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시대는 바뀔지라도(권수정혜결사문)

근와(槿瓦) 2015. 11. 13. 21:26

시대는 바뀔지라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난다. 는 말이 있다. 땅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일어설 길이 없다. 마음이 어리석어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고, 그 마음을 깨달아 무한한 작용을 하는 이는 부처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요지는 한 마음에 달린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 부처를 찾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지눌(知訥)이 젊어서부터 조사(祖師)의 세계에 몸을 던져 선원(禪院)을 두루 다니면서, 부처님과 조사가 중생을 위해 자비를 내리신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요점은 우리들에게 얽힌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 안으로 거두고 밖으로 찾지 못하게 한 것이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부처님의 경지를 알려고 한다면 그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라'는 가르침과 같은 뜻이다.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을 보고 듣고 외고 익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서, 자신의 지혜로써 살피어 그 말씀대로 수행하라. 그렇게 하면 스스로 불심(佛心)을 닦고 불도(佛道)를 이루어 몸소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의 일상적인 소행을 돌이켜 보면, 불법을 빙자하여 나니 너니 하면서 이기적인 일에 구차스럽고 풍진 속에 빠져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옷과 밥만 축을 내니, 비록 출가했다고 한들 무슨 득이 있겠는가.

 

애닯다, 삼계(三界)를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세속을 뛰어넘는 수행이 없으니, 다만 사내의 몸을 받았을 뿐 대장부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위로 도를 넓히는 일에 어긋나고 아래로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며, 다른 한편 네 가지 은혜(四恩 : 부모, 나라, 중생, 삼보의 은혜)를 저버렸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를 한심스럽게 여겨 왔다. 때마침 임인(임인, 1182)년 정월 서울(그당시 開京)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석했다가 하루는 동문 10여 인과 함께 언약을 하였다.

 

'이 모임이 끝난 후 우리는 세속적인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속에 은거하면서 동사(同社)를 만들어, 항상 선정(禪定)을 익히고 지혜를 닦기에 힘쓰자. 예불하고 독경하고 운력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소임에 따라 수양하여 한평생을 구속 없이 지내면서 진인(眞人) 달사(達士)의 높은 행을 따른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말법(末法) 시대라 정도(正道)가 가리워졌는데 어떻게 선정과 지혜에 힘쓸 수 있겠는가.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淨土)의 업을 닦는 것만 못할 것이다.'

 

나는 말하였다.

시대는 바뀔지라도 심성은 변하지 않는다. 법이 흥하고 쇠한다고 보는 이는 바로 삼승권학(三乘權學)하는 이들의 견해이니 지혜 있는 사람은 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대들과 나는 이 최상승(最上勝) 법문을 만나 보고 듣고 익혔으니 어찌 숙세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다행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제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권학(權學)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그것은 조상을 저버리고 최후의 불종(佛種)을 끊는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염불과 독경과 만가지 행(萬行)을 닦는 일은 수행자가 지녀야 할 떳떳한 법이므로 무엇인들 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근본을 찾지 않고 겉모양(相)에 집착하여 밖으로 찾는다면, 지혜 있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화엄론(華嚴論)>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일승교문(一乘敎門)은 근본지(根本智)로써 이루는 것이므로 일체지승(一切智乘)이라고도 한다. 허공과 같이 넓은 시방세계(十方世界)가 부처님의 경계이므로 모든 부처님과 중생들의 마음 경계(心境)가 서로 섞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겹쳐 있다. 그래서 부처가 있는 세계니 부처가 없는 세계니 말하지 않고, 상법(像法)이니 말법(末法)이니도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항상 계시고 정법(正法)이 언제나 있다고 한 것은 요의경(了義經)이고, 이 세상은 더럽고 저 세상은 깨끗하다고 보거나 부처님이 있는 세계니 없는 세계니 혹은 상법이니 말법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불요의경(不了義經)이다.'

 

또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래(如來)가 그릇된 소견을 가진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여 복덕의 세계를 조금 말씀하신 것 같지만, 사실에 있어서 여래는 출현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셨다. 도를 바로 아는 이라야 지혜와 경계가 저절로 합해져 여래가 출현했다거나 입멸(入滅)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선정과 지혜의 두 문으로 마음의 때를 다스린다. 생각이 있고 상(相)이 있는 자아(自我)의 소견으로 도를 구한다면 그것은 끝내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에게 의지하여 자신의 교만을 꺾고 공경하는 마음이 철저해야만 비로소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 법으로 결택(決擇)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성인의 가르침이 이와 같은데 어찌 경솔하게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요의(了義)의 간절한 말씀을 따르고 권학 방편의 말에 팔리지 말라.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