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禪警語

참선경어(41~49)

근와(槿瓦) 2013. 10. 27. 00:31

참선경어 

 

41.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들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도리를 따져서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되니, 오직 딱딱하게 참구해 나아가야 비로소 의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든다면 이것은 무미건조한 껍데기일 뿐이니, 그 결과는 비단 자기의 생사대사를 확철대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정을 일으키는 일조차 못할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릇 속에 담긴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나, 사실 그 속에 담긴 것은 그가 지목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아닌 것을 옳다 하고 있으니 의정이 생겨날 수가 없다. 비단 의정이 생겨나지 않을 뿐 아니라 저것을 이것이라 하고 이것을 저것이라 한다. 이와같이 착각하고 있다면 그릇을 열고 한번 몸소 그 속을 보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도 그 속에 담긴 것을 가려내지 못할 것이다. 

 

42.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도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도(道)'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고, 오직 이 도리를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뜻을 굳게 세워야 한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바로 도(道)라는 생각에 빠지면 일생 동안 그저 '아무 일 없는 놈'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가사(袈裟)속의 생사대사는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음과 같아서 확실하게 찾았으면 비로소 일이 끝나지만, 확실히 찾지도 못한 채 무사안일에 몸을 맡겨 찾아보려는 의지조차 없다면 설사 잃은 물건이 나타나더라도 빤히 보면서도 잘못 알고 지나쳐 버리게 되니, 이것은 그에게 찾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43. 단번에 깨치려고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번갯불 부싯돌(電光石火)처럼 반짝이는 사이에 깨치겠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된다. 비록 빛이 문앞에 번득거릴 때 반짝이고 보이는 것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거기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단 말인가? 요는 착실히 실천해 가면서 직접 자기 눈으로 한 번 확인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것이다.

만약 진득하게 하여 뜻대로 되어간다면 맑은 하늘 밝은 해 아래 잃었던 부모를 만난 듯 하리니, 세상에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44. 사유와 판단을 주의하라.

  화두를 들 때에는 의식 속에서 알음알이를 내어서는 안된다.

따져보고(思惟) 판단하는(度) 등의 일은 공부를 조금도 제대로 되지 못하게 하고 의정을 일으킬 수도 없게 한다. 그러므로 '알음알이'라는 네 글자는 바른 믿음과 바른 수행을 장애하고 아울러 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납자들은 그것을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의 원수 집안처럼 대해야 한다.

 

45. 화두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화두를 들 때에는 화두 표면상에 나타난 의미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만약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런 납자를 이른바 '얼굴만 멀쩡한 바보'라고 하니, 마음을 참구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오직 모름지기 의정을 일으키고 철저하게 아무곳도 고개 끄덕일 곳이 없게끔 해야 한다. 또 아무데도 고개 끄덕일 곳 없는 사람도 공중누각(空中樓閣)이 이리저리로 다 뚫린 것처럼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을 자식으로 알고 하인을 신랑인 줄로 착각하는 꼴이 된다. 옛 큰스님께서도 "당나귀 안장자루를 아버지 턱뼈라고 부르지 말아라"하였으니 바로 이 뜻이다.

 

46. 남의 설명을 기대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남이 다 설명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만약 남이 설명해 준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道이므로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오직 길만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거기다가 서울 소식을 물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다. 그가 낱낱이 서울 소식을 말로 전해준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이 본 서울이지 길을 물은 사람이 직접 본 서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는 힘써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다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면 바로 이런 꼴이 되는 것이다.

 

47. 공안만을 참구하라.

  참선할 때 오직 한 생각으로 공안(公案)만을 참구하지 않고 다른 생각이 오락가락하면 도(道)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계속해 보았자 역시 道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잡념이 일어날 때 왜 아미타불을 염(念)하지 않는가. 염불은 참선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생각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 화두를 드는 데도 무방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화두를 들 때라면 그 '없다'는 말에 달라붙어 의정을 일으키고, 또 '뜰 앞의 잣나무니라'하는 화두를 들 때에는 그 '잣나무'에 대하여 의정을 일으키고, '만법이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라는 화두를 들 때는 '그 하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에다가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

일단 의심이 일어나면 시방세계 모두가 하나의 의심덩어리가 된다. 그리하여 부모에게서 받은 이 몸과 마음을 잊고 온통 의심덩어리뿐이다. 시방세계가 있는지, 또는 어디까지가 내 자신이고 어디까지가 바깥 세상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의심만이 물밀듯 다가온다. 그러다가 대나무 태를 맨 물동이가 탁 터지듯 의심덩어리가 풀리고 나면 다시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생사대사는 다 마친 뒤라 비로소 박장대소하게 된다.

그리고 난 뒤 그때까지도 공안을 천착하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마치 말 배우는 앵무새와 같으니 무엇 때문에 거기에 섞이겠는가?

 

48. 바른 생각을 지녀 사견에 빠지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잠시도 바른 생각(正念)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만약 참구하는 한 생각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딴 길로 빠져들어 망망히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어떤 납자가 오직 깨끗한 곳에 앉아 맑고 고요하여 티끌 한 점 없는 것을 좋아하며 이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을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고 맑고 고요한 데 빠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혹 어떤 사람은 말로 도리를 설명해내며 동정(動靜)의 방편을 짓는 것을 공부라고 인정하는데, 이런 사람을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고 알음알이를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망심을 가지고 망심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역지로 내리누르는 일을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를 가리켜 '망심으로 망심을 누르는 납자'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마치 풀위에 돌을 올려놓는 것과 같으며 또한 파초(芭蕉)껍질을 벗겨내는 일과 같으니 한 겹을 벗겨내면 또 한 겹이 생겨나서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혹 어떤 납자는 자기 몸과 마음이 허공과 같을 것이라고 상상으로 관(觀)하여 담벼락처럼 아무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데, 이런 사람도 '바른 생각을 잃은 납자'라고 부른다. 현사(玄沙)스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단단히 굳혀 단속하고 모든 현상(事)을 공(空)으로 귀착시키려 하면 이런 사람은 '단견(空無)에 떨어져 혼(魂)만 흩어지지 않았지 사실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상은 모두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오는 병통이다.

 

49. 바른 생각으로 간절하게 참구하라.

  참선할 때 의심이 일어났거든 이제는 그것을 깨부숴야 한다.

그 의심이 깨어지지 않았을 때라면 바른 생각을 굳건히 하고 용맹심을 내어 간절, 또 간절하게 참구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어간다 하겠다.

경산 대혜(徑山大慧)스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장부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결판내려 한다면 모든 세상일을 돌보지 않고 조급한 마음으로 꼿꼿하게 앉아서 남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평소부터 품어오던 자기 의심을 붙들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치 멀쩡한 사람이 누가 돈이 없어졌다고 자기를 잡으러 쫓아오는 상황에서, 갚아줄 돈 한 푼 없고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할까봐 도망가듯 해야 한다. 그리하여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는 데서 다급해지고, 큰일날 것도 없는 데서 무슨 일이나 난 듯 참구해 나가야만 비로소 이 생사문제를 해결해 나갈 자격을 갖게 된다."

 

출전 : 참선경어(박산무이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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