며, 법의 평등함을 관찰하고 즐거움의 평등함을 관찰하고 진리[如]의 평등함을 관찰하고는 내지 한 사람에게라도 나쁜 마음을 내지 않으려면, 설사 어떤 인연으로 나쁜 마음을 내는 자가 있더라도 이렇게 생각할지니라.
‘만약 내가 저 사람에게 나쁜 마음을 낸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보살마하살도 한량없이 순수하고 착한 공덕을 성취함에 있어서 만약 한 사람에게라도 미워하거나 나쁜 마음을 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나는 아직 모든 착한 공덕을 성취하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이 인연으로 중생의 사랑과 법 인연의 사랑을 닦나니, 슬픔과 기쁨과 평정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약 연각승을 배우려는 자가 있으면 응당 이와 같이 사랑과 기쁨과 평정을 닦아야 하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6만억의 중생이 초지(初地)에 머물렀고 혹은 2지·3지·4지·5지에 머물렀으며, 어떤 중생은 무생인을 얻고 혹은 벽지불의 도와 성문의 도를 얻었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8) 성무애지품(聖無礙智品)
그때 대중 가운데 허공성(虛空聲)이란 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더 없는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온갖 지혜 덕목[智目]의 방편을 닦고, 인연 없는 범행(梵行)의 모든 법목 방편과 인연 없는 범행의 온갖 음·입·계의 방편과 해탈의 방편과 삼매의 방편과 다라니의 방편과 지혜[忍] 얻는 방편과 모든 지위의 방편을 닦는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온갖 덕목의 문(門)을 허공의 지혜처럼 닦아서 저 언덕에 이르고 인연 없는 범행으로써 네 가지 폭류[四流]를 건너고 네 가지 악마의 얽음을 끊는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네가 이제 능히 네 가지 한량없는 바다에 들어가 중생을 생사의 물에서 건지려고 이제 이러한 물음을 내어 다시 부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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