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28)-280

근와(槿瓦) 2015. 11. 11. 01:37

대집경(28)-28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71 / 1773] 쪽

보시로써 거둬줌은 초발심

고운 말로 거둬줌은 짓는 것이며,

중생을 이롭게 함은 옳은 사유

나와 남을 다 이롭게 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자비를 닦음은 발심과 지음이며

3세를 구별치 않음은 옳은 사유이며,

중생을 위해 몸·마음을 청정케 하고

기쁨과 버림을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바른 법을 얻음은 초발심

복밭을 청정히 함은 짓는 것이며,

자기 몸을 장엄함은 옳은 사유

중생을 조복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음마(陰魔)를 파괴함은 초발심

번뇌의 마를 여읨은 짓는 것이며,

생사의 마를 파괴함은 옳은 사유

마의 원수를 부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신염(身念)을 닦음은 초발심

수념(受念)을 닦음은 짓는 것이며,

심념(心念)을 닦음은 옳은 사유

법념(法念)을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괴로움을 분명히 앎은 초발심

원인을 멀리 여읨은 짓는 것이며,

 

                                                                                [272 / 1773] 쪽

멸함의 진실을 증득함은 옳은 사유

바른 길을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신근(信根)을 닦음은 초발심

모든 힘을 닦음은 짓는 것이며,

삼매를 염함은 옳은 사유

지혜를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몸과 마음 고요함은 초발심

삿된 소견 여읨은 짓는 것이며,

이름과 색[名色]을 관함은 옳은 사유

정진하여 후퇴하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나와 내 것 없음은 초발심

묽음[縛]도 풂[解]도 없음은 짓는 것이며,

가고 옴이 없음은 옳은 사유

법의 성품 흔들리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교만을 멀리 여읨은 초발심

탐냄과 성냄을 제거함은 짓는 것이며,

12인연 관함은 옳은 사유

어리석음과 애욕을 여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이러한 온갖 모양[相] 멀리 여읜다면

모든 장애를 파괴하고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구족하여서

공덕을 말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리니,

여래가 이 정진법을 연설하자

 

                                                                                [273 / 1773] 쪽

십천(十千) 중생들과

5천 보살들이 무생인을 깨달아서

한량없는 사람·하늘 보리심을 내었네.

견고장엄이란 바로 내 몸으로서

어느 보살보다 정진이 뛰어났으니,

만약에 훌륭하고 참된 도를 얻으려면

마땅히 옛 부처님처럼 정진을 닦아야 하네.

 

그때 수비(修費) 범천이 해혜보살에게 말하였다.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어떤 것입니까?”

 

해혜보살이 대답하였다.

“범천이여, 불법(佛法)이란 일체 법이요, 일체 법이란 곧 불법이니, 그러므로 불법의 성품은 일체 법의 성품과 같으며, 일체 법의 성품은 곧 불법의 성품과 같아서 불법과 일체 법은 그 성품이 차별 없소. 일체 법이 고요하다면 불법도 고요하며, 일체 법이 공하다면 불법도 공하나니, 범천이여, 일체 법이란 곧 12인연이며, 보리도 또한 12인연이오.”

 

범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대저 불법이란 것도 삼계의 법에 지나지 않습니까?”

 

“범천이여, 삼계의 성품과 불법의 성품은 차별이 없나니, 삼계가 평등하다면 불법도 평등하여서 두 가지 형상이 없는 것이오.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처럼 불법도 그러하여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소. 성품이 이렇게 공한 까닭에 위도 없고 아래도 없소. 범천이여, 만일 선남자가 불법을 보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하오.

 

범천이여, 대저 불법이란 처소[處]도 아니고 처소 아닌 것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고 멸(滅)도 아니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아롱진 유리나 허공계의 색도 아니며, 색과 색 없는 것을 떠나서 그 형태와 바탕이 모지고 둥글거나 길고 짧은 것이 아니며, 모양이 없으면서 모양 없는 모양이며, 얽맴도 없고 풂도 없나니 이러한 모양 없는 것을 불법이라 하오. 모양 없고 글귀 없

 

                                                                                 [274 / 1773] 쪽

고 문자가 없어서 청정하고 고요하며, 공한 이치·모양 없는 이치·덩어리 없는 이치·필경 나옴이 없는 이치·깨달아 아는 이치는 말할 수 없고 볼 수도 없음이니, 볼 수 없는 것을 고요한 이치라 하고, 고요한 이치는 공한 이치, 공한 이치는 덩어리 없는 이치, 덩어리 없는 이치는 진실한 이치, 진실한 이치는 필경 나오지 않는 이치, 필경 나오지 않는 이치는 멸하지 않는 이치, 멸하지 않는 이치는 처소가 없는 이치, 처소가 없는 이치는 곧 법의 성품이요, 법의 성품은 곧 불법이니, 이것을 배우는 법이라 하고, 아라한(阿羅漢) 법이라 하고, 연각법(緣覺法)이라 하고, 불법이라 하는 것이오. 이러한 불법과 다른 여러 법도 머무는 처소가 없고, 나오지도 멸하지도 않고, 색과 형태와 바탕이 모지고 둥글거나 길고 짧은 것이 없으며, 모양 없고, 밝음과 어둠도 없어서 일체 법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나니, 불법을 구함이란 부처님·불법과 일체 법을 말하는 것이오. 보살마하살 보리수 밑 도량에 앉아서 다 진실히 알아보나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正法]은 머무는 처소가 없기 때문에 일체 법도 머무는 처소가 없고, 불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체 법도 얻을 수 없으며, 불법이 평등하기 때문에 일체 법도 평등한 것이라오. 만약에 인연이 없으면 종성(種姓)이 없고, 종성이 없으면 나오거나[出] 멸함[滅]이 없고, 나오거나 멸함이 없으면 진실한 것이니, 진실한 지혜란 곧 진실한 성품이어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법이 다 불법이라오. 왜냐하면 3세에 통달하여 장애가 없기 때문이니, 장애가 없음은 곧 부처님 지혜요, 부처님 지혜는 곧 18불공법(不共法)이요, 18불공법은 일체 법을 거둬주는 것이라오. 그러므로 모든 법은 곧 불법이어서 모든 법과 불법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는 것이오.”

 

범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불법을 분명히 보았습니까?”

 

“범천이여, 불법은 존재가 아니므로 볼 수 없나니, 그대는 어찌 분명히 보았냐고 말하는 것이오. 일체 법은 다 볼 수 없으니, 분명하다는 것은 불법이 두 가지 모양 없음을 말함이오.”

 

범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여래는 무엇 때문에 ‘부처님은 일체 모든 법을 알고 본다[知見]’

 

                                                                                [275 / 1773] 쪽

고 말하였습니까?”

“범천이여, 여래의 불법이 만일 일정한 모양이 있다면 분명히 알고 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선남자여, 그렇다면 불법은 없는 것입니까?”

“범천이여, 법이 만약에 정함이 없다면,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또 있고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어찌 분명히 알고 본다고 말하겠소.”

 

“선남자여, 여래는 어떻게 불법을 말씀하셨습니까?”

“범천이여, 허공을 말함과 같아서 허공의 성품은 실상 일정한 모양이 없나니, 불법도 그러한 것이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불법은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낼 적에 이러한 법을 듣고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음은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바른 깨달음[正覺]의 성품도 역시 가히 헤아릴 수 없겠습니다.”

 

“범천이여, 부처님의 말씀은 보리심을 내도록 하는 것이므로 들어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오. 범천이여, 만약 여기에 집착한다면 겁내고 두려워할 것이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몸과 목숨을 아낀다면 겁내고 두려워할 것이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장애가 있다면 겁내고 두려워할 것이고 장애가 없다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나와 내 것에 집착한다면 겁내고 두려워할 것이고 나와 내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어떤 힘을 지니었기에 깊은 불법을 들어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범천이여, 여덟 가지 힘이 있으므로 깊은 불법을 들어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그 여덟 가지란, 첫째 믿음의 힘, 둘째 착한 벗의 힘, 셋째 많이 들은 힘, 넷째 선근의 힘, 다섯째 잘 생각하는 힘, 여섯째 교만을 깨뜨리는 힘, 일곱째 크게 자비한 힘, 여덟째 법과 같이 머무는 힘이오. 범천이여, 보살은 이러한 여덟 가지 힘을 원만히 갖추었으므로 깊은 법의 연설을 들어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오.”

 

                                                                                [276 / 1773] 쪽

그때 세존께서 다시 해혜보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보살의 모든 힘을 잘 연설하였도다. 진실로 너의 말과 같이 보살이 이러한 힘을 원만히 갖춘다면 깊은 법을 들어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선남자야, 온갖 말하는 것을 음성이라 하지만, 보리의 성품은 말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나니, 말하거나 볼 수 없는 것을 으뜸가는 이치라 하느니라. 여래는 이러한 말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보지만,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보리를 연설하나니, 심(心)도 아니고 심수(心數)도 아니거늘, 하물며 음성과 문자이겠느냐.

 

선남자야, 여래는 여러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매우 깊은 법을 깨달았고, 깨닫고는 알음 없고, 깨달음 없고, 심(心)과 심수(心數)가 없고, 음성이나 문자가 없어서 말할 수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기 때문에 문자와 음성의 차례가 있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허공은 이 색법(色法)이 아니므로 볼 수 없으며, 대치(對治)도 아니고 조작도 아니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는데, 저 허공에 남자나 여자, 코끼리나 말의 모양을 만든다 하면, 그런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생각할 수 없겠나이다.”

 

“선남자야, 이것은 오히려 믿을 수 있거니와, 여래 세존이 ‘가히 설할 수 없음’을 알면서 연설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니라. 이 설법할 수 없음을 말하여도 진실로 아는 성품은 또한 설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이 법을 듣고서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오랫동안 부처님 계신 데서 여러 선근을 심은 줄 알라.

 

선남자야, 이러한 경전은 헤아릴 수 없나니,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거나 베껴 쓰거나 해설한다면, 이 사람은 곧 여러 부처님의 법장[法藏] 받아 지니며, 온갖 중생을 거두어 해설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약 어떤 보살이 한량없는 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분명히 보고

 

                                                                                 [277 / 1773] 쪽

나서 훌륭하고 묘한 7보로써 그 세계를 가득 채우며, 그것으로써 여러 부처님 세존에게 바친다면 이 사람의 복덕은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공덕은 비유로써 말하기 어렵나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바른 법을 옹호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때문에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해설하는 것만 같지 않느니라. 그 까닭은 법 보시가 음식 보시보다 뛰어남이니, 대저 음식 보시는 세간의 보시요, 법 보시는 출세간의 보시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바른 법을 옹호한다면 곧 네 가지로 거둬줌을 받으리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부처님의 거둬줌[佛攝]이요, 둘째는 하늘의 거둬줌[天攝]이며, 셋째는 복덕의 거둬줌[福攝]이요, 넷째는 지혜의 거둬줌[佛攝]이니라.

 

다시 부처님의 거둬줌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여러 부처님께 항상 친근함이요, 둘째는 어떠한 악마도 방해할 수 없음이요, 셋째는 다함이 없는 다라니를 얻음이요, 넷째는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게 함이다.

 

하늘의 거둬줌에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설법하는 곳은 다 청정함이요, 둘째는 설법할 때에는 중생이 즐겁게 들음이요, 셋째는 끝까지 다른 인연에 방해되지 않음이요, 넷째는 믿지 않는 자를 믿도록 함이다.

 

복덕의 거둬줌이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써 몸을 장엄함이요, 둘째는 모든 연설은 중생이 즐겁게 듣도록 입을 장엄함이요, 셋째는 불토(佛土)를 장엄함이요, 넷째는 이른바 석범(釋梵) 전륜성왕 따위의 종성(種姓)을 장엄함이다.

 

지혜의 거둬줌이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뜻에 맞추어 설법함이요, 둘째는 중생의 병고(病苦)를 알아서 그 병고에 따라 약을 베풂이요, 셋째는 큰 신통을 얻어서 여러 불토에 노는 것이요, 넷째는 법계를 두루 통달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약 이러한 공덕을 얻으려면 마땅히 부지런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옹호하여 가져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누가 법 옹호하고 중생 가엾이 여겨

 

                                                                                [278 / 1773] 쪽

이 경전 받아 지녀 자세히 설하면

천분의 일 정도의 내 말은

마치 큰 바다에 한 방울 물 같네.

은혜 알아 은혜 갚고 여래를 염한다면

이 사람 능히 법장을 지니어서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공양하고

또 불법을 옹호하리라.

한량없는 나라의 보배로 보시해도

지심으로 한 게송 외움만 같지 못하리니,

법 보시는 음식 보시보다 뛰어나므로

슬기로운 자는 법을 옹호하네.

시방 부처님과 하늘·용·귀신들이

공덕과 지혜로써 거둬주고

모든 상호를 장엄하게 수행함은

이 사람 바른 법을 옹호하는 때문이며,

항상 여러 부처님·선지식을 만나서

훌륭하고 진실한 도를 듣고

빨리 한량없는 다라니를 얻음은

이 사람 바른 법을 옹호하는 때문이며,

몸과 입과 뜻의 계를 청정케 하여서

 

                                                                                [279 / 1773] 쪽

큰 신통 갖추어 여러 나라에 놀고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6도(度)를 갖춤은

이 사람 바른 법을 옹호하기 때문이네.

티끌처럼 많은 세계 설할 수 없고

법 옹호하는 공덕 다 헤아릴 수 없나니

설할 수 없는 지혜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굳은 마음으로 바른 법 옹호할지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공덕보광(功德寶光)이란 한 보살이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예배하고 무릎 꿇어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 ?대집경전?가운데 말한 불법은 설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나이다. 만약 설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불법을 어떻게 옹호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렇고 그렇다. 여래의 바른 법은 진실로 설할 수 없으며, 여래의 깨달음도 설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은 바른 법은 비록 설할 수 없더라도 글자와 글귀가 있으니 글자와 글귀를 지님으로써 설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글자와 글귀를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베껴 쓰고 풀어 밝히는 것을 법을 옹호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또 법을 보호하는 길이 있으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베껴 쓰고 풀어 밝히는 사람을 보고는 공경히 공양하고 친근히 예배하며, 존중 찬탄하고, 스승 생각을 내어 옹호하며, 의복·음식·침구·탕약(湯藥)·방사(房舍)·등촉(燈燭)을 공급하며, 그의 말을 듣고는 거룩하다고 칭찬하며, 그의 종성(種姓)과 머무는 집을 보호하느니라. 또 그에게 시종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헐뜯는 말을 들으면 숨기고,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찬양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이러한 법 지닌 이를 잘 옹호한다면, 이 사람은 곧 불·법·승을 잘 옹호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공과 무상과 무원을 닦는다면, 이 사람은 곧 이 바른 법을

 

                                                                                 [280 / 1773] 쪽

옹호해 지니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하는 이를 볼 때 함께 거처하지 않고 변론과 설교로써 그 사람의 죄를 조복한다면, 이 사람은 곧 이 바른 법을 옹호해 지니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사람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아서 음식 생각 없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바른 법을 연설한다면, 이는 법을 옹호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러한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베껴 쓰고 풀어 밝힌다면 이는 법을 옹호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법의 한 글자나 한 글귀 듣기를 1유순 내지 7보(步) 동안이나 숨 쉬는 사이에까지라도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이는 법을 옹호함이라 하리라.

 

선남자야,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호는 대지성력(大知聲力)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고, 그 나라의 이름은 정광(淨光)이라 하고, 그 겁의 이름은 고현(高顯)이라 하였다. 그 국토는 순전히 푸른 유리 보배로 되었으며, 여러 보살 대중은 온갖 한량없는 세력을 성취하고 신통을 원만히 갖추고 지혜가 걸림 없어서 다 천상의 몸을 받아 지심으로 법을 들으며 출가한 이와 재가(在家)한 이의 차별이 없었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법을 옹호하기 위하여 대중과 함께 바른 법을 선포하셨는데, 그 모임 가운데 법혜(法慧)라고 하는 한 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느니라.

‘어떤 것을 법이라 하며 또 옹호한다 합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대저 6입(入)이란 경계를 즐겨 구하니, 만일 이것을 막는다면 법을 옹호한다 하리라.

 

선남자야, 눈[眼]이 색을 식별하는 것은 법이 아니니[非法], 이것을 멀리 여의면 법을 옹호한다 하며 내지 뜻[意]이 법을 식별하는 것도 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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