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42)-420

근와(槿瓦) 2015. 11. 24. 19:21

대집경(42)-42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411 / 1773] 쪽

그때 무외보살이 곧 자기가 입은 저고리를 벗어서 보녀가 설법한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이때 보녀가 받으려고 하지 않자,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법을 위하는 까닭이니 받아 주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여, 법은 탐욕을 여의는 것이기 때문에 설법하고 받는 것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법이란 취(取)함이 없기 때문에 공양물을 취하는 것에 응할 수가 없으며, 법이란 탐욕이 없기 때문에 공양물을 탐하는 것에 응할 수가 없으며, 법이란 나[我]와 내 것[我所]이 없기 때문에 내 물건으로써 공양한다는 것에 응할 수 없으며, 법이란 청정하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는 물건으로써 공양하는 것에 응할 수 없습니다.

 

법은 몸과 마음이 없으므로 몸과 마음의 행(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마음과 뜻과 식별이 아니므로 마음과 뜻과 식별은 공양이 아닙니다.

 

법은 끌어당김이 없으므로 끌어당김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있거나 없음이 아니므로 있다는 법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모든 존재[有]가 아니므로 모양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각(覺)과 관(觀)이 아니므로 각과 관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므로 더하고 덜함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높거나 낮음이 없으므로 높고 낮음은 법이 아니며,

 

법은 설할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이름과 글자가 없어서 온갖 소리를 버리고 성도(聖道)를 멀리 여의므로 옷으로써 공양할 수 없습니다.

 

법은 경계가 없어서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도 아니고 정한 집[屋宅]이 없으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하며,

 

법이란 곧 12인연이어서 상(常)과 단(斷)이 아니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하며,

 

법은 장애가 없고 뒤바뀌지 않고 측량할 수 없고 나·중생·장정·수명이 없고 나거나 사라지지 않고 나오지 않고 함이 없으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도 이러한 법의 공양을 받으셨습니까?”

“선남자여, 여래는 비록 법의 공양을 받아도 법계의 성품과 같이 분별하지 않습니다.”

 

“보녀여, 어떤 것을 법계를 분별하지 않는다 합니까?”

“선남자여, 만약에 법이 다르고 법공양이 다르며, 공양을 받는 자가 다르

 

                                                                              [412 / 1773] 쪽

고 공양을 베푸는 자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는 법계를 분별한다 할 것이며, 법이나 법공양을 받고 베푸는 자를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는 법계를 분별한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만약 그 법계가 분별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법계를 분별한다거나 분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법계의 성품은 비록 분별이 없지만, 여러 중생의 마음이 뒤바뀌는 까닭에 분별을 냅니다. 선남자여, 어떤 그릇이 있기 때문에 그 그릇을 완전하다 하거나 파괴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만약 작업(作業)에 취할 것이 있으면 파괴되었다고 말하고 분별한다고도 말합니다. 선남자여, 마치 그릇은 비록 파괴되어도 그릇 속의 허공은 끝까지 파괴될 수 없는 것처럼, 법계의 성품도 그러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보녀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누구든지 이러한 법을 성취한다면, 이런 사람은 삼천대천세계의 사람과 하늘의 공양을 받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자, 여러 대중들은 제각기 오다라승[烏多羅僧 : 상의(上衣) 혹은 상착의(上着衣)라고 하며, 예송(禮訟)이나 포살(布薩) 등에 사용된다.]을 벗어서 보녀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때 불가설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릇 설할 수 있는 것은 세간(世間)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출세간이며, 설할 수 있는 것은 애욕의 마음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애욕을 여읨이며, 설할 수 있는 것은 세간의 행(行)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출세간의 행입니다. 세존이시여, 출세간의 이치는 지음[作]이 없음이니 지음이 없음은 곧 다툼[諍訟]이 없음이요, 다툼이 없음은 곧 사문(沙門)의 법이요, 사문의 법은 곧 출세간의 법이요, 출세간의 법은 곧 죄와 허물이 없음이요, 죄와 허물이 없음은 곧 취(取)하지 않고 나지 않고 멸하지 않음이요, 나지 않고 멸하

 

                                                                              [413 / 1773] 쪽

지 않음은 곧 출세함이니 출세하는 법은 펴 설할 수 없고 드러내어 보일 수도 없으니, 이런 이치가 있으므로 일체 법은 말할 수 없나이다.”

 

그때 대중 가운데 이름을 승의(勝意)라 하는 한 천자(天子)가 불가설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 법이 설할 수 없는 것이라면 중생이 무엇을 말한다 하겠습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메아리에 말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십니까?”

 

승의 천자가 대답하였다.

“메아리는 다 인연을 따라 있습니다.”

“선남자여, 이 메아리의 인연은 결정코 안에 있는 것입니까, 바깥에 있는 것입니까?”

 

천자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은 결정코 안에 있지도 않고 바깥에 있지도 않습니다.”

 

“천자여, 온갖 중생은 굳이 두 가지 생각[想]을 만들어 설할 수 있지만 모든 법의 성품은 실상 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자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설할 수 없다면, 여래는 어떻게 8만 4천의 법 덩어리[聚]를 연설하셔서 여러 성문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게 하였습니까?”

“천자여, 여래 세존은 진실로 말한 것이 없나니, 말함이 없는 것이 곧 여래입니다. 천자여, 그대는 어떤 것을 여래라 하는지 압니까. 장차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여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또는 부처님은 이 과거·미래·현재, 함이 있고[有爲] 함이 없음[無爲]과 음(陰)·계(界)·입(入), 삼계(三界)의 거둬줌, 이것이 인(因)이고, 이것이 과(果)이고, 이것이 화합이며, 혹은 생각과 생각 아닌 것[想非想]과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것[非想非非想]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야.”

 

                                                                             [414 / 1773] 쪽

“천자여, 만약에 이러한 것들이 여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가히 설할 수 있으며, 만약 설할 수 없다면 어떻게 여래를 말하겠습니까. 세존은 8만 4천의 법 덩어리를 연설하셨지만, 이러한 까닭에 8만 4천의 법 덩어리 이치는 실상 설할 수 없었으며, 성문이 듣고 받은 것도 설할 수 없나니, 설할 수 없음은 곧 바른 이치요, 이치를 설할 수 없음은 곧 진실이니, 만약 설할 수 있다면 정(定)하지 않음이며, 또 설할 수 없음은 증(證)할 수 있지만 만약 설할 수 있다면 증할 수 없음이니, 왜냐하면 뒤바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승의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불가설보살이 하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때 불가설보살이 신통력으로써 비구로 변화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나도 이제 불가설보살의 말씀을 깊이 믿으리니, 왜냐하면 나는 여래와 같고 법계와도 같으며, 여래의 모든 음(陰)은 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음도 그러하여 설할 수 없으며, 여래의 계(界)와 입(入)은 설할 수 없으므로 나의 계와 입도 설할 수 없으며, 여래의 보리나 나의 보리도 다 같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며, 여래는 모든 중생계(衆生界)를 분명히 앎으로 나도 중생계를 분명히 알며, 여래는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므로 나 역시 법바퀴를 굴리며, 여래는 위없는 열반에 들어가므로 나도 그와 같이 열반에 들어가겠습니다.”

 

승의 천자는 말하였다.

“비구여, 그대는 지금 마군의 지음으로 여래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부처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마군의 제자인 줄 알 것이며, ‘내가 평등함으로써 법의 평등함을 관하고, 법이 평등하기 때문에 중생이 평등하고 중생이 평등하다면 여래도 평등하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진실로 마군의 경계를 벗어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 비구가 이 말을 하자, 5백 비구가 번뇌를 끊어 해탈하고, 8천 보살이 인욕(忍辱)을 성취하여 곧 향과 꽃으로써 비구를 공양하였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415 / 1773] 쪽

“여러 선남자는 무슨 까닭으로 이 비구를 공양합니까?”

 

여러 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누군가 이 비구로 변화했습니다.”

“여러 선남자여, 그대들은 이것이 불가설보살의 변화인 줄 알지 못합니까?”

 

여러 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마치 여래가 다시 여래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양을 하는데, 누구를 공양하는 것입니까?”

“여러 선남자여, 이 사람이 바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이 변화한 비구를 공양한다면 이는 곧 불가설보살을 공양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불가설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공양이라도 그 공양을 감당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어떤 슬기로운 사람이 음성과 행동이 없고 글자와 색이 없고, 이름과 지음이 없어서 연설함이 없으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고, 법과 법 아닌 것도 없고, 깨끗함과 더러움도 없다면, 이러한 공양을 마음대로 공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변화한 비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그대 생각에, 이제 내가 그대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구여, 왜냐하면 여래는 항상 일체 법은 다 허깨비 같다고 말씀하셨으며, 여래의 말씀과 같이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능히 여래를 공양한다면, 이는 곧 변화한 이를 공양함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사리불이 불가설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누가 들어가 이렇게 변화하여서 이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거울 속의 모습처럼, 누가 그 속에 있어서 어떤 모습이 나타

 

                                                                                [416 / 1773] 쪽

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 속에 있는 것이 없어도 바로 청정한 4대의 인연으로써 어떤 모습이 나타납니다.”

“대덕이시여, 변화한 이도 이와 같아서 법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에 능히 이 말을 합니다.”

 

“선남자여, 만약 그렇다면, 온갖 중생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연설할 수 없습니까?”

“대덕이시여, 거울의 뒤쪽은 같은 거울이면서 모습은 어찌 나타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거울의 뒤쪽은 4대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시여, 중생도 그와 같아서 법계의 성품을 청정하게 하지 못하는 까닭에 연설할 수 없습니다.”

“선남자여, 그대의 앞뒤 말은 그 이치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항상 말하기를 ‘일체 법계의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어찌 청정하지 않다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아습(阿濕) 비구를 따라서 법의 눈[法眼]이 청정함을 얻었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다만 그의 지도를 받아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법의 눈이 청정할 뿐이었고 실상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나는 허공을 얻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성품은 언제나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이니, 만약에 언제나 청정하다면 어떤 것을 얻는다 하겠습니까. 떠도는 구름[客雲]이 덮이므로 중생은 보지 못하며, 떠도는 구름을 제거시키므로 본다고 하나니, 법계의 성품도 그와 같으므로 나는 실상 법의 눈을 얻지 못하였소.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이러한 따위의 서로 맞지 않는 말을 하여서, 법계의 성품은 혹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다고 하십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그대의 말과 나의 말은 이 부처님의 경계이어서, 우리들이 알아볼 바가 아닙니다.”

 

                                                                               [417 / 1773] 쪽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이 말은 부처님의 경계이므로 우리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다시 법계의 성품은 분별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약 분별이 있다면, 마땅히 법계는 한량없는 것인 줄 알 것입니다.”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법계의 성품은 하나요, 실상 한량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법계의 성품이 하나라면 어찌 이 부처님 경계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 하며, 법계가 하나라면, 무슨 인연으로써 온갖 중생을 여래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덕이시여, 그대는 중생과 여래가 다른 모습[相]이 있는 것을 분별하려고 하십니까?”

“선남자여, 그대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중생과 여래와의 다른 모습을 분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결정코 남이 없음[無生]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남자여, 이른바 법계(法界)가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다시 삿됨[邪]과 바른 것이[正]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삿됨과 바른 것의 덩어리[聚]는 곧 뒤바뀜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법에 나지[生]않는 것과 나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만약에 나지 않는 것이라면 마지막까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의 생각에는 이 나지 않는 법은 분별이 있다고 하십니까?”

“그러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야.”

 

“대덕이시여, 만일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온갖 중생은 여래가 아니라고 말하며, 그런 것이라면 누구는 중생이고 누구는 여래입니까?”

 

                                                                               [418 / 1773] 쪽

“선남자여, 내가 이미 앞서 이러한 이치를 풀이한 것은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이 물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약 그대가 뜻하는 그 말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중생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이니, 왜냐하면 비방하기 때문입니다.”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법은 누구나 비방할 수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비방하거나 받을 수 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이러한 따위의 법을 얻음인 줄 알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큰 역사(力士)는 약하고 용렬한 사람이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법도 그러하나니, 만약 부처님 곁에서 선근을 심지 않은 사람이라면 마침내 의심할 수 없고 받아 지닐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내가 그대가 말한 이치를 이해하는 것처럼 누구든지 이러한 법의 말을 믿고 따른다면, 한량없는 겁에서 단(檀)바라밀·시(尸)바라밀·찬제(羼提)바라밀·비리야(毘梨耶)바라밀·선(禪)바라밀·세간의 반야(般若)바라밀을 행하는 것보다 뛰어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사리불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이 만약 이러한 말을 믿고 이해한다면[信解], 마땅히 이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아승기겁에서 이 같은 6바라밀을 수행한 줄 알 것이며, 만약 이 말을 믿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라면 부처님의 기별(記別)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없으며, 만약 믿고 이해하는 이라면 곧 기별을 받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사리불아,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에 6바라밀을 수행하되, 이러한 말을 믿고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기별을 받지 못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하였다가, 그 뒤에 믿고 이해하고 나서 곧 기별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능히 이 말을 믿고 이해한다면, 곧 기별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임을 알지니라.”

 

불가설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부분[分]으로써 기별을 얻는다 합니까? 만약 과거의

 

                                                                              [419 / 1773] 쪽

부분으로 기별을 받는다면 이는 이치가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멸한[滅] 법이기 때문이며, 미래의 부분으로써 기별을 받는다면 이것도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아직 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현재의 부분으로써 기별을 받는다 하여도 또한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부분이 다 기별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보살이 기별을 받는다고 말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설할 수 없음[不可說]을 믿고, 설할 수 없음을 알고 설할 수 없음을 말하며, 설할 수 없음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설할 수 없음과 색(色)의 두 가지 법이 차별 없고, 수(受)·상(想)·행(行)·식(識)과, 눈 내지 뜻과, 불·법·승 삼보와, 생사·해탈과 법계가 설할 수 없음도 다 이와 같음을 안다면, 이것을 보살이 인욕(忍辱)의 부분을 얻는다 하고, 남이 없는[無生] 부분을 얻는다 하고, 나옴이 없는[無出] 부분을 얻는다 하고, 취함이 없는[無取] 부분을 얻는다 하고, 더러움이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고, 존재[有]가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고, 지음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리니, 이러한 여러 부분을 원만히 성취한다면, 일체 법에서의 두 가지 생각[二想]과 두 가지 마음[二心]과 두 가지 뜻[二意]과 두 가지 부분[二分]과 두 가지 연[二緣]을 내지 않으리라.

 

만약 어떤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한다면, 이것을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하리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지음이 없고, 지음이 없기 때문에 원하여 구함이 없고, 원하여 구함이 없기 때문에 단(斷)과 상(常)이 없으니, 만약 단과 사이 없다면, 이는 곧 중도(中道)니라.

 

중도는 바로 12인연(因緣)이니, 12인연은 짓는 자 없고 구하는 자가 없으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며, 짓는 자 없고 받는 자 없으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며, 남이 없으면서[無生] 나고, 나옴이 없으면서[無出] 나오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느니라. 마치 맹렬한 불이 인연을 따라 생겨서 짓는 자 없고 받는 자 없다가 이 불이 꺼지고 나면 간 곳도 없고 난 곳도 없는 것처럼, 일체 법 또한 그러하여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보살로서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기별을 받는

 

                                                                              [420 / 1773] 쪽

지 알아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매, 8천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이 지혜를 얻고 나서는 허공 7다라수(多羅樹)의 높이에 올라가서, 합장하여 공경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색음(色陰)의 부분과 설할 수 없는 것에서

둘 없는 모습[無二相]을 본다면

이 사람이 곧 평등한 지혜 얻는 것

마치 옛 부처님 얻으심과 같으리라.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음(陰)도

역시 둘이 없다고 보면

설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

옛 부처님처럼 기별을 얻으리라.

만약 입(入)이나 계(界) 등과

일체 법이 두 가지 모양 없음을 관찰한다면

음성도 문자도 짬도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 설할 수 없다네.

설할 수 없음과 3세의 부분은

한 부분[一分]으로 차별이 없고

진실한 성품과 참된 모습 모두 평등하니

이렇게 관찰하면 이치 보살[義菩薩]이라 하네.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과

생사(生死)와 열반(涅槃) 차별이 없고

불·법·승 삼보 역시 둘이 없다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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