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85)-850

근와(槿瓦) 2015. 12. 14. 06:57

정법념처경(85)-85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841 / 1802]

다섯 가지 경계이다.

 

또 여섯 가지를 단속하는 것이니 이른바 여섯 가지 감관이요, 또 일곱 가지 바른 지혜를 아는 것이니 이른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이며, 또 여덟 가지 거룩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이른바 바른 소견 등이다. 또 아홉 가지 중생의 사는 곳을 아는 것이요, 또 열 가지 업의 얻는 과보를 아는 것이며 또 열한 가지의 닦음을 아는 것이요, 또 열두 가지의 곳을 아는 것이며, 또 열세 가지 생각을 따르고 그 생각을 맬 줄 아는 것이다.

 

또 열네 가지 선정으로 그 마음을 잘 닦을 줄 아는 것이요, 또 열다섯 가지 법을 아는 것이며, 또 열여섯 가지 아나파나를 아는 것이요, 또 열일곱 가지 죽음이 그 길이 있어서 계속 바퀴처럼 돌아 다님을 아는 것이며 또 열여덟 가지 경계를 아는 것이요, 또 열아홉 가지 중유(中有)를 아는 것이며 욕심 세계의 중생들이 사는 스무 곳을 아는 것이니, 그 행업을 이렇게 아는 이는 자유로움을 얻을 것이다.
하늘이나 사람으로서 이렇게 잘 알면 세 갈래의 나쁜 길을 끊고 모든 선법을 내어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나 사람으로서 나쁜 길을 끊으면 죽어도 염라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방일한 행을 버려야 한다. 방일은 모든 선법을 끊으므로 마치 원수와 같다.

 

방일하는 사람은 세상의 즐거움도 세상 밖의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 방일은 사람의 마음을 덮어 축생처럼 만든다. 그리고 자지 않는데 자는 것같이 하여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 복덕과 복덕이 아닌 것, 친우와 친우가 아닌 것, 복밭과 복밭이 아닌 것,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않아야 할 것 등을 알지 못하고 이익과 손해를 알지 못하며 공덕과 죄악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첫째의 악으로서 전연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고뇌의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방일을 끊어야 한다. 모든 천자들이 다 방일을 행하는데 어떻게 염라 사자의 결박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때에 석가천왕은 이어 게송으로 말한다.

 

'하늘이나 사람이나 방일하여
법이 아닌 것 즐겨 행하면

 

                                                                               [842 / 1802]

목숨을 마칠 때 다달아
염라의 사자를 보리라.

 

방일은 독의 해와 같나니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 버리면
목숨을 마칠 때 다달아도
아무런 고뇌 없으리.

 

방일하면 죽어서 고뇌를 받고
방일하지 않으면 가장 즐겁다.
만일 즐거움을 구하려 하거든
언제나 방일을 떠나야 한다.

 

천자들이여, 한 법을 끊는다는 것은 이른바 방일을 끊는다는 것이니 거기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여섯 가지란 즉 눈으로 빛깔을 보면 방일한 마음을 내어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좋은 빛깔이나 나쁜 빛깔이나 혹은 노랑·깜장·빨강·하양이나, 길거나 짧거나 모나거나 둥근 것 등, 이런 것을 보고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방일하기 때문에 또 세상 밖의 법도 알지 못한다. 방일한 마음으로는 빛깔을 보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자기 몸의 빛깔도 바로 보지 못하고 네 가지 진리를 즐겨 보지 않으므로 모든 빛깔에 대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본다. 마음이 방일하기 때문에 세상의 법과 세상 밖의 법을 잘 보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들어도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즉 노래나 말이나 옳거나 옳지 않거나 이런 세상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혹은 수다라(修多羅가타(伽陀기야(祇夜비가나(毘伽那우타나(憂陀那니타나(尼陀那비다가(毘多迦사다가(闍多迦비불략(毘佛略아부다달마(阿浮多達摩) 등 이런 법을 들어도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방일하기 때문에 목숨을 마칠 때 염라 사자에게 결박되어 끌려간다.
또 방일이 있다. 즉 향내를 맡으면 코는 곧 맡기를 탐하여 꽃 향기나 과일

 

                                                                               [843 / 1802]

향기를 알지 못하는데 이런 세상의 향기를 알지 못한다. 먼저 향을 피워 공양하고 보시하면서도 방일하기 때문에 그 향기를 알지 못한다.

 

또 방일하기 때문에 그 맛을 알지 못한다. 그 먹는 바 맛으로서 달거나 시거나 짜거나 쓰거나 맵거나 싱겁거나 떫거나 미끄러움 등 이런 맛의 구별을 모른다. 그것은 방일하기 때문이다. 또 방일하기 때문에 이런 세상의 맛이나 세상 밖의 법의 맛을 알지 못한다.

 

또 방일하기 때문에 몸의 촉감을 알지 못하고 몸의 선업을 짓지 못한다. 집을 짓더라도 일을 하지 않고 많은 선업을 짓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집은 물건을 두루 갖추지 못한다. 세상의 하지 않을 일도 알지 못하고 세상 밖의 하지 않을 일도 알지 못한다. 장로를 가까이 하지도 않고 공경하거나 예배하거나 문안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방일하기 때문이다.

 

천자들이여, 또 방일하기 때문에 선이나 불선이나 무기 등 마음의 법을 알지 못한다. 또 죽음에 다달아서는 죽음의 몽둥이에 맞아 큰 고뇌를 받고 염라의 사자가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자들이여, 하나의 법을 끊어야 하나니 이른바 방일이다.

 

두 가지 법을 닦는다는 것은 이른바 첫째는 사마타요, 둘째는 비파사나이다. 이 두 가지 법은 열반의 길을 보이는 것이다. 사마타란 나는 법[生法]과 아직 나지 않은 법을 끊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비파사나란 마음을 보고 법을 보는 두 가지 몸이기 때문에 비파사나라 한다. 이 두 가지 법을 좋은 친구로 삼으면 세 가지 허물을 끊을 수 있다. 즉 탐욕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분노하는 사람에게는 자심관(慈心觀)을 가르치며 우치한 사람에게는 지혜로 가르친다.

 

이런 세 가지 법은 세 가지 허물을 다스려 다시는 방일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죽음에 다달았을 때에도 염라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진리인가? 네 가지 진리란 이른바 괴로움 그것의 모임 그것의 없어짐, 그것을 없애는 길의 진리다.

 

괴로움이란 이른바 괴로움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괴로움이요, 둘째는 마음의 괴로움이다. 모임이란 이른바 음((()이다. 없어짐이란 이른바 열반이요 길이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八聖道]

 

                                                                               [844 / 1802]

니 이것을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라 한다.

 

잘 단속할 다섯 가지 경계란 이른바 빛깔·소리·냄새··닿임 등이다. 보호할 여섯 가지란 이른바 눈····몸 뜻 등 여섯 가지 감관으로서 경계에 대해서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다. 일곱 가지 법이란 이른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로서 사람의 몸과 같고 또 성()과 같으며 또 중생과 같은데 이것을 보리의 갈래라 한다.

 

그 일곱 가지란 이른바 생각[법 가림[擇法정진[精進기쁨[편안함[선정[버림[] 등의 깨달음 갈래다.

 

생각이란 어떤 모양이 있는가? 이른바 유위(有爲)의 허물과 악을 생각하고 진리를 생각하며 열반의 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법 가림에는 어떤 모양이 있는가? 지혜로 골라내는 것이다. 어떻게 골라내는가? 여실한 모양의 법으로 그 법을 골라 내어 그 이치를 생각하되 마음으로 그 이치를 생각하여 생각생각에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 뒤에는 다시 더욱 정진하면 이것을 정진의 깨달음 갈래라 한다. 그 법을 생각한 뒤에 욕심을 내어 그 이치를 생각하고 기뻐하면 이것을 기쁨의 깨달음 갈래라 한다. 또 그 이치를 마음으로 생각한 뒤에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항복 받아 부드럽고 즐겁게 수행하여 산란하지 않으면 이것을 편안함의 깨달음 갈래라 한다. 또 그 이치를 마음으로 생각한 뒤에 안정된 마음을 반연하여 그것으로 그 마음을 거두어 잡으면 이것을 선정의 깨달음 갈래라 한다. 또 결정한 뜻과 다른 생각을 버리면 이것을 버림의 깨달음 갈래라 한다.

 

이런 법은 그 과보나 혹은 지혜와 번뇌를 끊는 것에는 모두 차별이 있고 그 결과도 달라 아주 훌륭하다. 하나를 인연해 생겼으나 그 능력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천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의 깨달음 갈래로서, 만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일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천자들이여, 어떤 것이 여덟 가지 거룩한 도로서 방일을 떠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안락을 구하고 열반의 길을 구하게 하는가? 즉 바른 견해(진실한 견해바른 생각·바른 말·바른 업·바른 생활·바른 정진·바른 기억·바른 선정 등의 거룩한 길이다.

 

바른 견해란 여실한 견해로서 이치에 맞는 것이다. 바른 생각이란 여실한

 

                                                                               [845 / 1802]

견해·여실한 법·자기 모양·평등한 모양 등 이런 법의 종자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바른 말이란 네 가지 입의 업을 생각하고 그 입의 네 가지 허물을 버려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바른 업이란 세 몸[三種身]의 세 가지 악업을 버려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바른 생활이란 심지어 목숨을 잃더라도 계율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바른 정진이란 이런 이치를 마음으로 생각하고 정진하는 것이다.

 

바른 기억이란 그런 법의 이치를 기억하고 생각하여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바른 선정이란 그런 법의 이치를 진실한 마음으로 오로지 생각하여 한 모양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도로써 이것을 잘 생각하면 염라왕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중생들이 사는 아홉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자들이여, 열 가지 대지(大地)의 법을 관찰하라. 열 가지란 첫째는 수(), 둘째는 상()이며, 셋째는 사(), 넷째는 촉()이며, 다섯째는 작의(作意), 여섯째는 욕()이며, 일곱째는 해탈이요, 여덟째는 염()이며, 아홉째는 삼매요, 열째는 지혜다.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대지의 법으로서 마음과 함께 생겨 각각 모양을 달리한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성질인가? 그런 법은 하나를 반연해 생긴다. 마치 햇빛과 같이 그런 법은 마음과 함께 생겨 더하고 덜함에 순응하는 성질이 있다.
이른바 상이란 차별에 상응하는 것이요, 이른바 사란 그 뜻이 선과 악과 무기를 반연하는 것이다.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이 의지하는 곳으로서 모양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촉이란 세 가지가 화합하여 생기는 것으로서 세 가지의 느낌을 일으키는 것이다. 천자들이여, 어떻게 세 가지의 촉이 세 가지의 느낌을 일으키는가? 이른바 괴롭다는 느낌과 즐겁다는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다. 작의란 법을 섭취하는 것이요, 욕이란 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해탈이란 잘 분별해 알기 때문에 또 믿음이라고도 하며 능히 믿기 때문에 또 힘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능히 가지기 때문이다. 염이란 어떤 것을 반연하더라도 마음이 헷갈리지 않는 것이요, 삼매란 마음이 하나를 반연하는 것이며 지혜란 법을 분별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846 / 1802]

천자들이여, 또 열 가지 번뇌의 대지가 있다. 누구나 이 법을 받아 행하면 목숨을 마칠 때 염라 사자가 마음대로 결박할 것이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믿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게으름이며, 셋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어지러운 마음이며, 다섯째는 우치요, 여섯째는 좋지 않은 관찰이며, 일곱째는 삿된 소견의 해탈이요, 여덟째는 제어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무명이요, 열째는 방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법의 번뇌의 대지로서 그 법에 집착하면 염라왕의 사자에게 결박되는 인연이 된다.

 

천자들이여,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떤 것이 열 가지 불선의 대지인가? 이른바 믿지 않음이란 해탈을 믿지 않는 것이요, 게으름이란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생각하지 않음이란 법을 잊어 버리는 것이요, 어지러운 마음이란 그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이며 우치란 방편의 마음이 없는 것이요, 좋지 않은 관찰이란 비법을 생각하고 정도(正道)를 행하지 않으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다.

 

삿된 소견이란 뒤바뀐 법을 취해 굳게 집착하여 버리지 않는 것이요, 제어하지 않음이란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것이다. 무명이란 삼계에 미혹하는 것이요, 방일이란 선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번뇌의 대지로서 매우 비열하고 나쁜 것이다.

 

천자들이여, 또 열 가지 더러운 땅의 법이 있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분노요, 둘째는 원한이며, 셋째는 뉘우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굳음[]이며, 다섯째는 허깨비[], 여섯째는 아첨이며, 일곱째는 질투요, 여덟째는 인색함이며, 아홉째는 교만이요, 열째는 큰 교만[大慢]이다.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더러운 땅의 법이다. 왜 더러운 땅의 법이라 하는가? 대지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노란 그 마음이 추악한 것이요, 원한이란 그 마음에 맺혀 더욱 원한을 만드는 것이며 뉘우치지 않음이란 즐겨 온갖 악을 짓고 짓고는 기뻐하는 것이요, 굳음이란 온갖 악업을 지으면서 집착하여 버리지 않는 것이며, 허깨비란 중생들을 미혹시켜 열두 가지 곳에 들게 하는 것이다.

 

천자들이여, 알아야 한다. 열두 곳이란 이른바 안에는 눈·····뜻 등이 있는데 이것을 안의 여섯 감관이라 하고, 밖에는 색·소리·

 

                                                                               [847 / 1802]

··촉감·법 등이 있는데 이것을 바깥의 여섯 경계라 한다.

 

또 두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모양이요, 둘째는 자체의 경계다. 이른바 모양이란 네 가지 경계의 인연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생기는데 이것을 눈이라 한다. ···몸 뜻은 경계를 분별하여 각기 자기 모양이 있다. 어떻게 자체의 모양을 알아야 하는가? 자체란 이른바 뒤바뀌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가지 인연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다섯이란 눈·빛깔·밝음·허공·생각 등으로서 그것이 있기 때문에 눈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그러나 귀는 그렇지 않다. 귀의 알음알이가 생기면 밝거나 어둡거나 다 듣지마는 밝음이 원인이 되지 않는다.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그러나 의식은 밝음에 대해서 어떤 때는 작용하고 어떤 때는 작용하지 않는다. 어떻게 작용이 있고 어떻게 작용하지 않는가? 눈의 알음알이가 빛깔을 보면 의식이 결정해 안다.

 

이것이 이른바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작용하기도 하고 작용하지 않기도 하는가? 눈의 알음알이가 빛깔을 보더라도 광명이 없으면 보는 것이 없다. 다른 감관이 지각하는 것은 광명을 그 원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천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의식의 경계라는 것이다.

 

천자들이여, 또 네 가지 경계의 인연이 있어 그것들은 각각 서로 의지한다. 어떻게 네 가지 경계는 서로 의지하여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가? 눈은 불의 경계를 늘리고, 코는 지계를 늘리며, 몸은 바람의 경계를 늘리고, 혀는 물의 경계를 늘리며, 귀는 허공의 경계를 늘린다. 그리하여 이 법은 훌륭하다. 귓속의 공간에서 의식은 소리를 취한다. 그러므로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것이다.

 

또 감관을 관찰하면 어떤 것은 가까운 것을 반연하고 어떤 것은 먼 것을 반연하는가? ··몸 등 이 세 가지 감관은 대상에 닿으면 곧 안다. 눈이 보는 것은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다. 귀가 듣는 것은 멀면 분명하지 않고 가까우면 잘 알아서 마음도 스스로 듣는다. 코가 맡는 것은 가까우면 잘 알고 마음도 스스로 맡는다. 혹 콧속에 병이 있더라도 스스로 냄새를 맡고 귓속의 바람 소리도 스스로 듣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의식은 두 가지를 포섭하고 눈의 알음알이와 뜻의 알음알이도 다 포섭한다.

 

마치 불은 하나이지마는 그 태우는 경우를 따라 이름이 달라 나무의 불이

 

                                                                               [848 / 1802]

라 하기도 하고 혹은 풀의 불이라 하기도 하는 것처럼, 모두 의식도 그와 같아서 그 의식으로 인해 각각 차별이 있는 것이다.

 

천자들이여,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미 그 감관과 경계를 알았거든 방일하지 말라. 방일하지 않는 행이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우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선인은 목숨을 마칠 때에도 염라왕 사자의 결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무서운 옥졸의 흉악한 모양도 보지 않을 것이며 염라왕의 나쁜 경계도 보지 않을 것이다. 지옥이나 아귀·축생에도 떨어지지 않고 항상 안락하며 나아가서는 열반에 이르러, 한량없는 기쁨과 안락을 성취할 것이니, 그것은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천자들이여, 열두 곳[十二入]을 관찰하라. 그것은 무상이며, 괴로움이며 공이요, 나가 없는 것이지마는 의지하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관찰하라. 그렇게 관찰하면 방일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눈의 알음알이가 생기는 것도 마치 허깨비와 같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고 견고하거나 진실하지도 않아 파괴되는 법이다.

 

눈의 알음알이가 사라지고 귀의 알음알이가 생기더라도 그것도 공하여 아무것도 없고 견고하지 않아 파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의 여섯 가지 감관과 바깥의 여섯 가지 경계를 관찰하면 그것은 생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여, 싸우고 사랑하지마는 쇠하고 무상한 것으로서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보면 색을 탐하지 않아 혹 색을 보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는 사람은 천상의 다섯 가지 쾌락에도 탐심을 내지 않겠거늘 하물며 인간의 쾌락이겠는가.'

 

그 때에 석가천왕은 다시 다음 게송을 읊는다.

 

감관과 경계 등에 미혹하면
그것은 열반의 길 방해하나니
이 방일로 말미암아
일체 선법을 다 잃어 버린다.

 

만일 세 가지 허물 있으면

 

                                                                              [849 / 1802]

그것은 크게 나쁜 길의 사자로서
우치가 제일의 악이 되나니
방일하기 때문에 흘러다닌다.

 

어리석어 방일한 행을 행하면
언제나 죽음의 손 안에 있다.
만일 누구나 즐겨 방일하면
모든 것 다 파괴되고 말리라.

 

만일 사람이 한 법을 거치고
두 가지 법을 생각하며
세 곳의 모양을 알면
그 사람은 곧 즐거움을 누리라.

 

만일 천상의 복덕이 다하고
방일에 의해 부수어지고
타락하여 우치에 미혹 당하면
그를 구호할 이 아무도 없으리.

 

언제나 한 법이 가장 훌륭하나니
능히 잘 참아 닦아 행하여
그 참음과 서로 응하면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리라.

 

목숨을 마치는 두려운 때라도
능히 그러한 큰 힘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부디 방일을 떠나
정진하여 갖가지 행을 닦아라.

 

                                                                               [850 / 1802]

누구나 능히 무명을 버리고
언제나 밝은 지혜를 지녀
그로써 밝음과 무명을 알면
방일도 그를 부수지 못하리.

 

만일 누구나 방일을 버리면
반드시 큰 이익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방일을 행하지 않으면
곧 능히 스스로 이익 되리라.

 

방일의 그물에 묶이더라도
부지런히 수행하면 벗어나리라.
그런 결박을 푸는 모양을
나는 지금 통틀어 간단히 말했다.

 

천자들은 이미 다 알았거니
그래도 방일을 행하는 이 있으면
목숨을 마칠 그 때 다달아
비로소 그 과보를 알게 되리라.

 

이렇게 제석천은 그 열두 곳을 자세히 설명하여 방일하는 천자들을 항복 받았다. 천자들로서 일찍이 선근을 심고 방일을 조금 행한 사람은, 이 법을 듣고는 스스로 깨닫고 다시는 방일하지 않아 모든 감관이 순수하게 익어 다 받들어 행하고, 아직 선근이 익지 않은 사람은 마치 생종기를 째는 것처럼, 그것을 짼 뒤에 물로 씻어도 아무 이익이 없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제석천왕은 하나에서 차츰 늘려 차례로 열두 곳과 열두 곳의 모양을 설명한 뒤에 다시 그 천자들 가운데서 신통의 힘을 나타내어 희유한 일을 보여 차례로 법에 들게 하였다. 즉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바른 생각에 매어 인연의 모양을 깨닫고 방일을 떠나 이익되게 하였다. 그들은 이 변화를 보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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