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26)-26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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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을 곧 걸림 없음이라 하며, 걸림 없음이란 나오지 않음이라 하나니, 나오지 않음이란 멸하지 않고 머물지 않음이며, 멸하지 않고 머물지 않음은 곧 함이 없는 모양이며, 함이 없는 모양이란 곧 머물지 않음이라 하며, 머물지 않음이란 모든 조작하는 업이 없음을 이름이니라. 뜻은 색(色)에 머물지 않고 내지 행(行)에도 머물지 아니하나니, 만일 이 네 가지에 뜻의 머묾이 없다면 이를 머묾 없음이라 하며, 머묾 없음이라면 서로 비슷한 것[相似]에서 아만(我慢)을 내지 않나니, 아만이 없으면 커지고 자라남이 없으며, 커지고 자라남이 없으면 인(因)이 없으며, 인이 없으면 각(覺)과 관(觀)이 없으며, 각과 관이 없음을 말 없음[黙然]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법은 그 뜻이 매우 깊으므로 만일 잘 믿으면 곧 해탈할 수 있고, 길이 뒤바뀌는 번뇌의 장애를 여의고, 과거·미래·현재 여러 부처님의 모든 법장[法藏]를 받아 지닐 수 있으리라. 이는 큰 선장[船師]이요, 길잡이요, 상주(商主)요, 주사(呪師)요, 의사로서 능히 3세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리니, 이를 불자(佛子)라 하느니라. 악마의 업에서 벗어나고 여러 악마 무리를 깨뜨려서 오래지 않아 정인삼매를 얻고, 능히 견고한 배(船)를 크게 장엄하여서 중생을 생사의 바다에서 제도할 수 있으리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모든 악마 무리를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만일 여러 법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능히 악마 무리를 파괴하여서 모든 경계의 인연을 구하지 않게 되리라.
선남자야, 네 가지의 마(魔)가 있으니, 첫째 음(陰)의 마요, 둘째 번뇌의 마요, 셋째 죽음의 마요, 넷째 천마(天魔:自在天魔)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법을 허깨비 모양[幻相]과 같다고 본다면 이 사람은 능히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여러 법은 다 공한 모양[空相]이라고 본다면 이 사람은 능히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不生不滅]고 본다면 이 사람은 능히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교만을 제거한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약 괴로움[苦]을 안다면 음(陰)의 마를 파괴하며, 원인[集]을 멀리 여읜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하며, 멸함[滅]을 증득한다면 죽음의 마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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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하며, 길[道]을 닦는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모든 함이 있는 법[有爲法]을 괴로움이라고 본다면 음(陰)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진실로 덧없음[無常]이라고 본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진실로 나 없음[無我]이라고 본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고요한 열반[寂靜涅槃]이라고 본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몸에 탐욕이 없어서 몸을 버리어 보시할 때 보리에 회향한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보시할 때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멀리 여읜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재물은 온갖 덧없음이라고 본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중생을 위해 자비를 닦아서 보시한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아견(我見)을 위하여 맑은 계율을 받아 지니지 않는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탐욕을 위하여 맑은 계를 받아 지니지 않는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생사의 허물을 멀리 여의기 위하여 맑은 계율을 받아 지닌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금계(禁戒)를 헐뜯는 자로 하여금 다 맑은 계를 가지려는 마음을 내게 하여 맑은 계를 받아 지닌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나[我]를 보지 않고서 나를 참고 참음을 닦는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중생을 보지 않고서 참음을 닦는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나고 죽음을 보지 않는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보리를 보지 않는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서 그 몸이 고요하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서 그 마음이 고요하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서 생사 없는 법을 관찰하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서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 나고 죽음을 굴리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5음(陰)이 되지 않고 선정을 닦는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18계(界)에 탐착하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12입(入)에 탐착하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다면 죽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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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착한 것으로써 보리에 회향한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음(陰)의 방편을 안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경계의 방편을 안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감관[入]의 방편을 안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이러한 갖가지 방편으로써 보리에 회향한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모든 법은 다 이 무상(無相)이라고 본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다 이 무상이라고 본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모든 법은 다 이 무원(無願)이라고 본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이 세 가지 법을 갖추어 보리에 회향한다면 천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몸과 몸의 이치[處]를 보아서 깨닫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느낌[受]과 느낌의 이치를 보아서 깨닫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번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마음[心]과 마음의 이치를 보아서 깨닫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마를 파괴할 것이며, 법(法)과 법의 이치를 보아서 깨닫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천마를 파괴할 것이며, 이와 같이 관찰하여서 끝내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이 사람은 곧 네 가지 마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나[我]에 집착한다면 마의 일을 더 할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나 있음도 알고 나 없음도 아느니라. 만일 어떤 법이 나 있음도 아니고 나 없음도 아니라면 한 법도 더하고 덜함이 없을 것이며,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게 되므로 보살은 그들을 위하여 위없는 대승을 장엄하려고 하느니라. 나를 위하기 때문에 장엄하는 것이 아니고 장엄하고는 생각을 하되 ‘누가 법을 장엄하여 견고해서 파괴되지 않게 하겠는가. 내 마땅히 장엄하리니, 내 또한 중생(衆生)·수명(壽命)·장부[士夫]를 파괴하기 위해 장엄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들이 나에 집착하여 삿되게 중생·수명·장부 따위의 소견에 의혹됨을 파괴하기 위하여 장엄하리라. 중생은 전도(顚倒)되어서 5음(陰)이 항상하고[常] 즐겁고[樂] 나이고[我], 깨끗하다[淨]고 보나니, 나는 마땅히 그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것을 덧없고[無常] 괴롭고[苦] 공하고[空] 내가 없다[無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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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참된 지혜를 얻게 할 것이다’라고 하리라. 알아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마음에 원하고 구함이 있다면 이 사람은 곧 집착한다 할 것이며, 원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집착이 없다 할 것이며, 집착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속이지 않을 것이며, 속이지 않으면 진실한 지혜를 얻어서 과거·미래·현재를 알고, 과거·미래·현재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끝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일 3세에 집착하는 생각을 짓지 않으면, 뒤바뀌지 않음이라 할 것이며, 보살행이라 하리라. 모든 중생의 여러 행을 분명히 알고 나서는 그 업(業)과 과(果)를 말하며, 또 탐내는 행·성내는 행·어리석은 행을 알며, 어떤 중생이 탐냄을 행하면서 성냄을 장엄하고, 성냄을 행하면서 탐냄을 장엄하고, 어리석음을 행하면서 탐냄을 장엄하고, 탐냄을 행하면서 어리석음을 장엄하고, 성냄을 행하면서 어리석음을 장엄하고, 어리석음을 행하면서 성냄을 장엄하는 것을 아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은 색에 탐착하고 소리에 성을 내며, 어떤 중생들은 소리에 탐착하고 색에 성을 내며, 어떤 중생들은 냄새에 탐착하고 맛에 성을 내며, 어떤 중생들은 맛에 탐착하고 냄새에 성을 내며, 어떤 중생들은 촉감에 탐착하고 법에 성을 내며, 어떤 중생들은 법에 탐착하고 촉감에 성을 내느니라.
다시 또 어떤 중생들은 탐욕은 미약하여도 성냄은 왕성하며, 어떤 중생들은 탐냄은 왕성하여도 성냄은 미약하며, 다시 또 어떤 중생들은 탐냄은 미약하여도 어리석음은 왕성하고, 어떤 중생들은 어리석음은 미약하여도 탐냄은 왕성하며, 어떤 중생들은 성냄은 미약하여도 어리석음은 왕성하고 어떤 중생들은 어리석음은 미약하여도 탐냄은 왕성하느니라.
다시 또 어떤 중생들은 색은 조복하여도 소리·냄새·맛·촉감·법 등은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소리는 조복하여도 색·냄새·맛·촉감·법 등은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냄새는 조복하여도 색·소리·맛·촉감·법 등은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맛은 조복하여도 색·소리·냄새·촉감·법 등은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촉감은 조복하여도 색·소리·냄새·맛·법 등은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법은 조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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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 색·소리·냄새·맛·촉감 등은 조복하지 않느니라.
다시 또 어떤 중생들은 마음이 고요하여서는 조복하여도 몸이 고요하여서는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몸이 고요하여서는 조복하여도 마음이 고요하여서는 조복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덧없음[無常]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조복하여도 괴롭고[苦] 깨끗하지 않고[不淨] 나 없음[無我]을 인하여는 조복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괴로움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조복하여도 덧없고 깨끗하지 않고 나 없음을 인하여는 조복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깨끗하지 않은 것 말함을 듣고서는 조복하여도 덧없고 괴롭고 나 없음을 인하여는 조복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나 없음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조복하여도 덧없고 괴롭고 깨끗하지 않음을 인하여는 조복되지 않느니라.
다시 또 어떤 중생들은 몸의 신통을 보고서는 조복하여도 타심지(他心知)로는 조복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타심지를 인하여는 조복하여도 몸의 신통을 인하여는 조복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은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서 늦게 해탈하기도 하고 어떤 중생들은 조금 정진하여 빠르게 해탈하기도 하며 어떤 중생들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빠르게 해탈하기도 하고 어떤 중생들은 조금 정진하여 늦게 해탈하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들은 인(因)으로 해탈하여도 연(緣)으로 해탈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연으로 해탈하여도 인으로 해탈하지 않으며, 인연으로 해탈하고 인연으로 해탈하지 않기도 하느니라.
또 어떤 중생들은 안법[內法]을 관찰하여 해탈하고 바깥은 관찰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바깥을 관찰하여 해탈하고 안을 관찰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안팎을 관찰하여 해탈하기도 하고 안팎을 관찰하지 않고서 해탈하기도 하느니라.
또 어떤 중생들은 즐거운 행(行)을 인하여 해탈하고 괴로운 행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괴로운 행을 인하여 해탈하고 즐거운 행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인하여 해탈하기도 하고 괴로운 행과 즐거운 행을 인하지 않고서 해탈하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들은 아름다움을 칭찬함을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꾸지람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꾸지람을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아름다움을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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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칭찬과 꾸지람을 인하여 조복하기도 하고 (칭찬과 꾸지람을) 인하지 않고서 조복되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들은 거슬리는 설법으로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순한 설법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순한 설법을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거슬림을 인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들은 거슬리고 순한 설법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거슬리고 순한 설법을 인하지 않고서 조복되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들은 간략한 설법을 들음으로써 조복하게 되고 자세한 설법을 인하지 않으며, 자세함을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간략함을 인하지 않으며, 자세함과 간략한 설법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자세함과 간략한 설법을 인하지 않고서 조복되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들은 4제(眞諦)로 인하여 조복하게 되고 4념처(念處)를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4정근(正勤)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4여의(如意)를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며, 5근(根)으로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5력(力)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7각분(覺分)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8정도(正道)를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느니라.
선남자야, 중생의 행은 헤아릴 수 없고 중생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으며, 중생의 조복(調伏)은 헤아릴 수 없고 들어가는 법문도 헤아릴 수 없으며, 중생의 경계도 헤아릴 수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얻고, 그리고 또 모든 중생의 행이 헤아릴 수 없음을 아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그물[羅網]이 많은 코가 있어도 사람이 그 속에서 주술(呪術)의 힘으로 그물을 찢고 나와 뜻대로 다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이 중생 속에 들어가 지혜의 주력(呪力)으로 번뇌의 그물을 헐어 뜻대로 자재롭나니,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하여도 중생이 행하는 바를 통달할 수 있느니라.”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처음 위없는 보리심을 낼 때, 중생의 이러한 행이 있음을 들어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나니, 이 일이 매우 어려워 헤아릴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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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사자의 아들이라면, 비록 처음 세상에 나와서 사자후를 듣더라도 겁내거나 두려워함이 있겠느냐?”
“그렇지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처음 보리심을 낼 때 중생의 행을 듣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불[火]이 비록 힘이 적더라도 마른 땔나무[薪]를 두려워하겠느냐?”
“그렇지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처음 위없는 보리심을 내고 나서, 지혜의 불을 얻음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는 이제 비유답지 않는 것으로써 비유하리라. 사리불아, 마치 맹렬한 불과 여러 마른 땔나무가 이레 동안을 지나 부딪치면, 으레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 온갖 마른 나무와 풀, 갖갖가지와 잎이 수미산처럼 많이 모여 있는데, 때마침 맹렬한 불에게 한 친구가 있어서 ‘네가 이제 어찌하려고 스스로 장엄하여 많은 도움을 구하지 않느냐. 저 땔나무의 무리는 많고 너는 단지 홀로이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자, 불이 대답하기를 ‘저 원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나의 힘으로 능히 대적할 것이요, 동무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였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으니라. 여러 번뇌가 다 한데 화합하여 그 세력이 왕성하더라도 보살의 지혜 힘은 능히 소멸하고 굴복시키리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힘이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힘이요, 둘째는 지혜의 힘이다. 보살이 만일 번뇌의 힘이 없다면 여러 중생과 함께 행할 수 없을 것이며, 또 중생들이 행하는 곳을 알 수 없어서 마땅히 성문과 연각을 증득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번뇌의 힘으로 두루 모든 존재에서 놀아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방편을 행한다고 하느니라. 사리불아, 작은 독사(毒蛇)가 동무를 필요로 하지 않음과 같이 처음 발심하는 이도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한량없는 반딧불[螢火]이 천 만억 수가 되더라도 해[日]의 광명을 막거나 덮을 수 없음과 같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러하여 아무리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번뇌가 있더라도 보살의 지혜 광명을 막거나 덮을 수 없느니라. 사리불아, 아가타(阿伽陀) 한 알의 약(藥)으로써 큰 독을 없애 버림과 같이, 보살의 지혜도 그러하여 작은 지혜의 약으로써 한량없이 큰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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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독을 헐 수 있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하늘이 한 맛[一味]의 물을 내렸는데, 땅의 차별에 따라 갖가지 맛이 됨과 같이, 보살마하살의 한 해탈 지혜도 또한 그러하여 중생이 근기에 따라 설법함이 갖가지로 다르니라. 사리불아, 염부나무[閻浮樹] 밑에 금진흙[金泥]이 있는데, 이 금진흙 속에 갖가지 보배가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처음 내는 보리 금진흙 마음속에도 또한 성문·벽지불의 보배가 있느니라.
사리불아, 모든 작은 왕[小王]들이 다 전륜성왕에게 매여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과 하늘도 그러하여 다 처음 발심하는 보살에게 귀속하느니라. 사리불아, 박복한 사람은 보배 비[寶雨]를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만일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곳에 여러 선근을 심지 않으면 보리심을 낼 수 없으리라. 사리불아, 사탕수수[甘蔗] 종자가 없으면 설탕[石蜜]의 여러 맛이 없으리니, 만일 보리심이 없다면 또한 갖가지 삼보의 맛이 없으리라.
사리불아, 기바(耆婆)의 의왕(醫王)이 항상 ‘천하의 모든 것은 약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법은 보리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사리불아, 아수라왕(阿修羅王)이 그의 세력을 다하여도 해와 달의 길을 가리거나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악마의 무리도 그러하여 그 세력을 다하여도 부지런히 행하는 보살이 보리도 닦는 것을 가리거나 막을 수 없으리라.
사리불아, 색계천(色界天)의 궁전이 공중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처럼, 부지런히 행하는 보살이 얻는 보리도 또한 그러하여 공중에 의지하여 머무느니라. 사리불아, 허공은 온갖 만물을 다 용납하여 받지만, 그러나 이 허공은 언제나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처럼, 한량없는 불법(佛法)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보살이 발심하여 불법을 탐구하더라도 그 불법은 언제나 더하거나 덜함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어떤 사람이 힘을 다하여 공중에 놀아도 허공의 성품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그 믿는 마음을 다하여 부처님 지혜를 행하더라도 이 부처님 지혜는 언제나 더하거나 덜함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질그릇[陶] 만드는 사람이 그릇을 완성하지 못하고는 그릇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의 착한 법도 또한 그러하여 아직 발심하지 못할 때는 이름을 갖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사람이 이미 전륜성왕을 보고 나서는 다른 나머지 작은 왕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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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만일 이미 보리심을 냈다면 다시 성문이나 연각의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뭇 보배는 아무 곳에서나 나지 않고 뭇 보배는 큰 바다 속에서 나는 것처럼, 사리불아, 삼보는 성문 보배 속에서 나지 않고 삼보는 보살 보배를 따라 나느니라. 사리불아, 태자(太子)를 임금이라고 하지 않고 임금이라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러하여 부처라고 하지 않고 부처라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라.
사리불아, 조그마한 보배라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그마한 보배도 큰일을 지을 수 있고 이익 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니,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처음 발심할 때를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되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이제 여러 보살마하살을 위해 이러한 비유로써 말하노니, 만일 이 비유를 듣는 이가 있으면 곧 보살이 안락하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에 불도를 증득하려 한다면
마땅히 의심[疑網心]을 없애야 하리니
부지런히 굳은 신심 닦는다면
곧 보리를 얻게 되리며,
정인삼매 닦는 이가
모든 법은 다 꿈같다고 널리 설하여
한량없는 세간에서 그 마음 깨끗이 한다면
곧 바른 깨달음의 도를 증득하리라.
부처님이 얻으신 도는 몸의 업이 아니고
입과 뜻의 두 업도 아니며,
함이 없는 진실한 성품도 그러하므로
마치 비유로써 말할 수 없네.
불도는 대(對) 없어 볼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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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과 같아 눈의 식별의 경계 아니고
온갖 정(情)의 감관[根]도 아니고
또 모든 감관의 경계도 아니며,
모양 아니고 음·입·계가 아니고
마음·뜻·느낌·생각·식별도 아니며
앎도 없고, 앎의 경계도 아니니
그러므로 부처님 경계 알 수 없다 하네.
부처님 대비는 헤아리기 어려워
한량없고 그지없고 걸림 없으며
글자 없고 소리 없고 설할 수 없어
능히 부처님 경계 아는 이가 없나니,
만약 어떤 중생 한량없는 세간에
착한 벗 친근하여 바른 법 듣는다면
들음에 따라 큰 복덕 얻고
옛 부처님처럼 항상 묘약(妙藥) 받으리라.
온갖 악마로도 방해할 수 없이
모든 감관 조복하여 즐거운 곳 간다면
그 방편으로 4마(魔)를 헐고
법답게 머물러 부처님 경계 다니리라.
이러한 보리도를 행한다면
곧 보리 얻어 남을 위해 연설하고
중생을 생사 바다에서 제도하여
온갖 삿된 소견 깨뜨리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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