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34)-34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31 / 1773] 쪽
두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와서야 비로소 아무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하니, 그들이 말하되, ‘어제 왕이 초청해 놓고는 집에 식사 준비도 해두지 않았으니, 이제 왕의 명령을 따른들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성내며 원망하고, 탄식하며 우는 것과 같으리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법공양을 허락하되 ‘많이 듣고 계를 가지거나 정진하지 말라’ 하고, ‘37조도법을 닦지 말라’ 하면, 중생이 성내고 사람과 하늘이 슬퍼하리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법답게 말하고 법답게 살려면 일체 중생을 속이지 말지니라.
선남자야, 또 중생이 보살을 청해서 ‘우리를 위해 설법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보살이 대답하되, ‘너희들을 위해 말해 주리라’고 허락하고는 방일(放逸)하였다. 중생이 보살의 방일함을 보고 권유하게 되자, 보살이 권유를 받고 나서 설법하매 혹 깊고 깊은 뜻을 묻더라도 방일했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마음에 부끄러움[慚愧]이 생겨 자신을 변명하고 중생을 속여 문득 버리고 떠나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 말과 같이 머물고자 한다면 몸과 마음을 아끼지 말고 중생을 보호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지난 세상에 한 사자왕이 깊은 산 굴 속에 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나는 짐승 가운데 왕이니 힘으로 능히 뭇 짐승을 보호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그 산에서 한 쌍의 원숭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아 놓고는 사자를 향하여 말하였다.
‘사자왕이여, 만약 왕이 모든 짐승을 모호할 수 있다면 지금 저의 새끼를 부탁합니다. 저희들은 남는 시간에 먹을 것을 구하겠습니다.’
사자가 즉시 허락하매 원숭이들은 두 새끼를 두고 다시 사자에게 부탁하고는 가버렸느니라.
이때 산 중에 이견(利見)이란 한 마리의 독수리 왕이 있었는데, 사자가 잠자는 틈을 타서 곧 두 마리의 원숭이를 가지고 아주 험한 곳에 앉아 있었느니라. 이때 잠을 깬 사자가 게송으로 독수리에게 말하였느니라.
[332 / 1773] 쪽
독수리 왕이여, 그대에게 청하노니
지극한 마음으로 이내 소원 들어주게
다행이 보았으니, 부디 원숭이 새끼를 풀어주게.
믿음을 잃어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하지 마오.
독수리가 대답하였느니라.
나는 허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니
그대의 영역을 벗어나 두려울 것 없네.
만약 이 두 마리 원숭이를 구하려거든
나를 위해 마땅히 그대의 목숨을 버리시오.
사자왕이 말하였다.
내 이제 두 마리 원숭이 구하기 위해
몸 버리기 마른 풀같이 아끼지 않으리.
만약 내 몸 위해 그대에게 거짓말 한다면
어찌 내가 말한 대로 행한다 하리.
이 말을 마친 사자가 즉시에 높은 곳에 올라 자기 몸을 던져 죽으려 하는데, 독수리가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만약 다른 이를 위해 목숨 버린다면
이런 이는 위없는 즐거움 받게 되나니,
내 이제 그대에게 원숭이 새끼 보시하리니
대법왕(大法王)은 자신의 목숨을 해치지 마오.
선남자야, 이때의 사자는 곧 내 몸이며, 수컷 원숭이는 곧 가섭(迦葉)이며, 암컷 원숭이는 선호(善護) 비구니이며, 새끼 원숭이 두 마리는 곧 아난과 나
[333 / 1773] 쪽
후라였으며, 독수리는 바로 사리불이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자기에게 의지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무엇을 말한 대로 행한다[作] 하느냐 하면, 보살이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보시하리라’ 하고는 곧 크게 보시함을 말한 대로 행함이라 하며, 보살이 또 ‘나는 계율을 잘 지니리라’ 하고는 곧 중생을 교화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없애고 선정을 닦는 것을 말한 대로 행한다 함이며, 또 ‘나는 지혜를 닦을 것이다’ 하고는 법답게 분별하는 것을 말한 대로 행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 ‘나는 반드시 온갖 나쁜 법을 깨뜨리리라’ 하고는 곧 온갖 착한 법을 닦는 것을 말한 대로 행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능히 장엄하는 이를 말한 대로 행한다 하고, 능히 실행하는 이를 말한 대로 행한다 하며, 능히 발심하는 이를 말한 대로 한다 하고, 과증(果證)을 얻는 것을 행한다 하며, 능히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마음을 지극히 하는 것을 행한다 하며, 발심하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 것을 행한다 하며, 마음을 지극히 하여 법을 듣는 것을 설한 대로 한다 하고, 듣고는 여법하게 머무는 것을 행한다 하며, 말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몸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행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처음 계 받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보호해 가지는 것을 행한다 하며, 보리심을 내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것을 행한다 하며, 인지(忍地:無生法忍)에서 머무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물러나지 않는 경지[不退地]에 머무는 것을 행한다 하며, 일생(一生)의 몸을 얻는 것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후생[後邊]의 몸 얻는 것을 행한다 하며, 보리수에 나아감을 말한 대로 한다 하고, 보리의 과(果)를 얻음을 행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 법답게 말하고 말한 대로 행한다 하느니라.”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5백 보살이 생사 없는 경지[無生忍地]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연화(蓮華)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답게 말하고 말한 대로 행한
[334 / 1773] 쪽
것은 불가사의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것과 같은 것이 곧 법답게 말하는 것이고, 말한 대로 행하는 것이옵니다.”
“선남자야, 너는 이것[事:수행법]에 대해서 잘 아느냐??”
“알고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바른 법이 진실이란 것을 알면, 이것을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합니다.”
산왕(山王)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머무름이 없는 법을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합니다. 왜냐하면 일체 법이 깨달음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하나의 법도 보지 않으니,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합니다. 만약 하나의 법도 없다면 어찌 머무름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복덕왕(福德王)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을 따른다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살로서 뜻이 허깨비[幻] 같다고 관찰한다면 머묾이 없다고 이름하나니, 머묾이 없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연등(燃燈)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탐내는 마음이 없으므로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합니다. 무엇이 탐심인가 하면 이른바 법 가운데서 손해와 이익이 있는 것이니, 만약 탐내는 마음이 없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일자(日子)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로서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움직인다 이름합니다. 법 가운데 마음의 집착이 없다면 이것을 움직임이 없다 이름하리니, 움직임이 없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용건(勇健)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세상은 다 마음을 따라 행을 닦나니, 만약 마음의 행을 알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요견(樂見)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受)를 인하여 괴로움을 받습니다. 만약 온갖 수(受)를 받지 않는 것이 곧 끊음이요, 온갖 취(取)를 취하지
[335 / 1773] 쪽
않는 것이 곧 끊음이니, 받거나 취하지 않아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향상왕(香象王)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은 다 5음(陰)이란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만약 5음의 진실을 알아 음(陰)의 소견을 부숴 무거운 짐을 버리되 일체 법에도 짐이란 생각이 없으면, 이것을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지세(持世)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세간을 행한다면 법답게 머무름이 아니니, 바르게 장엄하는 것을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바르게 장엄함이란 일체 법이 평등하여 허공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견의(堅意)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나는데 나지도 않고 멸하는데 멸하지 않으며 또한 나고 멸하는 성품도 보지 않으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광명변조고귀덕왕(光明遍照高貴德王)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보살이 진실한 열반을 알고 보아서, 법은 멸하는 것이고 또 생멸이 없어 모든 중생들은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보아서 보리에 나아가기 위해 장엄을 닦는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광무애(光無碍)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행하는 곳이 있으면 곧 악마의 법이니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며, 행하는 곳이 없으면 악마의 법을 없앨 것이니 악마의 법을 없앤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정진(淨進)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누가 생각하여 말하되 ‘내가 반드시 법을 말하리라’ 하고, 이 법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이러한 정진은 헛된 정진이며, 일체 법이 정해져 있지 않음[不定]을 관찰하여 이 정해져 있지 않음으로써 부지런히 정진을 닦는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과삼악도(過三惡道)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은 조작 없고 변함없으며 깨닫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나이다. 깨닫고 보는 것이 없음을 마음의 성품이라 하나니 만약 중생의
[336 / 1773] 쪽
마음 성품이 본디 청정함을 본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불가사유(不可思惟)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의 마음 성품이 마음 생각(心想)을 일으키지 않음을 아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데 생각함이라 하나니, 만약 이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서 생각한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요적정(樂寂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마음자리를 청정히 한다면 이것은 온갖 번뇌를 여읨이니 만약 온갖 번뇌를 여읜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상주(常主)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착한 법을 청정히 하여 복덕을 장엄하며, 지혜를 장엄하여 두 가지 장엄한 것을 보되 평등하여 두 가지가 없으며, 공덕의 평등함으로 지혜를 보는 것도 평등하며, 지혜의 평등함으로 공덕을 보는 것도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유마힐(惟摩詰)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두 가지를 보지 않는 것을 법답게 머문다하나니 만약 온 법계를 헐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의의(依義)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올바른 이치만 의지하고 글자에 의지치 않으며 올바른 뜻에 의지하므로 받아 가지며 읽어 외우며 8만 4천 법 덩어리[法聚]를 말하되 잃거나 움직임이 없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정의(淨意)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보리심을 보호하며 보리를 닦을 때에 일체 법의 성품을 알아내어 법의 성품은 이치 있음도 아니며 이치 없음도 아닌 것을 안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필경정의(畢竟淨意)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때[垢]같이 더러움을 여의어 때를 씻은 듯 없애 버려서, 번뇌로 하여금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게 한다면 끝내 청정하다 할 것이며, 그 마음이 깨끗해져서 보리행을 닦는다면 법답게 머문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337 / 1773] 쪽
해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악지식(惡知識)을 친근함은 법답게 머무름이 아니며, 성인의 법을 닦지 아니함은 법답게 머무름이 아니니,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마군의 일[魔業]을 행하게 되어 마군 있는 곳을 따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마군의 일과 마군이 있는 곳과 모든 나쁜 벗을 멀리 여의려 하면 마땅히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제 마군의 행동을 알겠는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야, 그렇다면 그대가 지금 한량없는 보살 대중을 위하여 자세히 말하여라.”
해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대개 마군이란 눈으로 보는 경계니, 만약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바로 마군이며, 내지 뜻과 법도 이와 같습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단(檀)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자기가 싫어하는 물건을 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재물은 인색하게 아껴 버리지 않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이에겐 주고 싫어하는 이에겐 주지 않아서 받을 사람과 재물을 분별한다면 이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또 보살이 시(尸)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계율(戒律)을 보호하여 계율 가진 사람에게 가까이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찬탄하며 스스로 파계하는 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인욕[忍]바라밀을 수행할 때 힘센 사람에겐 욕됨을 참는 마음[忍辱心]을 내고 약한 사람에겐 능히 그 마음을 내지 못하며, 힘센 사람에겐 부드러운 말씨로 겸손하고 약한 사람에겐 거친 말씨로 멸시함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정진[進]바라밀을 수행할 때 성문승과 보살승을 말하다가 보리를 닦을 때에는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멸시하여 입으로 말도 하지 않으며 세행(世行)을 좋아하고 삼보(三寶)에 공양하기를 싫어하며 꽃·
[338 / 1773] 쪽
향·일산·음악 따위를 존중 찬탄하며 많이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많이 들은 이를 가까이하지 않음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또 보살이 선(禪)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선정을 얻어 능히 모든 중생을 조복하지 못하여 마음으로 후회하거나 싫은 생각을 내며, 선의 즐거움에만 탐착하고 설법하는 이를 나무라며, 강론(講論)하기를 싫어하며, 고요함을 좋아하며 선의 맛에만 집착하여 두 경계를 헐뜯고 무색신(無色身)에 애착하여 극도로 오래 살면서 여러 부처님을 친견치 않으며, 올바른 법을 들으려고 아니하며 착한 벗을 멀리 여의며 방편을 알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받아서 버려야 할 것을 닦는 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또 반야(般若)바라밀을 수행할 때 인과법(因果法)을 알고서 4섭법으로 중생을 거둬 주되 조복하지 않으며, 중생의 상품·중품·하품의 근기를 알지 못함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또 보살이 공하고 고요함을 좋아하고는, 고요한 즐거움을 가져서 법문을 듣거나 설법할 때 의심하여 묻기를 즐겨하지 않나니, 고요하므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며, 번뇌가 일지 않으므로 안다는 생각을 알지 못하며, 여읜다는 생각을 여의지 못하며, 증득한다는 생각을 증득치 못하며, 닦는다는 생각을 닦지 못하여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함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많이 듣고 좋은 말·즐거운 말·미묘한 말·부드러운 말·기쁜 말을 닦아서 의복·음식·침구를 받들어 이익 되게 하는 이를 위해서는 법을 연설하되 깊은 믿음의 의식이 있어 지심으로 들으려고 해도 설법하여 주지 않고, 방일하여도 공양을 해 주는 이에겐 문득 말해 주고, 가히 말해 줄 만한 사람에겐 말해 주지 않고 가히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겐 도리어 말해 주는 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또 보살이 만약 설법할 때, 깊은 이치를 감추어 두고 여러 하늘과 사람이 다른 마음 지혜를 얻으려는 것을 알면서도 기뻐하지 않고 곧 생각하되, ‘나는 여래의 진정한 법을 위해 왔고 세간의 천근(淺近)한 말들을 하려고 오지 않았다. 이 사람이 부처님의 바른 법을 헐고자 하여도 더 자라게 할 수 없으니, 나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헐려는 사람을 보기 싫다’고 하
[339 / 1773] 쪽
면서 버리고 간다면, 이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이 악지식을 선지식이라고 생각하나니, 악지식이란 4섭법으로 중생을 거두지 못하며 많이 듣기를 닦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며 출세하는 법은 말하지 않고 세간 일을 말하기 좋아하며 법을 알지 못하고 때를 알지 못하고 옳은 이치를 알지 못하나니, 이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악지식은 성문·연각·보살·부처님 법을 분별하여 해설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자비를 닦거나 8난(難)을 멀리 여의거나 보시하고 계율 지님을 수행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말씨로 다 같이 친절하여 지혜를 가르침에 힘쓰지 않고서 말하되 ‘매우 얻기 어렵다. 한량없는 세월에 괴롭게 힘써야 얻을 수 있다’고 하나니, 이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또 보살이 만약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그 때문에 부처님 법과 여러 스님·화상·부모·덕 높은 이와 배우던 동창이나 스승을 공양하지 못하며, 자기보다 훌륭한 이를 보아도 능히 친근하여 법을 듣고 의심을 묻지 않고 들어도 곧 잊어버리며, 자기보다 못한 이를 보면 친근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나니 그러므로 악한 법이 점점 자라나며, 악한 법이 자라나므로 착한 법을 영원히 여의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큰 바다가 점점 깊으므로 온갖 흐름이 다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보살의 교만을 부숴버림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법이 점점 자라나리니, 보살이 교만을 부숴버리지 않는 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높은 언덕에다가 첨파 나무를 심고 물이 늘 흐르는 낮은 곳에 다시 못을 만들어 놓는다면 땅은 높아서 마르고 또 물을 얻을 수 없는 그 첨파 나무는 점점 누렇게 말라서 능히 자라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교만이 더 늘어나므로 선지식을 친근히 못하고 착한 법을 듣지 못하며, 비록 들어도 다시 잊어버리나이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몸의 위의를 원만히 갖추어 자재로우며, 많은 권속과 복덕의 장엄을 갖추어도 능히 지혜의 장엄을 갖추지 못하나니
[340 / 1773] 쪽
이 인연으로써 교만한 마음이 생기며, 교만한 마음이 생기므로 설사 어떤 보살이 지혜의 장엄을 갖추고 올바른 법을 생각하고 몸이 야위고 파리함을 보아도 교만을 내어 공양하지 않으며, 그런 인연으로 다시 교만한 마음을 더 길러 무명에서 방일하고 마군의 업을 조복하지 못하나니, 이 같은 보살은 몸의 위의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내는 것인데 이것을 바로 마군의 업이라 이름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해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능히 마군의 업을 잘 풀어 말하였도다. 선남자야, 지심으로 자세히 들어라. 지금 내가 마군의 업을 부숴버리는 방법을 말하리라.
선남자야, 모든 법은 그 성품이 공하고 고요하나니 만약 모든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며, 알고는 자비심을 닦아 자신을 조복한다면 이것을 보살이 마군의 일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만약 일체 법의 성품이 모양이 없다고 관찰하여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닦는다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만약 일체 법이 원 없다고 관찰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모든 것을 구하고, 구하고는 따라서 조복한다면 보살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만약 또 모든 법은 탐냄이 없다고 관찰하고 중생의 성품도 또한 탐냄이 없다 하여 탐욕을 조복하여 거두어들인다면 보살이 마군의 일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만약 온갖 성품은 성냄이 없다는 것이라 관찰하고 중생의 성품도 또한 성냄이 없다 하여 성냄을 조복하여 거두어들인다면 보살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온갖 성품은 어리석음이 없다고 관찰하고 중생의 성품도 또한 어리석음이 없다 하여 어리석음을 거두어들인다면 보살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고 이름할 것입니다.
일체 법이 나고 죽음이 없다고 관찰하다면 생멸을 파괴함이 되므로 올바른 법을 펴 말하리니 이것을 보살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일체 법의 성품이 평등하다고 관찰하여 비록 3승을 말은 하지만 대승의 법을 버리지 않는 것을 보살이 마군의 업을 부숴버린다 할 것이며, 만약 마음과 뜻과 식별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능히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고 여러 중생을 해탈케 하며 법의 장엄을 닦아 비록 모든 행을 거쳐도 보살의 행을 버리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방등대집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집경(36)-360 (0) | 2015.11.19 |
---|---|
대집경(35)-350 (0) | 2015.11.18 |
대집경(33)-330 (0) | 2015.11.16 |
대집경(32)-320 (0) | 2015.11.15 |
대집경(31)-310 (0) | 201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