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33)-33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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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은 없으나, 모든 중생에게 서원의 힘은 언제나 미치지 않음이 없어서 모든 선근을 다 함께하며, 그리고는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사라(紗羅)나무 뿌리를 도끼로 찍는 것과 같나니, 이미 잘려진 뒤에는 도끼로 찍은 곳으로 넘어가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삼매를 닦으면 언제나 보리에 회향하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크게 말하되 ‘이 나무가 도끼 찍은 곳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라’ 하여도 이 나무는 도끼 찍은 곳으로 넘어가느니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닦은 착한 법이 위없는 보리로 회향하지 않는 그런 이치가 없나니, 왜냐하면 법성(法性)이 있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닦은 착한 법은 오직 삼보의 종자와 성품을 끊지 아니하려 하며,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려 하며, 몸을 32상과 80종호로 장엄하려 하며, 입을 장엄하여 설법할 때에 중생이 즐겨 듣도록 하려 하며, 마음을 장엄하여 모든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 없음을 관찰하려 하며, 불법과 모든 부처님의 삼매를 얻고자 함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법을 탐내려 아니하여도 이 같은 법이 자연히 얻어지나니, 그 까닭은 서원의 힘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마치 질그릇 장이의 진흙이 판에 있을 때에는 물건이라 할 수 없지만, 그릇이 만들어지면 그릇에 따라 물건의 이름이 붙여지나니, 보살의 착한 법도 이와 같아서 발원하지 못했을 때에는 바라밀이란 이름을 얻을 수 없느니라. 또 마치 금을 다루는 이가 금으로 그릇을 완성시키지 못했을 때에는 또한 이름을 얻을 수 없고 형체가 이루어지면 영락(瓔珞)이란 이름을 얻나니, 보살의 착한 법도 이와 같아서 서원을 발하지 못했을 때에는 바라밀이란 이름을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비구들이 멸정에 들려고 할 때, 먼저 서원을 세우기를, ‘이제 내가 멸정에 들었을 때 만일 건추(揵椎)가 울리면 내가 곧 일어나리라’ 하나니, 이 정 가운데는 건추 소리가 없으나 원력을 지니기 때문에 건추(승가의 모임이나 신호에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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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 때에는 곧 정에서 나올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나니, 중생을 가엾이 여겨 원을 세워 제도하지 못한 이를 내가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이를 내가 해탈 시키며, 깊은 삼매에 들어 가엾이 여기는 힘으로 모든 중생을 염하되, 성문·벽지불의 승(乘)에 빠지지 않나니, 그러므로 37조도품을 닦되 과(果)를 얻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들이 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나니 비록 깊은 선정에 들지라도 사문도(沙門道)의 과는 증득하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두 사람이 사나운 불길을 지나가려고 할 때에, 한 사람은 금강 갑주를 입어서 능히 지나가고, 한 사람은 마른 풀을 걸쳐서 곧 불에 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풀은 타기 쉽고 갑주는 견고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을 가엾이 여겨 오로지 보리를 생각하며, 깊고 한량없는 삼매를 장엄하고 삼매의 힘을 지니기 때문에 능히 성문·연각의 위치를 떠나고 그 과증(果證)을 취하려 아니하며, 정을 따라 일어나서 바른 깨달음의 도와 여래의 삼매를 얻느니라. 마른 풀 걸친 사람을 성문에 비유한다면, 성문인은 나고 죽음을 싫어하며 모든 중생에게 자비로운 마음이 없으며, 그러므로 성문·연각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2승의 사람은 복덕 가운데 만족한 생각을 내고, 보살은 복덕 가운데 만족한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라.
금강 갑주는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에 비유하고 사나운 불길은 모든 행법(行法)에 비유함이니,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이 공·무상·무원임을 관찰하여서 능히 사문도(沙門道)를 증득하지 않느니라.
해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이러한 일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나이다. 삼매를 닦되 과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사의 불길을 다니되 타지 아니합니다. 보살마하살은 방편을 성취하므로 여러 행을 행하여도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삿된 소견을 위해서는 사문의 과를 말하지만 스스로 사문의 도과(道果)를 증득하지 아니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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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 훌륭하다. 진실로 네 말과 같도다. 선남자야, 마치 나차(羅差)·울금(鬱金)·청대(靑黛)의 이 세 가지 물감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모피[毳]와 모직[氈]과 명주옷[憍奢耶]의 세 가지를 염색하되, 먼저 모피 옷을 장물에 담그면 푸른빛이 되고, 모직 옷을 깨끗이 빨면 누런빛이 되며 다음에 명주옷을 잿물에 담그면 붉은 빛이 되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세 물건을 비록 한 그릇에 담았지만 빛이 되는 것은 각각 다르니라.
선남자야, 3승의 사람도 이와 같아서 그릇을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에 비유하고, 세 가지 색을 성문·연각·보살에 비유하고 옷에 따라 각각 물드는 색을 세 가지 보리에 비유함이니라. 공과 무상과 무원이란 생각도 내지 않으며 그러한 과(果)에 참여할지라도 그 과에 참여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모피는 성문에 비유하고, 다시 빠는 것은 연각에 비유하고, 명주옷은 보살승에 비유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을 보되 눈멀고 귀먹은 사람같이 하여 중생이란 것이 없나니, 이같이 볼 때에는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후회하거나 물러남이 없나니, 이때 마음속에 진실로 ‘내가 중생에게 이익 되지도 않고, 이익 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또한 중생을 위해 크게 슬픈 마음을 닦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미묘하고 깨끗한 유리 보배는 진흙 속에 묻혀 백 년을 지니더라도 그 본성은 언제나 깨끗하여 꺼낼 때는 본래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마음은 언제나 그 본성이 청정하여 객진번뇌(客塵煩惱)에 가려질지라도 객진번뇌는 사실 그 청정한 마음은 마치 구슬이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만약에 내 마음 성품이 번뇌에 더럽혀진다면, 어떻게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랴’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항상 복덕을 장엄하고 닦기를 즐거워하며, 여러 세계에 있으면서도 삼보를 즐겨 공양하며, 중생을 위하여 힘껏 심부름하기를 즐겨하여 탐심 나는 곳에 탐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올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며, 은혜롭게 보시하는 일을 즐겨하며, 청정한 계행이 원만하여 인욕하는 마음을 장엄하며,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며, 선지(禪支)를 장엄하며 지혜를 닦으며, 청정한 범행을 많이 듣고서도 싫어함이 없으며, 신통과 37조도품을 닦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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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법을 행하되 번뇌에 물들지 않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착한 방편을 행하는 공덕의 힘을 지니므로 비록 삼계에 다닐지라도 몸과 마음은 물들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장자(長者)가 외아들을 두고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는데, 그 아이가 놀다가 잘못해서 뒷간에 떨어졌다면, 그 어머니는 곧 보고 더러운 냄새를 싫어하였는데, 그 아버지는 뒤에야 그것을 보고 그 어머니를 꾸짖고서는 곧 뛰어들어 붙들고 나와서 깨끗이 씻으니, 사랑의 힘 때문에 더러운 냄새를 잊을 수 있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그 부모를 성문·연각에 비유하고, 뒷간을 세 가지 세계에 비유하고 아들을 중생에 비유하고, 어머니가 능히 건져 내지 못함을 성문·연각에 비유하고, 아버지가 붙들어 낸 것을 보살에 비유하고, 지극한 사랑을 큰 슬픔에 비유함이니, 보살마하살이 좋은 방편을 갖추어 세 가지 세계에 들되 세 가지 세계에 더럽혀지거나 물들지 아니하느니라. 이러므로 두 가지의 길이 있으니 하나는 성문이요, 다른 하나는 보살이니, 성문의 길은 세 가지 세계를 싫어하고 보살의 길은 세 가지 세계를 싫어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공과 무상과 무원을 닦아서 여러 세계에 다녀도 여러 세계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이미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또 증을 취하지도 않느니라.
세 가지 세계에서 다니는 것은 방편이요, 증을 취하지 않는 것은 지혜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을 관찰함에 차별이 없느니라. 법을 평등하게 관찰한다면 관찰함에 차별이 없느니라. 법을 평등하게 관찰한다면 중생도 평등하며, 이같이 평등하다면 열반까지도 평등함이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만일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하고서 열반을 증득하지 않음은 이것을 방편이라 하며, 청정하게 은혜로 보시함을 지혜라 하며, 서원을 세워 회향함을 방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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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느니라.”
해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청정한 지혜라 하며, 청정한 방편이라 합니까?”
“선남자야, 보살이 나와 중생과 수명과 장부(士夫) 없음을 보는 것을 지혜라 하며, 공과 무상과 무원을 닦아서 여러 선근으로써 중생에까지 함께 보리로 회향하기 원하는 것을 방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중생들의 상·중·하의 근기를 아는 것을 지혜라 하며, 알고 나서는 그들의 뜻을 따라 설법하는 것을 방편이라 하느니라. 지혜가 청정하므로 여러 세계에 다녀도 마음은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방편이 청정하므로 2승을 닦을지라도 그 과는 증득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능히 여러 번뇌에 더럽혀지거나 물들지 않음을 지혜라 하며, 중생을 조복하여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는 것을 방편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원을 세워 중생들로 하여금 다함없는 재산과 복덕을 얻게 하며, 선근을 자라나게 하며, 여러 유학·무학·성문·연각과 모든 보살에게 뜻에 따라 법을 얻도록 하는 것을 청정한 방편이라 하며, 온갖 불법을 받아 지니어서 널리 분별하여 설법하며, 다함없이 설법하며, 막힘없이 설법하며 헛되지 않게 설법하며, 즐겨 설법하는 것을 청정한 지혜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나고 또 나는 곳마다 위없는 보리심을 잃지 않는 것을 청정한 지혜라 하며, 나고 또 나는 곳마다 짓는 착한 법의 원을 중생에까지 미치게 하는 것을 청정한 방편이라 하느니라. 청정한 지혜의 인연인 까닭에 보리심이 머묾이 없고 뿌리 없음을 알며, 청정한 방편인 까닭에 여러 중생을 교화하여 보리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두 가지 청정함을 원만히 갖추었다면 짓는 모든 일이 보리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법 가운데에는 다 어둡고 막힘이 있나니, 어둡고 막힘을 부수기 때문에 곧 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언제나 보리를 멀리 여의지 않으니,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보리를 버린다’ 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보리를 얻지 못할 줄 알 것이며, 만약 ‘나는 이제 보리를 지닌다’는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의 보리는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 법을 본다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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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를 얻으리니, 이것이 바로 청정한 지혜며 청정한 방편입니다.”
“선남자야,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한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그 호를 무변광(無邊光)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고, 나라 이름은 불순(不眴)이라 하며, 겁 이름을 광미(光味)라 하였느니라.
그때 세존이 처음으로 도량 보리수 아래 앉아 계셨다. 성불하지 못하였을 때인지라 시방세계에서 일생만 지나면 부처님 지위(一生補處)에서 물러나지 않을 보살들이 다 와서 보는데,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갖가지 꽃을 드리니, 꽃 놓인 곳 높이가 7다라수 높이와 같았으며, 성불을 하고는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니, 시방세계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각기 말을 하되 ‘그지없는 광명의 부처님이 진실로 세상에 나셨으니 우리는 저 부처님 계신 곳을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과 같이 장엄하여 아름답게 꾸미자’ 하였느니라.
그 겁이 처음 십천(十千) 년을 지나 한 부처님이 출세하시어 호를 광미(光味)라 일컬었으므로 이 겁의 이름도 광미라 하였느니라. 광미 겁 동안에 14억의 부처님이 출세하였는데, 부처님의 세계마다 9만 6천의 작은 나라들이 있었으니 국토마다 그 너비가 8만 4천 유순이고 국토마다 8만 4천의 성이 있었느니라. 성마다 그 너비가 1유순이나 되며 한 성안에 사는 백성이 8만 4천억이나 되었으니, 그 국토는 이런 것을 원만히 갖추었느니라.
그 국토는 순전히 금·은·유리·파리 등 네 가지 보배로 꾸며졌으며, 먹을 것이 넉넉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며, 그 국토의 백성들은 나[我]와 내 것[我所]이 없었느니라. 북쪽 울단월(鬱單城:북구로주)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은 수명이 10겁인데, 성문 대중이 9만 6천억이고, 보살대중이 9만 6천억이나 되었느니라. 성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낙(樂)이요, 다른 하나는 이름이 정(淨)으로서, 그 부처님은 정성에서 나시어 낙성에 머무셨느니라.
그리고 그 국토에 정성(淨聲)이란 임금이 7보를 원만히 갖추고 삼천대천세계를 잘 통솔하며, 후궁에 궁녀가 3만 6천이나 있었는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장엄하여 하늘과 다름이 없었느니라. 또 10만의 왕자가 있었는데 다 사나이답고 용맹하며 굳세어 반나라연(半那羅延)의 힘을 갖추었으며, 각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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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성취하여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며, 8만의 여자가 그 모양이 청정한 옥돌처럼 아름다워 하늘과 다름이 없고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그때 그 임금은 두 겁을 지나도록 여래와 성문·보살 대중을 공양하였으며, 여래를 위하여 보배 절[寶坊]을 5유순에 가득하게 지었는데, 보배 절에는 또 수십만의 보배 집이 있어 스님을 공양하였느니라.
그때 성왕이 권속들과 함께 다 청정한 범행을 닦았느니라. 때에 부처님이 한량없는 중생을 대승 법으로 교화하시고, 또 수없는 중생을 성문승으로 교화하였느니라.
그때 왕이 여러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엎드려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고 공경히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을 수행하여 다른 말을 따르지 아니한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끝까지 생을 얻는다 하며 어떤 것을 머무름이 없음을 얻는다 하며 어떤 것을 움직임이 없는 지혜를 얻는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청정한 지혜를 얻는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능히 멀리 보는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의 모든 뿌리가 용맹하고 날카로운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불도를 다 원만히 하였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방일하지 않은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깊고 깊은 법문을 듣고도 마음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보살이란 이름을 얻는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대승을 수행하며 다른 말을 따르지 않는 것에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성인 믿음을 원만히 하여 세계에 뛰어남이며, 둘째는 지혜를 갖추어 법의 성품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신통을 원만히 갖춤이며, 넷째는 청정한 정진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보살은 이러한 네 가지 법을 원만히 갖춤으로 대승을 수행하여 다른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끝까지 생을 얻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착한 법을 알고 마음을 조복함이요, 둘째는 자기의 향락을 탐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중생을 위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닦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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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언제나 대승 법을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머무름이 없음[無所住]을 얻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마음을 깨끗이 함이요, 둘째는 장엄을 청정히 함이요, 셋째는 헛됨과 속임을 여읨이요, 넷째는 견고한 지혜를 닦아 복덕을 원만히 함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청정한 지혜를 얻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눈을 깨끗이 함이요, 둘째는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거둠이요, 셋째는 몸을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 깨끗이 함이요, 넷째는 부처님 국토를 청정히 하여 청정한 법계를 보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능히 멀리 보아서 모든 근기가 용맹하고 날카로움을 얻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보리를 늘 생각하여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하되 지혜에 집착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법신(法身)을 염하여 공과 무상과 무원을 닦음이요, 넷째는 부처님의 열반을 생각하여 나고 죽는 세상을 싫어하거나 원망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부처님 국토를 원만히 갖추어 행동을 방일하지 않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제석(帝釋)천왕의 몸을 받아 여러 제석천을 교화하여 방일하지 않게 함이요, 둘째는 범천왕의 몸을 받아 모든 범천을 교화하여 방일하지 않게 함이요, 셋째는 전륜왕의 몸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여 방일하지 않게 함이요, 넷째는 대신(大臣)과 장자(長者)의 몸을 받아 보배를 원만히 갖추어 중생을 교화하여 방일하지 않게 함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또 깊고 깊은 법을 듣고 마음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착한 벗을 가까이함이요, 둘째는 착한 벗을 위해 깊은 불법을 말해 주는 것이요, 셋째는 바르게 생각함이요, 넷째는 법과 같이 머무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입니다.
대왕이여, 보살의 이름을 얻는 것에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바라밀을 구함이요, 둘째는 중생을 위하여 자비심을 닦는 것이요, 셋째는 불법 구하기를 즐거워함이요, 넷째는 중생을 교화할 때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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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네 가지 법이라 합니다.’
선남자야, 그때 정성왕이 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곧 여러 권속들과 함께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그 국토를 버리고는 불법을 위해 출가하여 수행하였느니라.
선남자야, 그때 세존이 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그대가 지금 출가한 것은 바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오. 만약에 이와 같이 신심을 내어서 버리고 여읜다면 이것을 큰 갚음이라 하며 공덕이라 하나니, 이익 됨이 많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보살이 출가함에 스물네 가지 이익 된 일이 있나니, 그 스물네 가지란,
첫째 세상일을 버리고 자재를 얻음이요,
둘째는 번뇌를 버리고 해탈을 얻음이요,
셋째는 물들인 옷을 입고서 나쁜 도에 물들지 않음이요,
넷째는 네 가지 일을 원만히 하여 네 가지 성인의 종자를 얻음이요,
다섯째는 두타(頭陀)를 즐거워하여 온갖 큰 욕심과 나쁜 욕심을 멀리 여읨이요,
여섯째는 계 덩어리[戒聚]를 버리지 않으므로 인간·천상의 즐거움을 얻음이요,
일곱째는 보리를 버리지 않아 불법을 얻음이요,
여덟째는 언제나 고요함을 즐겨하고 세상 이야기를 여읨이요,
아홉째는 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크게 청정한 마음을 얻음이요,
열째는 선지(禪支)를 원만히 갖추어 선정을 얻음이요,
열한째는 많이 듣기를 좋아하여 지혜를 얻음이요,
열두째는 교만을 깨뜨려 지혜를 얻음이요,
열셋 째는 삿된 소견을 버리고 올바른 소견을 얻음이요,
열넷째는 각(覺)과 관(觀)을 내지 않아서 진실한 법계를 아는 것이요,
열다섯째는 중생을 평등이 보아 크게 슬픈 마음을 얻음이요,
열여섯째는 중생을 교화하되 피로하고 게으름이 없어 대자비를 얻음이요,
열일곱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법을 보호함이요,
열여덟째는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 신통을 얻음이요,
열아홉째는 부처님을 보기 위해 부처님을 염함이요,
스무째는 착한 생각을 닦아 12인연의 깊은 지혜를 얻음이요,
스물한째는 인욕하는 지혜를 얻음이요,
스물두째는 무생인을 얻음이요,
스물셋째는 온갖 공덕을 믿음이요,
스물넷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얻음입니다.’
선남자야, 이때 정성왕이 이러한 법문을 듣고는 곧 남녀 권속과 신하와 백성을 교화하여 그때 나라 안에서 9만 9천억 중생이 다 함께 출가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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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정성 비구가 이미 출가한 뒤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어떻게 하여야 출가했다 하겠습니까?’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 이름은 정성이니, 으레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할 것이라, 자신의 경계가 깨끗하면 비구라 할 것이며 출가했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그때 비구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고요함을 즐겨하여 생각하되 ‘경계란 곧 눈으로 보는 것이요, 공하다 함은 곧 깨끗한 경계를 말함이니, 이 경계가 곧 부처님 나라요, 귀와 코와 혀와 몸도 이와 같으며, 뜻이란 것도 곧 경계니 만약 뜻의 공함을 본다면 이것이 깨끗한 경계가 되며, 이것이 바로 부처님 국토며 한 세계며 공한 세계며 중생의 세계며 모양 없는 세계며 원 없는 세계며 뜻 없는 세계며 함이 없는 경계다’라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정성 비구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몸과 마음이 거뜬하여졌는데, 몸과 마음이 거뜬하여짐에 따라 한량없는 신통을 얻었으며 신통을 얻고는 즐거운 말 걸림 없는 다라니 문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야, 그때의 정성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곧 너의 몸이며 권속은 곧 너에게 앞으로 법을 들을 대중 보살들이니라.”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 경문을 말씀하실 때, 1만 8천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8천 중생이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선남자야,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 하는 사람은 마땅히 법답게 말하며, 법답게 살아 갈 것이니라. 왜 그러냐 하면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나도 마땅히 부처가 되어서 여러 중생을 청하여 법의 맛[法味]을 알려 주리라’ 하고 청하고 나서는 미묘한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지 못하며, 청정한 계율을 보호하지 못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만족함을 닦지 않으며, 착한 법 가운데 얻는 것이 적다면 이것은 사람을 속여 법답게 말하지 못하고 법답게 살아가지 못함이라 하며,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내가 부처가 되어 중생들에게 법 맛을 알려주리라’ 하고 청하고 나서 능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연설하며, 계를 보호하며, 부지런히 정진을 닦으며, 욕심이 적어 만족을 알며, 착한 법을 많이 얻어도 만족한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은 속이지 않고 법답게 살아간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국왕이 많은 손님을 청하고는 미리 손님 대접할 준비를 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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