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3)-3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연(泰然)하여 큰 이익을 얻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법을 들으러 온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법왕의 원만하신 깨달음의 성품을 거듭 설명해 주시옵소서. 일체 중생들과 모든 보살들과 여래 · 세존께서 증득하신 것에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말법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이 거룩한 가르침을 듣고 수순하고 깨달아 점차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청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한 말이로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여러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께 점차(漸次)와 차별을 묻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청정혜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원각(圓覺)의 자성(自性)은 본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건만, 모든 성품을 따라 일어날 뿐이니, 취(取)할 것도 없고 증(證)할 것도 없어서, 실상 가운데에는 실제로 보살도 일체 중생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과 중생은 모두가 허깨비인데, 허깨비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므로 취할 이도 증할 이도 없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눈이 스스로 눈을 못 보는 것과 같아서, 제 성품은 그대로 평등하지만, 평등하게 만드는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중생들이 미혹하고 뒤바뀌어서 일체 허깨비를 없애버리지 못하므로, 멸한 것과 멸하지 못한 것에 대해 허망하게도 애써 공부를 하는 까닭에 문득 차별을 나타내었거니와, 만일 여래의 적멸에 수순할 수 있다면, 실은 적멸도 없고 적멸하게 하는 주체도 없다.
선남자야, 일체 중생들이 끝없는 옛적부터 허망하게도 나[我]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잠깐잠깐 사이에 나고 사라지는 줄 스스로 알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미워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5욕(欲)을 탐하여 집착하게 되었느니라. 만일 좋은 벗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청정하고 뚜렷한 깨달음의 성품을 깨달아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유를 밝히면, 곧 이 삶이란 그 성품만 공연히 번거롭고 피로하게 했음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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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또 어떤 사람이 번거로운 고달픔이 영원히 끊어져서 법계가 청정해질 수 있었으나 그 청정하다는 견해가 장애가 되니, 그런 까닭에 원각에 자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범부가 원각(圓覺)의 성품에 수순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일체 보살은 보고 아는 것이 장애가 되는 것임을 알고서 아는 장애를 비록 끊었으나 아직도 깨달음을 보려는 경지에 머물러서 깨달으려는 장애에 걸려 자재하지 못하나니, 이것은 보살로서 10지(地)에 들지 못한 이가 깨달음의 성품에 수순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비춤[照]이 있고 깨달음[覺]이 있으면 모두가 다 장애이니, 그런 까닭에 보살은 항상 머물지 않아야 함을 깨달아 비출 대상과 비추는 이가 동시에 적멸하게 되느니라.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끊었다면 머리가 이미 끊어진 까닭에 끊을 것마저 없는 것과 같으니, 장애가 되는 마음으로 모든 장애를 스스로 멸한 뒤에는 다시는 끊을 것이 없느니라. 수다라(修多羅)의 교법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으니, 만일 달을 보았으면 가리키던 손가락은 마침내 달이 아닌 것임을 분명하게 아는 것과 같이, 일체 여래의 갖가지 가르침으로 보살들에게 열어 보이시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이것을 일러 이미 10지(地)에 든 보살이 깨달음의 성품을 수순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일체의 장애가 곧 구경각(究竟覺)이니, 바른 생각을 얻거나 잃어 버리거나 간에 해탈 아닌 것이 없으며, 이루어진 법과 깨뜨려진 법이 모두 열반이며, 지혜와 어리석음이 통틀어 반야(般若)이며, 보살과 외도가 성취한 법이 똑같이 보리(菩提)이며, 무명(無明)과 진여(眞如)의 경계가 다름이 없으며, 계(戒) · 정(定) · 혜(慧)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다 청정한 행이며, 중생과 국토가 동일한 법의 성품이며, 지옥과 천당이 모두 정토(淨土)이며, 성품 있는 것과 성품 없는 것이 한가지로 불도(佛道)를 이루는 것이며, 일체의 번뇌가 결국에는 해탈이니라. 법계 바다의 지혜로 모든 현상을 비추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이것을 여래가 깨달음의 성품을 수순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다만 모든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이 일체 시각을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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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모든 허망한 마음을 쉬어 없애려 하지도 말며, 망상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분명히 알려고 하지도 말며,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여기지도 말아야 할 것이니라. 저 중생들이 이 법문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녀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것이 깨달음의 성품을 수순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중생들은 이미 백천만억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들에게 공양하여 온갖 공덕의 씨앗을 심었나니, 나는 이런 사람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한 사람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청정혜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원만한 보리(菩提)의 성품은
취할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으며
보살도 중생도 없느니라.
깨달을 때와 아직 깨닫지 못할 때를 인해
점차와 차별이 있나니
중생은 아는 것의 장애를 받고
보살은 깨달음의 소견을 여의지 못하였다.
십지에 들어가 영원히 적멸하여
일체의 형상에 머물지 않고,
대각(大覺)만이 원만해지면
두루 수순한다 하느니라.
말법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마음에 허망한 생각 내지 않으면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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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의 보살이라 하나니,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여
공덕이 이미 원만해졌다 하나니
비록 방편이 많긴 하지만
모두가 수순하는 지혜라 하느니라.
이때 위덕자재(威德自在)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깨달음의 성품을 수순하는 법을 분별하시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마음의 광명을 깨닫게 하시고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받들어 듣게 하시어, 닦고 익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좋은 이익을 얻었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큰 성(城)에 출입하는 네 개의 문이 있어서 사방에 길이 열려 있어, 오는 이가 하나의 길에만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일체의 보살도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거나 보리를 성취하는 것도 한 가지 방편만이 아닐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 방편과 점차와 아울러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통틀어 몇 가지나 있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어 이 모임에 모인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로서 대승을 구하는 이로 하여금 빨리 깨달아 여래의 큰 적멸 바다에 유희하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위덕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한 말이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묻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위덕자재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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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위없는 미묘한 깨달음[妙覺]이 시방에 두루하여 여래를 내나니, 일체의 법과 더불어 한 몸과 같이 평등한 것이어서 모든 수행에 있어서는 실제로 둘이 없느니라. 그러나 방편으로 수순하는 데는 그 수가 한량없이 많고, 그 돌아갈 바를 두루 거두려면 그 성품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圓覺)을 깨닫고 나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고요함을 취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으면, 모든 생각이 맑아지는 까닭에 식심(識心)이 번거롭게 요동했음을 깨닫고 고요한 지혜가 발생하나니, 몸과 마음의 번뇌[客塵]가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여 안으로 적정(寂靜)하여 가볍고 편안함을 일으키느니라. 적정으로 말미암아 시방세계에 계신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속에 들어나 나타남이 마치 거울 속에 훤히 나타나는 형상과 같나니, 이런 방편은 그 이름을 사마타(奢摩他)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닫고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마음의 성품[心性]과 6근(根) · 6진(塵)이 모두가 허깨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알고는, 곧 온갖 환(幻)을 일으켜 환이 되는 것을 없앨 때 모든 환을 변화시켜 환 같은 무리를 깨우쳐 준다. 그러니 환을 일으키는 까닭에 마음속으로 큰 자비의 경안(輕安)함을 일으킨다.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시작하여 차츰차츰 더해 가나니, 환이 되는 것을 관찰함은 환과 같지 않기 때문이며, 환과 같지 않다고 관하는 것도 모두가 환이기 때문에 환의 모습을 영원히 여의느니라. 이것은 모든 보살들이 원만하게 하는 미묘한 행으로서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방편의 이름은 삼마발제[三摩鉢提 : 삼마발저(三摩鉢底)라고도 하며, 등지(等至)라 번역한다.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惛沈)ㆍ도거(掉擧)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등 평정(平靜)함을 말하고, 정력이 이런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지(至)라 한다.]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닫고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허깨비와 같은 모든 고요한 모습들을 취하지 아니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걸림이 되나 지각(知覺)이 없는 깨달음의 밝음은 모든 걸림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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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아니하는 것인 줄 분명하게 알아, 걸림과 걸림이 없는 경계를 영원히 초월할 것이다. 그러니 세계와 몸과 마음을 수용(受用)하되 모습은 티끌세상[震域]에 있는 것이 마치 종이나 북소리가 밖으로 울려나오는 것과 같아서, 번뇌와 열반이 서로 구애되지 않고, 미묘한 깨달음이 적멸의 경계를 수순함에 있어서는 자타(自他) 분별의 몸과 마음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요, 중생의 수명도 모두 들뜬 생각이 되는 것이니, 이런 방편의 이름을 선나[禪那 : 선(禪)은 범어 dhyana. 음을 따 선나(禪那)라고 하며 줄여서 선이라 한다. 뜻으로는 정려(靜慮)ㆍ사유수(思惟修)ㆍ기악(棄惡)ㆍ공덕림(功德林)ㆍ정(定)이라 번역한다.]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세 가지 법문(法門)은 모두 원각을 친근히 하고 수순하는 길이니, 시방의 여래께서 이것으로 인하여 부처님을 이루셨으며, 시방의 보살들이 일체가 같거나 다를지라도 모두 이와 같은 세 가지 업에 의지하나니, 만일 이를 원만하게 깨달으면 곧 원각을 이루리라.
선남자야, 가령 어떤 사람이 거룩한 도를 닦고서 백천 만억 아라한과 벽지불을 교화하여 깨달음의 경지[果位]를 성취하게 하더라도, 다른 어떤 사람이 이 원각의 걸림 없는 법문을 듣고 한 찰나(刹那) 사이에 수순하여 닦아 익힌 것보다는 못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이치를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위덕이여, 그대는 꼭 알아야 한다.
위없고 큰 깨달음의 마음은
본제(本際)는 두 모양이 없건만
온갖 방편을 수순함에는
그 수가 한량없이 많으니라.
여래께서 총괄해서 보이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번뇌 없고 편안한 저 사마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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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모든 형상이 비침과 같고,
환과 같은 삼마제(三摩提)는
새싹이 차츰차츰 자라남 같으며
적멸한 경계인 선나는
그릇 속의 종소리와 같도다.
위의 세 가지 미묘한 법문은
모두가 원각에 수순하나니
시방에 계신 모든 여래와
시방에 있는 모든 보살들이
이로 인해 부처님의 도를 이루셨나니
세 가지 일 원만하게 증득한 까닭에
구경의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때 변음(辯音)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이러한 법문은 매우 희유(希有)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방편은 일체 보살이 원각의 문에 대하여 몇 가지로 닦아 익혀야만 합니까? 바라옵건대 대중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을 열어 보이시어 실상(實相)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변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여래에게 닦아 익히는 법을 묻는구나.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때 변음보살이 분부를 받들고는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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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이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일체 여래의 원각은 청정하여 본래 닦아 익힐 대상도 없고 닦아 익힐 주체도 없건만, 일체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환(幻)의 힘에 의지하여 닦아 익히므로, 스물다섯 가지의 청정한 선정의 바퀴[清淨定輪]가 있게 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오직 지극한 적정[極靜]만을 취하여 적정의 힘[靜力]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번뇌를 끊고, 마침내 성취하여 그 성취한 경지에서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들면, 이런 보살은 사마타 하나만을 닦는다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오직 환과 같음만 관하고 (외도가 아닌) 부처님의 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세계의 갖가지 작용을 변화시켜 보살의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갖추어 닦고는 다라니(陀羅尼)에서 고요한 생각과 고요한 지혜를 잃지 않으면, 이런 보살은 삼마발제(三摩鉢提) 하나만을 닦는다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모든 환(幻)을 멸하여 작용을 취하지 않고, 오직 번뇌만을 끊어 번뇌가 다 끊어지면 그대로 실상을 증득하나니, 이런 보살은 선나(禪那) 하나만을 닦는다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먼저 지극히 고요함[至靜]을 취하고, 고요한 지혜[靜慧]의 마음으로 온갖 환(幻)을 비추어서 살피다가 문득 그 가운데에서 보살행을 일으키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나중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고요한 지혜를 써서 지극히 고요한 성품[靜性]을 증득하고는 번뇌를 끊고 영원히 생사를 벗어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나중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정한 지혜로써 다시 환의 힘[幻力]을 나타내고 갖가지로 변화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나중에 번뇌를 끊고 적멸에 들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를 닦고 마지막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至靜力]으로써 번뇌를 끊고 뒤에 보살의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일으키어 중생들을 제도하면, 이런 보살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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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마타를 닦고 중간에 선나를 닦고 마지막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마음에 번뇌를 끊고 뒤에 중생을 제도하여 세계를 건립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온갖 변화가 일어나도록 돕고 뒤에 번뇌를 끊으면, 이런 보살은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가지런히 닦고 마지막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적멸을 돕고 나중에 작용을 일으키어 경계를 변화하면, 이런 보살은 가지런히 사마타와 선나를 닦고 마지막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變化力]으로써 가지가지로 수순하되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나중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갖가지의 경계에서 적멸을 취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나중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부처님의 일을 하고 적정에 편안히 머물러서 번뇌를 끊으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를 닦고 나중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걸림 없는 작용으로 번뇌를 끊은 까닭에 지극히 고요함에 편안히 머무르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중간에 선나를 닦고 마지막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방편을 써서 지극히 고요함과 적멸의 두 가지를 함께 수순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와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갖가지로 작용을 일으키어 지극히 고요함을 돕다가 나중에 번뇌를 끊으면, 이런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사마타를 닦고 나중에 선나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써 적멸을 돕다가 나중에 청정하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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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없는 선정[靜慮]에 머무르면, 이런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선나를 닦고 나중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寂滅力]으로써 지극히 고요함을 일으키어 청정한 경지에 머무르면, 이런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뒤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써 작용을 일으키어 일체 경계에서 고요함[寂]과 작용[用]을 수순하면, 이런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갖가지 제 성품으로써 선정에 안주(安住)하고 변화를 일으키면, 이런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를 닦고 마지막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지음 없는 제 성품으로써 작용을 일으키고 청정한 경계에서 선정에 들어가면, 이런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를 닦고 뒤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갖가지가 청정함으로써 선정에 머물러서 변화를 일으키면, 이런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써 지극히 고요함을 도와 변화를 일으키면, 이런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와 사마타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써 변화를 돕고,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은 경지의 지혜를 일으키면, 이런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와 삼마발제를 닦고 뒤에 사마타를 닦는 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원각의 지혜로써 일체에 원만하게 합하고, 모든 성품[性]과 형상[相]에서 깨달음의 성품을 여읨이 없으면, 이런 보살은 세 가지를 원융하게 닦아서 제 성품의 청정함을 수순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스물다섯 가지 관문[輪]이라 하나니, 일체 보살의 수행이 이와 같으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이 관문을 의지하려는 이는 맑.........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