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解深密經)

35-2-해심밀경-4

근와(槿瓦) 2015. 11. 2. 20:10

35-2-해심밀경-4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9 / 86] 쪽

하지 않은 자라면 또한 성숙할 것이다.

 

만일 모든 유정들이, 널리 말하건대 내지 아직 상품(上品)의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자량을 쌓지 못했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하다면, 성품이 강직하지 못해 비록 폐하고 세울 것을 생각하고 선택할 힘과 능력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기의 견취(見取)에 머물러 있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법을 듣더라도 나의 매우 깊은 밀의의 말을 여실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법에 믿는 마음을 낸다고 해도 그 뜻을 말을 따라 집착해 ‘일체 법은 단정코 모두 자성이 없으며, 단정코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단정코 본래 고요하며, 단정코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법에 대하여 없다는 견해와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얻을 것이다. 없다는 견해와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얻었음으로써 일체 모습은 모두 무상(無相)이라고 부정해 버리며,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비방하고 부정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이 있는 까닭에 변계소집상도 시설할 수 있는 것이니, 만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없는 모습이라고 본다면 그는 또한 변계소집상도 비방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세 가지 모습을 비방하고 부인한다’고 말하니, 비록 나의 법에 대하여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긴 하지만 뜻이 아닌 것 가운데서 뜻이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의 법에 대하여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뜻 아닌 가운데 뜻이란 생각을 일으키는 까닭에, 옳은 법 가운데서 옳은 법이라 지니고 잘못된 뜻 가운데서 옳은 뜻이라고 지닌다. 그는 법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킨 까닭에 복덕이 증장하긴 하지만 뜻이 아닌 것에 대하여 집착을 일으킨 까닭에 지혜를 잃으며, 지혜를 잃는 까닭에 광대하고 무량한 좋은 법에서 물러난다. 다시 어떤 유정이 법을 법이라 하고 뜻 아닌 것을 뜻이라고 하는 말을 남에게서 듣고 그 소견에 따른다면, 그는 곧 법에서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뜻 아닌 것에서 뜻이란 생각을 일으켜, 법을 집착하여 법이라 하고 뜻 아닌 것을 집착하여 뜻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라, 그들은 함께 선법(善法)에서 물러나리라.

 

만일 어떤 유정이 이러한 견해를 따르지는 않지만, 남에게서 홀연히 ‘일체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30 / 86] 쪽

열반이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두려움을 내고, 두려움을 내고는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군의 말이다’고 말하며, 이러한 소견을 내고는 이 경전에 대하여 비방하고 헐뜯고 욕한다면, 이런 인연으로 큰 쇠퇴와 손해를 얻고 큰 업장(業障)을 범하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일체 모습에 대하여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뜻이 아닌 것을 뜻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는 이가 있으면 이는 광대한 업장을 일으키는 방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량한 중생을 구렁에 빠뜨리고, 그들로 하여금 큰 업장을 얻게 하는 까닭이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유정이 선근을 심지 못했고, 업장을 맑히지 못했고, 상속을 익히지 못했고, 승해를 많이 닦지 못했고,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모으지 못했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하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한 무리로서 버리고 세울 것을 가릴 힘과 능력이 있으나 항상 자기의 견취 가운데 안주한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법을 듣더라도 나의 매우 깊은 밀의(密意)의 말을 여실히 알지 못할 것이며, 또 이 법에 믿음을 내지 못할 것이며, 옳은 법 가운데 잘못된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옳은 뜻 가운데 잘못된 뜻이란 생각을 일으킬 것이며, 옳은 법을 잘못된 법이라 집착하고 옳은 뜻을 잘못된 뜻이라고 집착하며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는 마군의 말이다’고 소리 높여 말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는 이 경을 비방하고 욕하고 거짓이라고 부정하며 무량한 문으로써 이러한 경전을 헐뜯고 무시할 것이며, 이 경전을 믿는 모든 이들을 원수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모든 업장에 장애되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다시 이러한 업장에게 장애되는 것이다. 이러한 업장은 처음에 시설하기는 쉬우나 백천 구지(俱胝) 나유타(那由陀)겁을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나의 좋은 말이며 좋은 제도의 법인 비나야와 가장 청정한 뜻의 즐거움으로 말한 좋은 가르침 가운데서 이와 같은 여러 유정들의 무리가 갖가지로 차별되는 견해를 얻는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고 본래 적멸이며

 

                                                                                                                               [31 / 86] 쪽

모든 법의 자성은 언제나 열반이니

지혜로운 자 뉘라서 밀의(密意)가 없다 말하리오.

상(相) · 생(生) · 승의(勝義)의 무자성

이와 같이 내가 이미 드러냈으니

만일 부처님의 이러한 밀의 모르고

바른 길을 잃어버린다면 가지 못하리라.

모든 맑은 도에 의지해 청정하려면

이 하나만 의지할 뿐 두 번째는 없나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 1승(乘)을 세웠건만

유정들의 성품은 차별이 없지 않더라.

중생계의 무량한 중생들

한 몸만 제도하고 적멸로 나아가니

대비(大悲)와 용맹으로 열반 깨치고

중생들 버리지 않을 자 매우 얻기 어려워라.

미묘하여 알 수 없는 무루세계

그곳의 해탈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모든 뜻 이루어져 혹(惑)과 고(苦)가 없거늘

두 가지 종성 달리 말해 상(常)과 낙(樂)이라 하네.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의 밀의(密意)의 말씀은 매우 기이하고 희유하고 극히 미묘하며 매우 깊으며, 지극히 통달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혹은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行相) 중에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색온(色蘊)이라 하고, 혹은 자성의 모습이나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며, 거짓 이름을 세워 색

 

                                                                                                                             [32 / 86] 쪽

온의 생함[生]을 삼고 색온의 멸함[滅]을 삼으며, 색온의 영원히 끊어짐[永斷]과 변지의 자성의 모습과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니, 이것을 변계소집상이라고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을 시설하셨습니다. 만일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이 되는 행상이라면 이는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가운데서는 변계소집상이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이 자성의 무자성성(無自性性)과 법무아(法無我)와 진여(眞如)인 청정의 소연(所緣)을 원성실상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색온에서와 같이 이렇게 다른 온에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온에서와 같이 이렇게 12처(處)의 낱낱 처에 대해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12유지(有支)의 낱낱 지에 대해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4식(食)의 낱낱 식에 대해서도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6계(界)와 18계(界)의 낱낱 계에 대해서도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거짓 이름을 세워 고제(苦諦)와 고제의 변지(遍知)와 혹은 자성의 모습과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니, 이것이 변계소집상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을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이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곧 이 자성의 무자성성과 법무아와 진여인 청정의 소연을 원성실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고제(苦諦)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다른 제(諦)에서도 모두

 

                                                                                                                            [33 / 86] 쪽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성제(聖諦)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모든 염주(念住)와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지(覺支)와 도지(道支)에서도 낱낱이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거짓 이름을 세워 정정(正定)을 삼고, 또 정정의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과 바른 닦음과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으며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게 함이라 하며, 혹은 자성의 모습이라 하고 혹은 차별의 모습이라 하니, 이를 변계소집상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을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은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곧 이 자성의 무자성성과 법무아와 진여인 청정의 소연을 원성실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비습박약(毘濕縛藥)은 일체 산약(散藥)과 선약(仙藥)의 방문에 모두 상응하여 넣을 수 있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了義)의 가르침은 두루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 모두 있을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림의 바탕은 일체 그림 그리는 사업에 보편하여 모두가 한맛이며 청 · 황 · 적 · 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채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의 가르침은 두루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서도 모두 한맛이며, 또 그 모든 경전의 요의가 아닌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요리한 모든 진수(珍羞)와 모든 떡과 과일에 숙소(熟酥)를 넣으면 더욱 훌륭한 맛을 내는 것처럼, 세존께서는 이 모든 법의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

 

                                                                                                                             [34 / 86] 쪽

성에 의지한 요의의 가르침을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 두어 수승한 환희를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허공이 모든 일체 처소에 보편하되 모두 한맛이어서 일체 짓는 바를 장애하지 않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의 말씀은 일체 요의가 아닌 경에 보편하며 모두 같은 한맛이어서 일체 성문과 독각과 모든 대승의 수행하는 사업을 장애하지 않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여래가 말한 매우 깊은 밀의(密意)의 말과 뜻을 잘 알았고 또 이 뜻의 비유를 잘 들었으니, 이른바 세간의 비습박약과 채색의 그림 바탕과 숙소와 허공이다. 승의생이여, 그렇고 그렇다. 틀림없으니 이와 같이 그대는 받아 지녀라.”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언젠가 바라니사(婆羅尼斯) 선인이 떨어진 곳, 사슴에게 베푼 동산에서는 오직 성문승으로만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4제법으로 바른 법륜(法輪)을 굴리셨습니다. 매우 기이하고 매우 희유한 일로서 일체 하늘과 인간에서 누구도 일찍이 굴린 이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때 굴린 법륜은 그보다 나은 것이 있고 용납할 것이 있어 요의가 되지 못하였으니, 모든 시비가 발을 붙일 곳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옛날에 두 번째로 오직 대승을 향해 수행하는 이들을 위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에 의지해 은밀한 모습으로 바른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비록 훨씬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였사오나 그때 굴린 법륜 또한 그보다 나은 것이 있고 용납할 것이 있어 요의가 되지 못하였으니, 모든 시비가 발을 붙일 곳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 번째로 널리 일체승을 향하는 이들을 위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인 무자성성이라 말씀하시고, 이에 의지해 뚜렷한 모습으로 바른 법륜을 굴리십니다. 제일 기이하시고 가장 희유하십니다. 지금 세존께서 굴리신 법륜은 그보다 나은 것이 없고 용납할 것도 없어 참으로 요의이니, 모든 시비가 발

 

                                                                                                                              [35 / 86] 쪽

을 붙일 곳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인 것에 의지해 말씀하신 매우 깊은 요의의 교법을, 선남자ㆍ선여인이 듣고 믿고 쓰고 지니고 공양하고 퍼뜨리고 받아 외우고 닦고 이치대로 생각하고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킨다면 복덕이 얼마나 생기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승의생이여, 그런 선남자ㆍ선여인에게 생기는 복덕은 무량하고 무수하여 알기가 어려우니, 내가 지금 그대에게 조금만 말하리라.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수(數) · 산(算) · 계(計) · 유(喩) · 오파니살담(鄔波尼殺曇)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과 같다. 소 발자국의 물을 4대해의 물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널리 말하자면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과 같다. 이와 같아서 모든 요의가 아닌 경을 듣고 믿고, 나아가 그 수행하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얻은 공덕을, 지금 말한 요의경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서 모인 공덕이나 나아가 그 닦은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모인 공덕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널리 말하면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법에서 이 교법을 저희들이 무엇이라고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승의요의(勝義了義)라는 교법이니, 그대들은 이렇게 받들어 지녀라.”

 

이 승의요의의 교법을 말씀하셨을 때 큰 모임 가운데 있던 60만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30만 성문이 티끌[塵垢]을 멀리 벗어나 모든 법에 법안(法眼)이 맑아졌으며, 15만 성문이 모든 번뇌[漏]가 영원히 다해 심해탈(心解脫)을 얻었으며, 7만 5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해심밀경(解深密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55-3-해심밀경-6  (0) 2015.11.10
45-3-해심밀경-5  (0) 2015.11.08
28-2-해심밀경-3   (0) 2015.10.27
18-1-해심밀경-2   (0) 2015.10.24
10쪽-1권-해심밀경-1번째   (0)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