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27)-27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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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훌륭한 상호[相好]를 얻고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성취하여서
능히 중생들 번뇌의 행을 알고
온갖 존재의 도(道)를 헐게 되리라.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그의 모든 번뇌를 깨뜨림이
마치 마른 초목을 태우는 불과 같아
보리 마음도 번뇌를 사르리라.
그때 세존께서 다시 해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쉽게 얻느니라. 누구든지 부지런히 정진을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곧 보리를 지닌다고 알아 둬라. 누구든지 정진하면, 이 사람은 곧 단바라밀 · 시바라밀 · 찬제바라밀 · 정진바라밀 · 선바라밀 · 반야바라밀을 원만히 갖추어 스스로 이익 되고 또 남을 이익 되게 하리라.
선남자야, 과거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이 계시어 그 호를 근정진(勤精進) 여래 · 응공 · 정변지 · 명행족 · 선서 · 세간해 · 무상사 · 조어장부 · 천인사 · 불세존이라 하고, 그 나라 이름은 선견(善見), 그 겁은 화취(華聚)라 하였느니라. 그때 큰 물이 온 세계에 가득하고, 그 물은 8만 4천의 가장 묘한 연꽃을 내어 낱낱이 아래위로 10유순을 가득 채워서, 한량없는 금색 광명이 있고 그 향기가 미묘하였느니라. 아가니타(阿迦膩吒) 여러 하늘이 이것을 보고 나서, 많이 안락하게 되어 모두 말하기를 ‘이 세간에 많은 연꽃이 있음은 또한 부처님이 나와 계심을 알겠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 겁의 이름을 화취라 하였느니라. 이때 그 나라는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고요함으로써 한량없는 세계의 여러 보살들이 항상 즐거이 관찰하고, 관찰함으로써 제각기 다 희행(喜行)삼매를 얻었으니, 그러므로 그 세상의 이름을 선견이라 하였느니라. 그 나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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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보의 숲나무와 다락집들이 많이 있어 중생들의 안락함이 도솔천과 같고, 음식이 풍부하여 신통을 얻기 쉽고, 여자의 몸이 없이 다 화생하고, 또 두 가지 갈래가 없이 다 대승을 닦았느니라. 그때 저 부처님께 3만 6천의 출가한 보살이 있어 다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얻고 한량없는 사람과 하늘이 처음 보리를 발심하여 견고하게 물러나지 않고, 저 부처님 세존께서 항상 즐거이 정진의 행을 펴 말씀하셨느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견고장엄(堅固莊嚴)이란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절하고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것이 네 가지 법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마음을 내는 것[發心]이 그 하나요, 마음을 짓는 것[作心]이 그 둘이요, 마음을 관찰함[觀心]이 그 셋이요, 법과 같이 머무는 것[法住]이 그 넷이다. 이러한 네 가지 법은 곧 이 부처님 법을 갖추는 인연이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마음을 낸다 함은 곧 착한 법을 낳는 인(因)이며, 마음을 짓는다 함은 착한 법을 더하는 인이며, 마음을 관찰한다 함은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인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모든 부처님 법에 들어가는 인연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바른 법 듣기를 구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법을 듣고 나서 설할 수 있음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그 이치를 잘 생각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말과 같이 머무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인색한 마음을 조복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능히 모든 것을 보시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중생을 위해 보리를 베풀어 회향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보시의 과보를 구하지 않음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받을 사람을 찾아 구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와서 구하는 이를 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냄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덧없음을 관찰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법과 같이 재물을 구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깨끗한 명[淨命]을 구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견고하지 않은 물건에서 견고한 법을 닦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모든 것을 버릴 때에 교만을 내지 않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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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낸다는 것은 여러 나쁜 계를 버림이며, 짓는다는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여러 깨끗한 금계를 지님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금계를 헐뜯는 사람을 조복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깨끗이 금계를 지니어 교만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입의 업을 깨끗이 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몸의 업을 깨끗이 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뜻의 업을 깨끗이 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착한 법을 닦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읨이며, 짓는다는 것은 참음을 닦음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자기와 남을 보호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지혜를 닦고 나서도 교만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항상 중생의 삿된 소견을 교화하기를 즐겨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중생의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안팎을 보지 않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모든 번뇌의 맺힘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게으름을 멀리 여읨이며, 짓는다는 것은 부지런히 정진을 닦음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모든 게으른 중생을 조복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여러 중생을 권하여 정진을 닦게 하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착하고 자비함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하는 일을 이미 끝냄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다른 승(乘)을 구하지 않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위없는 보리심을 잃지 않음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선지(禪支)를 장엄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삼매를 장엄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끝내 서로 비슷한 것에서 아만(我慢)을 내지 않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중생들의 나쁜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염하는 마음을 장엄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여러 존재를 장엄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그 뜻이 견고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용감하여 겁냄이 없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법과 같은 인(因)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방편과 같음을 말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문호(門戶)를 말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해탈을 말함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명자(名字)를 구하지 않음이며, 짓는다는 것은 문자(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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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짐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글자를 설할 수 없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문자를 멀리 여의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나쁜 지식을 여읨이며, 짓는다는 것은 착한 벗을 친근히 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착한 벗에게 지심으로 법을 들음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아는 이치를 그르치지 않음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집 떠나기를 즐겨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원수와 친한 이를 멀리 여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착한 법을 구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다른 뜻에 따르지 않음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함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만족함을 아는 것을 말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기르기 쉽고 채우기 쉬움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때의 마땅함을 잘 아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계(戒)와 같이 배움이며, 짓는다는 것은 계를 어기지 않음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뜻과 같이 계를 배움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지혜와 같이 계를 배우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단바라밀 · 시바라밀이며, 짓는다는 것은 찬제바라밀 · 비리야바라밀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선바라밀 · 반야바라밀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지(智) 방편(方便)바라밀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보시를 행하여 거두어 들임이며, 짓는다는 것은 고운 말로써 거두어 들임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이롭게 하여 거두어 들임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이익을 같이하여 거두어 들임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크게 사랑함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크게 가엾이 여김을 말함이며, 관찰하는 것은 크게 기뻐함을 말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크게 평정함을 말함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짐이며, 짓는다는 것은 복밭을 깨끗이 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상호(相好)를 장엄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중생을 조복하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진실로 쌓임의 마를 아는 것이며, 짓는다는 것은 번뇌의 마를 여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죽음의 마를 파괴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는 것은 자재천의 마를 부수고 항복 받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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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낸다는 것은 신념처(身念處)를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수념처(受念處) 를 말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심념처(心念處)를 말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법념처(法念處)를 말함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괴로움을 분명히 아는 것이며, 짓는다는 것은 원인을 멀리 여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진실로 멸함을 증득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길[道]를 닦는 것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신근(信根)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정진의 근을 말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염근(念根)을 말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는 것은 혜근(慧根)을 말함이니라.
또 낸다는 것은 7각분(覺分)을 말함이며, 짓는다는 것은 8정도(正道)를 말함이며, 관찰한다는 것은 사마타(舍摩他)를 말함이며, 법과 같이 머문다 함은 비바사나(毘婆舍那)을 말함이니라.
선남자야, 모든 행과 같음을 내는 것이라 하며, 모든 착함을 닦는 것을 짓는다 하며, 모든 깨끗한 마음을 관찰한다 하며, 모든 업 아는 것을 법과 같이 머묾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저 부처님이 다시 견고장엄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함이니 마음이 고요하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탐내는 몸을 헐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몸이란 뜻을 알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나[我]와 내 것[我所]을 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여러 얽매임을 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번뇌가 다하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의면 이것이 정진이며, 열 가지 교만을 없애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탐내고 성냄을 버리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무명과 애욕을 멀리 여의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방일하지 않아서 착한 법을 닦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진실하게 안팎의 감관[入] 관찰하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진실하게 음(陰)과 계(界)와 입(入)을 알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마음이 고요하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의심을 버리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3세를 구별하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법계를 관찰함에 흔들리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새지[漏]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해치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후회하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구하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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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사라지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짓지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더하고 덜함이 없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위없고 아래도 없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버리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매이지 않고 풀리지도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지도 않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지음과 짓는 것이 없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어둠이 없고 밝음도 없으면 곧 이것이 정진이며, 보는 것이 아니고 보는 것 아닌 것도 아니면 곧 이것이 정진이니라.’
선남자야, 저 부처님께서 이 정진하는 법을 말씀하실 때 한량없는 보살들이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야, 이제 이 모임 가운데 5천의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이 무생인의 법을 얻고 7천의 사람과 하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야, 그때 견고장엄보살은 이 법을 듣고 나서 이러한 한량없는 법을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서 최초의 인법[下忍]을 얻고, 법을 구하기 위하여 앉지 않고 눕지도 않고 나아가 목숨을 마쳤다. 이미 몸을 버리고 나서 범천(梵天)에 태어나고, 범천의 몸을 받아 한량없는 세상에서 부처님을 공양하여 바른 법을 듣고, 저 겁에서 8만 4천의 부처님을 두루 공양하고 바른 법을 듣고서 부지런히 정진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너는 알아둬라. 그때의 견고장엄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내 몸이었느니라. 나는 오랫동안 이 정진을 구족하였으므로, 미륵 등의 여러 큰 보살보다 뛰어나서 먼저 바른 깨달음[正覺]을 성취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누구든지 정진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에게는 보리가 있으리라’고 말하노라.
선남자야, 부지런히 정진해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어렵거늘 하물며 게으른 사람이랴. 만일 어떤 보살이 정진한다면 이 사람은 능히 스스로 이롭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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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과거 한량없는 세상에
화취(花聚) 겁에서 정진하신 부처님
물 가득한 그 세계 이름은 선견(善見)
8만 4천의 꽃을 피워내니.
그 나라 마치 도솔천 같아서
풍부한 음식이며 여자의 몸 없네.
부모를 말미암지 않고 화생(化生)하고
두 가지 길 없는 순수한 1승(乘)이네.
시방세계 모든 보살이
선견국(善見國) 보고 안락함 얻고
출가한 대중 3만 2천이며
한량없는 하늘과 사람 보리심을 내었네.
그때 그 부처님 정진을 찬탄하고
견고보살 위해 연설하신 그 말씀
발심하여 부지런히 착함 닦으면
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법답게 머물리라고.
그때 그 부처님 이 내 몸 위하시어
분별하여 말씀하신 이 네 글귀
보리심 내어 법답게 행함이며
사유하여 지혜 얻고 법답게 머묾이라.
바른 법 구함을 초발심
법답게 말함은 짓는 것이며,
이치 받아 그릇되지 않음은 옳은 사유
지혜를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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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보시함은 초발심
받을 사람 구함은 짓는 것이며,
덧없음을 밝게 봄은 옳은 사유
두 형상 보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법답게 재물 구함은 초발심
청정하게 목숨 살림은 짓는 것이며,
인색한 마음 깨뜨림은 옳은 사유
교만을 내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나쁜 계를 멀리 여읨은 초발심
계를 보호해 어기지 않음은 짓는 것이며,
계 헐뜯는 사람 조복함은 옳은 사유
계를 청정히 교만 없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나쁜 말을 멀리 여읨은 초발심
그 몸 고요함은 짓는 것이며,
그 마음 고요함은 옳은 사유
모든 법 고요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해치는 마음 멀리 여읨은 초발심
인욕을 닦음은 짓는 것이며,
자기와 남을 보호함은 옳은 사유
참아서 교만하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성난 사람 달래줌은 초발심
나쁜 사람 멀리 여읨은 짓는 것이며,
안팎이 고요함은 옳은 사유
내 마음에 집착하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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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멀리 여읨은 초발심
부지런히 정진 닦음은 짓는 것이며,
진실을 아는 것은 옳은 사유
도를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착한 법을 처음 구함은 초발심
구하여 끝까지 함은 짓는 것이며,
염하는 마음 받아지님은 옳은 사유
법을 잃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선지(禪支)를 구함은 초발심
삼매를 닦음은 짓는 것이며,
비슷한 것에서 아만(我慢) 없음은 옳은 사유
허물이 없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지혜를 염하는 마음은 초발심
법문을 얻음은 짓는 것이며,
바른 법 옹호함은 옳은 사유
진실하게 정진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바르게 인연을 염함은 초발심
착한 방편 닦음은 짓는 것이며,
안 법[內法]을 관찰함은 옳은 사유
해탈을 얻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문자를 처음 구함은 초발심
통달하여 분명히 앎은 짓는 것이며,
설할 수 없음을 앎은 옳은 사유
문자 없음을 분명히 앎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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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벗을 멀리 여읨은 초발심
선지식을 가까이함은 짓는 것이며,
듣고서 실행함은 옳은 사유
법을 여의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불법(佛法)으로 출가함은 초발심
원수나 친한 이를 제거함은 짓는 것이며,
착한 법을 닦음은 옳은 사유
다른 뜻을 따르지 않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욕심 적고 만족 앎은 초발심과 지음이며
고요함을 좋아함은 옳은 사유이며,
고요한 데 머물러 말다툼 없고
스스로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계(戒)를 따라 배움은 초발심
파계(漏戒) 행하지 않음은 짓는 것이며,
계 없는 계는 옳은 사유
지혜의 계 따름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세간 일을 말하지 않음은 초발심
항상 고요함을 즐겨함은 짓는 것이며,
이끗[利養]을 구하지 않음은 옳은 사유
덧없음을 관찰함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즐거이 보시와 계율을 닦음은 초발심
인욕하고 정진함은 짓는 것이며,
선과 지혜를 닦음은 옳은 사유
지혜의 방편을 닦음은 법답게 머묾이라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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