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36)-36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51 / 1773] 쪽
대방등대집경 제12권
북량 천축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6. 무언보살품(無言菩薩品)
그때 세존께서 짐짓 욕계·색계의 중간 큰 보배 궁전에 계시면서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셨다.
그때 왕사성 사자(師子) 장군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났는데, 그때 허공에서 여러 하늘이 말하기를 ‘동자여, 마땅히 법을 염하고 법을 사유(思惟)하며, 항상 말할 적에는 세간의 일은 말하지 말고 세간을 벗어난 법을 분별하여 말할 것이며, 항상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고 말을 적게 하며, 세상일에 온갖 각(覺)과 관(觀)을 일으키지 말며, 이치[義]에 의지하고 문자[文]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자가 이 말을 듣고 다시 울지 아니하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없었으며, 7일이 지나자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여 사람을 보고 기뻐하며 눈을 감지 않았다.
이때 한 사람이 그의 부모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는 상서롭지 못하니 키우지 않음이 좋겠소. 그 까닭은 말을 못하기 때문이오’ 하니, 부모들이 대답하기를 ‘이 아이가 비록 말은 못하지만 그 몸의 바탕[身根]은 원만히 갖추어 모자람이 없으니, 이 아이는 상서롭지 않거나 박복한 사람이 아니며 반드시 복덕이 있을 것이 분명하오’라고 하고서 무언(無言)이라고 이름지었다.
이리하여 무언 동자가 점점 자라나서 여덟 살이 되자, 아이 노는 것을 사람들이 즐겨 보니, 동자는 설법하고 법의 이치를 굴리는 곳[法輪處]을 따라
[352 / 1773] 쪽
다니되, 가서 즐겨 듣기만 하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때 무언 동자가 부처님의 신력으로 부모와 권속과 일가친척들과 함께 보배 궁전으로 와서 부처님을 뵈옵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공경히 예배 공양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합장하고 일어서서 또 시방에서 온 모든 보살들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자 장군의 아들이 몸은 다 원만한데 말은 하지 못하니, 이 무슨 악업의 인연으로 이렇게 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그대는 그런 말을 하여 동자를 경멸하지 말라. 이 사람은 큰 보살이니라.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수많은 선근을 심어 보리의 도에서 물러남이 없느니라. 이 동자가 날 때에 여러 하늘들이 훈계하여 격려하기를 ‘훌륭하다, 동자여. 마땅히 올바른 법을 염하고 올바른 법을 생각하며, 세간의 일은 이야기하지 말고 세간을 벗어나는 이치를 널리 선전하며, 항상 입을 다물고 말을 조심하여 적게 하며, 세간 일에 온갖 각(覺)과 관(觀)을 일으키지 말며, 이치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이와 같이 동자는 하늘의 가르침을 따른 까닭에 말이 없고 잠잠히 생각하여 4선(禪)을 얻었느니라.
사리불아, 무언보살이 이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은 능히 한량없는 중생을 조복함이니, 그러므로 잠잠할 뿐 펴 이야기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이 대집경전을 이야기하면, 무언보살은 이 가운데에서 능히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케 할 것이니라.”
이때 무언보살이 자기의 신통력으로 모든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達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羅羅)·마후라가(摩睺羅伽)·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 하여금 각자 그들의 오른손에 마치 수레바퀴 같은 큰 연꽃을 보게 하였는데, 빛과 향내가 미묘하기 으뜸이어서 사람이 즐겨보았다. 하나하나의 연화대(蓮華臺)마다 보살이 가부하고 앉았는데,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그 몸을 장엄하였다.
무언보살이 이 같은 큰 신통력을 보이고 나서 머리 숙여 합장하고 ‘나무
[353 / 1773] 쪽
불타(南無佛陀), 나무불타’ 하자, 연화대에 앉아 있는 모든 보살들도 ‘나무불타, 나무불타’ 하였는데, 말을 마치고 나니 10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허공의 모든 하늘들이 묘한 향과 꽃과 흥겨운 풍악으로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이때 무언보살이 부처님의 신력과 자기의 원력으로 여러 보살과 함께 7다라수 높이의 공중으로 뛰어올라가 부처님을 바로 향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는 모습[色] 없이 모습을 나타내지만
모습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네.
어떤 중생이 불법에 든다 해도
무엇으로 진실한 모습 안다 하리오.
여래는 모습 가운데 있지 않으며
모습을 떠나 있지도 아니하나니
일찍이 모든 모습 여의었건만
중생을 연민하여 모습 보이시네.
모든 중생을 연민하는 까닭에
여러 상호(相好)로 장엄하시고
실로 모습의 본성 없건만 중생 위해 말하시니
그러므로 여래는 헤아리기 어렵네.
여래의 바른 법은 문자가 없고
문자 여의어 이미 소리도 없나니
문자가 없어 설할 수 없고
고요하고 깊디깊어 깨달을 것 없네.
여래가 일찍이 보리수 아래
깨달은 모든 법 이와 같은 것
[354 / 1773] 쪽
문자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조작함도 없어 설할 수 없네.
이러한 모든 법 모양도 없고
모든 모양 멀리 멀리 여의었으니
모든 법 가운데 모양 없다면
여래는 무엇으로 연설하셨으리.
여래는 대자대비 두루 갖추셨나니
이런 까닭에 연민으로 이익 되게 하시며
설할 수 없는 법 말씀하시어
설할 수 없는 진실 알게 하시네.
여래는 설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아시고
공하고 고요한 소리 성품 아시며
온갖 이치를 통달한 때문에
진실한 각자(覺者)라 하네.
말씀하신 법은 세간 진리[世諦]라 하나니
여래는 진실로 그것을 깨달아 아네.
세간 이치 나지 않고[不出] 성품도 없어
조작할 수도 없고 기약할 수도 없다네.
진실로 모습의 본성과 형태 모두 없건만
중생 위해 갖가지 모습 보이시고
법(法)과 무법(無法) 아시는 부처님
중생을 위하므로 연설하시네.
나는 처음 태어날 때 하늘 말씀 받았나니
[355 / 1773] 쪽
그러한 까닭에 잠잠히 말한 적 없고
법 염(念)하고 사유하기 지극히 하였나니
그러한 까닭에 빛과 소리 내지 않았네.
만약에 깊은 법계 들어간다면
그때에는 빛과 소리 없을 것이며,
만약에 마음의 업[心業] 멀리 여의면
입의 업[口業]은 저절로 여의어지리.
말없는 자체가 곧 말이며
비록 말을 한다 해도 말이 아니니
말의 그 성품 본래 고요해
조작함도 아니고 말함도 아니네.
내 이제 지성으로 보리 염하고
또다시 보리도를 지극히 닦아
이러한 위없는 법 연설하면
마땅히 진실한 도 얻으리다.
내 마음 보리도를 얻지 못하면
입과 입의 행[口行]도 얻지 못하리.
위없는 보리는 공한 것이니
그 성품 본래 항상 고요하다네.
보리의 성품같이 소리도 그러해
법의 성품 듣거나 취하지 못하므로
나의 소리 이와 같아 듣지 못하니
구하는 바 보리도 그러하도다.
[356 / 1773] 쪽
보리를 위하므로 수행하지만
이 수행 또한 이르는 곳 없고
이 수행 이같이 이르는 곳 없으므로
보리가 이르는 곳은 이르는 곳이 아니라네.
6바라밀도 또한 보리와 같고
온갖 착한 법도 보리와 같아
모든 말들은 진실함 없고
말 없는 가운데 진실 있도다.
만약에 묘음(妙音)으로 보시한다면
보시하는 사람과 재물까지도
이러한 모두가 곧 보리이어서
모든 것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로다.
이러한 보시를 말할 수 있다면
보리의 체성도 말할 수 있으리니
보리의 성품 허공과 같고
온갖 음성 역시 이와 같도다.
만약 마음으로 진실히 안다면
안 뒤엔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으리니
이 소리 어디에서 사라진지 아는 것
이것이 보리의 진실한 모양이로다.
몸·입·뜻의 업 멀리 하고
온갖 번뇌도 그렇게 하면
바로 이것이 모든 바라밀이요
여래께서 말씀하신 진실한 법성이로다.
[357 / 1773] 쪽
은혜롭게 보시함은 보리에 있지 않고
보리 자체도 보시에 있지 않아
이러한 두 법은 음성일 뿐이요
머무는 곳 없고 이르는 곳도 없네.
만약에 이러한 것 능히 안다면
그 사람 진실로 큰 보살이며
보시함에 있어 교만 없으면
그 사람 위없는 큰 시주이네.
계율[禁戒] 가짐이 바로 음성이어서
모양과 색이 없고 이를 곳도 없다네.
온갖 법이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위없는 계율 가지는 상(相)이라네.
이와 같이 계율은 조작할 수 없고
몸·입·뜻의 업도 모두 없나니
나거나 멸하지 않고 조작할 수 없다면
무엇을 계율이라 말할 수 있으랴.
유포하기 위해 짐짓 음성 낸 것을
중생은 계율이라 이름 하나니
계율을 아는 음성도 그러하매
이 두 법 모두 번뇌[漏]가 없네.
입으로 말함은 계를 위한 때문
갖가지 장엄을 말할지라도
그 음성 진실로 장엄 없나니
진실로 안다면 존재[有] 없으리.
[358 / 1773] 쪽
몸과 입과 마음의 업
이 계율 돌이켜 보리에 나아가면
계율의 음성이며 보리까지도
두 가지 법 모두 허공 같으리.
만약에 누가 이같이 짓고 깨닫는다면
이 사람은 곧 계율을 행하고 계율에 머무는 것이요
계율의 저 언덕[彼岸]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
그곳은 깊디깊어 보기 어려운 곳이라네.
인욕을 말하는 음성 곧 공이어서
공의 성품 머묾 없고 조작 없나니
인욕과 공의 두 가지 법
차별 없기가 허공 같으며,
인욕의 음성 색과 조작 없어서
볼 수도 없고 처소도 없나니
평등한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이 인욕의 진실한 상이라네.
인욕은 비록 잠깐 잠깐 멸하나
색신(色身)과 항상 같이 행하나니
모든 문자(文字)는 번뇌[漏] 없는데
중생들이 인욕이라 이름하네.
만약에 몸과 입과 뜻 조복하면
이것이 위없는 인욕이 되고
인욕을 능히 참는 사람 있다면
이것이 위없는 인욕이라네.
[359 / 1773] 쪽
어떤 중생이 자기 몸 부수어
마디마다 갈아냄이 호마(胡麻) 같아도
자기 몸 관하길 마른 풀같이 하면
이것이 위없는 몸의 인욕이라네.
만약에 나쁜 말 모욕당해도
그 마음 요동 않고 법에 머물러
음성이 허공 같다 관찰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입의 업이며,
만약에 번뇌 원인 능히 통하고
모든 번뇌까지 멀리 버린다면
이것을 마음의 인욕이라 하리니
어떤 번뇌에도 더럽히지 않으리.
인욕은 곧 보리의 성품 같아
몸·입·뜻의 업도 그러하리니
이것을 돌이켜 보리에 나아가면
보리를 얻음이라 이를 것이며,
어떤 중생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상·중·하의 거칠고 세밀함까지도
한량없는 겁 동안 닦는다면
얻음 없고 필경도 없으리.
만약에 정진을 얻지 못하면
보리도 얻지 못한다 하리니
일체 법을 얻을 수 없음이라면
이것이 위없는 정진이며,
[360 / 1773] 쪽
만약에 이렇게 정진하는 이라면
더하고 덜함 없음 허공 같으니
그 사람 바로 큰 보살이라
부지런히 정진 닦아 두려움 없으리.
모든 선정은 무더기[聚] 없으므로
조작과 이를 곳 모두 없나니
만약에 일체 법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진실한 선바라밀이며,
온갖 나쁜 물질 멀리 여의고
나쁜 몸과 나쁜 입도 함께 여의고
모든 번뇌 불사른다면
이것이 진실한 선바라밀이며,
마음의 진실성 관찰한다면
모든 법 보지 않으며
마음 없고 마음 멀리 버린다면
이것이 진실한 선바라밀이네.
만약에 마음과 보리 관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진실의 견해이니
이러한 진실의 견해 있다면
보리 얻기 어렵지 않으리.
문자 없음을 알아본다면
일체 법은 생멸 없으며
이러한 세밀한 생각과 견해를 짓는다면
이것이 바로 큰 지혜라 하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방등대집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집경(38)-380 (0) | 2015.11.21 |
---|---|
대집경(37)-370 (0) | 2015.11.20 |
대집경(35)-350 (0) | 2015.11.18 |
대집경(34)-340 (0) | 2015.11.17 |
대집경(33)-330 (0) | 201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