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88)-88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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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그리하여 그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와 화합한다. 구타니(瞿陁尼) 사람으로서 남자로 태어나는 이는 이런 현상이 있다. 또 여자로 구타니 나라에 태어나려면 자기 몸이 암소와 같음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저 황소는 저들과 화합하고 나는 상대하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여자로 태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구타니 나라 여자의 태어나는 모양으로서 이른바 셋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넷째 중음은 어떤가? 만일 염부제 사람으로 목숨을 마치고 불파제에 태어나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즉 푸른 모직물을 보면 모두 푸른빛으로서 허공을 덮는다. 그 집을 보아도 모두 허공과 같다. 그 푸른 모직물이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손으로 막으면 그 친척과 형제들은 (허공을 막는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목숨을 마치고 불파제에 태어날 때 그 중음의 몸을 보면 마치 말의 형상과 같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수말과 같고 그 어머니는 암말과 같아서 부모가 한데 모여 애욕으로 화합하는 것을 본다. 남자로 태어나려면 (나는 저 암말과 화합하리라)고 생각하며 여자로 태어나려면 자기 몸이 암말의 형상임을 보고 (저 수말은 왜 나와 화합하지 않는가) 하고는 곧 여자의 몸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넷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다섯째 중음은 어떤가? 울단월의 사람으로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상행(上行)의 현상을 본다. 천자들이여, 그는 큰 업과 큰 마음으로 마음의 업이 자재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손으로 허공을 거머잡으면 하나의 꿈속과 같다. 그 꿈속에서 보이는 갖가지 훌륭한 꽃을 보고 기뻐한다. 또 제일의 향기를 맡고 제일 묘한 빚깔을 두루 갖추어 제일의 장엄은 파랑·노랑·빨강·하양이다. 제일의 향기는 그 손 안에 있다. 그는 꽃을 보고 탐심을 내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나무에 올라 가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목숨을 마치고는 중음으로 태어나서 파랑·노랑·빨강·하양 등 한량없는 종류의 연꽃나무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나무에 올라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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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고 곧 큰 나무에 올라가면 그것은 바로 수미산이다. 그 산에 올라서는 천상 세계의 꽃과 과실의 장엄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런 곳에서 놀아야겠다. 나는 지금 가는 곳마다 꽃과 과실이 풍족한 이 숲에 왔다.) 이것이 이른바 울단월 사람이 하품(下品)의 생을 받는 것으로서 이른바 다섯째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여섯째 중음은 어떤가? 울단월 사람으로서 중간의 업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천상에 태어나고자 하면 이런 현상이 있다. 즉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연꽃 못을 보면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며 온갖 봉오리로 장엄하여 모두가 향기롭다. 그가 그 연꽃에 올라 잠깐 동안에 허공을 타고 날으는 것은 마치 꿈속과 같다.
그는 천상에 태어나서 사랑할 만하고 훌륭하고 묘하여 가장 제일인 아름다운 연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훌륭한 연꽃 못에 가서 저 연꽃을 가지리라.) 이것이 이른바 울단월 사람이 중품(中品)의 생을 받는 것으로서 이른바 여섯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일곱째 중음은 어떤가? 울단월 사람은 훌륭한 업으로 말미암아 삼십삼천의 선법당의 서른세 곳에 태어난다. 그는 울단월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승묘당(勝妙堂)을 보는데 그 장엄은 훌륭하고 묘하다. 그 때에 그는 승전(勝殿)에 오르지마는 실은 궁전이 아니고 허공에 오른 것이다. 그는 천상 세계에 가서 그 궁전을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곧 궁전 안에 태어나서 천자가 된다. 이것이 이른바 울단월 사람이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나서 상품(上品)의 생을 받는다는 것으로서 이른바 일곱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여덟째 중음의 상속(相續)은 어떤가? 울단월 사람으로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이런 현상이 있다. 즉 천자들이여, 그는 숲이 늘어선 유희하는 곳을 본다. 향기롭고 깨끗하여 즐길 만하므로 그 향기를 맡고 기뻐하며, 고뇌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뇌가 없다. 그러므로 그 마음은 흐리지 않고 청정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중음의 몸을 받아 하늘의 궁전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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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궁전에 올라가 유희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그 궁전에 올라가 그 천자들을 본다. 그들은 허공을 다니며 놀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산봉우리에서 머무르기도 하고 혹은 몸을 부딪치면서 곳곳에서 유희한다. 그는 중음에 있으면서 자기 몸이 천상에 오르는 것을 보면 마치 꿈속과 같다. 삼십삼천은 훌륭하고 묘하여 즐길 만하고 다섯 가지 쾌락을 모두 갖추었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저 곳으로 가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천상에 태어나면, 인연의 몸을 받되 거기에는 상·중·하의 구별이 있다. 그 천상에 태어나서는 갖가지 뛰어나고 훌륭한 동산숲을 보는데, 그것을 얻으려고 울단월에서 죽어 이 천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울단월 사람들은 이 천상에 태어나면, 남은 업의 뜻을 내어 쾌락을 즐기고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를 탐하여 노래와 춤과 즐거운 웃음으로 애욕의 즐거움을 받으며, 산봉우리에서 놀기를 좋아 해 많은 쾌락을 누리고 모든 욕심을 사랑한다. 왜냐 하면 전생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애욕을 더욱 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천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울단월 사람이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나되 이 천상에 태어나서, 그 유희와 죽을 때의 모양을 익힌다는 것으로서 이른바 여덟째의 중음(中陰)이다.
또 천자들이여, 아홉째 중음은 어떤가? 구타니 사람으로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나는 데에는 두 가지 업이 있다. 두 가지란 첫째는 여업(餘業)이요, 둘째는 생업(生業)이다. 그는 천상에 태어나서 어떤 중음의 생을 받는가? 그가 목숨을 마칠 때에는 어떤 현상이 생겨 현재의 과보가 다하려 하고, 혹은 중음으로 있으면 어떤 현상이 생겨 어지러이 움직이는 것은 마치 꿈과 같다.
천자들이여, 구타니 사람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선업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버리려 할 때에 숨을 헐떡이지 않고 맥이 끊어지지 않아 모든 감관이 청정하다. 그 때에는 유리 같은 큰 못물을 보고 그 못을 건너려고 들어가면 그 물은 온도가 맞아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양양(洋洋)히 흐르면서 그를 띄워 저쪽 언덕에 이르게 한다. 그리하여 생을 받을 곳으로 가까이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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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언덕에 도착하면, 많은 천녀들이 제일 단정하고 갖가지로 장엄하여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고 춤 추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보고 욕심으로 친근하려고 앞으로 나아가 그녀들을 안으면 그는 곧 천상에 태어나서 하늘의 쾌락을 누린다. 그 때에는 마치 꿈속인 듯 중음은 없어지고 한량없는 어지러운 마음으로 거기 태어나자 곧 깨닫는다. 그리하여 온갖 묘한 색을 보고 훌륭하고 묘한 몸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아홉째의 중음이다.
구타니 사람은 거기 태어나서 상·중·하 세 가지 업은 있지마는 그 광명과 중음에, 소견과 나는 모양 등 일체가 서로 같아서 울단월 사람들이 생을 받을 때 세 가지 모양의 차별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또 천자들이여, 열째 중음은 어떤가? 불파제(弗婆提)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그 죽는 모양을 보고 자기 업의 모양을 보며 다른 업을 보고 혹은 뛰어나고 훌륭한 당기·번기와 난간으로 장엄한 궁전을 보고는 중음으로 있으면서 매우 기뻐하여 그 주위에서 유희하며 곧 생을 받고자 하다가 그 궁전 밖에서 같은 업을 본다. 즉 그는 거기서 여러 미녀들이 사내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고, 제일의 장엄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이 웃는 것을 본다. 그는 중음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이 궁전에서 나가 저 미녀들과 여러 사내들을 보고 함께 유희하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이 웃으리라. 왜냐 하면 저 미녀들은 저 사내들과 제일의 유희로서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이 웃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곧 궁전에서 나와 유희하는 무리 속으로 들어 간다. 그 때에 그는 스스로 자기가 거기 들어간 것을 알되 마치 잠에서 깬 것과 같다. 그리하여 천상에 태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열째의 중음이라 하고 또 네 천하[四天下]의 중음이라 한다.
이런 광명의 중음이 태어나는 것은 나만 자세히 알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저 외도들은 아는 이가 없고 아무리 세상의 법이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이 없다.
또 천자들이여, 열한째 중음은 어떤가? 저 아귀들은 좋지 않은 업으로 아귀 속에 태어났다가 악업이 다하면 다른 선업을 받는다. 전생의 다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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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선업으로 사랑할 만한 업은 마치 부모와 같아서, 천상에 태어나고 싶으면 곧 어떤 현상이 나타난다. 그 존재가 다하면 그 마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천자들이여, 만일 그가 아귀 가운데서 죽어 천상에 태어나려고 하면 아귀 가운데에서 주림과 목마름으로 몸을 태우고 질투하여 서로 파괴하며 항상 음식을 탐하고 언제나 물을 생각한다. 다만 음식을 생각할 줄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른다. 그러다가 목숨이 끝나려 할 때에는 다시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본래 있던 생각도 모두 사라지며, 그 몸은 열이 없고 부드러우며 청량하다. 몸에는 긴 털이 있고 온몸의 나쁜 벌레들은 모두 떨어지며 얼굴 빛은 청정(淸淨)하고 시원한 바람은 몸에 부딪친다.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주림과 목마름이 모두 없고 모든 감관은 깨끗하다. 독수리와 솔개·까마귀 등 나쁜 짐승들이 항상 그 눈을 쪼다가 임종 때에 이르러서는 모두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음식의 강물이 가득 차 넘치는 것을 보고, 중음이 들어가더라도 전생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 음식을 보고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다만 눈으로 보기만 하는데, 마치 사람이 꿈 속에서 음식을 보되 마시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것과 같으며, 혹은 꿈 속에서 먹는 것처럼 먹어도 배 부르지 않다. 그와 같이 비록 보기는 하더라도 배는 부르지 않고 다만 기뻐할 뿐이다. 천상의 즐길 만한 것을 보는 것은 잠에서 깨어 색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곧 마음으로 생각을 내어 그리로 달려가 그곳까지 가려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곧 천상에 가서 태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열한째의 중음(中陰)이다.
또 천자들이여, 열두째의 중음은 어떤가? 희귀한 업도 우치로 말미암아 축생의 몸을 받되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 많은 우치의 인연으로 업이 성숙하기 때문에 또 다른 업으로 한량없는 백천억의 생사의 몸을 받는다. 업이 성취하기 때문에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떨어지고 한량없는 겁 동안 지은 업으로 세상에 굴러다니는 것은 끝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처음이 없는 과거[無始]부터의 올바르지 못함은 이로움이 없었고 중생들을 괴롭힘으로써 끝없이 돌아 다닌다. 축생 세계에는 한량없는 종류·한량없는 종류의 음식·한량없는 온갖 길·한량없는 종류의 몸·한량없는 종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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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있고, 한량없는 갖가지 마음의 종자가 있어서 한량없는 업을 지으며 혹은 남을 시켜 믿지 않게 하여 온갖 악업을 짓게 한다.
그리하여 그 업을 다 받으면 마치 큰 바다의 물방울을 떠내어 바다를 말리는 것처럼 업의 바다의 물방울을 떠내어 축생의 업이 다한다. 그 축생에서 죽으면 다른 선업으로 말미암아 사천왕천(四天王天)이나 삼십삼천의 두 천상에 태어난다.
축생의 나쁜 길의 괴로운 과보가 끝나고 장차 그 몸을 벗어나려 하면 곧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현상의 인연은 한량이 없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축생으로 죽어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로서 아귀나 지옥으로 말할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우치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악업을 짓고 축생 속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한평생 동안에 지은 악업은 백천억 생 동안 받아도 다 받지 못한다. 혹은 한 겁에서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생사에 흘러 돌면서 생에서 생으로 업의 사슬에 얽매어 세상에 흘러 돌면서 축생의 몸을 받는다. 그러므로 차라리 지옥이나 아귀에 떨어질지언정 우치한 축생의 몸은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인연으로 축생으로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서 지옥으로 말할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축생의 괴로운 곳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광명이 나타남을 본다. 다른 선업으로 미련한 마음이 희박해지고 본래의 지혜가 조금 불어 지혜로운 마음이 차츰 날카로워지면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광명의 모양을 본다. 산골짜기를 보기도 하고 온갖 나무와 갖가지 흐르는 물과 갖가지 강물·못 등을 보기도 하며 또 음식을 보기도 하고, 혹은 생각하여 세상의 지혜를 보기 때문에 즐거운 곳을 본다.
산중에서나 숲 속에서 음식을 생각하거나 혹은 즐거운 곳을 보고 달려가는 것은 마치 꿈에서 보고 그리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생을 받을 곳에 가까이 가서는 곧 하늘몸을 받는데 그것은 마치 꿈에서 깬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온갖 색을 보는데, 백천억의 생을 받는 곳에서도 일찍이 그런 색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희귀하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하여 (이것은 어떤 물건인가? 어떻게 이런 것이 있는가? 무슨 인연으로 이런 것이 있는가?)라고 한다. 일찍이 보지 못했고 모든 감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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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하기 때문에 희귀하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는 (나는 여기 왔으니 이 물건을 다 가지리라)고 한다. 다른 선업 때문에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이요, 그런 인연으로 그런 뜻을 내는 것으로서, 그런 생각을 내었을 때 곧 천상에 태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열두째의 중음이다.
이것은 가장 있기 어렵고 가장 희귀하며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다. 유희하는 것 중에서 업이 제일이다. 온갖 업이 있는 곳에서 마음은 큰 요술장이로서 온갖 세계의 태어나고 죽는 곳에서 중생들을 희롱한다.'
그 때에 천자들은 제석천의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깊은 믿음이 생겨 다음 게송을 읊는다.
천왕은 부모와 같다.
천상 세계를 이롭게 하신다.
천왕은 우리들과
이승·저승을 이롭게 하신다.
우리들 위해 설법하시어
방일한 마음 끊게 했나니
우리는 반드시 고뇌 없애고
열반의 길을 얻게 되리라.
현재의 업의 과보로써
우리를 위해 연설하시고
나고 죽는 법으로써
세상에 보여 알게 하신다.
천왕은 진리를 보아
우리를 이롭게 하시고
우리가 미련하기 때문에
지혜로써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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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하는 마음으로 미녀를 사랑해
언제나 쾌락을 구할 때
천왕은 우리에게
생사의 인연 보이신다.
천왕은 장님의 길잡이요
병자에게는 매우 훌륭한 약으로서
바른 법을 연설하시어
모든 천자들을 이롭게 하신다.
천왕은 이와 같이
설법으로 이롭게 하시고
저 염라의 옥졸들은 모두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하셨다.
그 때에 천자들은 위의 게송을 읊었다.
그리고 제석천은 다시 천자들에게 말한다.
'열 셋째 중음은 어떤가? 지옥에 떨어진 중생으로 천상에 태어나기는 매우 드물고 어렵다. 다른 업의 인연, 즉 훌륭한 업의 인연으로 그 업과 같은 제일의 청량과 제일의 이익이 성숙한다. 먼저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선업이 나올 인연이 되어 한량없는 고뇌 속에서 나와 한량없는 쾌락을 받는 땅에 태어난다.
지옥의 중생이란 이른바 활지옥·흑승지옥·중합지옥·규환지옥·대규환지옥·초열대지옥 등과 온갖 작은 지옥으로서, 큰 고뇌를 받는 곳이요 매우 두려워 털이 곧두서는 곳이다. 왕성한 불꽃은 주위를 둘러 싼다. 그 지옥 사람들은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하여 그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곧 어떤 현상이 나타난다.
그 중음은 어떻게 천상에 태어나는가?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고뇌를 버리고 제일의 즐거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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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들이여, 그 지옥 사람은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옥졸들이 그를 솥 안에 던져 두어도 마치 물거품 같이 꺼져서는 다시 살아나지 않고, 혹은 몽둥이로 때려도 이내 죽어 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며, 쇠함에 넣어 두어도 곧 죽어 다시는 살아나지 않고, 잿물에 넣어도 들어가자 곧 녹아 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며, 쇠몽둥이로 치더라도 이내 죽어 없어져 다시는 살아나지 않고, 쇠부리를 가진 까마귀나 쇠까마귀가 먹어도 먹은 뒤에는 생기지 않고, 사자나 호랑이 따위의 온갖 나쁜 짐승이 잡아먹어도 먹은 뒤에는 생기지 않는다.
그 지옥 사람은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는 염라의 옥졸을 다시 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는 이미 중생의 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심지에 기름이 다하면 등불이 꺼지는 것처럼 업이 다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다시는 염라의 옥졸을 보지 않는다. 마치 염부제에 햇빛이 나타나면 어둠이 없는 것처럼 악업이 다할 때의 염라의 옥졸도 그와 같고, 사나운 입과 사나운 눈을 가진 중생들의 무서운 모양도 다 없어진다. 또 마치 그림의 벽을 부수면 그림도 따라 없어지는 것처럼, 악업의 그림벽도 그와 같다.
다시는 염라의 옥졸들의 무서운 모양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염라의 옥졸은 중생의 수(數)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지옥의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때에 제석천은 다음 게송을 읊는다.
마치 원수를 만난 사람이
그것을 벗어나 어려움 없고
또 많은 지식을 얻어
모든 방편 이롭게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이와 같이 이미 악업의
그 힘센 옥졸을 벗어나
이제는 선업을 얻어
천상 세계에 태어나게 되었다.
[880 / 1802] 쪽
그 사람은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갖가지 장엄으로
언제나 천상의 쾌락을 누린다.
그리하여 그 선업이 다하면
그는 자유롭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다시 타락하나니
마치 등불의 기름이 다하면
광명도 따라 멸하는 것과 같다.
업의 바람에 불려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
바람의 힘에 불려서는
여러 세상에 흘러 다닌다.
만일 누구나 지혜 있으면
업의 결박을 받지 않나니
어떠한 업도 결박하지 못하면
생사에 흘러 다니지 않는다.
마치 저 연뿌리의 실로써
수미산을 묶으려 하는 것처럼
그는 광야를 건너면서도
근심도 없고 고뇌도 없나니
지혜로운 사람이 흘러 돌지 않는 것은
마치 저 수미산 같다.
그 때에 제석천은 그 천자들을 위해 위의 게송을 읊고 다시 지옥 중음의 모양을 말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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