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4)-4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은 행을 지니고 적정하게 생각을 하며, 간절하게 참회 구하기를 삼칠일(三七日 : 21日)을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스물다섯 가지 관문을 각각 표기해 두고 지극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겨 주실 것을 구한 다음 손에 집히는 대로 표지를 집어 그 표지에 보여주는 것에 따라 돈(頓)과 점(漸)을 알게 되리니, 한 생각이라도 의심하거나 후회하면 곧 성취하지 못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변음(辯音)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라.
일체 모든 보살들의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가 선정에서 생기나니
이른바 사마타이며
삼마발제와 선나라.
세 가지 법을 돈(頓)ㆍ점(漸)으로 닦는 데에는
스물다섯 가지가 있나니
시방세계 모든 여래들과
3세(世)에 수행하는 이들이
이 법을 따르지 않고서는
보리를 성취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단번에 깨달은 사람과
법에 수순치 않는 이는 제외되나니
일체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온갖 중생들은,
항상 이 관문을 지니어
수순하고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부처님의 자비스런 힘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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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열반을 증득하리라.
이때 정제업장(淨諸業障)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大悲)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부사의(不思議)한 일인 일체 여래의 인지(因地)에서 행하시던 현상을 널리 말씀하시어,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일찍이 듣지 못한 가르침을 얻게 하시어, 조어(調御 : 부처)께서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을 지나도록 애쓰셨던 경계에서 온갖 공용(功用)을 두루 닦되 마치 한 생각처럼 하신 것을 보게 하시니, 저희 보살들은 깊이 스스로 경하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원각(圓覺)의 마음이 본래 성품이 청정하다 하오면, 무슨 까닭에 더럽혀져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저희들을 위하여 법의 성품을 자세히 일깨워 주시어, 이 모임의 대중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장래의 밝은 안목을 갖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정제업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의 대중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묻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정제업장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끝없는 옛날부터 망상(妄想) 때문에 나[我]와 남[人]과 중생과 수명이 있다고 집착하여, 네 가지 뒤바뀜을 잘못 알아 실제로 나의 본체가 있다고 여겼느니라. 이런 까닭에 곧 미움과 사랑의 두 경계가 생기고, 허망한 그 몸에 거듭 허망하게 집착하였나니, 두 개의 허망함이 서로 의지하여 허망한 업도(業道)가 생긴 것이니라. 허망한 업도가 있는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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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 허망하게 굴러다님을 당하고, 굴러다님을 싫어하는 이는 허망하게도 열반이 있다고 여기느니라.
이런 까닭에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나니, 들어가는 이들을 깨달음이 막는 것이 아니며, 들어간다 할지라도 깨달음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생각을 움직이거나 생각을 그치는 것이 모두 어리둥절할 뿐이어서, 끝없는 옛날부터 일으켰던 무명으로 자기의 주재(主宰)로 삼았기 때문이니, 일체 중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지혜로운 눈이 없어서 몸과 마음 등의 성품 모두에 밝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스스로 제 목숨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나도 수순하고, 나에게 수순하지 않는 이에게는 곧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무명을 자라게 하는 까닭에, 서로 이어지면서 도를 구하여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아상(我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이 (망령된) 마음으로 일으킨 것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온몸[百骸]이 조화롭고 건강할 때는 내 몸을 잊고 있다가, 사지(四支)에 문제가 생겨 아프거나 몸조리를 잘못하여 병이 났을 때에 침을 놓거나 뜸[艾]을 뜨면, 비로소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망령된 마음을 일으켜 취착(取着)하여서 내 몸이 있다고 잘못 여기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그 망령된 마음으로부터 여래에 이르기까지 뚜렷이 안[了知] 청정한 열반까지를 증득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모두 아상(我相)일 뿐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인상(人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이 (망령된) 마음으로 일으킨 것을 깨닫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나[我]가 있다고 깨달은 이는 다시는 나를 인정하여 집착하지 않거니와, 나가 아니라고 깨달았을 때의 깨달음도 그와 같으니라. 깨달음이 일체 증득한 것을 초월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인상일 뿐이니라. 선남자야, 그 마음이 내지 열반을 원만하게 깨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아상(我相)이요,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남아있으면, 진리를 증득했다는 생각을 모두 없앴다 하더라도 인상(人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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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어떤 것이 중생상(衆生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의 마음에 스스로 증득하거나 깨달음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중생이다’라고 한다면 곧 그 사람이 중생이라 말한 것은 나[我]도 아니요, 남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나니, 어째서 나가 아니냐 하면 ‘나는 중생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곧 나가 아니요, 어째서 남이 아닌가 하면, ‘나는 중생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남의 대상인 나가 아니니라. 선남자야, 다만 중생들의 증득함과 깨달음은 모두 아상(我相)이요 인상(人相)이니, 아상과 인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알았다는 생각이 있으면 중생상(衆生相)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수명상(壽命相)인가? 이른바 중생들 마음의 비춤이 청정해졌을 때 각(覺)으로써 알게 된 것이니, 일체 업의 지혜[業知]로는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목숨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일 마음으로 일체 깨달음을 비추어 보는 것은 모두가 번뇌[塵垢]일 뿐이니, 깨달은 이와 깨달은 것이 번뇌를 여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마치 끓는 물로 얼음을 녹였을 적에 얼음이 다 녹은 줄로 알 만한 얼음이 따로 있지 않은 것과 같나니, 나를 남겨 두고서 나를 깨닫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저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이 네 가지 상(相)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겁을 지내도록 애써 도를 닦는다 하더라도 다만 유위라고 불릴 뿐이며, 끝내 일체 성인의 과(果)를 이루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정법의 말법 세계[正法末世]라고 이름하느니라.
왜냐하면 일체의 나[我]를 잘못 알고서 열반이라 여기기 때문이며, 증득함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는 마음으로써 성취하였다고 이름하기 때문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도둑을 잘못 알아 아들로 여기면 그 집 재산과 보물은 마침내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나에 대한 애착이 있는 이는 또한 열반도 사랑하여, 나에 대한 애착이 근원을 굴복시키고는 열반의 모습[相]으로 여기고, 나에 대해 미워함이 있는 이는 생사도 미워하거니와, 사랑하는 것이 참된 생사인 줄 모르는 까닭에 따로 생사를 미워하나니, 법다운 해탈이 아니니라.
어찌하여 그것이 법다운 해탈이 아님을 알겠는가? 선남자야, 그 말법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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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의 중생들이 보리를 익히다가 자기의 조그마한 증득으로써 스스로 청정이라 여기나니, 아상의 근본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법을 칭찬하면 곧 크게 기뻐하는 생각을 내어 제도하려고 하며, 만일 다시 그가 얻은 법을 비방하면 곧 성을 내고 원한을 품나니, 이상의 것으로써 아상을 굳게 집착함으로 장식(藏識 : 제8식을 말함)에 깊이 숨었다가 6근(根)에 넘나들기를 잠깐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도를 닦는 사람들이 아상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청정한 깨달음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我]가 공(空)한 줄 알면 나를 헐뜯을 이도 없을 것이니,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법을 설하는 이는 나라는 것이 아직 끊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중생상과 수명상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말법 세계 중생들이 병(病)을 법(法)이라 말하리니, 그러므로 참으로 불쌍한 이라 하겠다. 아무리 애써서 정진할지라도 온갖 병만 한층 더할 뿐이요, 청정한 깨달음[淸淨覺]에는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네 가지 상(相)을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여래에 대한 견해(見解)와 그가 행한 자취로써 자기의 수행인양 여기나니, 끝내 성취하지 못하리라. 혹 어떤 중생은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였다 하며, 나보다 뛰어난 이를 보면 질투심을 내나니, 그 중생은 아직 나[我]라는 애착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청정한 깨달음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도(道) 성취하기를 희망하되 깨치기를 구하지는 않고, 오직 듣는 것만 더하여 나라는 소견만 더욱 자라나게 하느니라. 다만 부지런히 정진하여 번뇌(煩惱)를 조복(調伏)시키고, 큰 용맹을 일으켜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자 하고, 끊지 못한 것을 끊고자 하면, 탐냄과 성냄, 은애(恩愛)와 아만과, 아첨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 따위가 경계를 대하여도 생기지 않게 되며, 피아(彼我)간 은애(恩愛)가 고요히 소멸되리니, 부처님은 이 사람을 일러 점차로 성취한다고 하노라. 선지식을 구하면 삿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겠지만, 만일 구하는 바에 대해 따로 미움과 사랑을 일으키면 청정한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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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淨業)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라.
일체 중생들 모두가
나[我]를 사랑해 집착하므로
끝없는 옛날부터 허망하게 윤회하였나니
네 가지 상을 제거하지 못하고
보살을 이루지 못하리라.
사랑함과 미움은 마음에서 생기고
아첨과 삿되게 왜곡함[邪曲]이 마음속에 있으면
헛갈리고 답답한 일이 많아져서
깨달음의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만일 깨달음의 세계에 돌아가려면
맨 먼저 탐(貪) · 진(瞋) · 치(癡)를 버려야 하나니
법의 사랑까지도 마음에 남지 않으면
차츰차츰 성취할 수 있게 되리라.
내 몸도 본래에 있는 것 아닌데
미움과 사랑이 어디서 생기랴.
이 사람 선지식을 구하면
끝까지 사견에 떨어지지 않으려니와
구하는 바에 별다른 생각을 내면
끝내 성취하지 못하리라.
이때 보각(普覺)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쾌히 선(禪)의 폐단을 말씀해 주시어 여러 대중들로 하여금 일찍이 맞보지 못했던 기쁨을 얻게 하시고, 마음이 확 트여 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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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安隱)을 얻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말법 세계 중생들은 부처님과 거리가 점차로 멀어지매, 성현은 숨고 삿된 법은 더욱 왕성해질 것이오니,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을 따르고 어떤 법에 의지하며, 어떤 행(行)을 행하고 어떤 병(病)을 제거하며, 어떻게 발심(發心)하게 하여야, 저 눈먼 자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나이까?”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보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이 이제 여래에게 이와 같은 수행을 물어서 말법 세계의 모든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는 도안(道眼)을 베풀어 주고, 그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도를 이룰 수 있게 하려고 하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보각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말법 세계 중생들로서 장차 큰마음을 일으켜 선지식을 구하여 수행하려고 하는 이는 일체 바른 지견(知見)을 가진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이니, 마음이 상(相)에 머물지 않으며, 성문이나 연각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비록 진로(塵勞)의 모습을 나타내긴 하지만 마음은 항상 청정하며, 온갖 허물이 있는 듯이 보이나 맑은 행을 찬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그른 계율에 들지 않게 하는 자여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을 따르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이와 같은 사람을 보면 응당 공양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니, 그 선지식은 4위의(威儀) 가운데 언제나 청정한 행을 나타내거나, 내지는 갖가지 허물을 드러내더라도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재물을 모았거나 처자와 권속을 지님이겠는가? 만일 선남자야, 그 훌륭한 벗[善友]에 대하여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마침내 정각(正覺)을 성취하여 마음 꽃[心花]이 밝게 피어 시방세계를 비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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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그 선지식이 증득한 미묘한 법은 네 가지 병(病)을 여의어야 할 것이니, 어떤 것이 그 네 가지 병인가?
첫째는 조작하는 병[作病]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본심(本心)에 갖가지 행을 지어서 원각(圓覺)을 구하리라’ 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지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병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둘째는 맡기는 병[任病]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지금 생사를 끊지도 않고 열반을 구하지도 않는다. 열반과 생사는 일어나거나 멸한다는 생각이 없나니, 저 온갖 것에 맡기고, 모든 법의 성품을 따름으로써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하면, 그 원각의 성품을 맡겨 둠으로써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병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셋째는 그치는 병[止病]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내 마음의 모든 망념(妄念)을 영원히 쉬어서 일체 법성(法性)이 적연(寂然)하고 평등해지게 됨으로써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그침으로써 부합되는 것이 아니므로 병이라고 하느니라.
넷째는 멸하는 병[滅病]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일체의 번뇌를 영원히 끊어 몸과 마음이 마침내 공(空)하여 아무 것도 없거늘 하물며 근(根)과 진(塵)의 허망한 경계이겠는가. 모두 영원히 고요해지는 것으로써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고요한 모습이 아니므로 병이라고 하느니라.
이 네 가지 병을 떠난 이라야 곧 청정함을 알 것이니, 이런 관을 짓는 것을 일러 바른 관[正觀]이라 하고, 만일 이것 이외에 다른 관을 짓는다면 삿된 관[邪觀]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수행을 하고자 하거든 목숨을 다하여 훌륭한 벗에게 공양하고 선지식(善知識)을 잘 섬겨야 할 것이니라. 그 선지식이 와서 친근히 하려고 하거든 교만한 마음을 끊고, 만일 멀리 하더라도 성을 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아야 하느니라. 자신의 경계에 순행하거나 역행함이 나타나더라도 마치 허공과 같이 여기고 몸과 마음이 마침내 평등하여 중생들과 동체(同體)여서 조금도 차이가 없는 줄로 분명히 알아야 되나니,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비로소 원각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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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도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자기와 남을 미워하거나 사랑하던 일체의 종자 때문이니, 그런 까닭에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원수를 대하되 자신의 부모와 같이 하여 두 가지 마음이 없으면 곧 모든 병이 없어지리니, 모든 법 가운데에서 자신과 남을 미워하거나 사랑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원각을 구하고자 하면 먼저 발심하고서 맹서하여 말하기를 ‘허공이 다하기까지 일체의 중생들을 내가 모두 구경(究竟)의 원각(圓覺)에 들게 하되 원각에서는 깨달음을 취할 이도 없고 저 나니 너니 하는 따위의 모든 상(相)을 없애리라’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발심하면 사견(邪見)에 빠지지 않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각(普覺)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선지식을 구하려 하면
바른 깨달음을 가진 이로서
이승의 생각을 여읜 이를 구하라.
짓고 · 그치고 · 맡기고 · 멸하는
이 같은 네 가지 병이 없어야 하리니
내게 가까이 하여도 교만치 말고
나를 멀리하여도 성내지 말고
갖가지 경계를 나타내 보일지라도
마땅히 희유(希有)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을 만난 듯이 공경하라.
그릇된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계율의 근본이 영원히 맑아지리니
일체의 중생들을 제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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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원각에 들게 하되,
나다 너다 하는 상(相)이 없이
언제나 바른 지혜를 의지하면
곧 삿된 소견을 초월하여
원각을 증득하고 열반에 들리라.
이때 원각(圓覺)보살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희 무리들을 위하시어 청정한 원각의 갖가지 방편을 자세하게 말씀하시어 말법 세계 중생들로 하여금 큰 이익이 있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이미 깨달음을 얻었거니와, 만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말법 세계 중생들 가운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는 어떻게 안거(安居)하여 이 원각의 청정한 경계를 닦으며, 이 원각 안의 세 가지 청정한 관법(觀法)은 어떤 것으로 첫머리를 삼아야 되나이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 대중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큰 이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원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물어 큰 이로움으로써 중생들에게 베푸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원각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나 말법 시대에 중생들로서 대승의 성품을 갖춘 이가 부처님의 비밀한 큰 원각의 마음을 믿고 수행하고자 하여 만일 가람(伽藍 : 寺刹)에 있게.........
-나무 관 세 음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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