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37)-37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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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비록 지혜를 말하여도
지혜는 입 소리[口聲]에 머물지 않나니
입 소리 본디 소리 없음 안다면
이것이 지혜의 진실한 성품이라네.
법은 어느 쪽에나 머묾 없고
어떤 중간에도 머물지 않나니
일체 법 성품 머무는 곳 없다면
이것이 위없는 큰 지혜이며,
문자 없고 수행도 없으며
모양 없고 성품도 없으며
가지고 버리는 두 모양도 없으면
이것을 위없는 큰 지혜라 하네.
만약에 모든 바라밀 성품
평등하기 허공 같다 관찰한다면
이것이 위없는 평등이리니
일체 법의 평등을 관찰하며,
일체 법 평등하게 관찰하고서
모든 중생 또한 평등하게 관하며
부처님까지 평등하게 관한다면
그 지혜 얻음 더할 나위 없으리.
만약에 지혜 있는 여러 보살이
이러한 위없는 법 관찰한다면
훌륭한 보리과(菩提果) 얻기
옛 부처님이 얻음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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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보살이 이 게송을 말할 때에 1만 2천 나유타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6만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때 연화대에 있던 보살들이 모두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묘한 연꽃으로 무언보살에게 공양하고 말하였다.
“저희들이 은혜를 알았으니, 이제 은혜를 갚겠습니다.”
때마침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보살들은 무슨 까닭에 은혜를 알았으니 은혜를 갚겠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러한 보살들은 다 무언보살로 인하여 보리심을 낸지라, 그러므로 ‘은혜를 알았으니 은혜를 갚겠습니다’라고 하느니라. 이제 또 무언보살 때문에 이 경전도 들을 수 있으며 또 나에게도 와서 보고 공양하는 것이니라.”
이때 무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의심이 있어 여쭙고자 하오니, 원컨대 여래께옵서는 가엾이 여겨 들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마음대로 물어보라. 그대를 위하여 말해주리라.”
이때 또 사리불이 무언보살에게 말하였다.
“거룩한 이여, 만약에 말이 없다면 어떻게 물을 수 있겠소?”
“대덕(大德)이여, 일체 법은 다 말이 없고 글자 없고 이야기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온갖 중생의 성품이 말이 없는 까닭이며, 각(覺)과 관(觀)을 지님으로써 소리가 나는 것이니, 만약에 각과 관을 지니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문자가 있다 하겠습니까.
대덕이여, 각과 관에는 글자 없고 소리도 없으며, 각과 관을 떠나서도 또한 소리와 글자가 없나니, 각과 관의 그 자체는 본디 각과 관이 아니므로 내가 문자를 짓는 것도 각과 관이 아니니, 나는 각과 관을 인하여 큰 공덕을 지녔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한다면 이것은 12인연이요, 인연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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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나는 것은 곧 공(空)하고 고요하여 일정한 모양[定相]이 없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진실로 아는 이 있다면 이는 진실로 법의 성품을 안다 할 것입니다.
대덕이여, 일체 법은 다 인연을 따라 화합하지만, 그 화합하는 가운데에는 실지로 조작함과 내고 나는 것도 없나니, 그러므로 일체 법은 나는 것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마음도 없으며, 각과 관도 없으며, 각과 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까닭은 뒤바뀐 인연 때문에 나고 멸함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약에 묻고 듣고 해설하는 이 있어도 화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아, 한 모양(相)이면서도 모양이 없습니다.
대덕이여, 대저 묻는 것은 크게 슬픈 마음이라, 나는 이 큰 슬픔이 있는 까닭에 부처님께 묻는 것이니, 이러한 물음은 곧 슬픔으로 묻는 것이요 입으로 묻는 것이 아닙니다.
대저 입으로 묻는다 함은 성문의 물음이니, 성문은 소리에 집착하므로 성문이라 하며, 보살은 널리 사랑하므로 입으로 물음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법의 성품이 일정함[定性]이 없을진대, 중생의 성품 또한 일정함이 없으리니, 만약 모든 중생이 일정한 성이 없다면 보살이 누구를 위하여 슬픈 마음을 닦겠습니까?”
“대덕이여, 만약 모든 중생이 성품이 있다면 보살들이 슬픔을 닦지 못할 것입니다. 온갖 중생은 실제 중생이 아닌데 뒤바뀐 때문에 중생이란 생각을 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슬픈 마음을 닦음은 뒤바뀜을 헐기 위해서 나 없음을 펴 말합니다.
대덕이여, 보살마하살이 온갖 존재를 헐기 위해 설법하지 않으며, 나와 수명과 장정을 헐기 위해 자비를 닦아 바른 법을 연설함이 아니요, 진실한 법계를 알기 위해서 설법하나니, 진실한 법계란 곧 공(空)삼매며 무상(無相)이며 무원(無願)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나도 이와 같이 진실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서로 물은 것은 그대의 지혜를 시험한 것뿐이며, 불법을 더욱 자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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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하여 물은 것이며,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물어본 것입니다.”
이때 무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경전에 말씀함같이 소리를 듣는 것과 잘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 인연이 능히 바른 소견[正見]을 낸다 하니, 원컨대 가엾이 여겨 모든 보살을 위하여 널리 이야기하여 주소서. 어찌하여 소리 듣고 잘 생각하는 데서 바른 소견을 낸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심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하여 분명하게 해설하리라.
선남자야, 보리심을 위하여 법을 듣는 것이 소리 들음이요, 지심으로 보리심을 염함이 잘 생각함[善思惟]이요, 보리심을 관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또 보리도를 위해서 법을 듣는 것이 소리 들음이요, 도를 멀리 여의지 않음이 곧 잘 생각함이요, 법답게 머무는 것을 올바른 소견이라 하며, 마음을 조복하기 위하여 법을 듣는 것은 소리 들음이요, 나쁜 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은 잘 생각함이요, 착한 마음을 얻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은혜로운 보시를 듣기 위한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능히 온갖 것을 버림을 잘 생각한다 하고, 과보(果報)를 구하지 않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계율의 덩어리[戒聚]를 듣기 위함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지심으로 계를 잘 보호함을 잘 생각한다 하고,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법의 지혜[法忍]을 듣기 위함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매 맞고 꾸중 듣더라도 갚지 않는 것을 잘 생각한다 하고,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정신을 얻기 위함은 소리 들음이요, 게으름을 헐어버림은 잘 생각함이요, 보리에 나아가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삼매를 듣기 위함은 소리 들음이요, 능히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함은 잘 생각함이요,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지혜 덩어리[智聚]를 듣기 위함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듣고는 바르게 관함을 잘 생각함이라 하고,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4섭법을 듣기 위함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중생을 거두어 주는 것을 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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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한다 하고, 거두는 법을 알고서 취하거나 조작함이 없으며 공하여 존재함이 없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5통법(通法)을 듣기 위함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얻는 것을 잘 생각함이라 하고,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4무애(無碍)를 들음은 소리 들음이요, 걸림 없음을 닦음은 잘 생각함이요,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을 올바른 소견이라 하며, 4의법(依法)을 들음은 소리 들음이요, 네 가지 의지하는 법을 닦음은 잘 생각함이요, 보리에 나아가고자 함은 바른 소견이이니라. 37품(品)을 듣는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만약 염(念)을 말하면 4념처(念處)요, 버리고 없앰을 말하면 4정근처(正勤處)요, 선정 덩어리[定聚]를 말하면 4여의(如意)요, 두려움이 없음을 말하면 6근처(根處)요, 헐 수 없음을 말하면 10력처(力處)요, 번뇌 없앰을 말하면 7각분(覺分)이요, 참다운 알음의 법을 말하면 8정도(正道)니, 이것이 잘 생각함이다.
단(斷)과 상(常)에 집착하지 않고 이러한 도로써 보리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4제(諦)를 들음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괴로움을 알고 원인[集]을 여의며 멸함[滅]을 증득하고 멸함에 이르는 길[道]을 닦음은 잘 생각함이요, 이러한 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법을 보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3해탈(解脫)을 듣는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공(空)삼매를 믿고 무상(無相)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원(無願)을 의심치 않는 것은 잘 생각함이요, 이 같은 법으로 보리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공삼매를 닦아 마음의 밝은 소견을 조복하고 무상을 닦아서 각과 관을 버리고, 무원을 닦아서 모든 것을 구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발심하는 법을 듣는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보리도를 닦는 것을 잘 생각한다 하고, 그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을 얻음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공양하고 친근함을 잘 생각한다 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법계를 듣는 것을 소리 듣는다 하고, 법계를 관함을 잘 생각한다 하고, 법답게 머무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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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세존을 뵈옵는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모든 보살을 염함을 잘 생각한다 하고, 필경의 도를 얻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8만 4천 법 덩어리[法聚]를 듣는 것을 소리 들음이라 하고, 중생을 이러한 행 가운데 보살피는 것을 잘 생각한다 하고, 8만 4천의 온갖 감관[根]을 조복하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무슨 까닭으로 능히 착한 법을 내는 것을 이에 소리 들음이라 하고, 듣고는 모든 착한 인연을 여의지 않음을 잘 생각한다 하고, 이러한 법으로 보리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냐.
선남자야, 이른바 잘 생각함과 바른 소견·두 가지 법이 다른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법이 평등하여 두 가지가 없음은 곧 잘 생각함이요, 능히 평등하게 관함은 곧 바른 소견이며,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은 곧 바른 소견이며, 취하거나 버림이 없는 것은 바른 소견이며, 조작도 없고 조작하는 이도 없음은 바른 소견이며, 각과 관이 없는 것은 바른 소견이며, 염과 염하는 곳이 없는 것은 바른 소견이며, 조작하거나 생각함이 없는 것은 바른 소견이며, 하나도 없고 둘도 없는 것은 곧 바른 소견이니라.
일문(一門)·일미(一味)·1승(乘)·일행(一行)이 그 성품은 다 한 가지이므로, 온갖 번뇌와 교만 등의 얽힘이 없으며, 듣고 말하는 것이나 더럽고 깨끗함이 없어 법계의 성품은 분별할 수 없느니라. 그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3세가 평등하여 나와 내 것이 없으며, 중생(衆生)과 수명(壽命)과 장부[士夫]도 없으며, 글자와 소리도 없어 펴 설할 수도 없으며, 알 수 없고 보지 아니하여 일체 법 가운데 만족한 마음을 내며, 온갖 모양을 멀리 여의어 모든 기뻐하는 각(覺)과 관(觀)과 집[屋宅]을 버리며, 내지 부처님을 찬탄하여도 부처님 모양은 내지 않느니라.
만약 선정에 들 때 이와 같은 깊고 깊은 법계를 본다면 이것을 잘 생각한다 함이며, 선정에서 깨어나 중생을 위하여 이 같은 깊고 깊은 법계를 자세히 연설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 십천 보살이 바른 소견을 얻었다.
이때 사리불이 무언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뉘에게 법을 듣고 바른 소견을 얻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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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만약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보리심을 얻지 아니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따라 바른 소견을 얻으리니, 3세의 평등함과 일체 법의 평등을 관하여 일체 법에 각과 관을 내지 아니하며, 그 마음이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에 머물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의 모양을 멀리 여의어도 중생을 위하여 모든 괴로운 고행을 닦으며, 또 중생의 모양과 마음 모양[心相]의 두 가지 모양을 멀리 여의며, 진실한 성품의 존재 없음과 존재 있음인 두 가지[二節]를 멀리 여의며, 모든 부처님의 깊고 깊은 법을 통달하여도 스스로 내가 안다고 말하거나 교만을 내지 않습니다.
대덕이여, 내가 이 사람에게 바른 법을 들었다 해도 이 사람은 또한 한 글자도 펴 말함이 없으면서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즐겨 듣도록 하며, 법의 진실함을 가히 설할 수 없음을 알되 중생을 위해서 펴 말하며, 세간에 나가더라도 세간에 더럽히지 아니하며, 마지막으로 존재 있고 없음을 닦아서, 닦을 것과 닦지 아니할 것을 압니다.
내가 이러한 사람을 따라 바른 법 닦음을 받으리니, 법성에 머물면서 중생의 성품에 분별을 내지 않으며, 중생의 성품과 법의 성품과 공의 성품이 다 평등하다고 관합니다.
내가 이러한 사람에게 법을 들으리니, 이 사람은 보리수 아래 앉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행하지 않고 자지 않고 눕지 않고 졸지 않고 깨지 않고서도 보리를 얻으며, 보리를 얻고도 마침내 보리를 얻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온갖 중생도 보리를 얻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얻음이 없어야 이에 얻음이 되므로 얻은 모양이 없습니다.
대덕이여, 대저 바른 법이란, 광명이 있는 것이 아니니 광명 없는 것이 곧 처소가 없는 것이요, 처소 없는 것이 곧 몸 없는 것이며, 몸 없는 것이 곧 두려움 없는 것이요, 두려움 없는 것이 곧 내지[出] 않는 것이며, 내지 않는 것이 곧 나지[生] 않는 것이요, 나지 않는 것이 곧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곧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 변하지 않는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이 곧 밝고 어둠이 없는 것이며, 밝고 어둠 없는 것이 곧 각과 관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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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요, 각과 관 없는 것이 곧 세상 없는 것이며, 세상 없는 것이 곧 그릇[器]이 없는 것이요, 그릇 없는 것이 곧 탐욕 없는 것이며, 탐욕 없는 것이 곧 성품이 청정한 것이요, 성품이 청정한 것은 번뇌와 화합하지 않는 것이며, 번뇌와 화합하지 않는 것이 곧 뒤바뀌지 않는 것이요, 뒤바뀌지 않는 것이 곧 평등한 것이며, 평등한 것이 곧 진실한 것이요, 진실한 것이 곧 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것이며, 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것을 인연을 따른다 하고, 인연을 따르는 것이 곧 가고 오지 않는 것이요, 가고 오지 않는 것이 곧 경계 없는 것이며, 경계 없는 것이 곧 글귀 없는 것이요, 글귀 없는 것이 곧 미치지 않는 것이며, 미치지 않는 것이 곧 들어감 없는 것이요, 들어감 없는 것이 곧 조작 없는 것이며, 조작 없음이 곧 머무름 없는 것이요, 머무름 없는 것이 곧 글자 없는 것이며, 글자 없는 것이 모양 없는 것이요, 모양 없는 것이 곧 마음·뜻·식별·글귀를 벗어나는 것이며, 마음·뜻·식별을 벗어나는 것이 곧 고요한 것이며, 고요한 것이 곧 열뇌(熱惱)가 없는 것이요, 열뇌 없는 것이 곧 성냄 없는 것이며, 성냄 없는 것이 곧 필경이요, 필경이 곧 존재 없는 것이며, 존재 없는 것이 곧 열반이니, 이것을 법이라 합니다.
대덕이여, 이것이 바른 법이며, 법을 말하는 것이며, 법을 듣는 것이며, 바른 소견입니다.
대덕이여, 대저 바른 소견이라는 것은 몸을 보지 못하나니, 몸의 행(行)은 곧 병의 행[病行]이므로 소견을 보지 아니하여 탐내고 집착함을 내지 않으며,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음을 부처님 법이라 하며, 성인의 소견이라 하며, 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대덕이여, 또 무명과 애욕과 해탈을 차별 없이 관함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이같이 보고는 집착하지 않고 취하지 않음을 성인의 소견이라 합니다.
대덕이여,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공함과 무상(無上)과 무원(無願)이 평등하여 두 가지가 없는 것이라 관하며, 모양을 보지 아니하고 모양 없는 모양 보는 것을 성인의 소견이라 하며, 일체 법을 하나와 둘로 보지 아니함을 성인의 소견․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대덕이여, 만약 또 나와 중생의 평등함을 관한다면, 중생이 평등하므로 여래도 평등하며, 여래가 평등하므로 불법도 평등하며, 불법이 평등하므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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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무리[聖衆]도 평등하며, 성인의 무리가 평등하므로 큰 자애[大慈]도 평등하며, 큰 자비가 평등하므로 허공까지도 평등하여 머물지 않음에 머무나니, 이와 같이 평등함을 성인의 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대덕(大德)이여, 일체 법의 소리도 이와 같나니, 법의 소리란 곧 성인의 소견이며 바른 소견입니다.
대덕이여, 성인의 소견과 바른 소견이란 것은 나는 것[生出]도 없나니, 만약 나는 것이 없다면 누구를 따라 법을 듣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이해한 것이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면 일체 법에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덕이여, 그러하고 그러합니다. 일체 법은 진실로 말이 없습니다.”
“선남자여, 만약 여래의 공덕 성취를 말한다면 이 말 가운데는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대덕이여, 만약 이러한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큰 허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공덕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니, 여래란 복도 없고 죄도 없는 까닭에 여래라 합니다. 만약에 여래가 공덕 있는 이라고 관한다면 이것은 큰 욕심이니, 큰 욕심을 탐내는 것이 곧 허물입니다.”
"선남자여, 어찌하여야 허물이 없다 합니까?”
“대덕이여, 제5대(大)와 제7정(情)과 제19계(界)처럼 드나듦이 없으며, 나고 멸함이 없으며, 조작함이 없으며, 마음·뜻·식별도 없어야 허물이 없다 하리니, 만약 멀리 버릴 것을 알고 닦아 증득한다면 이것은 허물이라 하며, 모든 경계에 존재함을 허물이라 하리니, 만약 모든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허물이 없다 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네가 말한 것이 바로 착한 말이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 1만 2천 보살이 무생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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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보살마하살이 믿음의 힘·정진의 힘·염의 힘·지혜의 힘의 네 가지 힘이 있다 하셨으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넓게 분별하여 해설해 주옵소서. 어떠한 힘을 보살의 네 가지 힘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심으로 자세히 들어라. 이제 내가 말하리라.
만약 보살이 부처님의 바른 법을 깊이 믿고 수순해 해설하며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믿음의 힘이라 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법을 구하되 쉬지 않고 의심내지 않는다면 정진의 힘이라 하며, 만약 보살이 착한 법을 구하고는 잃지 않고 보리심을 염하여 선근이 보리에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를 염의 힘이라 하며, 만약 보살이 안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말을 따르지 않아 법의 성품을 분명히 안다면 이를 지혜의 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또 신심을 갖고 성인을 친근한다면 믿음의 힘이라 하며, 만약에 이러한 성인을 공양한다면 정진의 힘이라 하며, 지심으로 성인의 말씀을 듣는다면 염의 힘이라 하며, 성인의 법을 듣고는 법답게 머문다면 지혜의 힘이라 하느니라.
다시 선남자야, 업의 과보를 믿는다면 믿음의 힘이라 하며, 이미 믿고 모든 나쁜 것을 짓지 않으면 정진의 힘이라 하며, 과거의 좋은 업을 현재에 더욱 키움을 염의 힘이라 하며, 모든 법이 원인이 있고 결과 있음을 안다면 지혜의 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마음의 법[心法]이 설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 이것을 믿음의 힘이라 하며, 이로 인하여 능히 마음을 조복하면 이것을 정진의 힘이라 하며, 능히 마음을 지극히 하면 이것을 염의 힘이라 하며, 법을 보되 허깨비와 같다고 하면 이것을 지혜의 힘이라 하느니라.
다시 선남자야, 만약 법이 공한 것이라고 보면 이것을 믿음의 힘이라 하며, 삿된 소견을 끊으면 이것을 정진의 힘이라 하며, 안과 밖이 다 공하고 고요하다고 보아서 두려움을 내지 않으면 이것을 염의 힘이라 하며, 제일의공(第一義空)을 능히 관하면 이것을 지혜의 힘이라 하느니라.
다시 선남자야, 또 능히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관하면 이것을 믿음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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