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진심은 생사에서 벗어남

근와(槿瓦) 2015. 12. 23. 00:26

진심은 생사에서 벗어남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질문)

견성(見性)한 사람은 생사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예전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분들이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오늘날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에서 벗어난다고 하는가?

(대답)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인데 잘못 알고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안질로 인해 허공에 어른거리는 꽃을 볼 때, 건강한 사람이 허공에 꽃은 없다고 하면 그 환자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안질이 나으면 허공의 꽃도 저절로 사라져 그때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는다. 그 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본래부터 없는 것이다. 환자가 꽃이라고 잘못 집착했을 뿐, 그 실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생사가 있다고 잘못 인식했을 때, 생사가 없음을 아는 사람이 생사란 본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망념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야 이때 비로소 본래 없는 줄을 안다.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제 있는 것이 아닌데, 생사가 있다고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아득한 옛적부터 여러가지로 엎어지고 넘어진 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바꾸는 것과 같다. 사대(四大)를 자기 몸으로 알고 육진(六塵)과 관계되는 그림자를 자기 마음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다가 그 꽃이 허공에서 사라지면 사라진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부터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서 잘못 생멸을 보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의하면, 원각(圓覺)의 진심을 깨달으면 본래 생사가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으면서도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공부가 아직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經에 말하였다.

'암바파리라는 여인이 문수보살에게 묻기를, 생사가 바로 생사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어째서 생사에 유전합니까 하니, 문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뒤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물었다. 생사가 바로 생사가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어째서 다시 생사에 유전합니까? 수산주는 이렇게 답했다. 죽순이 마침내는 대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엮으려고 한들 될 수 있겠는가.'

 

그럼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은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는 것만 못한 줄을 알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떻게 체득하겠는가. 어떻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고 생사가 없음을 활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생사를 잘못 인식하는 이들이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진심직설,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