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32)-32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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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신통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오며
그 마음 고요하고 교만 없어서
대승을 행하면 인욕 갖추며.
미묘한 범(梵)의 음성 두루 갖추어
중생들 듣기를 즐겁게 하오며
대승을 닦기 좋아한다면
이 사람 능히 중생의 말을 해득하리라.
짓는 모든 업 국토를 청정케 하면
머지않아 그지없는 몸 얻게 되리며
지심으로 이런 법 듣는다면
그지없고 위없는 즐거움 받으리.
허공에 노닐며 끝까지 통하고
큰 바다 물방울을 헤아릴지라도
대승의 덕은 연설할 수 없으리니
그러므로 대승은 헤아리기 어렵다네.
그때 세존께서 다시 해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이러한 경전을 받아 가져 스스로 자기의 깊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자 할진대, 마땅히 문구(門句)와 법구(法句)와 금강구(金剛句)를 받아서 지닐지니라. 지심으로 문구를 관찰하는 이는 모든 법 가운데 문호(門戶)를 지음이니라. 이른바 ‘아(阿)’는 일체 법문이니 ‘아’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므로 일체 법이 다 덧없음을 말함이요, ‘파(波)’도 일체 법문이니라. ‘파’라는 것은 가장 으뜸이란 뜻이요, ‘나(那)’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나’라는 것은 모든 법이 막힘없다는 뜻이요, ‘타(陀)’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타’라는 것은 그 성품이 모든 법의 성품을 조복한다는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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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沙)’도 또한 모든 법문이니 ‘사’라는 것은 모든 법을 멀리 떠남이요, ‘다(多)’도 또한 모든 법문이니 ‘다’라는 것은 모든 법의 진실함이요, ‘가(迦)’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가’라는 것은 모든 법이 조작함도 없고 느낌도 없음이요, ‘사(娑)’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사’라는 것은 모든 법이 분별이 없음이니라.
‘가(伽)’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가’라는 것은 여래의 바른 법이 깊고 깊어 끝이 없음이요, ‘암(闇)’도 또한 모든 법문이니 ‘암’이란 것은 생멸의 형상을 멀리 떠남이요, ‘담(曇)’도 일체 법문이니 ‘담’이란 것은 법계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아니함이요, ‘사(奢)’도 일체 법문이니 ‘사’라는 것은 사마타(奢摩他)를 갖추어 8정도를 얻음이요, ‘카(佉)’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카’라는 것은 모든 법이 허공과 같다는 뜻이니라.
‘차(叉)’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차’라는 것은 모든 법이 다했다는 뜻이요, ‘야(若)’도 일체 법문이니 ‘야’라는 것은 모든 법이 걸림 없음이요, ‘타(咃)’도 또한 모든 법문이니 ‘타’라는 것은 모든 법의 이치에 맞는 것[處]과 이치에 맞지 않는 것[非處]이요, ‘고(蠱)’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고라는 것은 5음(陰)을 관하고는 큰 이익을 얻음이니라.
‘다(茶)’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다’라는 것은 모든 법에 필경이 없음이요, ‘가(迦)’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가’라는 것은 몸이 고요해서 큰 이익을 얻음이요, ‘지(至)’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지’라는 것은 마음이 고요해서 온갖 나쁜 것을 떠남이요, ‘우(優)’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우’라는 것은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니고 보호함이니라.
‘사(蛇)’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사’라는 것은 잘 사유(思惟)함이요, ‘체(替)’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체라는 것은 모든 법에 머문다는 뜻이요, ‘수(修)’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수라는 것은 모든 법의 성품이 바로 해탈이라는 뜻이요, ‘비(毘)’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비’라는 것은 일체 법이 바로 다 비니(毘尼)니라. 비니는 능히 자신을 조복한다는 뜻이요, ‘시(時)’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시’라는 것은 모든 법의 성품이 더럽혀지거나 물들지 않음이니라.
‘아(阿)’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아’라는 것은 모든 법의 성품이 밝고 빛난다는 뜻이요, ‘사(娑)’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사’라는 것은 8정도를 닦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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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요, ‘바(婆)’도 또한 일체 법문이니 ‘바’라는 것은 모든 법이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라는 뜻이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것을 문구라 하나니 능히 염하는 마음을 청정히 한다면 그 마음이 청정하므로 중생의 근기를 아느니라.
법구(法句)라는 것은 일체 법이 해탈하는 인(印)이며, 일체 법이 둘이 없는 인이며, 일체 법이 상(常)·단(斷) 없는 인이며, 일체 법이 더하고 덜하지 않는 인이며, 일체 법이 평등하기가 허공 같은 인이며, 일체 법이 다섯 가지 눈[五眼]·도(道)의 인이며, 일체 법이 허공 같은 인이며, 일체 법이 분별없는 것이 허공 같은 인이며, 일체 법이 법계에 드는 인이니라.
일체 법이 진실한 인이며, 일체 법이 과거·미래·현재가 없는 진실한 인이며, 일체 법의 본 성품이 청정한 인이며, 일체 법이 공[空]한 인이며, 일체 법이 무상(無相) 인이며, 일체 법이 무원(無願) 인이며, 일체 법이 이치도 없고 이치 아님도 없는 인이며, 일체 법이 괴로움의 인이며, 일체 법이 나 없는[無我] 인이며, 일체 법이 고요한 인이며, 일체 법의 성품이 허물없는 인이니라.
일체 모든 법이 가장 으뜸가는 진리를 섭취하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법성대로 머무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필경 해탈하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번뇌[垢]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3세(世)를 초월한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의 맛이 다 같은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의 성품이 막힘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 성품이 생멸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 성품이 다툼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 성품이 각(覺)과 관(觀)이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색이 없어 볼 수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집[屋宅]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다스림[對治]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업과(業果) 없는 인이며, 일체 모든 법이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는 인이며, 일체 법이 나고 멸함이 없는 인이니라.
선남자야, 이런 것을 법구라 하나니 이런 법구는 과거·미래·현재 모든 부처님의 뿌리며, 이런 법인구(法印句)는 8만 4천의 법 무더기를 섭취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능히 이렇게 법 무더기를 관하는 사람은 곧 무생법인(無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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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忍)을 얻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한 이가 있더라도 이러한 법을 듣고 나면 곧 심을 수 있을 것이며, 마군의 업을 헐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이렇게 관한다면 곧 능히 다함없는 그릇[無盡器]의 다라니를 얻으리라. 이러한 법은 다 능히 8만 4천의 삼매와 8만 4천 중생이 행하는 성품을 섭취하리니, 이것을 법구라 하느니라.
금강구(金剛句)라는 것은 그 몸이 금강과 같아서 헐어지지 않나니, 그 까닭은 법의 성품은 헐 수 없기 때문이니라. 지혜의 성품은 능히 무명(無明)을 파괴하므로 지혜를 금강구라 하며, 5역(逆)의 죄는 모든 착함을 파괴하나니 그러므로 5역도 금강구라 하며, 부정관(不淨觀)은 능히 탐욕을 파괴하므로 부정함도 금강구라 하며, 사랑하는 마음[慈心]의 관은 능히 성냄을 파괴하므로 사랑하는 마음을 금강구라 하며, 12연(緣)을 관함은 능히 어리석음을 파괴하므로 연(緣)을 관함을 금강구라 하며, 모든 중생의 마음은 온갖 것을 섭취하므로 중생의 마음을 금강구라 하느니라.
한 중생의 마음이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 다 평등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한 부처님이나 모든 부처님이 다 평등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한 복밭이나 모든 복밭이 다 평등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일체 모든 법이 허공처럼 평등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일체 모든 법이 다 한 맛이므로 금강구라 하며, 일체 모든 법과 불법이 평등하여 차별 없으므로 금강구라 하며, 금강삼매는 일체 모든 마군을 파괴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여래의 묘한 음성은 온갖 나쁜 소리를 파괴하므로 금강구라 하며, 생멸 없음을 관하면 나고 늙고 죽는 것을 여의므로 금강구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법을 금강구라 하며, 견고한 글귀[堅牢句]라고 하며, 헐 수 없는 글귀[不壞句]라 하며, 부술 수 없는 글귀[不破句]라 하며, 평등한 글귀라 하며, 진실한 글귀[眞實句]라 하며, 둘이 없는 글귀[無二句]라 하며, 물러나지 않는 글귀[不退轉句]며, 크게 고요한 글귀[大寂靜句]며 허물을 지을 수 없는 글귀[無能無過句]며,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글귀[不增不減句]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글귀[無有有句]며, 법에 존재하지 않는 글귀[無有法句]이며, 진실한 글을 지닌 글귀[眞句有句]며, 부처님을 비방하지 않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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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不謗不句]며, 법을 의지하는 글귀[依法句]며, 승가와 함께하는 글귀[共僧句]며, 그러한 글귀[如爾句]며, 3세를 분별하는 글귀[分別三世句]며, 용맹하고 억센 글귀[勇健句]며, 범의 글귀(梵句)며, 자비의 글귀[慈句]며, 마음의 글귀[心句]며, 허공의 글귀[虛空句]이니라.
보리의 글귀[菩提句]며, 다함없는 글귀[不低句]며, 법 모양의 글귀[法相句]며, 마음·뜻·식별의 머묾 없는 글귀[心意識無住句]며, 파순의 글귀[波旬句]며, 마군을 파괴하는 글귀[破魔句]며, 위없는 글귀[無上句]며, 가장 뛰어난 글귀[無勝句]며, 광대한 글귀[廣句]며, 자신의 경계를 행하는 글귀[行己境界句]며,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는 글귀[入佛境界句]며, 각과 관이 없는 글귀[無覺無觀句]며, 법계의 분별을 내지 않는 글귀[法界所不分別句]며 글 없는 글귀[無句句]이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이러한 글귀의 경계를 아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보리수 밑, 금강사자 법좌에 앉으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8천 보살이 법문에 들어가는 다라니를 얻었고, 또 모든 중생이 평등삼매를 얻었다.
이때 모든 시방에서 온 보살들이 묘한 향과 꽃과 갖가지 흥겨운 풍악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저희들은 부처님께 예배하오니
모든 중생 소리를 능히 아시고
모양과 없음 하나라 하며
서른두 가지 묘한 상호 얻으셨도다.
중생의 하나하나 마음까지도
평등이 그 마음 섭취하시며
행과 행 없음 하나라 하시니
그러므로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여래는 진실로 인과를 깨달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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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위해 업보를 말씀하시며
진여(眞如)의 법계는 있고 없음 아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모든 중생이 각(覺)과 관(觀)이 없으며
마음 본래 청정해 탐욕 없는데
그 탐욕 인연 따라 생긴다 말씀하니
그러므로 참된 지혜인(眞智因)에 예배합니다.
부처님의 갖가지 모양 뵈오니
여래의 몸 본래 색 없건만
중생 위해 갖가지 나타내시니
그러므로 사자왕께 예배합니다.
모든 복밭이 한 밭으로 들어가도
그 한 복밭은 변치 않으며
법계는 흔들리거나 옮기지 않나니
그러므로 코끼리왕께 예배합니다.
모든 중생 마음 허깨비이라 관하고
모든 법 보리도 그렇게 관하며
모든 법의 평등함 두루 아시니
그러므로 평등도 없는 이께 예배합니다.
법계를 평등이 관하신지라
그러므로 평등한 법 말씀하시니
있지 않고 없지도 않음을 해탈이라 하시니
그러므로 두 가지 견해[二見]를 끊은 이께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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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을 땅에 떨어뜨리게 하고
모진 바람을 새끼로 얽어맨다 하며
수미산을 불어 움직이게 할 수 있다 해도
부처님 말씀은 두 가지라 말 못하리.
실다운 말 참된 말 청정한 말과
몸과 마음 청정함 허공 같으며
세간에 물들지 않음 연꽃 같으니
그러므로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만약에 능히 이런 덕 갖춘다면
즉시에 이런 공덕 얻을 것이니
저희들도 이러한 공덕 이해서
이러한 공덕 덩이에 예배합니다.
이에 모든 보살이 찬탄하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대개 큰 보배는 부처님이니, 부처님이 출세함은 곧 즐거움으로 출세함이며, 믿음으로 출세함이며, 염으로 출세함이며, 지혜로 출세함이며, 보시하려고 출세함이며, 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로 출세함이며, 자비로 출세함이며, 몸뚱이 버리기 좋아하므로 출세함이며, 부처님의 출세하심은 곧 12인연법의 이치로 출세함이며, 부처님의 출세함은 곧 4념처, 4정근·4여의·5근·5력·7각지·8정도의 온갖 착한 법으로 출세함입니다.”
이때 대중 가운데 혜취(慧聚)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벗어남이 곧 부처님의 출세함이며, 무명과 애욕을 벗어남이 곧 부처님의 출세함이며,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남이 곧 부처님의 출세함이며, 온갖 의심의 얽힘과 번뇌를 벗어남이 곧 부처님의 출세함이니, 왜냐하면 만약에 이러한 법으로 세상에 뛰어나지 않는다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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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진실로 너의 말과 같으니라.”
해혜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이러한 법을 보지 못하였다면, 그때 여래께서 출세하셨겠습니까? 출세하지 못하셨겠습니까?”
“선남자야,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낼 적에 진실로 이러한 법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위하여 펴 말해 주노라.
선남자야, 보살에 네 가지[이 네 가지 보살은 다른 말로 신발의(新發意) 보살, 구발의(久發意) 보살, 불퇴전(不退轉)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라고 한다. 신발의 보살이란 초발심(初發心)을 일으킨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구발의 보살이란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 지 오래된 보살이란 의미로,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보살이다. 불퇴전 보살이란 지혜를 얻고자 일으킨 마음이 더 이상 줄어듦이 없이 견고하며 확고한 보살이란 의미이다. 이 보살은 반야나 공의 가르침을 들어도 놀라거나 물러서는 일이 없는 지혜와 선정의 힘을 갖춘 보살이다. 일생보처의 보살이란 마지막 한 생을 보살로서 실천 정진하면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 예정된 보살이다.]가 있으니, 첫째는 처음 보리심을 낸 자요, 둘째는 보리도를 닦아 행하는 데 있는 자요, 셋째는 보리에서 견고하게 물러나지 않는 자요, 넷째는 한 생이면 부처의 지위에 있게 되는 자이니라.
처음 발심한 보살은 부처님의 상호를 보고는 곧 보리심을 내며, 수행하는 보살은 부처님이 원만히 갖춘 온갖 착한 법을 보고는 곧 보리심을 내며, 물러나지 않는 보살은 여래의 몸과 모든 법이 다 평등함을 보며, 한 생이면 부처의 지위에 있게 되는 보살은 여래가 지닌 온갖 공덕과 법까지도 보지 아니하나니, 그것은 혜안(慧眼)이 분명하고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며, 두 가지 소견을 끊었기 때문이며, 지혜가 청정하여졌기 때문이니, 만약에 청정함과 청정하지 아니함도 보지 않으며,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하지 않지도 않음을 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곧 분명히 여래를 보리라.
선남자야, 내가 옛적에 이렇게 연등불(然燈佛)을 뵈옵고 곧 무생인을 얻고 또 능히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을 분명히 알았으며, 얻고 난 뒤에는 곧 허공으로 7다라 나무 높이에 올라가 있었으며, 허공에 있기를 마치고는 모든 법계를 분명히 알았으며, 법계를 분명히 알고는 마음의 머물 곳이 없어졌으며, 머물 곳이 없어지고는 6만 삼매문을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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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연등불이 곧 나를 수기(授記)를 주시면서 ‘마납(摩納)아, 너는 후세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며, 호를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리라’ 하셨느니라. 나는 그때 수기하시는 음성을 도무지 듣지 못했으며, 또한 부처라는 생각이나 수기한다는 생각까지도 없었느니라. 나는 그때 세 가지 청정한 지혜를 지녔는데, 첫째는 나라는 생각이 없었고, 둘째는 부처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셋째는 수기한다는 생각이 없었느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나를 보지 않고, 중생을 보지 않으며, 바른 법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이름을 보지 않고, 모양을 보지 않으며, 인연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온갖 음(陰)이 다 법음(法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든 경계가 다 법의 경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모든 감관이 다 법의 감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과거가 다한 것과 미래에 나지 않는 것과 현재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몸을 물 속 달같이 관하며, 소리를 설할 수 없는 것이라고 관하며,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으로 관함이니라.
또 세 가지 청정함이 있었으니 공과 무상과 무원을 닦음이니라.
만약에 이와 같이 보았다면, 곧 이것이 진실하게 수기를 본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이러한 소견을 지녔다면 진실한 소견이라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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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11권
북량 천축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5. 해혜보살품 ④
그때 해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로서 만약에 이러한 여러 소견[見]을 다 갖춘 이가 있다면 어떠한 원력을 내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러한 사람은 본래대로 발원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설사 마음이 선정에 있거나 선정에 있지 않거나 간에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본래대로 발원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평탄한 땅 넓은 감자밭에 물을 대려고 할 때에 그 물 구멍을 열어 흘러가게 하면 다시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저절로 고루 퍼지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나니, 설사 선정에서 마음을 한 생각에 집중하거나 선정에 있지 않아 생각을 아니 할 때이거나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본래와 같이 발원하여서 닦는 선근을 다 중생들과 더불어 하께 하며 그리고는 위없는 불법에 회향하며, 보살의 마음이 깨끗하면 계(戒)와 인(認)과 혜(慧)도 또한 청정하여서 불법 및 모든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 없음을 보나니, 비록 이러한 서원은 있을지라도 이러한 마음은 없는 것이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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