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240-8-입능가경-24

근와(槿瓦) 2015. 11. 27. 19:22

240-8-입능가경-24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231 / 415] 쪽

음을 떠났으므로,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바깥의 분별하는 바를 나타내어 마음이 회전(廻轉)한 것을 능히 앎이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해탈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해탈이라 말한 것은 멸하는 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기를, '만약 본제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해탈을 얻었는가'라고 하는 이 물음은 성립하지 못한다.

 

대혜여, 본제라고 말한 것은 이 분별하는 마음이니, 동일한 체(體)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대혜여,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면 다시 중생이 없으니, 바로 '분별은 중생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진실한 지혜로서 내외(內外)법을 관찰하면 가지(可知)와 능지(能知)인 법이 없는 것이다.

 

대혜여, 일체법은 본래 고요한 것이다.

 

대혜여,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허망한 분별을 나타낸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이니, 여실히 아는 자는 분별을 내지 않는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러 부처님을 관찰하기를,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멸함도 또한 생함도 아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능히 부처님을 보리라.

모든 진구(塵垢)를 멀리 떠나서

항하의 모래가

물 흐름을 따르나 변치 않듯이

법신도 또한 이와 같네.

 

                                                                                                                        [232 / 415] 쪽

입능가경 제 8 권

원위 천축삼장 보리류지 한역

 

14. 찰나품(刹那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일체 생멸(生滅)하는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법이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법이라는 것은 이른바 선법(善法) · 불선법(不善法) · 유위법(有爲法) · 무위법(無爲法) · 세간법(世間法) · 출세간법(出世間法) · 유루법(有漏法) · 무루법(無漏法) · 내법(內法) · 외법(外法)이다.

 

대혜여, 줄여 말하면 5음(陰)법이니, 심(心) · 의(意) · 식(識)으로 인하여 훈습하며 증장한 것이다.

 

모든 범부인 사람들은 심 · 의 · 식으로 인하여 훈습함으로 선(善) · 불선(不善)인 법을 분별한다.

 

                                                                                                                         [233 / 415] 쪽

대혜여, 성인은 현재 삼매(三昧) · 삼마발제(三摩跋提)의 무루(無漏)인 선법(善法)의 낙행(樂行)을 증득하였다.

 

대혜여, 이를 선법(善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말한 바 선(善) · 불선(不善)의 법이라 말한 것은 이른바 8식(識)이니, 무엇이 8식이 되는가? 첫째는 아리야식(阿梨耶識)이요, 둘째는 의(意)요, 셋째는 의식(意識)이요, 넷째는 안식(眼識)이요, 다섯째는 이식(耳識)이요, 여섯째는 비식(鼻識)이요, 일곱째는 설식(舌識)이요, 여덟째는 신식(身識)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의식신(意識身)과 함께 하여 선 · 불선의 법이 전전(展轉)히 차별되며 상속(相續)하지만, 자체는 차별이 없이 생하는 법을 수순하여 생겼다가 다시 멸하지만, 자심(自心)이 허망한 경계를 나타낸 것을 알지 못하고, 곧 멸할 때엔 능히 경계와 형상의 크고 작음과 수승하고 묘한 모양을 취한다.

 

대혜여, 의식이 5식신(識身)과 함께 서로 응하여 나는데, 한 생각의 순간[刹那]도 머무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나는 저 법을 말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찰니가(刹尼迦 : 刹那)라고 말한 것은 공(空)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아리야식은 여래장이라고 이름함이니, 의(意)와 전식(轉識)과 함께 훈습함으로 '공이 된다'고 이름하며, 무루(無漏)인 훈습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불공(不空)이 된다'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모든 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아니함에 집착하여,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말하기를, '무루의 법도 또한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아니한다'라고 하니, 저 진여(眞如)인 여래장을 깨뜨리는 것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6도(道)에 나지 않으며, 고락(苦樂)을 받지 않으며, 열반의 인(因)도 짓지 않는다.

 

대혜여, 여래장은 고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생사(生死)의 인(因)은 아니지만, 다른 법은 함께 생(生)하며, 함께 멸하여 네 가지 훈습[四種熏習 : 無明 · 妄心 · 妄境 · 淨法의 네 가지 훈습]에 의하여 취(醉)한 것이다.

 

                                                                                                                          [234 / 415] 쪽

그러나 범부는 사견(邪見)으로 훈습함을 알지 못하고, '일체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금강(金剛)인 여래장과 여래의 증득하신 법은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이 만약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면 일체 성자(聖者)는 성인(聖人)을 이룬 것이 아닐 것이다.

 

대혜여, 성인 아닌 것이 아니니, 성인이기 때문이다.

 

대혜여, 금강은 한 겁(劫) 동안 머물러 있어도, 무게와 부피가 그대로 있어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다.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범부는 나의 뜻을 얻지 못했으니, 안팎의 모든 법은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함을 알지 못함이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6바라밀(波羅蜜)법이 만족하여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6바라밀이 되며, 어찌하면 만족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바라밀의 차별이 세 가지 있으니, 이른바 세간바라밀(世間波羅蜜)과 출세간바라밀(出世間波羅蜜)과 출세간상상바라밀(出世間上上波羅蜜)이다.

 

대혜여, 세간바라밀이라 말한 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하는 법에 집착하여, 2변(邊)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수승하고 묘한 경계를 위하여 바라밀을 행하고, 색(色) 등의 경계와 과보(果報)를 구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 : 布施波羅蜜) ·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 持戒波羅蜜) ·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 : 忍辱波羅蜜) · 비라바라밀(毘羅波羅蜜 : 精進波羅蜜) · 선바라밀(禪波羅蜜 : 禪定波羅蜜) ·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하여 범천(梵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5신통(神通)인 세간의 법을 구한다.

 

                                                                                                                         [235 / 415] 쪽

대혜여, 이를 세간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출세간바라밀이라고 말한 것은 성문과 벽지불이 열반인 마음을 취하여 바라밀을 수행함이다.

 

대혜여, 저와 같은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에서 열반락을 구하기 위하여 세간바라밀의 행을 행하며, 성문과 연각은 또한 다시 이와 같이하여 자신을 위하며, 열반락을 구하여 출세간바라밀을 행하며, 저 구경락(究竟樂)이 아닌 것을 구한다.

 

대혜여, 출세간상상바라밀은 여실히 다만 이 자심(自心)의 허망한 분별로써 바깥 경계를 나타낸 것을 능히 앎이니, 그 때엔 실로 오직 이 자심에서 안과 바깥의 법을 나타낸 것임을 알고 허망한 분별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안팎의 자심과 색상을 취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여실히 일체법을 알므로 단나바라밀을 행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안온(安穩)한 낙(樂)을 얻게 하니, 그러므로 이를 단나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저 일체법을 관찰하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청량(淸凉)한 법을 수순하니, 이를 시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저 수행함을 알아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가 진실이 아님을 여실히 아니, 이를 보살의 찬제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어떻게 정진행(精進行)을 닦는 것인가? 초(初) · 중(中) · 후(後) 밤에도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실법을 수순하여 모든 분별을 끊음이니, 이를 비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서, 외도의 능취와 가취의 경계를 따르지 아니함을 선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인가? 보살이 여실히 자심의 분별하는 상을 관찰하여, 분별함을 보지 아니하고 2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여실한 수행에 의하여 몸을 전변하여 한 법도 생함을 보지 않으며, 한 법도 멸함을 보지 않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행을 수행함이니, 이를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236 / 415] 쪽

대혜여, 바라밀의 뜻[義]을 이와 같이 만족시키는 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空)과 무상(無常)과 찰나(刹那)를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라고 분별하여,

강물과 등불과 종자와 같다고 하며

공과 무상과 찰나라고 한다네.

찰나의 뜻[義]을 분별하여

찰나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나,

찰니가(刹尼迦 : 刹那)는 불생(不生)이라서

고요하여 짓는 바 떠났네.

일체법은 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찰나의 뜻이라 말한다.

물질은 생하면 멸함이 있으나

범부를 위해 말을 아니하네.

상속하는 법을 분별하며

망상으로 6도(道)를 보지만,

만약 무명(無明)이 인(因)이 되어

모든 마음 능히 낸다한들

형색도 생하지 아니 했으니

중간이야 어디 의지해 머무르랴.

생하면 곧 멸함이 있으니

다른 마음도 저를 따라 나는 것이네.

 

                                                                                                                          [237 / 415] 쪽

형색은 한 생각 머무름이 아니니

어느 법에서 생함을 관찰하랴.

어느 인(因)에 의해서 생긴 법이랴?

마음은 인(因)없이 생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생하는 것 성립하지 않으니,

어떻게 생각이 무너짐 알 것인가.

수행자가 정(定)을 증득하여

금강과 불사리(佛舍利)로

광음천(光音天) 궁전에서

세간에 파괴되지 않는 일과

그 증득한 법의 진실을

여래께서는 지혜로 성취하였네.

비구가 평등한 법을 증득하면

어찌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을 볼 것인가.

건달바(乾闥婆)와 환상인 것이리.

무엇 때문에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인가?

4대(大)와 보여진 형색이 없음이니,

4대가 어찌 하는 일이겠는가?

 

15. 화품(化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 세존께서 여러 아라한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授記)를 주셨으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 여래께서는 열반에 들지 않는다'라고 하셨으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래 · 응

 

                                                                                                                          [238 / 415] 쪽

공 · 정변지는 어느 밤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고, 그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불 · 여래께서는 항상 무각정(無覺定) · 무관정(無觀定)에 드신다'라고 하시며,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러 가지 응화(應化)를 지어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모든 식(識)의 생각 생각이 차별되어 머무르지 않으며, 금강 밀적[金剛密迹 : 금강역사(金剛力士) · 밀적금강(密迹金剛) · 금강수(金剛手) · 집금강(執金剛)이라고도 한다. 밀적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事迹)을 기억한다는 의미로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불법을 보호하는 천신의 통칭이다.]이 항상 따라서 모시고 호위한다'라고 하시며, 또한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본제(本際)는 알기가 어렵다'라고 하시고, 또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반열반에 드는데, 만약 열반에 들지라도 마땅히 본제는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원수와 적(敵)은 없다. 그러나 모든 마군(魔)이 나타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일체 업장(業障)을 끊었지만, 칭차마나손타리(稱遮摩那孫陀利) 등의 비방함을 받았으며, 부처님께서 사리나(娑梨那)촌에 들어가서는 마침내 공양을 얻지 못하고 빈 발우로 나오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와 같을진대 여래께서는 곧 한량없는 죄업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 죄와 허물을 떠나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239 / 415] 쪽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 보살행을 행하였던 성문들에게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의지하는 이를 위하여 수기를 주었다.

 

대혜여, 내가 성문에게 수기를 준 것은 겁약(怯弱)한 중생으로 용맹심(勇猛心)을 내게 하기 위함이다.

 

대혜여, 이 세계 및 다른 부처님 국토에 여러 중생이 보살행을 행하기를, 또한 성문의 법행(法行)을 좋아하는 이가 있기에 저를 돌이켜서 큰 보리를 취하도록 하기 위하여 응화(應化) 부처님께서 마땅히 교화할[應化] 성문(聲聞)을 위하여 수기함이요, 보신(報身) 부처님과 법신(法身) 부처님께서 기별(記莂)을 주시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과 열반에는 차별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번뇌를 끊는 것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뇌장(煩惱障)을 끊은 것이요, 지장(智障)을 끊은 것은 아니다.

 

대혜여, 법무아(法無我)를 보면 지장을 끊고, 인무아(人無我)를 보면 번뇌장을 끊는다.

 

대혜여, 의식을 굴리므로 법장(法障)과 업장(業障)을 끊으며, 의(意)와 아리야식(阿梨耶識)의 훈습을 굴리므로 구경(究竟)의 청정함이다.

 

대혜여, 나는 항상 본래 법체(法體)에 의하여 머무르고, 다시 법을 내지 않으며, 본래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에 의하여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모든 법을 말한다.

 

대혜여, 여래께서는 항상 뜻과 같이 알며, 항상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각(覺)이 없고, 관(觀)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 · 여래께서는 네 가지 머무르는 자리[四住地]를 떠나고, 두 가지 죽음[死]과 두 가지 장애[障]와 두 가지 업(業)을 멀리 떠났다.

 

대혜여, 7종의 식(識)과 의(意)와 의식(意識)과 눈 · 귀 · 코 · 혀 · 몸이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아니하며, 허망한 훈습으로 인하여 무루(無漏)인 모든 선법(善法)을 떠난 것이다.

 

대혜여, 여래장(如來藏)은 세간에서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고, 항상 청량하며 변치 않는다.

 

                                                                                                                         [240 / 415] 쪽

대혜여, 여래장에 의지하므로 세간과 열반과 고락(苦樂)의 인(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범부는 알지 못하고 공(空)과 허공(虛空)과 전도(顚倒)에 떨어진다.

 

대혜여, 금강밀적(金剛密迹)은 항상 응화 여래를 따라 모시고 호위하여 에워싸는 것이요, 법신 부처님과 보신 부처님께서는 근본 여래 · 응공 · 정변지는 아니다.

 

대혜여, 여래께서는 모든 근(根)과 크고 작은 모든 양(量)을 멀리 떠났으며, 일체 범부와 성문과 벽지불들을 멀리 떠났다.

 

대혜여, 여실히 수행하여 진여낙행(眞如樂行)의 경계를 얻는 자는 근본 부처를 알 것이니, 평등한 법인(法忍)을 얻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금강밀적은 응화불을 따르는 것이다.

 

대혜여, 응화불이란 비방도 없으며 업도 없어서, 응화불도 법불 · 보불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같지도 않으니, 질그릇을 만드는 이[陶師]가 바퀴 등으로 만드는 바 일을 짓는 것과 같아서, 응화불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짓는데 진실상(眞實相)과 달리 설법하고, 안으로 증득한 바 법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말하지 않는다.

 

대혜여, 일체 범부와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들은 6식(識)이 멸함을 보고 단견(斷見)에 떨어지며, 아리야식을 보지 못하고 상견(常見)에 떨어진다.

 

대혜여, 자심(自心)을 보지 못하고 본제(本際)를 분별하니, 그러므로 세간을 본제가 없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자심의 견(見)을 멀리 떠나는 자는 해탈하여 열반의 증득을 얻었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부처님 · 여래께서는 네 가지 훈습하는 습기(習氣)를 멀리 떠났으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3승(乘)과 또한 비승(非乘)과

여러 부처님과 한량없는 승(乘)이며

일체 수기한 부처의 지위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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