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24)-24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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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다면 눌러도 부서지지 않으리니, 이것을 몸 눌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입 눌림이라 하는가. 온갖 나쁜 말과 욕설을 참음이니,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번뇌의 모든 맺힘에 자기를 책망할 뿐이요, 끝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중생들을 위해 자비심을 닦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닦아서 나쁜 말과 욕설을 참을 때에 곧 인(忍)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리니,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을 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 인색하고 탐착하는 인연으로 나쁜 벗을 친근히 하여 이러한 나쁜 마음을 얻었으니, 내가 그의 인색함과 탐욕을 깨뜨리고 은혜 베풂을 닦아 착한 벗에 친근하게 하리니, 그럼으로써 나는 성내고 미워함을 버릴 수 있으리라’고 하나니, 그때 단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며,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을 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계(戒)를 깨뜨리고 업과(業果)를 믿지 않으므로 나에게 욕하지만, 나는 계를 받아 지니고 업보(業報)를 믿으므로 참음을 닦아 보리를 생각하고 바른 법을 보호하여 장차 중생을 순(順)하게 하리라’ 하나니, 그때 시(尸)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며,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을 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게을러서 착한 법을 닦지 않으므로 나를 욕하지만, 나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착한 법을 닦아서 성내는 마음을 버리고 착한 법에 만족한 마음이 없으며, 나 이제 마땅히 큰 방편을 일으켜 먼저 이 사람을 보리수에 앉게 한 다음에 보리의 과(果)를 갖게 하리라’ 하나니, 그때 정진(精進)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을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정신을 잃어 미치고 어지럽고 방탕하여서 번뇌에 오염되었지만, 나는 이제 온갖 번뇌를 부수고 이러한 여러 나쁜 중생을 위해 보리심을 낼 것이니, 만약에 중생들이 모두 청정하다면 나는 무슨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랴. 그러므로 오로지 보리심을 염할 것이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하나니, 그때 선(禪)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며,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을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나[我]와 내 것[我所]·중생(衆生)과 수명(壽命)·사부(士夫)에 집착하지만, 나는 법계(法界)에 의지하나니, 법계 가운데서는 누가 욕설하고 누가 욕설을 받겠는가. 나는 또한 하나의 법[一法]에서 욕설과 욕설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하나니, 그때 반야(般若)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느니라. 만약에 이 5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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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밀을 지심으로 받아 가져 수행한다면, 그때 인(忍)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리니, 이것을 입 눌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뜻 눌림이라 하는가. 악마 무리를 두려워하여 보리심을 물러나지 않음이며, 온갖 삿되고 기이한 소견을 두려워하여 보리심을 물러나지 않음이며, 지옥·아귀․·축생 갖가지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보리심을 물러나지 않음이니라. 만일 누가 부처님의 형상[像]으로 다가와서 ‘너 역시 보리심을 내지 못하리라. 보리의 도는 매우 얻기 어려우니 일찍이 성문승(聲聞乘)의 법을 닦아서 빨리 열반을 증득하여 큰 안락을 받는 것이 좋으리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하자. 그때 보살이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생각하기를 ‘보리의 도가 어렵든지 쉽든지 나는 끝내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보리수 밑에 이르러 금강 자리에 앉으리라. 내가 과거에 일찍이 모든 중생을 청하여 그들에게 은혜로이 법을 베풀기로 하였거늘, 내가 이제 함께하지 않고 어찌 속이겠는가. 나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 마음을 따르고 이러한 마음 눌리는 일을 견디어서 모든 부처님과 하늘·사람의 대중 및 자기를 속이지 않으리라’ 하나니, 이것을 뜻 눌림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리도에 향하는 마음 무너지지 않고
대자대비 또한 그러하니
삼보의 종자를 끊지 않아
한량없이 장엄함도 보리를 위함이네.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외(無畏)
32상(相)·80종호(種好)를 위하여
한량없는 세간에 재물을 버려
갖가지의 큰 고통 받으며,
삼보(三寶)의 공덕을 얻기 위하여
바른 법 받아 지녀 널리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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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바다에서 중생 건네려고
갖가지 괴로움을 견디어 받네.
시방세계 나쁜 중생들
흉기 갖고 나에게 핍박하여도
끝까지 마음 흔들려 보리를 잃지 않음은
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며,
한량없는 겁 가운데 고뇌 받아서
스스로 이롭거나 남을 이롭게 못해도
이제 나 이것 참아 크게 이익함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얻음이네.
부처님 공덕 위해 그 몸 부수기를
마치 호마(胡麻)처럼 하여도 후회하지 않고
그 마음 위없는 도에서 물러나지 않아
많은 괴로움 받음은 보리를 위함이며,
다니거나 앉거나 보리를 생각하여
그 마음 고요히 번뇌를 여의고
중생에게 성낸 마음 일어날 때에는
먼저 나의 번뇌를 원망하리라.
3악도 가운데 갖은 괴로움 받으면서
중생들 위해 불도를 얻으려고
인간·천상 쾌락을 구하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 온갖 괴로움 받으며,
인간에서 받는 어떠한 괴로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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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백천분의 하나도 못 되나니
3악도의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아도
보리 마음 물러나지 않으리라.
몸은 덧없고 또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4대(大)의 성질은 네 마리 뱀[四蛇] 같다고 관하여
지심(至心)으로 이러한 몸을 놔버린다면
그 지혜 위없는 도를 얻으리라.
유전(流轉)하는 모든 존재들이 온갖 괴로움 받음은
몸의 진실을 관하지 못한 때문이니
보살은 능히 몸의 진실을 관하므로
영원히 온갖 번뇌를 버린다네.
악한 것 행할 때에는 거리낌 없고
착한 법 행함에 어려움 많음은
여러 불세존 깨달아 알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 갖가지 괴로움 받네.
나 이제 이런 몸과 입과 뜻의 업 등의
한량없는 괴로움 참아서
이 인연으로 보리심 굳게 하여
끝까지 흔들리지 않으리라.
이 내 몸 버리어 6바라밀 갖추나니
탐욕 없으면 단(檀)바라밀 갖추고
악한 사람에게 자비한 마음 낸다면
시(尸)바라밀 갖추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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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잘리더라도 참고 성내지 않으면
이 인연으로 찬제(羼提:忍)바라밀 갖추고
괴로움 받을 적에 마음 흔들리지 않으면
비려야(毘黎耶:精進)바라밀 갖추리며,
생각하는 마음 잃지 않고 고요함을 즐긴다면
선(禪)바라밀 갖추리며,
나[我] 없고 내 것[我所] 없음을 관한다면
그때 반야(般若)바라밀 갖추리.
만약에 이런 장엄 짓는다면
오래지 않아 위없는 도를 얻으리니
나쁜 구업(口業)을 참지 못하면
어찌 중생의 번뇌를 헐 수 있으랴.
나의 몸·입·뜻을 조복한다면
갖은 고통을 참아 받을 것이며
온갖 악마 무리를 무너뜨리고
어떠한 삿된 것에도 흔들리지 않으리.
만약에 6바라밀이나
여래의 10력(力)·4무외(無畏)를 갖추고
가장 뛰어난 보배를 얻고자 한다면
몸·입·뜻 조복함을 배울지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리심을 뚫는 것인가 하면, 보살이 이미 보리심을 내고 나서는 끝내 서로 비슷한 것[相似]에서 아만(我慢)을 내지 않아서 보리심에 집착하지 않고 보리심을 탐내지 않으며, 보리심에 애착하지 않고 보리심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곧 마음이 고요하게 되어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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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를 보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보느니라.
깊은 법계란 말하자면, 12인연은 두 변(邊)을 멀리 떠나서 모든 법의 성품은 나 없고[無我], 나의 성품과 법의 성품은 공(空)하여서 남이 없다[無生]고 보고,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삼매에 머물러 모든 행하는 법은 조작이 없다고 보고, 색(色)은 거품 같고 수(受)는 물거품 같고 상(想)은 아지랑이 같고 행(行)은 파초(芭蕉) 같고 식(識)은 허깨비 같다고 보며, 경계는 조작 없고 흔들림 없고 감관[入]은 귀머거리와 소경 같고 마음은 잠시도 머묾이 없고 교만의 맺힘은 다 나는 곳[生處]이 없고 모든 법은 둘이 없어 분별할 수 없어서 한 맛[一味]·1승(乘)의 길[一道]·한 근원[一源]이라고 보며, 온갖 소리는 소리 모양이 없고, 온갖 음성은 차례로 합하지 않고, 모든 법은 널리 설할 수 없음을 보며, 괴로움의 모양[苦相]을 분명히 알고 원인[集]에는 내 것[我所]이 없고 멸함[滅]에는 더함이 없고 길[道]을 알아 필경에 이르며, 장애가 없으므로 신념처(身念處)를 보고 미래의 느낌을 알고 마음의 나고 멸함을 염하고 법계를 알아서 계(界)와 계 아닌 것[非界]을 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정근(正勤)을 닦아서 자재로움을 얻고자 하나니, 뜻과 같음[如意]을 닦아 모든 번뇌를 버림을 신근(信根)이라 하고 고요한 것을 즐겨함을 정진근(精進根)이라 하며, 염함이 있지 않으므로 염근(念根)이라 하고, 사유(思惟)하지 않으므로 정근(定根)이라 하고, 온갖 것을 멀리 버림으로 혜근(慧根)이라 하며, 다른 것을 따르지 않으므로 신력(信力)이라 하고, 장애가 없으므로 정진력(精進力)이라 하며, 물러나거나 흔들리지 않으므로 염력(念力)이라 하고, 마음에 자재로움을 얻으므로 정력(定力)이라 하고, 선악을 보지 않으므로 혜력(慧力)이라 하며, 방일하지 않으므로 염각분(念覺分)이라 하고 모든 법에 들어가므로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하며, 법과 같이 행하므로 진각분(進覺分)이라 하고 나쁜 것을 멀리 버림으로 희각분(喜覺分)이라 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므로 제각분(除覺分)이라 하고, 진실로 삼매를 알므로 정각분(定覺分)이라 하고 두 가지를 보지 않으므로 사각분(捨覺分)이라 하며, 멀리 모든 소견을 버림으로 정견(正見)이라 하고, 모든 각(覺)과 관(觀)을 버림으로 정사유(正思惟)라 하며, 모든 소리의 성품을 알므로 정어(正語)라 하고 몸과 입과 뜻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정업(正業)이라 하며, 질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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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버림으로 정명(正命)이라 하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으므로 정정진(正精進)이라 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은 것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정념(正念)이라 하고 모든 마음의 경계를 관찰하므로 정정(正定)이라 하며, 진실한 모양(相)의 성품은 그 성품이 고요하므로 필경의 이치를 덧없고[無常] 괴롭고[苦] 나 없음[無我]이라 하고, 청정 또는 크게 깨끗함이라 하며, 능히 마음을 조복함을 보시[施]라 하고 몸과 마음이 청정함을 계(戒)라 하며, 모든 법이 덧없음을 인(忍)이라 하고 이 지혜를 부지런히 닦음을 정진(精進)이라 하며, 안팎의 청정함을 삼매(三昧)라 하고 진실을 관찰함을 지혜(智慧)라 하며, 모든 중생의 마음 성품이 본래 깨끗함을 아는 것을 사랑[慈]이라 하고 온갖 것은 평등하기가 허공 같다고 보는 것을 슬픔[悲]이라 하며, 온갖 기쁨을 끊는 것을 기쁜 마음[喜心]이라 하고 온갖 행을 멀리 한 것을 평정한 마음[捨心]이라 하며, 모든 법은 미래세상에는 깨끗하고[淨] 과거에는 갖가지며[種種] 현재에는 나가 없느니라[無我]. 선남자야, 만일 이러한 법을 진실로 관찰하여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보리심 보배를 뚫는 것이라 하나니, 보살이 이 모든 법을 관찰하고 나서는 차례로 일체법자재 다라니(一切法自在陀羅尼)를 얻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해와 달이 오고 가면서 밝게 비추어 준다는 마음을 내지 않지만, 여러 중생의 복덕의 힘 때문에 스스로 오고 가면서[往返] 모든 어둠을 없애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법을 관찰하여 분명히 안다면,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끔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을 한다면 이것을 선바라밀·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선정에 들면 이러한 관찰을 할 수 있고 산란한 마음은 정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 곧 선바라밀이요, 관찰한다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니라.
이와 같이 한다면 능히 진실을 관찰하고 모든 법의 모양[法相]을 분명히 볼 수 있으리라. 어떤 것을 법의 모양이라 하느냐 하면, 모든 법상은 모양 없는 모양이요, 모양 없는 것이란 조작이 없음이니, 이 조작 없음을 모양이라 하느니라. 만약에 이러한 모양 없음을 길이 끊는다면 이것이 바로 모양 없는 모양[無相相]이며, 또 모양 없는 것을 남이 없는 모양[無生相]이라 하고,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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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모양을 멸함 없는 모양[無滅相]이라 하며, 남이 없고 멸함 없는 것을 모양 없고 모양 없는 모양[無相無相相]이라 하느니라. 만약에 모양 없고 사라짐 없는 것을 본다면, 머묾 없고 하나 없고 둘 없고 성냄 없고 싸움 없고 있음이 없으리니, 이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음과 같은 법 성품을 아는 것을 참된 성품이라 하고 법 성품이라 하고 굳은 성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진실로 이러한 법을 안다면, 머묾이 아닌 머묾이라고 말하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 12나유타의 중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1만 6천의 하늘은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 법의 모양(法相) 깨뜨림은
청정하고 위없는 보리심이니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깊고 깊은 법계를 밝게 보고
또 열반을 겁내지 않는다면
이 겁내지 않는 인연으로써
능히 불법을 자라게 하리라.
원인과 과보를 밝게 믿어서
12인연도 그렇게 하고
두 변(邊)과 상단(常斷)의 소견을 멀리 여의어
뜻대로 온갖 바른 법을 말하며,
항상함과 덧없음에 마음 집착하지 않고
또 능히 중도(中道)를 연설한다면
일체 법의 공한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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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수명(壽命) 없음을 알리라.
온각 법은 공하고 모양 없고
또 차례로 나는 것도 없으며
그 성품 언제나 고요하여서
조작할 수 없기가 허공과 같네.
일체 법의 모양 관하지 않아도
분명히 성품 없음 깨달아서
색과 느낌을 물거품처럼 관하고
생각은 아지랑이, 행실은 파초같이 하네.
마음은 허깨비, 4대(大)는 공하다고 관하고
감관은 마치 소경·벙어리같이 하고
또 마음은 안팎이 없어서
머무는 곳 두 경계 없다고 관하네.
모든 법의 색(色)과 색상(色相)에 집착하지 않고
이것을 앎으로써 교만하지 않으며
일체 법은 다 평등하여서
한 맛·1승(乘)·1도(道)의 근원이라고 관하네.
이와 같은 진실한 이치를 알고
분명히 법계를 관찰하여서
소리 없는 데에서 소리를 듣고
마음 없는 데에서 마음을 관하며
문자 없는 데에서 문자를 관하므로
이것을 진실로 법계를 안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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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법의 이치는 설할 수 없어
소리와 문자도 다 그러하나니
괴로움·원인·멸함·길을 진실히 알아야
4념처(念處)를 갖추어 마음 전일하네.
모든 법계에서 분별없으면
그 마음 크게 자재롭게 되고
온갖 번뇌를 멀리 버림에는
4정근(正勤)을 닦고 정진을 행하나니,
걸림 없는 큰 자재로움 얻기 위해선
마음 부지런히 4여의(如意)를 닦으며
일체 법에 탐착하지 않기 위해선
이러한 신근(信根)을 닦아야 하네.
항상 고요한 데 즐거이 머무나니
그러므로 정진근(根)을 닦고
마음에 염려 없이 진실을 아나니
그러므로 염근(念根)을 닦으며,
모든 마음 생각(心想) 모두 조복하나니
그러므로 정근(定根)을 닦고
능히 법계를 관찰하기 위해서
이러한 혜근(慧根)을 닦네.
모든 법계를 분명히 알고 하나니
그러므로 7각분(覺分)을 닦고
모든 법을 두 가지로 관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8정도(正道)를 닦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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