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禪警語

참선경어(21~30)

근와(槿瓦) 2013. 10. 25. 00:05

참선경어(21~30)

 

21. 공(空)에 떨어짐을 두려워 말라.

 

  참선하는 사람이 흔히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데 화두가 현전하다면 어떻게 공(空)에 떨어질 수 있겠는가. 오직 이렇게 공에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공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하물며 화두가 현전할 수 있겠는가.

 

참선할 때에 의정을 깨뜨리지 못했으면 마치 깊은 물가에 간듯 살얼음판을 지나듯 조심해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한 생각 놓쳐버리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의정을 깨뜨리지 못하면 이치를 밝혔다고 한 숨을 놓을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숨이 떨어지면 일생 동안 중음신(中陰身)이 끄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업식(業識)에 매이는 결과를 면치 못한다. 그리하여 계속 다른 몸을 받고 윤회하면서도, 머리를 바꾸고 얼굴을 바꾸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의정에다가 또 하나의 의정을 덧붙이게 되어서 화두를 들어도 결정코 밝혀야 할 곳을 밝히지 못한다. 이 일을 도둑잡는 일에 비유하자면 물증으로 장물(贓物)을 찾아내야 비로소 잡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22. 직접 부딪쳐 깨달아라.

 

  참선할 때에는 깨닫겠다는 마음만 가지고는 안된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집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끝내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모름지기 계속 걸어가야만 집에 다다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니, 오직 직접 부딪쳐서 깨달아야 한다.

 

크게 깨닫는 순간은 마치 연꽃이 활짝 피어나듯 하고, 또는 깊은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는 듯하다. 이런 이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꿈은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잠이 깊이 들고 나면 자연히 깨어나고, 꽃은 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핀다. 마찬가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인연이 맞으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연이 맞는다 할 때, 중요한 것은 화두가 간절하여 몸으로 부딪혀서 깨달음을 얻게 하여야 되는 것이지 깨달을 때를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또 깨달았을 때는 마치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듯 훤하게 사방이 탁 틔어서 아무 곳에도 눈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 땅이 뒤바뀌게 되니 이것이 또한 한바탕 뒤집힌 경계이다.

 

23. 참선에 필요한 몇 가지 태도

 

  참선에는 긴박함(緊)과 바름(正), 면밀함(綿密)과 융활함(融豁)이 요구된다.

 

무엇을 '긴박함'이라고 하는가?

 

사람의 생명은 호흡에 달려 있는데, 생사대사를 밝히지 못한 채로 숨이 떨어지면 앞길이 깜깜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옛날 어떤 큰스님도 "삼으로 꼰 새끼를 물에 적시듯하여 한 발짝 한 발짝 갈수록 조여드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무엇을 '바름'이라고 하는가?

 

납자들은 모름지기 바른 법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하니, 3천 7백 조사들에게도 다 공통된 안목이 있었다. 그러니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곧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된다. 경(經)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오직 이 일승(一乘)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이승(二乘)은 진실이 아니다."

 

무엇을 '면밀함'이라고 하는가?

 

눈썹을 허공에다 매어두고 바늘구멍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이나 술도 스며들 수 없을 정도로 털끝만한 틈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만일 털끝만한 틈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마(魔)의 경계가 스며들게 된다. 그러므로 옛날 어떤 큰스님께서는 "한때라도 마음이 도(道)를 떠나면 죽은 사람과 같다."라고 하셨다.

 

무엇을 '융활'이라고 하는가?

 

세계의 넓이가 1장(丈)이면 고경(古鏡)도 1장이고, 고경의 넓이가 1장이면 화로의 폭도 1장이 되는것을 말한다. 이 이치를 바둑에 비유할 수 있다. 바둑돌을 한 곳에 두어 놓고 거기에 매여서 죽은 바둑돌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한 곳에 얽매여서 양쪽 축머리에 돌을 놓고 망망하고 탕탕한 곳을 바라보기만 하여서도 안된다. 옛 고승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허공과 같이 원만하여 모자라는 것도 남는 것도 없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참으로 융활한 곳에 이르게 되면 안으로는 몸도 마음도 보이지 않고, 밖으로는 세계가 있는 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래야 비로소 도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긴박감만 있고 바른 길을 모른다면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고, 바른 길만 알고 긴박하지 못하면 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미 도의 문턱에 들어갔으면 면밀해야만 도를 깨칠 수가 있고, 또한 활달해야만 비로소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

 

24. 딴 생각이 일어남을 조심하라.

 

  참선할 때에는 한 가닥의 실오라기만큼도 딴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나 오직 한 길로 본래 참구해 오던 화두만을 들고 의정을 일으켜 하나의 귀결처만을 찾는 데 분발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딴 생각이 있게 되면 이것은 옛사람이 말씀한 '잡독(雜毒)이 심장 속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결과가 어찌 목숨만을 상하게 하는 데 그치겠는가. 부처님의 혜명(慧命)까지도 해치게 되니 납자라면 반드시 삼가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딴 생각(別念)'이란 단지 속세의 일뿐이 아니라 마음을 참구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불법 중의 모든 좋은 일까지도 포함된다. 또한 어찌 불법에만 국한되겠는가. 갖고 버리고 집착하여 변화시키는 등 마음자리에서 생기는 모든 것도 다 딴 생각이라고 해야 한다.

 

25. 끊임없이 참구하라.

 

  참선하는 사람들이 흔히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다. 마치 모르는 길을 물어서 찾는 일과 마찬가지이니, 물어도 길을 모른다고 쉬어서야 되겠는가. 정확하게 길을 찾았거든 걷는 일이 중요하니, 똑바로 그 길을 걸어가서 목적지인 집에 도착해야 한다. 길바닥에 진을 치고 있어서는 안되니, 걸어가지 않으면 끝내 집에 도착할 기약이 없다. 

 

26. 더 이상 마음 쓸 곳 없는 경지

 

  참선할 때 더 이상 마음 쓸 곳이 없는 경지, 즉 만 길 낭떠러지나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초승달 그림자가 물소뿔에 새겨지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늙은 쥐가 쇠뿔 속에 덜컥 걸려들어가듯 어찌할 수 없이 저절로 정(定)에 들게 되리라.

 

27. 민첩하고 약은 마음을 경계하라.

 

  참선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민첩하고 약은 마음이다. 그것은 공부에 있어서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약이니 조금이라도 먹었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납자라면 소경이나 귀머거리 같아야 한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알음알이(心念)이 생기거든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라. 이렇게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28. 자신과 세계를 하나로 하라.

 

  진정하고 절실하게 공부하려면 자기 심신과 바깥 세계를 불에 구운 쇠말뚝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갑자기 폭발해서 끊어지고 부러지기만을 기다려, 다시 그것을 주워 모아야만 비로소 공부가 되었다 할 것이다.

 

29. 사견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경계하라.

 

  공부할 때에는 잘못됨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설사 수행을 하다가 잘못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한 생각에 잘못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자 생사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이며, 마(魔)의 그물을 깰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석가 부처님께서는 외도(外道)의 법(法)에 대하여 하나하나 몸소 경험해 나오셨다. 이것은 오직 사견(邪見)의 소굴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인 줄 안 즉시 떠난다'는 태도를 가지고 범부에서부터 부처자리에 이르셨던 것이다.

 

이 뜻이 어찌 세간을 벗어난 출가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속인들도 생각을 잘못했을 때가 있거든, 오직 '잘못인 줄 알았으면 바로 버린다'는 이 뜻만 소화해 낼 수 있으면 청정한 선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잘못을 알고 그 속에 정착하여 옳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알려 하지 않는다면 비록 산 부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30. 시끄러운 경계를 피하려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시끄러운 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고요한 곳을 찾아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도깨비굴 속에 앉아 살아날 궁리를 하는 셈이다.

 

옛사람이 이른바 "흑산(黑山) 밑에 앉아 있으면 사수(死水)가 젖어들어올 때 어느 쪽으로 건너겠는가?"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연의 굴레 속에 있으면서 공부해 나가야 비로소 힘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문득 한 귀절의 화두가 눈썹 위에 붙어 있게 되면, 걸어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나 오직 그 화두의 귀결처만을 밝힌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얼굴을 씻다가 콧구멍을 더듬어 만져보니 원래 그자리에 붙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 힘을 얻은 곳이다.

 

출전 : 참선경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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