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圓覺經)

원각경(2)-20

근와(槿瓦) 2015. 11. 27. 19:24

원각경(2)-2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시방 중생의 원각까지도 다 청정하니라.

 

선남자야, 한 세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여러 세계가 청정하고, 여러 세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마침내는 허공을 다하고, 3세(世:과거ㆍ현재ㆍ미래)를 두루 감싸기까지 모든 것이 평등하고 청정하여 동요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허공이 이와 같이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며, 4대가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8만 4천 다라니문까지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으므로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본각(本覺)의 성품이 원만하고 청정하며, 동요하지 않아, 원만함이 끝이 없으므로 6근(根)이 법계(法界)에 가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6근이 두루 차므로 6진이 법계에 두루 참을 알아야 하고, 6진이 두루 차므로 4대가 법계에 두루 차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다라니문까지도 법계에 두루 찬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저 묘한 본각의 성품이 두루 찬 까닭에 감관[根]의 성품과 경계[塵]의 성품이 무너짐도 없고 뒤섞임도 없으며, 감관과 경계가 무너짐이 없는 까닭에 다라니문까지도 무너짐도 뒤섞임도 없나니, 마치 백천 개의 등불을 한 방에 켜면 그 불빛이 두루 가득하여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깨달음을 성취한 까닭에 보살은 법에 얽매이지 않고, 법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계행 지키는 이를 공경하지도 않고, 계를 깨뜨린 이를 미워하지도 않으며, 오래 수행한 이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처음 공부를 시작한 이를 깔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온갖 것이 본각이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눈을 뜨고 눈앞의 경계를 볼 때에 그 빛이 두루 차서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이 모두 보이는 것과 같으니, 광명의 본체는 둘이 아니어서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이 보살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이 마음을 닦아 익혀 성취하면 거기에는 닦을 것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느니라. 원각이 두루 비추어 적멸

 

                                                                                                                             [12 / 46] 쪽

(寂滅)이 둘이 없으니, 거기에는 백천만억 아승기 말할 수 없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모든 부처님 세계가 마치 허공 꽃이 어지럽게 일어났다가 어지러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가까이 하지도[卽] 않고 여의지도[離] 않으며, 얽매일 것도 없고 벗어날 것도 없으니,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생사와 열반이 지난 밤 꿈과 같은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지난밤의 꿈과 같으므로 생사와 열반이 일어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증득한 것을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느니라. 또 증득하는 이에게도 지을 것[作]도 없고 그칠 것[止]도 없으며, 맡길 것[任]도 없고 멸할 것[滅]도 없느니라. 이와 같은 증득에는 주체[能]도 없고 대상[所]도 없어서 끝내 증득할 것도 없고 증득한 이도 없어서 일체 법의 성품이 평등하여 무너지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저 보살들은 이와 같이 수행할 것이요, 이와 같이 점진(漸進)할 것이며, 이와 같이 생각할 것이요, 이와 같이 머물러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이 방편을 쓰고 이와 같이 깨달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법을 구하면 헛갈리거나 답답하지 않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안(普眼)이여, 그대 마땅히 알라.

일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환(幻)과 같아서

몸은 4대(大)에 속하고

마음은 6진(塵)에 돌아가니

4대의 본체가 제각기 흩어지면

어느 것을 화합했다 하겠는가.

이와 같이 차례로 닦아 나가면

온갖 것이 모조리 청정해져서

동요치 않고 온 법계에 두루하리니

 

                                                                                                                              [13 / 46] 쪽

짓고 멈추고 맡기고 멸할 것도 없고

증득할 이도 없을 것이니라.

일체의 부처님 세상도

마치 허공 꽃과 같아서

3세(世)가 모두 평등하여

끝내 오고 감이 없느니라.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도에 들고자 하면

이와 같이 닦고 익혀야 할 것이니라.

 

이때 금강장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일체 보살들을 위하시어 여래 원각의 청정한 큰 다라니와 인지(因地)의 법다운 행과 점차와 방편을 널리 말씀하였사오며, 모든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으니, 이 모임에 모여 법을 들은 대중들은 부처님의 인자한 가르침을 받아 환(幻)의 가림이 환하게 열려서 지혜의 눈이 깨끗해졌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들이 본래부터 부처였다면 무슨 까닭으로 다시 온갖 무명(無明)이 있습니까? 만일 온갖 무명이 중생들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여래는 또 본래부터 부처였다고 하옵나이까? 만일 시방의 다른 중생들이 본래 부처의 도를 이루었다가 나중에 무명을 일으켰다 한다면 일체의 여래는 언제 다시 온갖 번뇌를 일으켰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막음 없는[無遮] 큰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비밀장(秘密藏)을 열어 주시고,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수다라(修多羅)의 요의(了義) 법문을 듣고 의심과 뉘우침을 영원히 끊게 하여 주

 

                                                                                                                              [14 / 46] 쪽

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금강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께 매우 깊고 비밀한 구경(究竟)의 방편을 묻는구나. 이것은 보살들의 가장 높은 가르침인 요의 대승(了義大乘)으로서 시방의 도를 닦는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된 믿음을 얻어 영원히 의혹과 뉘우침을 끊게 하는 일이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금강장보살은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일체 세계의 시작과 마침 · 나고 없어짐 · 앞과 뒤 · 있고 없음 · 모이고 흩어짐과 일어나고 멈춤이 잠깐잠깐 사이에도 계속되어, 돌고 돌아 오가는 것이니, 가지가지로 취했다 버렸다 함이 모두가 윤회(輪廻)이니라. 아직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채 원각을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곧 그 원각의 성품마저 함께 굴러다닐 것이 되니, 설령 윤회를 면하려고 한들 그렇게 될 수가 없으리라. 비유하건대 마치 눈을 깜작이면 잠잠한 물이 흔들리는 듯 하는 것과 같으며, 또 고정되어 있는 눈이 불이 빙빙 도는 것을 따라 빙빙 도는 것과 같으며, 구름이 흘러가매 달이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것과 같고, 배가 가매 언덕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모든 빙빙 도는 것이 그치기 전에는 저 물건이 먼저 멈추는 일이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생사에 윤회하는 때 묻은 마음이 일찍이 청정해지기 전에 부처님의 원각을 보려고 한다면 어찌 뒤바뀌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들이 곧 세 가지의 미혹을 내고 있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눈병의 가림 때문에 망령되게 허공 꽃을 보다가 앓던 눈에 가림이 없어지면, ‘그 가림이 이미 없어졌으니, 언제 다시 일체의 가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가림과 허공 꽃 두 가지 법이 서로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또한 허공 꽃이 허공에서 없어졌

 

                                                                                                                             [15 / 46] 쪽

을 적엔 ‘허공에서 언제 다시 허공 꽃이 생기겠는가’ 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와 같으니라. 왜냐하면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어서,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생사와 열반도 그와 같이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지만, 미묘한 깨달음이 원만하게 비치는 데는 허공 꽃도 눈병의 가림도 여의었느니라.

 

선남자야, 꼭 알아야 한다. 허공은 잠시도 있는 것이 아니요, 잠시도 없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다시 여래의 원각이 수순하여 허공의 평등한 근본 성품이 되어 주는 것이겠는가.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금광을 녹이는 것과 같아서 금은 녹임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며, 이미 순금[金]을 이룩하고 나면 다시는 광석이 되지 않고, 무궁한 시간이 지나도록 금의 본성은 무너지지 않나니, 본래부터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지니라. 여래의 원각(圓覺)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일체 여래의 미묘한 원각의 마음은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는 것이며, 또한 부처가 되었느니 부처가 되지 않았느니 하는 것도 없으며, 허망한 윤회함과 윤회하지 않음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다만 성문(聲聞)들이 뚜렷이 여기는 경계(즉 有餘 涅槃을 말함)로 몸과 마음과 말이 모두 끊어져 없어졌더라도 끝내 그들이 직접 증득하여 나타난 열반에는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유(思惟)함이 있는 마음으로 여래 원각의 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須彌山)을 태우려 하여도 마침내는 불조차 붙일 수 없는 것처럼, 윤회하는 마음으로 윤회하는 소견을 내어서 여래의 큰 적멸의 바다에 들려고 하여도 끝내 이르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일체 보살과 말법 세계 중생들은 먼저 끝없는 윤회의 근본을 끊으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야, 작용이 있는 생각은 유위(有爲)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모두가 6진(塵)의 망상을 조건으로 한 기운일지언정 진실한 마음의 본체는 아니니라. 이미 허공 꽃과 같은 것인데 이러한 생각으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따지려 하는 것은 마치 허공 꽃이 다시 허공에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아서 한층 더한 망상일 뿐이니,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선남자야, 허망하고 들뜬 마음이 교묘한 온갖 소견이 많으나 원각의 방편

 

                                                                                                                             [16 / 46] 쪽

은 성취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은 분별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금강장이여, 그대 마땅히 알라.

여래의 적멸한 성품은

애초부터 처음과 시작이 없나니

만약 윤회하는 마음으로써

따진다면 곧 뒤바뀌어서

다만 윤회의 테두리에 들 뿐이요

부처님의 바다에는 들 수 없으리.

비유하면 금광석[金鑛]을 녹이는데

금은 녹여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요,

본래부터 금인 것이니

결국에 녹여서

한 번 순금이 되고 나면

다시는 광석이 되지 않음과 같네.

생사(生死)와 열반

범부와 모든 부처님이

똑같은 허공 꽃의 모습이라.

생각 자체가 허깨비 같거늘

하물며 허망하다고 따지겠는가.

만약 이런 마음 바로 안다면

그런 뒤에 원만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으리.

 

이때 미륵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단정히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17 / 46] 쪽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널리 보살들을 위하여 비밀장(秘密藏)을 열어 여러 대중들로 하여금 윤회의 이치를 깊이 깨달아 정(正)과 사(邪)를 분별하게 하셨고,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도의 눈[道眼]을 보여 주시어 큰 열반에 대해 결정적인 신심(信心)을 내어 다시는 거듭 바퀴 돌 듯 하는 경계를 따라 헤매는 소견을 내지 않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보살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여래의 큰 적멸의 바다에 노닐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윤회의 근본을 끊고, 윤회에는 몇 가지 성품이 있으며, 부처님의 보리를 닦는 데에는 몇 가지 차별이 있으며, 또 번뇌[塵勞]의 세계에 들어가자면 몇 가지의 교화 방편을 베풀어서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겠나이까? 바라옵건대, 세상을 구하시려는 큰 자비심을 버리지 마시고, 수행하는 모든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지혜의 눈[慧眼]이 청정해지고 마음의 거울이 밝아져서 여래의 위없는 지견(知見)을 뚜렷이 깨치도록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야. 그대가 지금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의 심오하고 비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물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지혜의 눈이 맑고 깨끗해지게 하고,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윤회를 끊고 마음은 실상(實相)을 깨달아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추게 하려 하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미륵보살은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끝없는 옛날부터 가지가지의 은애(恩愛)와 탐욕(貪欲)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윤회(輪廻)하게 되었느니라. 만일 모든 세계의 일체 종류인 알로 나거나[卵生] 태로 나거나[胎生] 습기로 나거나[濕生] 화하여 나는 것[化生] 모두가 음욕으로 인하여 제 목숨을 유지하나니, 윤회는 애욕이 근본이 되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온갖 탐욕이 있기 때문에

 

                                                                                                                            [18 / 46] 쪽

애욕의 성품이 생기도록 돕는 것이니, 그 때문에 생사가 계속되어 끊이지 않느니라. 애욕은 사랑으로 인하여 생기고, 목숨은 음욕으로 인하여 있게 되는데, 중생들이 목숨을 사랑함에는 다시 애욕의 근본에 의지하나니, 애욕은 원인[因]이 되고, 목숨을 사랑함은 결과[果]가 되느니라.

 

애욕의 경계를 말미암아 따르거나 거슬리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나니, 그 경계가 사랑하는 마음을 거스르면, 그만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켜 갖가지 업(業)을 짓고, 그런 까닭에 다시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애욕은 싫어해야 할 것임을 알고, 업을 싫어하는 도(道)를 좋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좋아하면, 다시 하늘이나 인간으로 태어나며, 또 온갖 애욕은 싫어해야 할 것임을 안 까닭에 애욕을 버리고 평등한 사(捨)를 좋아하나, 도리어 애욕의 근본을 불어나게 하여 다시 유위(有爲)의 가장 높고 선한 과보를 드러내나, 이는 모두가 윤회인 까닭에 거룩한 도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중생들이 생사를 벗어나서 윤회를 면하고자 하려면, 먼저 애욕을 끊고 갈애(渴愛)를 없애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변화하여 세간에 나타나는 것은 애욕의 근본 때문이 아니니,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온갖 탐욕을 부리면서 생사 속에 들어간 것이니라. 만일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이 탐욕과 미워하고 사랑함을 다 버리고 윤회를 영원히 끊은 이가 여래 원각의 경계를 애써 구한다면, 청정한 마음이 곧 깨달음을 얻으리라.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본래의 탐욕 때문에 무명(無明)을 일으켜서 다섯 가지 성질이 차별하여 같지 않은 현상이 드러나고, 두 가지 장애에 의지하여 깊고 얕은 현상이 드러난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장애인가? 하나는 이치의 장애[理障]이니 바른 지견을 장애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물의 장애[事障]이니 모든 생사를 계속하게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성품인가? 선남자야, 만일 이 두 가지 장애를 끊어 없애지 못하면, 부처를 이루었다고 하지 못하니, 만일 중생들이 영원히 탐욕을 버리어서 먼저 사물의 장애는 제거하였지만, 아직 이치의 장애를 끊지 못하였으면, 다만 성문이나 연각의 경지는 깨달아 들어갈지언정 보살의 경계

 

                                                                                                                              [19 / 46] 쪽

에는 나타나 머무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이 여래의 큰 원각(圓覺) 바다에 노닐고자 하면, 먼저 원을 세워서 부지런히 두 가지 장애를 끊어야 하나니, 두 가지 장애를 이미 굴복시켰으면, 곧 보살의 경계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만일 사물의 장애와 이치의 장애를 이미 영원히 끊어버렸으면, 곧 여래의 미묘한 원각에 들어가서 보리(菩提)와 큰 열반을 만족하게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모두가 원각(圓覺)을 증득할 수 있나니, 선지식을 만나서 그가 했던 인지(因地)의 법다운 수행을 의지하면, 그때 닦아 익히는 데 돈(頓:단번에 깨달음)과 점(漸:점차로 닦음)이 있게 될 것이나 만일 여래의 위없는 보리(菩提)의 바른 수행의 길을 만나면 근기의 대소(大小)를 막론하고 모두가 불과(佛果)를 성취하리라. 만일 중생들이 아무리 훌륭한 벗을 구하였다 하더라도 삿된 소견을 가진 이를 만나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리니, 이것은 곧 외도의 종성(種性)이라 하나니, 삿된 소견을 지닌 스승의 허물일지언정 중생의 허물은 아니니라. 이것을 중생의 다섯 가지 성품의 차별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오직 대비(大悲)의 방편으로써 세간에 들어가서 깨닫지 못한 이를 깨우쳐 주며, 내지는 가지가지의 형상을 나타내 보여 역경(逆境)과 순경(順境)에서 그와 더불어 같은 일을 하여 교화하며 부처를 이루도록 교화하나니, 모두가 시작도 없는 청청한 원력에 의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만일 말법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큰 원각에 대하여 증상(增上)의 마음을 일으키거든 먼저 보살이 깨끗한 큰 서원을 세워야 하나니, 응당 발원하기를 ‘제가 지금 부처님의 원각에 머물러서 선지식을 구하옵는데 외도(外道)나 2승(乘:성문․연각)은 만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하고, 서원에 의하여 수행하여 모든 장애를 차츰 끊고, 장애가 다하여 서원이 원만해지면, 곧 해탈의 청정한 법전(法殿)에 올라 큰 원각인 미묘한 장엄의 경지를 증득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라.

 

                                                                                                                            [20 / 46] 쪽

일체 중생들이

큰 해탈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가 탐심과 애욕의 탓이니

이로 인해 생사에 끊임없이 떨어지느니라.

만일 미움과 사랑을 끊을 수 있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끊어버리면

차별된 성품에 구애되지 않고

모두 다 부처님의 도[佛道]를 이루리라.

두 가지 장애를 영원히 끊고

스승을 구하여 바른 깨달음 얻어

보살의 서원을 따르면

거룩한 열반에 의지하리라.

시방의 모든 보살들

모두가 대자비의 원력으로 인해

생사에 드는 모습 보이셨나니

현재에 수행하는 이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온갖 애견(愛見) 열심히 끊으면

큰 원각에 돌아가리라.

 

이때 청정혜(清淨慧)보살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부사의(不思議)한 일을 널리 말씀해 주시니, 이전엔 보지 못했던 일이며, 애초에 듣지 못했던 일이옵니다. 저희들은 지금 부처님의 훌륭하신 가르침을 받고 몸과 마음이 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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