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43)-430

근와(槿瓦) 2015. 11. 4. 18:54

정법념처경(43)-43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421 / 1802] 쪽

것이다.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닌데, 모든 중생들은 그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허망하게 분별하지마는, 그 색이란 자체가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한 것도 아니며,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진실도 아니며, 즐거운 것도 아니요 무너지지 않는 법도 아니며, 견고한 것도 아니요 나도 아니다. 다만 탐욕·분노·우치가 그 마음을 덮기 때문에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색에는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 그것은 기억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색입(色入)을 관찰하고 명색(名色)을 보았기 때문에, 탐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미혹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색이란 견고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눈을 관찰하고 색입을 관찰하고는 눈의 알음알이에도 집착하지 않고 더러운 욕심에서 떠난다. 그리하여 눈의 알음알이도 나가 아니요, 나도 눈의 알음알이가 아니며, 촉·수·상·사 또한 그와 같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어린애를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나쁜 술법으로 용에게 축원하여 우박의 재앙을 없앤다하여 병자를 속이고, 야차에 축원한다 하여 남의 재물을 취하며 혹은 염소를 죽인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활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바라바차(婆羅婆叉)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또 어떤 중생은 살생한 남은 과보로 인간에 태어나서 이 아귀가 되어 아이를 훔쳐 먹고 혹은 아기를 낳는 여자가 사는 곳에 가서, 그 아이가 기어다닐 때나 혹은 처음으로 걸을 때에 그 아이를 취한다. 이와 같이 그 아귀는 어린애들을 훔쳐 차례로 먹고, 만일 그 틈만 얻으면 곧 그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죽일 업이 없으면 해치지 못한다. 그는 게송을 읊는다.

 

                                                                              [422 / 1802] 쪽

나쁜 업에 묶이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업을 행하면 즐거운 과보 받는다. 길고 튼튼한 업의 노끈 사람 결박하나니 중생들 묶어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안온한 열반의 성(城) 얻지 못하고 삼계에 흘러다니며 온갖 고통 받지만 능히 지혜의 칼로 이 업을 베면 반드시 뜨거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업의 노끈을 끊어 결박 없애면 함이 없는 고요한 곳에 가리니 고기가 그물에 들어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애욕의 결박이 중생을 죽이는 것 그와 같아라. 만일 사람이 독한 화살로 들사슴을 맞히면 그 사슴은 미친 듯 날뛰며 이리저리 달리지만 독약이 이미 퍼지면 벗어나지 못하나니 중생을 묶는 애욕의 결박도 그와 같아라. 언제나 중생을 따르면서 놓아 주지 않는 그 애욕을 독처럼 보고 멀리 떠나야 한다. 우치한 범부들이 애욕에 불살리는 것 마치 큰 불에 타는 마른 섶나무 같다. 그 애욕에 처음으로 물들 때는 깨닫기 어려워도 그 갚음을 받으면 불에 스스로 타는 것 같다. 만일 언제나 즐겁고 마음이 안온하려 하거든 애욕의 결박 버리고 온갖 집착 떠나야 한다.

 

                                                                               [423 / 1802] 쪽

낚시를 삼킨 고기의 목숨이 오래지 못한 것처럼 사람을 묶는 애욕의 결박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결박하여 나쁜 세계로 가되 아귀에 떨어져 굶주리고 목마름의 핍박 받는다. 아귀 세계의 온갖 고뇌를 피해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니며 지옥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애욕에 결박된 인연 때문이니라. 혹은 빈궁하고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아침 밥을 구해 얻어 겨우 살아 가는 것도 다 애욕에 결박된 인연으로 그런 고통 받나니, 성인의 말씀이다. 이렇게 모든 탐욕과 질투의 인연의 과보를 자세히 관찰하고, 생사에 대한 싫증이 생겨 온갖 욕심을 모두 버린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사람의 정기(精氣)를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교묘한 말로 사람을 속이되 거짓으로 친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를 보호해 주리라' 하면,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채찍질하며 용기를 낸다. 그 때에 그는 그 사람을 시켜 적진에 들어가게 한 뒤에 그를 죽이려고 그만 버리고 떠나 끝내 구원하지 않고 왕에게 가서 재물을 얻으려 한다. 그리하여 그 속은 사람은 적진에 빠져 죽는다. 그는 이런 좋지 못한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사람의 정기를 먹는 아귀 속에 떨어져, 큰 굶주림과 목마름을 받으면서 스스로 그 몸을 태우며, 칼은 그 몸을 베어 가죽과 살은 끊어지고 하늘에서 칼이 내려

 

                                                                              [424 / 1802] 쪽

사방으로 달려도 피할 곳이 없다. 혹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고 신심이 없어 3보를 받들지 않는 것을 보면, 곧 그 틈을 타 그 몸 속에 들어가서 그 정기를 먹고 살아가려 하지마는 그것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워 조금도 얻지 못하고, 10년이나 혹은 20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므로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는데, 자기가 지은 악업을 도로 받으므로 그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죽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없어지거나 섞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하늘에 제사하는 사당을 지키면서 빈궁하고 곤액하여 자유롭지 못하고 제사의 남은 음식을 먹는데 남은 업 때문에 남을 의지해 살아간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범나찰(梵羅刹)이라는 아귀를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생명을 죽여 큰 모임을 열고 그것을 드문 일이라 하며, 음식을 팔되 조금 주고 비싸게 받으면서 탐욕과 질투에 파괴된다. 그런 중생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귀 속에 떨어져 이름을 바라문나찰아귀라 한다. 그는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그 몸을 태우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죽이며, 혹은 빈 골목이나 거리나 네거리에 살면서 사람들의 틈을 엿보고, 바라문들이 생물을 죽여 모임을 열면 흔히 그 속에 태어나며, 혹은 자기 몸을 숨기고 사람을 죽이며, 혹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그 목숨을 끊는다. 주술하는 사람은 말한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붙어 그 몸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미치고 미혹하여 아무것도 모르게 한다.' 이런 악업에 또 항상 온갖 악을 지으므로,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우고 큰 고뇌를 받으면서 아귀의 세계에 산다. 그러나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425 / 1802] 쪽

마치고 남은 업의 인연으로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사람의 살을 먹고 혹은 사람의 피를 마시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화로 안에서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좋은 벗을 멀리 떠나고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승가의 음식을 먹기를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지옥에서 나오면 군다(君茶)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거기에 태어난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우되 불이 숲을 태우는 것 같으므로 두루 달리면서 음식을 구한다. 그리하여 자기 업에 속아서 절에 들어가 타다 남은 음식을 불타는 채로 먹고는 마음으로 항상 화로의 남은 음식을 생각하면서,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운다. 이렇게 두 가지 불이 함께 일어나므로 신음하고 외치며 온갖 악업을 지어 결정코 성숙한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남은 업의 인연으로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가는 곳마다 불에 타고 또 들불에 타는데,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관찰한다. 즉 질투를 많이 행하고 여러 가지 업을 익혀 그 업을 완전히 이루면, 아귀의 세계에 떨어져 더러운 거리에 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그 중생은 인색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범행이 청정한 사람에게 부정한 음식을 준다.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더러운 라타(囉他)라는 아귀 속에 태어나서 낮에는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없으나 사람이 밤에 다니면 그것을 많이 본다. 도시나 촌락의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나, 혹은 광야나 군인이 다니는 뒷간의 으슥하고 더러운 곳이나, 구더기가 가득 차고 냄새 나는 더러운 곳에 사는데, 누구나 그를 보면 사나워서 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토를 하고 지

 

                                                                              [426 / 1802] 쪽

나가는데 그 아귀는 거기에 태어난다. 그것은 전생에 더러운 음식을 스님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부정한 곳에 태어나서 큰 고뇌를 받는 것이다. 비록 거기에 있으면서 항상 얻어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여러 나쁜 귀신들은 손에 날카로운 칼을 가졌는데 칼날에서는 불꽃을 내고 곁에서 지키고 있다.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면서도 한 달이나 반달에야 비로소 한 번 먹는데 그래도 배는 부르지 못하고, 혹 배가 부르더라도 똥을 지키는 귀신들이 세게 때려 토하게 한다.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므로 그는 신음하고 슬피 부르짖으며, 이리저리 달리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슬피 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종자가 좋지 않은 인연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나쁜 과보 받나니 인과의 성질과 모양은 서로 같아서 악업의 인연으로 괴로운 과보 받는다. 나쁜 업의 갈고리에 끌린 바 되어 낚시 삼킨 고기처럼 나쁜 길에 드나니 낚시 삼킨 고기는 벗어날 수 있으나 나쁜 업에 끌린 사람 면할 길 없다. 나쁜 업은 큰 힘으로 중생을 이끌어서 나쁜 업의 노끈에 결박 당하여아귀들 세계 속에 끌려 왔나니 기갈의 큰 고통을 모두 받는다. 아귀들의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은 불보다 칼보다 독약보다 심하나니

 

                                                                               [427 / 1802] 쪽

이렇게 이 기갈은 그 힘이 세어 한량없이 중생들을 괴롭게 한다. 한 생각 사이에도 쉴 수가 없이 밤 낮으로 그 고통은 떠나지 않고 그리하여 조그만 즐거움도 없이 언제나 가지가지 고통을 받는다. 괴로운 업을 지은 인연 때문에 나쁜 길에 태어나서 괴로운 과보 받는데 이 괴로운 과보는 벗어나기 어렵거니 언제나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으리. 보이는 샘에는 아무 데도 물이 없고 일체 웅덩이도 모두 말랐거니 이리저리 달리면서 물을 구해도 찾아가는 강에서는 물을 볼 수 없어라. 내가 가는 곳마다 물을 구하여 산이며 넓은 들을 모두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물 마시기 바랐지만 조금의 물도 구해 얻지 못했다.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내 몸을 태우건만 돌아갈 곳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이 큰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 아귀는 자기 업에 속아서 신음하고 슬퍼 외치지마는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보가 다하여 목숨을 마

 

                                                                               [428 / 1802] 쪽

치더라도 남은 업 때문에 인간에 태어나서는 음녀들의 몸을 받고, 혹 남자가 되더라도 똥 치는 집에 태어나서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의 법을 행하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바람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병든 사람이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음식을 주려고 허락하였다가, 그가 왔을 때에는 끝내 주지 않으므로 그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굶주리고 목말라 찬바람에 다친 것같이 하면, 거짓말한 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바이바차(婆移婆叉)라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가 아귀의 몸을 받은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활지옥과 다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달리지마는, 희망이 없고 구호할 이가 없으며 의지하거나 믿을 곳이 없고 자기 마음에 속아서 마침 먼 숲 속이나 절에 음식이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달려간다. 몸은 몹시 피로하고 굶주리고 목마름은 보통 때 보다 갑절이나 심하므로, 입을 벌리고 음식을 찾으면 입으로 들어가는 바람을 음식으로 삼는다. 그러나 악업의 인연으로 죽지는 않는다. 악업을 몸에 가졌으므로 허망하게 음식을 보는 것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볼 때 그것을 물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서 돌리는 불바퀴와 같다. 전생에 사람을 속여서 주겠다고 허락 하고도 주지 않았으므로 그 과보 때문에 다만 눈으로 음식을 보기만 하고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과 과는 서로 같다'는 성인의 말씀으로서 좋은 원인은 곧 좋은 결과 성취한다. 좋은 원인은 나쁜 결과 받지 않고 나쁜 원인은 좋은 과보 받지 못한다.인과 연은 서로 따라 중생을 결박하고 나고 죽음 서로 이어 쇠사슬 같다.

 

                                                                              [429 / 1802] 쪽

나고 죽음은 중생들을 모두 얽어매 온갖 세계에 윤회하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튼튼한 사슬 같은 업의 번뇌 등 그 온갖 결박을 능히 끊으면 그는 고요한 곳에 잘 이르러 일체의 근심 번뇌 아주 끊으리. 그 사람은 이렇게 그 인과 같은 괴로운 과보를 받을 때 자기 마음에 속아서 사방으로 달리면서 항상 바람 기운을 마시고 살아 가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하천하여 남의 멸시를 당하며, 항상 남들이 방이나 음식·의복 등을 주기로 약속하였다가 주지 않으므로 남이 준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얻기를 바라지마는 뒤에 가서 얻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근심하고 번민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근심과 고민으로서 큰 고통을 받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그는 게송을 읊는다. 그런 중생은 악업에 훈습되어 가지가지의 온갖 고통 받는다. 똥에 훈습된 것처럼 더러운 것이거니 그러므로 나쁜 업은 버려야 한다. 좋은 법에 훈습된 것 가장 뛰어나므로 나쁜 길의 고통을 길이 떠나게 한다. 첨복화(瞻蔔花)에 스며있는 향유(香油)처럼 꽃은 비록 없어지나 향유는 있다.

 

                                                                              [430 / 1802] 쪽

다시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숯불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감옥지기로서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중생을 때려 묶고는 음식을 금하여 그를 굶주리고 목마르게 하므로, 그는 진흙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간다. 그 감옥지기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불을 먹는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항상 무덤 사이에 살면서 송장을 태운 불을 먹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 악업을 지을 때에는 즐거웠지마는 받는 과보는 극히 괴로우므로 마음은 즐겁지 않다. 그것은 더럽고 미운 것으로서 사랑하는 독의 세력의 인연이 화합하여 불을 먹는 아귀의 몸을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을 얻어 먹으면 굶주리는 고통을 조금 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물로 세상의 불을 끄는 것과 같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고 세상의 애욕에 대해 아주 싫증을 내어 그것과 어울리기를 즐기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우치한 범부들은 애욕의 지배를 받아 자유를 얻지 못하고 불을 먹으면서 굶주림을 면하는 것은 비유할 방법이 없다.'아귀의 몸을 받아 내지 악업이 다하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변방의 굶주리는 곳에 태어나서 먹는 것이 추악하여 맛이 없으며, 짠맛을 알지 못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독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남에게 독을 먹여 그 목숨을 잃게 한 뒤에 그 재물을 취한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활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모두 받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독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법념처경(45)-450  (0) 2015.11.06
정법념처경(44)-440   (0) 2015.11.05
정법념처경(42)-420   (0) 2015.11.03
정법념처경(41)-410  (0) 2015.11.02
정법념처경(40)-400  (0)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