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입능가경-22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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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8지에서는 일체 보살과 성문과 벽지불이 열반이라는 생각에 든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자기 자심의 삼매와 부처님의 힘을 입어서 삼매락(三昧樂)의 문에 들어가서 열반에 떨어져 머무르지 아니하니, 여래의 지위를 만족하지 못한 까닭이다.
만약 저 보살이 삼매문에 머무르는 자는 일체 중생을 휴식하게 하며 도탈(度脫)하기를, '여래종(如來種)을 끊으며, 여래가(如來家)를 멸함은 여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모든 경계를 보이기 위함이니, 그러므로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삼매락의 문인 법에 떨어지니, 그러므로 성문과 벽지불은 열반이라는 생각은 낸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초지로부터 7지에 이르러서는 공교로운 방편을 갖추어서, 심 · 의 · 의식의 상(相)을 관찰하여, 나와 내 것이라 함으로 상을 취하는 법을 멀리 떠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관찰하고,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관찰하여 4무애(無礙)인 공교로운 방편의(方便義)를 잘 알고, 자재(自在)롭게 차제로 모든 지위와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들어간다.
대혜여, 내가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의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인 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일체 보살은 모든 지위의 차례를 여실히 알지 못하고, 외도의 사견(邪見) 등의 법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나는 차례로 모든 지위의 모양을 말하였다.
대혜여, 만약 사람이 차례로 모든 지위에 들어간다면 다른 도(道)에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말한 '모든 지위의 차례인 모양'은 오직 자심에서 모든 지위의 차례 및 삼계에서 여러 가지 행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모든 범부는 깨달아 알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나와 일체 부처님께서 모든 지위의 차제의 모양과 삼계의 여러 가지 행상(行相)을 건립함을 말한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제8보살 지위의 적멸(寂滅)삼매의 낙문(樂門)을 좋아하고 취하였으므로 오직 자심의 견(見)임을 잘 알지 못하고, 자기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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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은 모양의 훈습으로 장애함에 떨어지므로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견해인 허물에 떨어져서 분별하는 마음으로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며, 능히 모든 법의 고요함을 알지 못한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고요한 삼매락의 문을 봄으로서 본원(本願)을 기억하고 생각하여 큰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건져주며, 10무진(無盡)의 여실행인 지혜를 아니, 그러므로 곧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나며, 능취와 가취의 경계를 멀리 떠나는 것을 열반에 들어간 것이라 이름함이니, 여실한 지혜로서 '일체 모든 법이 오직 이 자심임'을 아니,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심 · 의 · 의식을 취하지 않으며, 바깥 법이 실로 있다는 상에 집착하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불법의 수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근본지(根本智)에 의하여 전전(展轉)히 수행하여 자신에게서 부처님 · 여래의 증득하신 땅의 지혜를 구하려고 함이다.
대혜여, 사람이 잠을 자면서 꿈에 큰 바닷물을 건너려고 큰 방편을 일으켜 자신을 건너려고 하다가 건너지 못하고서 중간에 문득 꿈에서 깨면,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실인가? 허망한 것인가?' 그는 또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모양은 사실도 아니며, 허망도 아니요. 오직 나의 본래 진실 아닌 경계를 허망하게 분별하는 훈습의 인(因)으로 여러 가지 형색을 본 것이니, 형색의 뒤바뀜은 유무를 떠난 것이 아니며, 의식의 훈습으로 꿈속에 보인 것이라 함과 같다.
대혜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8지(地)에서 분별하는 마음과 초지와 7지의 모든 법 같은 모양이 꿈과 같고 환상과 같아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고, '모든 공용(功用)인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심(心)과 심수(心數)법을 보아서, 상상분법(上上分法)을 얻지 못한 수행자를 위하여, 그로 하여금 얻게 한다.
보살마하살이 수승한 법을 수행하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모든 법을 멸하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함이 아니다.
보살마하살은 심 · 의 · 의식의 분별하는 상을 멀리 떠나므로 무생인(無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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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을 얻는다.
대혜여, 제일의(第一義)에는 또한 차제도 없으며, 차제행(次第行)도 없어서 모든 법의 고요함이 또한 허공과 같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벽지불이 제8보살지의 적멸락(寂滅樂)의 문에 들어간다'라고 하시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벽지불은 다만 이 자심의 분별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시고, 또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문은 인무아(人無我)만을 얻고 법무아공(法無我空)은 얻지 못했다'라고 하시니, 만약 이 말씀과 같다면 성문과 벽지불은 오히려 능히 초지의 법도 증득하지 못하였는데, 어찌 8지의 적멸락의 문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 지금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여, 성문이 세 가지 있으니, 8지(地)의 적멸문에 들어갔다고 말한 것은, 옛적에 보살행을 닦은 자가 성문의 자리에 떨어졌다가 다시 본심에 의하여 보살행을 닦아서 한가지로 8지의 적멸락의 문에 들어간 것이요, 증상만(增上慢)인 적멸의 성문(聲聞)은 아니다. 그는 능히 보살행에 들어가지도 못했으며, 아직 삼계가 유심(唯心)임을 깨닫지 못했으며, 아직 보살의 모든 법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아직 모든 바라밀과 10지의 행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결정(決定)의 적멸인 성문은 능히 저 보살의 행하는 바 적멸락의 문을 증득하지 못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일 뿐, 가진 바가 있지 않으니
모든 행과 부처님의 지위를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께서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시네.
7지(地)는 마음의 자리[心地]요,
가진 바가 없는 것은 8지(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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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는 행(行)이라 이름하며,
다른 자리를 나의 자리[我地]라 하네.
속 몸으로 증득함과 청정함은
이는 나의 자리라 이름하니,
자재하고 가장 훌륭한 곳인
아가니타천(阿迦尼咤天)에서
불꽃 같이 빛나게
묘한 광명 내나니.
여러 가지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삼계를 변화로 만들어내네.
3계의 빛을 변화로 나타내며
혹은 옛적의 교화가 있는
그 곳엔 모든 승(乘)을 말하니,
이것이 나의 자재(自在)한 자리라네.
10지(地)가 초지로 되기도 하며,
초지가 8지로도 되고
9지가 7지로도 되며
7지가 8지로도 된다네.
2지가 3지로 되기도 하며
4지가 5지로도 되고
3지가 6지도 되지만,
적멸에는 무슨 차제가 있으랴.
결정인 모든 성문(聲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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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행을 행하지 않으며,
한가지로 8지에 들어가는 이는
본래 보살행을 닦은 이라네.
10. 문여래상무상품(問如來常無常品)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 · 응공 · 정변지는 항상됨[常]입니까? 무상(無常)함입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 · 응공 · 정변지는 항상됨도 아니며 무상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2변(邊)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유(有)와 무(無)인 2변에는 마땅히 과실이 있을 것이다.
대혜여, 만약 여래를 항상된 법이라고 말한다면, 곧 항상된 인(因)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외도가 말한 '미진(微塵)인 모든 인이 항상됨이요, 지어진 법은 아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여래를 항상됨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지어진 법이 아닌데 항상된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또한 여래를 항상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무상(無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유위(有爲)의 지어진 법인 5음(陰)에 가견(可見)과 능견(能見)의 법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니, 5음은 없어지기 때문에 5음이 없어진다면, 부처님 · 여래도 또한 마땅히 마찬가지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 여래는 없어지는 법이 아니다.
대혜여, 무릇 지어진 법이란 모두 무상한 것으로, 병(甁)과 의복과 수레와 쌓은 자리[疊席] 등은 모두 지어진 법이니, 그러므로 무상하다.
대혜여, 만약 일체가 모두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일체지(一切智)와 일체 사람과 일체 공덕도 또한 마땅히 무상하여 일체 지어진 법의 모양과 같을 것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니, 만약 일체가 모두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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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 여래도 마땅히 지어진 법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 여래는 이 지어진 법이 아니므로, 다시 더 이상 수승한 인(因)이 있다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여래는 항상됨도 아니며, 또한 무상함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여래는 항상됨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허공의 성질이라서 또한 모든 공덕을 수행함도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허공은 항상됨도 아니며 무상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항상됨과 무상함을 떠났기 때문이며, 같음과 다름, 함께 함과 함께 하지 않음, 있음과 없음, 있는 것 아님과 없는 것 아님, 항상됨과 무상함, 항상됨 아님과 무상함 아닌 것들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허물을 떠났기 때문에 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또한 여래를 항상됨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만약 항상된다고 말한다면, 토끼 · 말 ·낙타 · 나귀 · 거북 · 뱀 · 파리 · 물고기들의 뿔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를 항상됨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혜여, 또한 여래를 항상됨이라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불생(不生)인 항상됨에 떨어질까 두려워함이다. 그러므로 여래 · 세존을 항상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혜여, 다시 다른 법이 있어서, 여래 · 세존을 항상됨이라 말할 수 있으니, 저 법에 의하므로 여래 · 세존을 항상됨이라 말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안으로 증득하는 지혜로서 항상된 법을 증득함에 의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래를 항상됨이라 말할 수 있다.
대혜여, 부처님 · 여래의 안으로 증득한 지혜의 법은 항상되고 청량(淸凉)이며 불변(不變)이다.
대혜여, 불 ·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 만약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더라도 법성(法性)은 항상 이와 같고, 법체(法體)도 항상 이와 같으며, 법의 궤칙(軌則)도 항상 이와 같으니, 저 법성은 일체 성문과 벽지불들의 또한 일찍 듣지 못한 바이며 또한 일찍 보지 못한 바이고, 이와 같은 법체는 허공도 아니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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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불 · 여래의 안으로 증득한 지혜는 저에 의하여 얻어진 이름인 것이다.
대혜여, 여실한 지혜에 의하여 수행하므로 부처님이 된다고 이름함을 얻은 것이요, 심 · 의 · 의식과 무명(無明)과 5음(陰)으로 훈습하여 얻은 이름이 아니다.
대혜여, 일체 삼계(三界)는 진실 아닌 망상과 분별과 희론으로 얻어진 이름이다.
대혜여, 진실하지 못한 분별인 두 가지 법은 항상됨과 무상함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불 · 여래는 두 법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인 2변(邊)에 떨어지지 않으니, 여래는 고요하여 두 법이 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부처님 ·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는 항상됨이다', '무상함이다'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무릇 말하는 바는 '항상됨이다', '무상함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나, 일체 분별을 멀리 떠나서 다한 자는 '항상됨이다', '무상함이다'라고 하는 법을 취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범부에게 '항상된다', '무상하다'라고 분별하지 못하게 막으니, 진실인 고요한 법을 얻은 자는 분별을 없애고 분별을 내지 않는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됨과 무상함을 떠나서
항상됨도 무상함도 아니니,
만약 이와 같이 부처님을 보면
그는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리.
만약 항상됨과 무상함을 말하며
모든 공덕을 허망하다고 하면,
지혜 없는 이의 분별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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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상(常)과 무상(無常) 말함을 막았다.
법을 내세우는 이는
모두 여러 허물이 있으니,
만약 능히 유심(唯心)임을 본다면
그는 모든 허물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11. 불성품(佛性品)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선서(善逝)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음(陰) · 계(界) · 입(入)의 생(生) · 멸(滅)하는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만약 무아(無我)라면 무엇이 생(生)하며, 무엇이 멸(滅)합니까?
세존이시여, 일체 범부는 생(生) · 멸(滅) · 주(住)에 의하여 고(苦)의 다함을 보지 못하니, 그러므로 열반(涅槃)의 모양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장(藏)은 선(善)과 불선(不善)의 인(因)이다. 능히 6도(道)와 더불어 생사(生死)의 인연을 지으니 비유컨대, 재주 부리는 아이들이 여러 가지의 재주를 부리는 것과 같아서, 중생이 여래장(如來藏)에 의지하여 5도(道)에서 나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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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여래장은 나와 내 것이라 함을 떠났지만, 모든 외도들은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삼계에서 나고 죽는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다.
대혜여, 외도들은 허망하게 아(我)를 계탁(計度)하므로 능히 여래장을 여실히 보지 못하니, 외도는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한 집착과 여러 가지 희론으로 훈습되었기 때문이다.
대혜여, 아리야식(阿梨耶識)을 여래장(如來藏)이라 이름하니, 무명(無明)인 7식(識)으로 더불어 함께 함이 큰 바다에 물결이 항상 끊이지 않는 것과 같아서, 몸과 함께 생한 까닭이다.
무상(無常)의 허물을 떠나고, 아(我)의 허물을 떠나면 자성(自性)이 청정할 것이다.
그 외 7식이란 심 · 의 · 의식 등의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는 생멸(生滅)의 법이니, 7식은 저 허망한 인(因)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
능히 모든 법을 여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높고 낮고 길고 짧은 형상을 보고 명상(名相)에 집착하므로 능히 자심(自心)으로 하여금 색상을 보며, 능히 고락(苦樂)을 얻으며, 능히 해탈의 인(因)을 떠나며, 명상으로 인하여 수번뇌(隨煩惱)인 탐(貪)이 나게되며, 저 생각하는 인(因)에 의하여 여러 근(根)이 멸진(滅盡)하므로 차제(次第)로 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자의(自意)의 분별에서도 고락인 감수[受]가 나지 않으니, 그러므로 소상정(少想定)과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며, 삼마발제(三摩跋提)와 4선(禪)과 참다운 해탈[實諦解脫]에 들어간다.
그러나 수행하는 이는 '해탈이다'라는 상(相)을 내니, 허망한 상이 전멸(轉滅)함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여래장식(如來藏識)은 아리야식(阿梨耶識) 속에 있지 않으니, 그러므로 일곱 가지 식(識)은 생함도 있으며, 멸함도 있으나, 여래장식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저 일곱 가지 식은 모든 경계와 생각함과 관(觀)하는 것에 의하여 나기 때문이다.
이 7식의 경계는 일체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와 수행자도 능히 깨달아 알지 못하니, 여실히 인무아(人無我)를 알지 못한 까닭이며, 음 · 계 · 입의 법들을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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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여래장은 여실히 5법의 체상(體相)과 법무아(法無我)를 본 것이므로 생함이 아니며, 여실히 여러 지위의 차례와 전전(展轉)히 화합함을 아는 까닭이다.
다른 외도는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능히 관찰하지 못한다.
대혜여, 보살이 부동지(不動地)에 머물면, 그 때엔 열 가지 삼매문(三昧門) 등을 얻어서 상수(上首)가 될 것이며, 한량없고 가없는 삼매를 얻고 삼매와 부처님의 주지(住持)하심에 의하여 헤아릴 수 없는 불법과 자기의 본원력(本願力)을 관찰하므로 삼매문의 실제(實際) 경계를 막아 두호(遮護 : 삼매락을 받지 않음)하고, 막아 두호하고는 자기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 법을 증득하는 진실한 경계에 들어가서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수행으로 관찰할 바의 경계와 같지 않은 것이다.
그 때엔 저 열 가지 성도(聖道)를 지나서 여래의 '뜻대로 나는 몸[義生身]'과 지혜의 몸에 들어가서 모든 공용(功用)인 삼매의 마음을 떠난다.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수승한 법인 여래장 · 아리야식을 증득하려 한다면 마땅히 수행하여 청정하게 할 것이다.
대혜여, 만약 여래장 · 아리야식을 없는 것[無]이라 이름한다면, 아리야식을 떠나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을 것이다.
일체 범부와 모든 성인도 저 아리야식을 의지하므로 생도 있으며, 멸도 있다. 아리야식을 의지하므로 모든 수행자는 자기 속 몸의 거룩한 행을 증득하는 데에 들어가서, 법락행(法樂行)을 나타내면서 쉬지 않는다.
대혜여, 이 여래의 마음인 아리야식 · 여래장식의 경계는 일체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들은 능히 분별하지 못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장은 이 청정한 모양이지만 객진번뇌(客塵煩惱)가 더럽힌 것으로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나는 이 뜻에 의하여, 승만부인(勝鬘夫人)과 다른 보살마하살인 깊은 지혜 있는 자를 위하여 여래장 · 아리야식이 7종(種)의 식(識)과 함께 나는 것을 전멸상(轉滅相)이라 이름한다고 말하였으며, 여러 성문과 벽지불들을 위하여 법무아를 보였으며, 승만(勝鬘)에게는 '여래장은 이 여래의 경계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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