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87)-870

근와(槿瓦) 2015. 12. 16. 00:52

정법념처경(87)-87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861 / 1802]

살면서 부정한 물건을 팔고 재산을 내고 들이며 속인을 친해 벗을 삼고 절에 있기는 좋아하지 않고 시주의 집에 머무르기를 즐긴다.

 

욕심이 적은 비구는 그 욕심이 많은 비구들과는 한 절에서 살지 않아야 한다. 만일 고요한 마음을 얻고 악마의 결박을 떠나려 하면 그런 곳에서는 살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성 안의 사람이나 촌락 사람이나 울타리 친 고을 안의 사람들이, 그 비구들이 계율을 깨뜨리고 악을 행하는 줄을 알까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나 혼자 계율을 잘 지킨다 하여 많은 공양을 베풀 때 만일 내가 그 공양을 받으면 욕심이 적다고 말할 수 있고 만일 내가 그런 이양을 받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이 꺼리고, 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주를 원망하게 할 것이다. 즉 무엇 때문에 그 물건을 한 사람에게만 주고 많은 사람에게 주지 않는가?)라는 이런 허물을 알면 욕심이 적은 비구는 그 부정한 비구들과는 한 곳에 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사문의 아홉째 법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떤 열째 법을 아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세속의 신통을 얻어 능히 이상한 모양을 보이더라도 욕심이 적은 비구는 그것을 선전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우리는 이 아라한에게 많은 공양을 베푸리라)고 말하여, 묘한 문의 법을 방해하고 혹은 신통을 잃고 욕심이 적은 법을 깨뜨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떤 열한째 법을 아는가? 혹 어떤 비구는 부처님의 사리를 지니고 도시에서 도시로, 촌에서 촌으로 읍에서 읍으로 고을에서 고을로 다니면서 진실한 신통의 힘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고 (이 사리는 바로 큰 복밭이다. 그러므로 공양을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비구는 들음이 적어 지혜가 없다. 그리하여 욕심이 적은 비구를 칭송하고 찬탄하면서 (나는 들은 것이 많고 지혜가 있어 능히 너희들을 위해 바른 법을 연설하리)고 한다. 시주는 그 말을 듣고 사리와 많이 들은 비구를 공경하고 존중하여 공양을 많이 베푼다. 만일 그 비구가 그 공양을 받으면 욕심이 적은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적은 비구는 그런 돌아 다니는 비구와는 함께 다니거나 함께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시주들은 그 비구가 계율을 지니지 않는 것을 보고 (욕심이 적은 비구도 계율을 깨뜨린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와는 함께 다니거나 섰거나

 

                                                                                [862 / 1802]

앉거나 눕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염라 사자와 옥졸의 결박을 두려워하고 또 방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문의 열한째 법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떤 열두째 법을 아는가? 걸식하는 법을 받들어 두타의 공덕으로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다니면서 걸식하되 방일을 행하지 않고 음식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사문의 열두째 법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떤 열셋째 법을 아는가? 만족할 줄 아는 비구는 누더기를 받더라도 만족할 줄을 알고 받고, 헌 옷을 쌓아 두더라도 그것에 만족할 줄을 안다. 이것이 이른바 사문의 열셋째 법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떻게 욕심이 적은 비구로서 열넷째 법을 아는가? 만족할 줄 아는 비구는 능히 악마의 무리를 쳐부순다. 이것이 이른바 사문의 열넷째 법이다.

 

또 천자들이여, 사문은 어떤 열다섯째 법을 아는가? 욕심이 적은 비구는 짝이 없이 혼자 다니고 나쁜 벗을 버려, 처음이 없는 번뇌의 굳은 산을 쳐부순다. 그렇게 만족할 줄을 알아 제일의 즐거움을 받고, 목숨을 마칠 때 다달아서는 염라 사자에게 그 마음대로의 결박을 받지 않고, 매우 무서운 추악한 모양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다.'

 

그 때에 석가천왕은 이어 다음 게송을 읊는다.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법을
집을 나온 이는 수행해야 하나니
계율을 지킨 그런 사람은
열반의 길에 가까이 가리.

 

지은 바 있어도 바라지 않고
열반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면
악마의 경계에 묶이지 않고
악마의 경계에 가지 않으리.

 

만일 사람이 언제나 수행하되

 

                                                                               [863 / 1802]

바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을 닦으면
거기는 어떠한 고뇌도 없으리.

 

이미 지은 생각에 두려워하고
현재를 생각하여
또 미래를 알면
번뇌의 결박을 벗어나리라.

 

방일하지 않기를 언제나 즐기고
법을 믿지 않는 것 두려워하며
때 없는 깨끗한 지혜 닦으면
멀지 않아 열반에 머물게 되리.

 

하늘들은 쾌락을 누리면서도
그래도 방일한 행 일으키거니
하물며 우치한 사람이겠는가.
그는 방일의 지배를 받는다.

 

만일 누구나 방일을 행하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 되었고
만일 방일을 행하지 않으면
그는 늘 지혜에 머무는 사람이다.

 

방일하고 게으른 마음을
정근은 능히 끊어 버린다.
방일은 뭇 고뇌의 근본이거니
그것 버리되 죽음을 버리 듯하라.

 

                                                                                [864 / 1802]

이와 같이 석가천왕은 여러 천자들을 위해 염라의 사자를 변화로 만들어 그들을 두렵게 한 뒤에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그 때에 제석천왕은 그 천자들이 바른 법 안에서 믿고 즐기는 마음이 생긴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염라 사자들이 차츰 사라지려 하는 것을 본다. 이 사실을 본 뒤에 그들은 다시 석가천왕에게로 간다. 거기 있던 천자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숲 속에 숨어 있다가 모두 제석천에게로 간다. 제석천왕은 그 천자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 그들의 마음이 차츰 청정해짐을 따라 점점 그 변화를 없앴다."

 

                                                                                [865 / 1802]

정법념처경 제 34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

2) 삼십삼천
"이 때에 그 천자들은 마음으로 존경하면서 다시 제석천의 설법을 듣고 정수리 위에 합장한 뒤에 제석에게 아뢴다.
'우리는 지금 그 법의 힘을 보았습니다. 천왕님은 설법하여 우리 마음을 따라 각각 청정한 믿음을 얻게 하셨고, 또 염라 사자도 그를 따라 점차 사라졌습니다. 즉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의 힘을 듣고도 다 사라졌사온데 하물며 수행함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수행하면 죽지 않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 때에 제석천은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할 일을 이미 다 마쳤다. 나는 이런 방일하는 천자들을 위해 그 방일을 끊어 버려 방일하지 않고 모두 기뻐하게 하였다. 나는 지금 이 천자들을 위해 깊고 묘한 법을 연설하리라. 나는 옛날 스승님에게서 바른 법을 듣고, 해탈의 성문(城門)을 들고 나는 숨길인 안나파나(安那波那)를 생각하였다. 나는 먼저 난 천자들에게서 그들의 들은 바를 다 듣고 다시 부처님을 뵈었더니, 부처님은 나를 위해 연설하셨다.

 

그러므로 나도 지금 천자들을 위해 4성제(雜四聖諦)의 법을 설하리라. 나는 지금 그 한 진리 안에서 네 가지로 분별해 설명하여 이 모든 천자들을 이롭게 하고 또 스스로도 이롭게 하며 그리고 생사로 다니는 다른 중생들도 이롭게 하되, 갖가지 방편으로 설

 

                                                                                [866 / 1802]

법하여 중생들의 마음을 깨끗이 성숙하게 하리라.

 

나는 이상과 같이 열다섯 가지 법을 설명하였다. 이제는 이 천자들을 위해 열여섯 가지 법을 설명하리니, 그것은 안나파나의 드나드는 숨길을 생각하는 법이다. 네 가지 진리를 분별하여 제 원인의 모양을 방편으로 보이리라.

 

어떤 것이 이른바 차례의 설명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의 원숭이를 결박하기를 관찰한다. 천자들이여, 어떻게 대충 관찰하고 세밀히 관찰하는 마음의 원숭이를 결박하며 어떤 마음을 결박하는가?

 

이른바 의식을 결박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심으로 먼저 몸을 관찰한다. 몸을 관찰할 때에는 순신관(循身觀)으로서 염(불염(不染무기관(無記觀)이 있고 수()를 관찰할 때에는 순수관(循受觀)으로서 선수(善受고수(苦受낙수(樂受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觀수자상관(受自相觀)이 있으며 법을 관찰할 때에는 순법관(循法觀)으로서 선(불선(不善무기(無記)인 것은 자기 모양과 같다.

 

이것이 이른바 4념처(四念處)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런 법에 들어가 일심으로 모든 유위법(有爲法)의 본 모양의 적멸을 관찰하고 4념처를 관찰한다. 이 네 가지 진리의 모양은 이와 같이 그 곳을 생각하되 일체의 곳에 두루한다. 이른바 차례의 행상(行相)은 항상 무상하여 모였다 흩어지고, []이어서 지은 이가 없으며, 공이어서 나[]가 없어 부서지고 괴로운 것이다.

 

이와 같이 괴로운 무상을 관찰하여 4염처를 보고는 네 가지 진리[四聖諦]의 본 모양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한 뒤에는 난법(暖法)을 내고 난법에서 지혜를 낸다. 마치 불을 낼 때에 먼저 연기 모양을 본 뒤에 비로소 불을 보는 것과 같다. 부시[]와 같아서 먼저 열을 낸 뒤에 비로소 불을 낸다. 믿고 즐기기 때문에 온갖 번뇌의 무지한 법 가운데서 미래에 능히 비니(毘尼)의 거룩한 법을 내는 것도 그와 같아서, 열여섯 가지로 네 가지 진리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 난법은 어떻게 생기며 네 가지 진리를 어떻게 관찰하는가? 천자들이여,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苦聖諦]란 인연으로 있기 때문에 무상이요, 무너지기 때문에 고통이며 사람을 떠났기 때문에 공이요, 자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가 없다는 것이니, 이렇게 네 가지로 분별하여 괴로움의 진리를 관찰한

 

                                                                                [867 / 1802]

.

 

수행하는 사람은 괴로움의 진리를 관찰한 뒤에 다시 모임의 진리[集聖諦]를 관찰하는데 그것도 네 가지로 분별한다. 어떻게 분별하는가? 이른바 행이 서로 계속하여 구르기 때문이요, 업과 같은 결과가 모여 온갖 존재로 흘러 다니기 때문이며 일체의 성질로 인해 흘러 다님이 있기 때문이요, 그 힘은 서로 같지 않으나 차례로 계속하여 이어가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괴로움이 없어지는 진리를 관찰하되 네 가지로 분별한다. 천자들이여, 그 수행하는 사람은 괴로움이 없어지는 진리를 어떻게 분별하여 수행하는가? 일체의 고뇌를 버리기 위해서요, 번뇌의 불을 꺼 버리기 위해서이며 일체의 법은 가장 고요하기 때문이요, 청정한 법은 생사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길의 진리를 관찰하되 네 가지로 분별한다. 천자들이여, 그 수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분별하여 관찰하는가? 이른바 타락하지 않음을 얻기 위해서요, ()는 뒤바뀌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성인들이 머무르는 법이기 때문이요, 걸림 없음으로써 생사의 고뇌를 끊어 버리고 생사를 뛰어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이른바 열여섯 가지의 수행하는 법으로서 나는 이미 설명하였다. 너희 천자들은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 현재에서 난법을 관찰하고 계속해 서로 가르쳐라. 그리하여 드나드는 숨길의 관찰에서 난법을 내고 난법에서 정법(頂法)을 내어라. 믿음으로써 3보의 공덕 무더기에 생각을 매어 두면 그것은 앞의 관찰보다 더 훌륭할 것이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무엇을 관찰하는가? 그것은 정법의 도로서 마치 산꼭대기와 같은 것이다. 정법을 더욱 늘려 차례로 인법(忍法)의 선근을 내고 인법을 얻음으로써 셋째 곳에 머무르는데 그것을 생현전(生現前)이라 한다. 현재의 법이 아닌 인()을 현재의 인법으로 쓰기 때문에 인법이라 하며 인법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에 세상의 제일의 법이라 한다. 한 생각 동안에 마음마음으로 법을 세기 때문에 세간의 제일의 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차례로 수다원을 얻는다.

 

이런 법을 나는 이미 증득하였다. 만일 사람으로서 이런 법을 능히 증득하

 

                                                                                [868 / 1802]

면 염라의 두려운 사자를 보지 않고 또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얻은 자들은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법을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들이여, 방일하지 말라.'

 

그 때에 석가천왕은 이어 다음 게송을 읊는다.

 

만일 드나드는 숨길을 생각하여
열여섯 가지 끊음을 알면
난법과 정법과 인법을
역순(逆順)으로 관찰하여
세상의 제일의 법을 알고
차례로 진리를 알게 되리라.

 

차례로 그 바른 법 알아
훌륭한 도를 잃지 않으면
세 가지 결박을 벗어나고
여덟 가지 존재를 부수고
용맹하게 나쁜 길 끊으리니
그러므로 일러 수다원이라 한다.

 

번뇌가 있는 좋지 않은 법은
결정코 나쁜 길에 가지만
이것은 열반으로 흘러 가나니
그러므로 일러 수다원이라 한다.

 

제석천은 이 게송을 읊은 뒤에 다시 천자들에게 말한다.
'이렇게 열여섯 가지로 아나반나(阿那般那)를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 너희들도 생각하여라. 이 도는 고요하여 열반의 성에 들어가고 아무 두려움이 없으므로 모든 성인들이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반드시 이 도를 수행하여야 한다. 만일 너희들이 염라 사자를 두려워하거든

 

                                                                                [869 / 1802]

부디 차례로 이 아나반나의 열여섯 가지 행을 생각하여야 한다.

 

또 천자들이여, 열일곱 가지 중음(中陰)이라는 법이 있다. 너희들은 생각을 잡아 매고 그 적멸의 도를 수행하라. 하늘이나 사람이나 이 도를 생각하면 마침내 염라 사자의 해침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열일곱 가지 중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색상(色相)을 보면, 만일 인간에서 죽어 천상에 태어날 사람이면 즐거운 현상을 본다. 즉 그 중음을 보면 마치 흰 모직물이 대롱대롱 떨어질 듯한데 곱고 부드러우며 색깔은 새하얗다. 그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여 얼굴빛이 부드럽고 즐겁다.
그는 또 목숨을 마칠 때에 다달아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한 동산숲을 본다. 연꽃 못도 즐길 만하며 강물도 즐길 만하며 숲도 즐길 만하다. 그리하여 차례로 온갖 노래와 춤과 즐거운 웃음 소리를 듣는다. 다음에는 온갖 향기를 맡는다. 모두가 사랑하고 즐길 만하다. 한량없는 갖가지 물건들은 한데 섞여 보드랍게 몸에 닿는다이런 차례로 천상에 태어나면 선업으로 말미암아 천상의 즐거움을 직접 받는다. 그 즐거움을 받으면서 웃음을 머금고 기뻐하며 얼굴빛은 청정하다. 친척과 형제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울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현상 때문에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또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선업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치려할 때에 다달아 그는 중음으로서 큰 즐거움을 성취한다.

 

처음으로 즐거운 곳에 태어나면 그는 하늘의 몸과 같고 다른 하늘 무리들과 같아서, 그런 모양이 태어난 곳과 같은 것은 마치 도장에 찍힌 것과 같다. 그리하여 그 색상은 모든 하늘 무리들의 색상과 같고 그 즐거움도 욕심 세계의 여섯 하늘이 받는 즐거움과 같으며, 노니는 경계도 그들과 같은 것처럼 감촉도 같고 하늘 색도 또한 같다.

 

또 중음으로 있으면서 그가 태어난 천상의 훌륭한 광경을 보기 때문에 곧 마음에 애착이 생기고 경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곧 하늘몸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첫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둘째의 중음은 어떤가? 만일 염부제 사람으로서 목숨을

 

                                                                               [870 / 1802]

마치고 울단월에 태어나려면 부드러운 붉은 모직물의 즐거운 색을 본다. 그것을 보고는 좋아하고 탐심을 내어 손을 들어 잡으려 하기 때문에 마치 허공을 거머쥐려는 것과 같다. 친척들은 그것을 보고 두 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진다고 한다. 또 바람이 불어 온다. 그가 앓을 때가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오고 더울 때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 번열을 없애 주어 그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마음에 반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우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만일 그 업이 동하면 마음도 따라 동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우는 그 소리를 들으면 업의 바람에 불려 다른 곳에 가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친척과 형제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우는 것은 큰 장애가 된다. 만일 장애를 받지 않으면 그는 울단월(鬱單越)에 태어나되, 그 중간에 훌륭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차례로 볼 것이다.

 

즉 연꽃 못을 보면 거위·오리·원앙새들이 그 안에 가득하여 두루 풍족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곧 그리로 달려간다. 이렇게 그 중간에 훌륭한 마음이 생겨 목숨을 마치고는 푸른 연꽃 못을 보고 그 안에 들어가 유희한다. 만일 울단월에서 어머니 태에 들고자 하면, 꽃 못에서 나와 육지로 다니다가 부모를 보고는 탐욕으로 화합한다. 그리하여 더러운 것을 인해 뒤바뀐 소견으로 그 아버지를 수거위로 보고 그 어머니를 암거위로 본다. 남자로 태어나면 그 몸이 수거위의 몸임을 보고 여자로 태어나면 그 몸이 암거위의 몸임을 본다. 만일 남자로 태어나려면 아버지에게는 장애가 생기고 어머니에 애착하여 울단월에 태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둘째의 중음이다.

 

또 천자들이여, 셋째 중음은 어떤가? 만일 염부제에서 죽어 구타니에 태어나려면 곧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즉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그 집을 보면 모두 황색으로 마치 금빛과 같아서 구름처럼 두루 덮인다. 허공에 있는 누른 모직물을 보고는 손을 들어 거머잡으려 하면 그 친척과 형제들은 (이 병자가 허공을 잡는다)고 한다. 그 때에 그가 목숨을 마치려 하면 자기 몸이 소와 같음을 본다.

 

만일 남자로 태어나려면 부모가 애욕으로 화합하여 부정한 짓을 행하는 것을 보고 자기 몸을 보면, 그 많은 집에서 그 아버지 얼굴이 마치 황소 같음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법념처경(89)-890   (0) 2015.12.18
정법념처경(88)-880   (0) 2015.12.17
정법념처경(86)-860   (0) 2015.12.15
정법념처경(85)-850   (0) 2015.12.14
정법념처경(84)-840   (0)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