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41)-41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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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한 법과 일체 법계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한 부처님 세계와 일체 법계도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음이요, 한 부처님 세계와 모든 부처님 세계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하며, 한 복밭[福田]과 온갖 복밭이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온갖 복밭과 허공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성인이 번뇌를 멀리 여의고 모든 범부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어서 본 성품이 청정하며, 한 중생의 마음과 온갖 중생의 마음이 둘이 아니고 차별 없어서 본 성품이 청정하며, 한 세계와 온갖 세계·한 감관과 온갖 감관·한 중생의 행과 온갖 중생의 행도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법 내지 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머무름이 없다고 말하면 뭇 악함을 짓지 않고 착한 법에 집착하지 않고 교만을 내지 않으며, 얻지 못한 가운데에서 얻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증득하지 못한 가운데에서 증득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생사와 열반에는 지음 없고 느낌 없음을 알며, 모든 번뇌는 근본이 없어서 생사의 두려움 없음을 알며, 계의 계[戒戒]와 마음의 계[心戒]와 지혜의 계[慧戒]를 따라 번뇌를 멀리 여의고, 중생을 버리지 않아 단(檀)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계(戒)를 계라 함이 없어 시(尸)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남[人]을 남이라 함이 없고 또 나가 없어[無我] 찬제(羼提)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지음[作]을 지음이라 함이 없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깨끗이 함을 깨끗이 함이 없어 선(禪)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행을 행이라 함이 없어 반야(般若)바라밀을 깨끗이 함입니다.
다함도 없고 나는 것도 없어 인욕을 얻으며, 기억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기별(記別)을 받으며,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고서 또한 물러나지 않으며, 한 번 나서 도솔천에 태어나지 않으며,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 태(母胎) 중에 처하며, 일체 법에 마음으로 머무름이 없으면서도 나는 이미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7보(步)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나는 이 세간에 더없는 높은 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궁중의 채녀(綵女)와 오락에 처하지 않소.
세간의 기술과 재주를 배우지 않으며, 몸뚱이 탐내는 것을 헐기 위하여 늙은 사람으로 나타내 보이고 수명을 탐내는 것을 헐기 위하여 병들고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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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타내 보이며, 탐욕과 나[我]와 내 것[我所]을 헐기 위하여 죽음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으로 하여금 제석·범천·인간·천상의 몸을 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문(沙門)을 나타내 보이며, 세간에서 벗어나는 훌륭한 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궁성(宮城)을 넘어 나옴은 삼계(三界)의 얽매임에서 벗어남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또 슬픈 과[悲果]를 보이고 앞뒤로 돌아보아서 성내는 마음과 애욕[愛] 없음을 보이며, 32상호로써 그 몸을 장엄함은 중생에게 부처님[良祐]의 복밭을 보이기 때문이며, 마지막 한 올의 머리털[周羅]을 깎고 영락(瓔珞)을 버리고 말 건척(揵陟:칸타카)과 마부 천타(闡陀:찬다카)를 돌려보냄은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읨을 나타내 보임이며, 수염을 남김없이 깎음은 일체 법에 탐착하지 않음을 보임이며, 가사(袈娑)를 받아 입음은 중생을 조복함을 보임이며, 울타가(鬱陀伽)·아라라(阿羅邏)의 곁을 따라 법을 물어 받음은 스스로 훌륭한 체하는 마음을 파괴함을 나타내 보임이며, 6년 동안 고행함은 외도를 부수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떳떳이 받음은 세상 법에 따름을 보임이며, 마른 풀을 숨김없이 받음은 만족함을 아는 것을 보임이며, 풀 자리에 앉음은 교만함이 없음을 보임이며, 모든 하늘·용·귀신의 찬탄과 높임을 받음은 공덕의 장엄한 과보(果報)를 나타내 보임이며, 마군의 원수를 항복시킴은 용맹한 힘을 보임이며,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킴은 기왕의 복력(福力)을 보임이며, 온 땅이 진동함은 은혜 갚음을 보이기 때문이며, 위없는 보리의 도를 얻음은 일체의 법 모양[法相]을 분명히 하는 것을 나타내 보임입니다.
모든 법의 평등함을 관함은 부처라고 이름이요, 부처님의 지혜는 누구나 이길 이가 없나니, 이런 이치를 지니므로 여래라 하며, 착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분명히 알아봄으로써 살바야(薩婆若:온갖 지혜)라 하며, 진실하게 말하는 까닭에 하늘과 사람의 스승[天人師]이라 하며, 모든 법을 내지 않으므로 법바퀴를 굴린[轉法輪]다 하며, 굴림도 말도 없기 때문에 굴리는 말[轉說]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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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며, 들어감이 없는 들어감을 법의 들어감[法入]이라 합니다.
문 없는 문을 법문(法門)이라 하고, 지음 없는 지음을 법의 지음[法作]이라 하고, 선 없는 선을 바른 선[正禪]이라 하고, 벗어남이 없는 벗어남을 바른 해탈[正解脫]이라 함이요, 일체 법의 성품은 매임이 없고 얽힘도 없나니, 이러한 멸한[滅] 법은 곧 과거이며, 나지 않는 것이므로 이를 부처님 출세라 하고 출세 없는 출세를 부처님의 출세라 함이니, 만약 보살이 이렇게 배운다면, 이를 말하되 여러 부처님 여래를 속이지 않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불가설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능히 여래의 출세를 잘 분별하였도다. 만약에 이러한 부처님의 출세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한 법의 조그마한 모양[相]도 깨닫지 않음이니 깨닫지 않는다면 능히 여래의 출세를 분명히 아느니라. 왜냐하면 출세 없는 출세가 곧 부처님의 출세이므로 지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지음이 없으면 받음[受]이 없고, 받음이 없으면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으면 다툴 것이 없고 볼 것이 없고 들어감이 없고 굴림이 없고 나는 것이 없고 멸하는 것이 없고 보리도 없으며, 아첨 없고 속임 없고 마음·뜻·식별 없고 눈이 없고 두 가지 없으며, 눈의 지어감이나 내지 뜻의 지어감도 없고 설함 없고 가르침 없나니 이것을 여래의 출세라 하느니라.”
그때 무외(無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은 여래의 출세와 불가설보살이 말하는 부처님의 출세를 누가 믿겠습니까?”
그때 보녀(寶女)가 무외보살에게 말하였다.
“법형(法兄)이시여, 여래의 출세는 헤아릴 수 없으며, 장엄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려운지라, 만약에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마음이 진정하지 않고 허위와 아첨과 기뻐하고 미워함과 질투와 인색함으로써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를 알고도 갚지 않으며, 3계(戒)가 청정하지 못하여 삼계(三界)에 탐착하며, 3구(垢)에 더럽히어 삼보(三寶)를 공경하지 않고 3해탈을 닦지 않으며, 거칠고 흉측한 욕설로써 이치 없는 것을 말하기 좋아하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며, 이끗[利養]을 위하여 겉으로 세행(細行)을 나타내며, 자기를 속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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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속이어 공양을 탐내며, 여러 감관을 조복하지 않고서 즐거이 성문·벽지불의 승을 구하며, 마음이 진실하지 않아서 들음이 적고 어리석습니다.
염(念)함이 없이 망령을 즐겨 방편을 모르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마음을 닦지 않고서 항상 마군의 세계에 다니며, 사람·수명·장정에 탐착하여 인과(因果) 없고 업행의 연[業行緣] 없음을 말하며, 그 마음이 방일하여서 나쁜 행동을 즐거워하며, 두타(頭陀)를 버리고 즐거이 세상 법을 행하며, 스스로 자기를 찬탄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으며, 몸·목숨·색 따위의 다섯 가지 법을 탐내고 수면(睡眠)을 즐기고 세상 법 듣기를 좋아하여 시절(時節)을 모르며, 나쁜 벗에 친근하여 4섭법(攝法)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법형이시여, 이런 사람은 부처님 출세를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출세를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그대는 이제 이미 이러한 나쁜 법을 멀리 여의었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저는 이미 이러한 나쁜 법을 멀리 여의었나이다. 어떤 것을 멀리 여의어서 탐내지 않는 짬[際]과 같이 하고 탐내지 않음은 마치 탐내는 짬과 같이 하며, 어떤 것을 탐내는 짬은 진실한 짬과 같이 하고 진실한 짬은 아견(我見)의 짬과 같이 하며, 어떤 것을 아견의 짬은 과거의 짬과 같이 하고 과거는 무명(無明)의 짬과 같이 하며, 어떤 것을 무명은 탐욕·애욕의 짬과 같이 하고 무명과 탐욕·애욕의 짬은 지혜·해탈의 짬과 같이 하며, 어떤 것을 지혜와 해탈의 짬은 마치 허깨비의 짬과 같이 하리까?”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불가설보살의 말함과 같이 그대는 능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설할 수 없는 것이란 마침내 설할 것이 없음이요, 설한 것이라면 설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이니, 만약에 설할 수 없는 것을 설함이 있다면 어떤 것을 설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곧 이 말은 설할 수 없음으로써 실상 설함이 없다고 대답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수 없음이라고 이름이요, 만약에 설할 수 없으므로 실상 설함이 없다면 제가 이제 무엇을 들었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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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들음이 없으면 무엇을 믿겠습니까?”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이 설할 수 없는 것이면서 실상 말함이 있는 것이니, 이제 증거 삼아 알 수 있는 것이 이른바 대중이요, 온갖 대중은 이 설할 수 없는 것의 연설함을 들은 것입니다.”
보녀가 말하였다.
“법형이시여, 이 대중 가운데 만약 ‘나는 설할 수 없는 것의 설함을 들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허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설할 수 없음은 실상 설함이 없는데, 어찌 대중들이 들었다고 말하겠습니까?”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그대가 이제 부처님 말씀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법왕이시여, 만약 세간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부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것은 바로 탐욕이며 성냄이며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탐욕과 성냄과 원망이 없음으로써 믿음이 없나니, 만약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곧 증(證)이 없을 것입니다.
법형이시여, 공(空)함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은 진실로 증(證)이 없나니, 그러므로 여래도 증이 없습니다. 법형이시여, 법계의 진실한 성품은 지음이 없고 함이 없으며 허공 따위의 법도 진실히 증이 없음이니, 그러므로 여래도 또한 증이 없나이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무엇을 증이라 합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법형이시여, 만약에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을 증한다 합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이 사리불과 목건련(目揵連) 같은 이는 증신(證信)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과연 증신합니다. 왜냐하면 성문인이 계(戒)는 가[邊]와 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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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際]이 있고 여래의 계는 가와 짬이 없으며, 선정·지혜·해탈의 지견(知見)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때 사리불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보녀여, 성문도 3해탈문이 있고 여래도 또한 3해탈문이 있거늘, 그대가 이제 무슨 까닭으로 성문인은 증신한다 하고 여래는 증신하지 않는다 합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대덕이시여, 아뇩달지(阿耨達池)의 여덟 가지 맛[八味]을 가진 물이 있어 염부제(閻浮提)에 뿌리고, 뿌리고 나면 온갖 초목과 총림(叢林)이 다 자라나게 되나니, 이러한 뿌리는 물에 차별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차별이 없습니다, 보녀여.”
“대덕이시여, 아뇩달의 못 물은 본래 한 가지 맛이지만 덕 있는 사람이 쓰면 갖가지 미묘한 단 맛[甘味]이 있고, 박덕한 사람이 쓰면 그 맛이 한결 추악하여 아름답지 못하나니, 대덕이시여, 여래와 성문의 3해탈문도 이와 같나이다. 그러므로 여래와 성문인은 차별이 있어도 법계의 성품은 진실로 차별이 없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보녀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보녀여. 능히 이 이치를 잘 분별하여 연설하였도다.”
보녀가 이 법을 말할 때에 3만 2천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보녀가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마치 큰 바다의 물이 한 가지 맛이면서 여러 보배가 많이 있고 또 값싼 수정(水精) 구슬도 있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비록 평등하다 하지만 부처님이 배우면 값비싼 보배를 얻고 성문이 배우면 값싼 보배를 얻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미산(須彌山) 위에는 여러 천인(天人)들이 쾌락을 많이 받기도 하고, 또 약간의 쾌락을 받기도 하지만 수미산은 실상 차별이 없나니, 법계도 그와 같아서 비록 차별은 없으나 여래가 처(處)하면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고 성문이 처하면 한량 있는 즐거움을 받습니다.
대덕이시여, 전륜왕(轉輪王)이 천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다 존위(尊位)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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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성문인도 그러하여 비록 지혜가 있어도 부처라고 이름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연등 그릇[然燈器]이 금(金)이라면 누런색이요, 동(銅)이라면 붉은색이요, 색은 비록 다를지라도 등(燈)만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부처님이 불을 켜면 지혜의 광명이 그지없고 성문이 켜면 지혜의 광명이 끝이 있지만, 그러나 법계의 성품은 차별이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전륜왕이 성읍(城邑)에 들어올 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박복한 사람이 성읍에 들어올 때에는 가까이 친한 사람까지도 모르는 것처럼, 여래 세존께서 법계에 들 때도 이와 같아서 모든 하늘과 사람이 다 깨달아 알고 온갖 외도(外道)와 이학(異學)을 막고 덮어서 여러 성문·벽지불 등에 뛰어나지만, 성문인이 법계에 들 때에는 같은 성문인(聲聞人)들도 오히려 깨달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대덕이시여, 마치 산간(山間)에 어떤 사자가 부르짖는 소리나 구지라(瞿枳羅)·가릉빙가(迦陵頻伽)·공작(孔雀) 따위의 새 소리나 사람 소리, 소·말·나귀 소리는 그 메아리가 소리를 쫓아 나는데, 이 메아리는 실상 차별이 없지만 소리에 따라 나기 때문에 메아리가 다른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3해탈도 이와 같아서 여래는 능히 온갖 마군의 무리를 무너뜨리고, 모든 외도와 사견(邪見)에 뛰어나고, 온갖 중생의 심념(心念)을 알아 중생의 갖가지 행을 알고, 성문·벽지불 등을 조복하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음성을 내며, 성문인은 비록 법계는 같이하여도 이러한 일은 같이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사탕수수[甘蔗]가 그 맛은 한 가지라 할지라도 흰 석청 꿀[白石蜜]을 내는 것은 복덕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검은 석청 꿀을 내는 것은 박복한 사람을 위함이니, 법계도 그러하여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의 단 이슬[甘露] 맛을 얻어 성문과 벽지불의 맛을 섞지 않고, 성문은 다만 끝이 있는 지혜 맛을 얻을 뿐입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큰 바다가 많이 있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또 작은 하천이 있어 조그마한 중생을 이익 되게 함과 같이 법계도 그러합니다.
대덕이시여, 해와 달과 별이 함께 허공에 떠 있을 때, 별의 밝음은 해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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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허공의 성품은 실상 차별이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여래와 성문이 비록 함께 놀고 머물지라도 지혜의 광명은 실상 같지 않고 법계의 성품도 차별이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두 사람이 한 가지 업을 같이 배우는데, 한 사람은 기능이 교묘하여 많은 이익을 얻고, 다른 한 사람은 거칠고 졸렬하여 이익 얻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법계도 그러합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한 묶음의 꽃은 차별이 없지만 방편이 교묘하기 때문에 비싼 옷을 만들고, 방편이 졸렬하기 때문에 값싼 옷을 만드는 것처럼, 법계의 한 가지 성품도 그러하여 여래는 지혜의 방편과 대자 대비한 업의 인연을 지님으로써 크게 고요함과 훌륭한 지혜를 얻고, 성문인은 졸렬한 지혜를 얻어 청정하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큰 바다 속에 나후라(羅睺羅)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있고 또 그 나머지 중생의 종류가 있으나, 오직 아수라왕만이 그 바다 밑을 다닐 수 있고 다른 이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부처님만이 필경의 지혜를 얻을 뿐 성문은 얻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온 땅에 천엽(千葉)꽃과 칠엽(七葉)꽃이 피었는데, 모든 천상·세간 사람들이 천엽 꽃을 보고 다 즐거운 마음을 내는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법계도 그러하여 모든 천상·세간 사람들이 부처님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애락(愛樂)을 내지만 성문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여래의 지혜는 한량없고 그지없어도 성문의 지혜는 한량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계의 성품은 실상 차별이 없습니다.”
무외보살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이 불가설 보살마하살은 결정코 그대의 스승이어서 능히 이 미묘한 법으로 그대를 조복하였습니다.”
보녀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불가설보살은 조복하는 일이 없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보살은 나와 남, 이것과 저것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조복한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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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만약에 마군의 경계와 자기의 경계를 깨닫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모든 법을 알아보아서 나[我]와 내 것[我所]을 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스스로 고행(苦行)을 부지런히 닦고 또 다른 사람을 권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고서도 마음에 우월한 생각을 내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여러 보살과 같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생사의 큰 일에 있어 곧 해탈하게 되어도 열반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리니, 이것을 으뜸가는 진리라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보녀는 진실로 저 불가설보살을 따라 조복을 받았으며, 조복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때 보녀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실상 조복이 없나니, 만약 조복한다면 이것은 곧 큰 슬픔[大悲]이요, 큰 슬픔으로써 조복한다면 이 보살이 아닐 것이며, 성문인(聲聞人)이라면 반드시 조복하리니, 왜냐하면 큰 슬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암라과(菴羅果)가 나무 위에서 완전히 익어 그 맛이 감미로우면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지만, 만일 썩어서 그 맛이 쓰면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것처럼,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서 큰 슬픔을 따라 나기 때문에 스스로 조복하고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무외보살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능히 이 불가설보살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제가 어찌 은혜를 알고서 은혜를 갚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중생이라도 보리도(菩提道)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보녀여, 어떤 것을 보리도를 닦는다 합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리행(菩提行)이라 하는 서른두 가지 업이 있으니, 그 서른두 가지란 마침내 보리의 마음을 물러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성문·벽지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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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탐착하지 않음이며, 지심으로 수행하여 의심하거나 그릇됨이 없고 모든 수행에 장애가 없음이며, 중생을 위하여 행하되 마음에 싫어하거나 후회함이 없으며, 나고 죽음에서 행하여도 탐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여의며,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다 교화하고 조복하며, 4섭법(攝法)으로 섭취하며, 대중을 위해 즐거이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으며, 괴로운 중생을 위하여 크게 슬퍼함을 수행하며, 설한 것과 같이 행하고 정진하기를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모든 중생을 속이지 않으며, 보리를 돕기 위해 장엄을 닦으며, 일체 세간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세간의 이끗[利養]에 탐착하지 않으며, 몸을 위해 뭇 악(惡)을 짓지 않으며, 수명을 탐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조복하여 세 가지 계율을 청정히 하며, 상호(相好)의 업을 장엄하고 닦으며, 항상 출가하기를 생각하여 과거의 착한 업을 갚으며, 언제나 고요함을 즐기고 많이 듣는 것[多聞]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로써 자기 몸과 남의 몸을 이익 되게 하며, 모든 설법함에는 먹이의 생각[食想]이 없으며, 능히 온갖 것을 버리되[捨]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남을 위해 부지런히 인욕을 닦으며, 국토를 청정케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것입니다.
방편을 알기 위해 일체 지혜를 구하며, 모든 번뇌의 습기를 영원히 끊으며, 신통을 얻기 위해 바른 법을 옹호해 가지며, 착한 벗을 친근하여 착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마군의 업을 멀리 여의어 법답게 머물며, 나고 멸함[生滅]이 없는 미묘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약에 이러한 법을 행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은혜를 갚지 못하고 또 여래의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반드시 죽고 다스리지 못하고, 필경에는 은혜를 알지도 못하고 은혜를 갚지도 못하나니, 한 사람은 성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연각입니다.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은 함정에 떨어져 자기나 남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문과 연각도 이와 같아서 해탈의 함정에 떨어져 자기나 남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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