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74)-74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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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라고도 설할 수 없음과 같으니라.
교진여야, 이러한 4제가 곧 한 가지 진리라면 한마음 얻을 수 있으리라.
교진여야, 관찰할 때가 다르면 얻을 때도 다르나니, 관찰할 때가 다르다는 것은 원인․결과가 다 파괴함이요, 얻을 때가 다르다는 것은 괴로움의 지혜․원인[集]의 지혜·멸함[滅]의 지혜·길[道]의 지혜이니라. 만약 비구로서 그 지어감이 덧없어 이 괴로움과 나 없음[無我]과 깨끗하지 않음과 머무름이 없음을 관한다면, 이는 번뇌의 인연이며 모든 것의 존재[有]이니, 이를 얽어 묶음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음(陰)과 모든 지어감을 구하지 않고 온갖 지어감에 만족하여 열반을 즐거이 구하며, 지심으로 열반의 공덕을 생각하여서 깊이 고요함을 즐겨하고 신명을 아끼지 않으며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나니, 이를 비구가 법행을 닦음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을 비구가 능히 마음에서 마음을 본다 하는가 하면, 만약 비구로서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은 덧없고 마음은 나고 멸하는 법이라고 한다면, 이는 비구가 능히 마음에서 마음을 본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는 허공삼매를 닦나니, 어떤 것을 공이라 하는가 하면, 음(陰)·입(入)·계(界)의 공, 이치(諦)의 공, 실상의 공, 12인연의 공, 성품의 공이니라. 어떤 것이 음의 공인가 하면, 색의 공으로서 나[我]와 내 것[我所] 없음 내지 식별의 공으로서 나와 내 것 없는 것을 음의 공이라 하나니, 입과 계의 두 가지 공도 그러하느니라.
어떤 것이 이치의 공인가 하면, 이른바 괴로움의 이치로서 얻음도 버림도 없고 내지 도의 이치도 그러하며, 어떤 것이 실상의 공인가 하면, 일체 법 가운데 각(覺)과 관(觀)과 나[我]와 내 것[我所] 없는 것을 참 모양의 공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12인연의 공인가 하면, 12인연은 곧 12유지(有支)니 12유지의 나와 내 것 없음을 관함을 12인연의 공이라 하며, 어떤 것이 성품의 공인가 하면, 비구가 눈의 공으로서 나와 내 것 없음을 관하고 내지 뜻의 공도 그렇게 한다면, 이는 법행으로서 능히 마음의 본체와 마음의 대상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이러한 비구는 중생․수명․장정 어떤 개인을 보지 않고 모든 법성을 알고 참으로 세간의 이치를 이해하지만, 유포하기 위하여 음·입·계를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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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법성의 나고 멸함을 없음을 아나니, 이러한 비구는 능히 생사를 제도하고 온갖 괴로움과 원인[集]과 멸함[滅]과 길[道]을 알고 번뇌를 끊으리라.
교진여야, 만약에 어떤 비구가 법행을 닦아서 일체 법은 인연에 따라 나고 인연에 따라 멸함을 안다면, 이러한 비구는 3해탈을 얻어 색(色)의 참다운 모습[眞相]을 아나니, 색의 참다운 모습이란 장애하는 모습[礙相]이며, 수(受)는 느낌의 모양·상(想)은 깨닫는 모양·행(行)은 짓는 모양·식(識)은 아는 모양이니, 이를 일러 모든 법상(法相)을 참으로 안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고는 공한 해탈문을 얻으며, 일체 법의 지음과 받음과 수명과 자재(自在)가 없음을 보고 오직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 없음을 본다면, 이는 원 없는 해탈문을 얻었다 하며, 일체 법의 나고 멸함이 없음을 관찰한다면, 이는 모양 없는 해탈문을 얻었다 하느니라.
교진여야, 법행 비구는 신통을 얻어 나쁜 각(覺)과 관(觀)이 없고 입으로는 마침내 나쁜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싸우는 일이 없고 나쁜 말은 듣지도 않으므로 그때 곧 5개(蓋)를 멀리 여의고 다섯 가지 선근을 자라게 하나니, 이 법행 비구는 초선(初禪)을 얻으며, 초선에 들고는 몸의 신통을 얻고자 마음을 코 끝(鼻端)에 두고 숨의 들이쉬고 내쉼을 관찰하되 깊이 9만 9천의 털구멍에 숨의 드나듦을 관찰하여서 몸이 다 공함을 보고 내지 4대(大)도 그와 같이 하며,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는 색(色)의 모양을 멀리 여의어 신통을 얻고 내지 4선(禪)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어떤 것이 법행 비구가 눈의 신통을 얻는다 하는가. 교진여야, 만약에 비구가 숨의 드나듦을 관찰하여 진실히 색(色)을 보며 이미 색을 보고는 생각하되, ‘나의 소견과 같이 3세의 모든 색을 보려고 생각한다면 뜻에 따라 곧 보리라’고 하니, 내지 4선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행 비구가 하늘귀 신통[天耳通]을 얻는 것이라 하는가. 교진여야, 비구가 초선을 얻을 적에 숨의 드나듦을 관찰하고 나서 차례로 소리를 관찰하고 내지 4선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법행 비구가 남의 속 아는 지혜[他心智]를 얻는 것이라 하는가. 비구가 숨의 드나듦을 관찰하여 초선을 얻을 적에,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음을 남의 속 아는 지혜라 하나니, 내지 4선도 그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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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법행 비구가 전생 일 아는 지혜(宿命智)를 얻는 것이라 하는가. 교진여야, 비구가 숨의 드나듦을 관찰하여 초선을 얻을 적에, 눈의 신통을 얻으며, 눈의 신통을 얻고는 처음 가라라(迦羅羅)가 있을 때 내지 5음(陰)의 나고 멸함과 한량없는 겁 속의 5음의 나고 멸함을 관찰하고 내지 4선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니라.
말한 바 선(禪)이란 것은 무슨 까닭으로 선이라 하는가. 빠르기 때문에 선이라 함이니, 빠름에는 크게 빠르고 머무름에는 크게 머물고 고요함에는 더욱 고요하여 멸함[滅]을 관찰하고 멀리 여의므로 이를 선이라 하느니라.
초선이란, 원만히 갖춤이라 하고 멀리 의임이라고도 하나니, 어떤 것이 원만히 갖춤이며 멀리 여읨인가 하면 원만히 갖춤이란, 다섯 갈래[支]를 갖춤으로써 이른바 각(覺)·관(觀)·기쁨[喜]·안(安)·정(定)이니라. 각(覺)이라 함은 마음으로 크게 깨달음을 깨닫고 크게 생각함을 생각하는 것처럼, 심성(心性)을 관찰함을 각이라 하며, 관(觀)이라 함은 마음으로 큰 행과 넓은 행을 행하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관찰함을 관이라 하며, 기쁨이라는 것은 진실히 큰 알음을 아는 것처럼, 마음을 지심으로 움직임을 기쁨이라 하며, 안이라는 것은 이른바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느낌이 편안하여 즐거운 닿임[觸]을 받음을 안이라 하며, 정이라는 것은 마음을 크게 머무름에 머물러 어지럽지 않고 인연에 그릇되지 않아 뒤바뀜이 없음을 정이라 하느니라.
제2선(禪)이란 것은 다섯 가지 일, 말하자면 5개(蓋)를 함께 여의고 기쁨·안·정 세 가지 갈래[支]를 원만히 갖추며, 제3선에 들어감도 역시 다섯 가지 일을 여의고 염(念)·사(捨)·혜(慧)·안(安)·정(定) 다섯 가지 갈래를 원만히 갖추며, 제4선에 들어감도 역시 다섯 가지 일을 여의고 염·사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과 정(定), 이 네 가지 갈래를 갖추나니, 교진여야, 비구로서 이 4선을 원만히 갖춘다면 법의 지어감[法行]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만약 비구로서 몸을 관찰하되 집착하지 않고 몸의 모양[相]과 온갖 몸의 닿임[觸]과 기쁨의 닿임과 즐거움의 닿임을 멀리 여의며 색음(色陰)을 구별하여 색음을 멀리 여의고 한량없는 공처(空處)를 관찰한다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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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법행 비구가 공처정(空處定)에 들어간다 하고 비구로서 법의 지어감을 닦는다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을 비구가 식처정(識處定)을 얻는다 하느냐 하면, 비구는 사마타(奢摩他)나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고 마음과 뜻과 식을 관찰하여서 스스로 이 몸의 느끼지 않음을 알며, 세 가지 느낌[三受]을 알고 나서는 세 가지 느낌을 멀리 여의게 되나니, 그러므로 식처정을 얻음이라 하고 이를 법의 지어감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을 비구가 소식처정(少識處定)을 얻는다 하느냐 하면, 비구는 3세의 공함을 관찰하고 모든 법행(法行)의 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것과 공처(空處)·식처(識處)의 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함을 알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차례로 식별[識]을 관찰하기를, ‘나는 이제 식별을 관찰하여도 비식비비식(非識非非識)도 아니다., 만약 식이 아니라면 이는 고요함이라 하리니, 내가 이제 어떻게 이 식을 영원히 끊겠는가’고 하여, 이렇게 관찰하고는 소식처(少識處)를 얻으므로 이를 비구가 소식처정을 얻는다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을 비구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얻는다 하느냐 하면, 교진여야, 어떤 비구가 마음 아닌 모양이 있어 이런 수순한 지혜[順忍]를 일으키되, ‘지금 나의 이 모양은 괴롭고 번뇌로우며 부스럼과 헌 데이므로 고요함이 아니로다. 만약 내가 이 같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님을 끊는다면, 이를 고요함이라 하리라’고 하여, 비구로서 능히 이러한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님을 끊는다면, 이는 모양 없는 해탈문을 얻었다 하리라. 왜냐하면 법행 비구는 생각하기를, ‘만약에 느낌[受]의 모양이 있거나 식별의 모양이 있거나 닿임의 모양이 있거나 공이 있고 식별이 있거나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 있다면 이런 따위의 모양은 거친 모양이라 하나니, 내가 이제 만약 모양 없는 삼매를 닦는다면 능히 이 같은 모양을 길이 끊으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상비비상을 보는 것을 고요한 경계라 하고 이와 같이 보고는 비상비비상처정에 드나니, 만약 비상비비상처정을 얻고 나면, 애착하거나 탐착하지 않고서 능히 무명을 깨뜨리고 무명을 깨뜨림으로써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는다 하느니라.
앞서 세 가지 선정에서 두 가지는 도(道)로써 끊을 수 있지만 뒤의 제4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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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은 마침내 세속의 도로써는 끊을 수 없느니라.
범부들은 비록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닌 것도 아닌 경계에 거친 번뇌가 없다 하지만,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첫째는 느낌[受], 둘째는 생각[想], 셋째는 지어감[行], 넷째는 닿임[觸], 다섯째는 사유(思惟), 여섯째는 하고자 함[欲], 일곱째는 이해[解], 여덟째는 염(念), 아홉째는 선정[定], 열째는 지혜[慧]이니라. 느낌이라 함은 이른바 의식의 느낌이요, 생각이라 함은 이른바 의식의 생각이요, 지어감이라 함은 이른바 법의 지어감이요, 닿임이라 함은 이른바 뜻의 닿임이요, 사유라 함은 이른바 법의 사유요, 하고자 함이라 함은 이른바 선정에 드나들고자 함이요, 이해라 함은 이른바 법의 이해다.
염이라 함은 이른바 삼매를 염함이요, 선정이라 함은 이른바 마음을 참된 법에 머무름이요, 지혜라 함은 이른바 지혜의 근기와 지혜의 힘으로 네 가지 과(果)에 나아가는 지어감을 관찰하며 내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으며, 나고 멸함과 허공삼매를 관찰하고 4대(大)를 네 가지 독사(毒蛇)와 같다고 관찰함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법은 제 4의 공처(空處)에 원만히 갖춰 있어 거친 번뇌가 없는 까닭에 모든 범부는 이를 열반이라고 이르느니라.
교진여야, 비구는 성도(聖道)를 닦아서 4선(禪)과 4공처(空處)를 싫어하여 여의고 멸진정[滅定]의 장엄한 도를 관찰하여 생각하기를, ‘모든 드나드는 숨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 내 만약에 드나드는 숨을 끊는다면 곧 안락하게 되리라’고 하나니, 그러므로 온갖 지어감의 인연이 다 멸하고 느낌도 멸하고 내지 지혜도 멸하며, 각(覺)과 관(觀)이 사라지므로, 음(陰)·입(入)·계(界)가 멸하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멸하고 온갖 심수(心數)의 법이 멸하고 온갖 심수 아닌 법도 사라지나니, 이는 범부들과 같이하지 않는 법이라 하며, 세간의 법이 아니고 무학(無學)의 법이니라.
교진여야,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인 사람은 끝내 이러한 멸진정을 얻을 수 없나니,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은 사람도 이 선정은 얻을 수 없고 수다원으로서 몸을 버리고 나서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도 이 선정은 얻을 수 없으나 만약 8해탈을 원만히 갖춘 자라면 이 사람은 능히 얻게 되리라.
교진여야, 만약 여래로 하여금 겁수가 다할 때까지 이 법목(法目) 다라니를 말씀한다면 그 법을 다 설할 수 있으리니, 이를 법의 걸림 없는 지혜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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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교진여야, 이러한 법목 다라니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 교진여야, 가령 어떤 사람이 토끼털로써 바닷물을 찍어서 그 물을 헤아린다 할지라도 법목 다라니의 모든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리라. 만약 여래를 제외하고는 말로써 다하려는 자가 있다 하여도 그럴 이치가 없으리니, 내지 온갖 사바세계의 가는 티끌도 그러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금강산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가지고 온 법목 다라니는 지금 내가 말하는 것과 다름이 있는가 없는가?”
“다름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야, 이와 같이 말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진실로 이와 같이 말하였나이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법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베껴 써서 널리 남을 위해 말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항상 하늘·사람과 용·귀신과 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따위의 수호를 받고 온갖 네 가지 마군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며, 번뇌의 물을 건너 8정도(正道)에 들어가는 사람인 줄 알지니라.”
금강산 동자가 아뢰었다.
“거룩합니다, 세존이시여. 진실로 성스러운 가르침이나이다.”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이 법을 수행하여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는 광명을 베풀어 능히 청정하고 고요하다 하며, 다니는 곳이 없어 흐리거나 움직임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어 적거나 많음이 없어서 이르는 곳마다 세밀한 지어감[細行]과 견고한 지어감[堅行]을 지어간다 하며, 능히 네 가지 마군과 네 가지 마군의 무리와 온갖 삿된 소견을 파괴하고 생사의 물을 건너 지혜의 바다에 들며, 항상 여러 성인의 찬탄을 받고 여래의 출입하는 곳에 가까이하게 되리며, 아직 온갖 번뇌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훌륭한 몸과 위없는 보리와 훌륭한 빛과 훌륭한 힘과 훌륭한 변재[辯]와 훌륭한 지혜와 훌륭한 한 자리를 얻을 것이며, 혹은 영토를 맡아 네 지역의 임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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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셋이나 둘이나 한 곳의 임금이 되기도 하고, 제석(帝釋)이 되기도 하고, 타화자재왕(他化自在王)이 되기도 하고, 범왕(梵王)이 되기도 하며, 다시 보리수 아래 금강상(金剛床)을 얻어 범(梵)의 음성이 심원하고 그 마음이 평등하여 큰 자비심을 얻고 사마타(奢摩陀)를 얻으며 모든 번뇌를 파괴하여 위없는 높은 이라 하리라.”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사리불과 목건련 등이 앉은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때 온갖 세간 사람과 하늘들은 찬탄하여 말하였다.
“여래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온갖 중생이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와 아나함과와 아라한과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그때 사천왕과 공덕천(功德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이 유포되는 곳을 저희들은 마땅히 4부의 제자와 그 국토의 도시·촌락과 여러 왕과 백성을 옹호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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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23권
북량 천축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0. 허공목분 ②
2) 세간목품(世間目品)
그때 세존께서 두 눈썹 사이로부터 백호상(白毫相)의 광명을 방출하시니, 그 광명은 시방 여러 불세계의 해와 달, 별과 구슬, 불과 등잔 따위가 비추는 곳을 다 덮고 온갖 돌산과 험악한 가시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며, 시방의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의 중생은 이 광명을 보고나서 각각 전일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생각하고 그 중 여러 부처님들은 이 광명을 본 뒤에 각기 자기들의 대중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선남자야,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거쳐 그곳에 사바세계가 있어서 다섯 가지 더러움을 갖추고,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는 부처님이 출세하셨는데, 한량없는 세계의 한량없는 보살과 한량없는 성문이 다 그 국토에 모여 그 부처님 앞에 앉고 그 부처님은 법행(法行)과 법목(法目) 다라니문을 연설하시며 여러 성문을 위해 법행을 말씀하시고는 큰 광명을 방출하고 장차 정목(淨目) 법문 다라니를 연설하시어 중승(中乘)들을 위해서는 연각의 과를 얻게 하고, 보살을 위해서는 장엄하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하고, 10지(地)와 여래의 18불공법(不共法)을 원만히 갖추고 물러나지 않는 바퀴를 굴리고 3악취를 파괴하고 여덟 가지 성인의 도를 닦아서 위없는 과를 얻게 하려고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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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방세계의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의 대중이 이 말씀을 듣고는 각각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저 사바세계의 설법하는 곳에 가서 이러한 정목 법문을 받아 듣고자 합니다.”
그때 한량없는 보살 대중이 다 함께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이때 이 세계의 한량없는 범천(梵天)도 부처님 계신 곳에 이으러 공양 공경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고 백억의 마천(魔天)과 백억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백억의 도솔천(兜率天)과 백억의 제석천(帝釋天)과 백억의 사천왕천과 백억의 일월천(日月天)과 백억의 자재천(自在天)과 백억의 염라왕(閻羅王)과 백억의 지귀(地鬼)와 4백억의 아수라(阿修羅)와 4백억의 용왕(龍王), 이러한 무리들도 다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공경히 공양하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고, 한량없는 사문·바라문은 다 신통을 얻어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서 공경히 공양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여러 세계의 외도(外道)와 상사(相師)들은 이 광명을 볼 때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같은 광명은 해와 달이나 별의 밝음이 아니고 반드시 이상한 광명이므로, 이렇게 된다면 오래지 않아 일곱 해[日]가 한꺼번에 나와서 사방 바다와 수미산왕(須彌山王)의 온갖 초목을 마르게 할 것이고, 그런 뒤에는 욕계(欲界)에 화재(火災)가 마땅히 일어나리라.’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앞으로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독(毒)을 뿌려 온갖 것을 해롭게 하리라.”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이제부터 얼마 뒤에는 반드시 흉기[刀]를 뿌려 모든 사람과 물체를 해롭게 하리니, 이런 험악한 시기가 장차 닥쳐온다면 누가 구제하랴.”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 사문은 온갖 것을 가엾게 여기시므로, 그 수명만은 구제하여 주시리라.”
그때 온갖 한량없는 중생들은 지심으로 염불하고, 염불하고 나서는 곧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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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보배 궁전을 보게 되어 부처님의 힘으로 보배 궁전 가운데 이르렀다.
그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의 신통력으로써 보배 궁전 가운데 이르렀고, 우전야나왕(憂塡耶那王)·악성왕(惡性王)·수두단왕(輸頭檀王)·마혜타왕(摩醯陀王)·수타사나왕(修陀奢那王)·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등 이러한 왕들도 부처님의 힘으로 인하여 다 보배 궁전 가운데 이르러 공양·예배하고는 차례로 앉아서 각각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대중 속에는 큰 선인(仙人)도 있고 부처님 세존도 계시니, 이 광명의 인연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선인에게 묻는 것이 옳을까,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께 묻는 것이 옳을까.’
그때 수타사나왕이 말하였다.
“여기에 전발(電髮)이라 하는 큰 바라문 스승이 계시어 상법(相法)을 잘 알고 해설도 잘 하니, 이 스승에게 묻는 것이 옳으리라.”
전발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상서(相書)를 널리 보았지만, 도무지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실상 이 광명의 상서를 알 수 없습니다. 염부제(閻浮提) 안에 5백 명의 온갖 상법을 아는 스승[相師]들이 있지만 다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빈바사라왕이 여러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왜 미친 짓을 하는가, 이 대중 가운데 석가모니라 하는 부처님이 계시어 온갖 지혜를 갖추고 세간과 출세간의 상을 잘 알며, 열두 조목의 훌륭한 상서를 통달하고 큰 슬픔[大悲]으로써 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겨 진실한 말과 바른 말을 하시니, 오직 부처님만이 이 광명의 보응(報應)을 말씀하여 주시리라.”
그때 여러 왕과 온갖 대중이 높이 우러러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열두 조목의 상서를 말씀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대왕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큰 모임에서는 세간의 상서를 설할 수 없다오.”
빈바사라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모임 속의 중생들이 여래의 모든 공덕을 믿지 않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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