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42)-42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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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으므로, 매우 두려워하여 내닫지마는 고독하여 짝이 없으며, 사나운 바람은 몹시 날카로워 마치 칼로 베는 것 같다. 그러나 악업 때문에 죽으려 하여도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깊은 산이나 험한 바닷가에 살면서 해와 달을 보지 못하고, 그 나라에 나서는 눈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빈궁하고 하천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가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아는 지혜로 신통대력광명(神通大力光明)이라는 아귀를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그 중생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탐욕과 질투에 파괴되어 남의 재물을 훔치며,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하고 혹은 세력을 믿고 남의 재물을 강탈하되 나쁜 벗들에게만 그것을 주고 복밭에는 보시하지 않으며, 더러운 보시로써 은혜를 구하고 구원을 구하며, 명절의 모임을 위하고 급난을 위하며, 아부하기 위한 이런 여러가지의 보시를 행하므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대력신통의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 귀신의 몸을 받은 뒤에는 한량없는 고뇌를 받는 많은 아귀들에게 좌우로 둘러싸여 깊은 산이나 혹은 바닷가에 살고, 거기 나서는 신통이 자재하므로 오직 그 한 귀신만이 제일의 즐거움을 받고, 다른 귀신은 그 몸이 불에 타는 숲처럼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핍박을 받으면서 모두 그 즐거움을 받는 귀신을 우러러보는데, 그것은 더러운 보시의 과보이다.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더라도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며,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사람이 되면 흉년 든 세상에서 나라를 다스리거나 혹은 대신이 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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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밤에 불에 타는[夜熾燃] 아귀들을 본다. 즉 몸에서 불이 나서 신음하고 슬피 외치면서 내달아 도시나 촌락의 사람 사는 곳과 숲 속의 사는 곳으로 가서 몸은 불더미처럼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탄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다른 사람을 망치는데,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남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으며, 남의 성곽을 부수고 백성들을 죽이며, 남의 권속과 친척들을 흩어지게 하고 약탈해 얻은 재물을 왕이나 대신이나 호귀한 사람에게 바치어 왕의 세력을 얻으면, 왕은 그 재능을 가상히 여겨 그를 칭찬하므로 그가 더욱 흉포한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사바례(闍婆隸)[사바례는 위나라 말로 치연(熾燃)이다.]라는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것은 그가 전생에 밤에 다니면서 겁탈하고 사람을 옥에 가두어 온갖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밤이면 온몸에 맹렬히 불이 일어나고, 전생에 사람을 결박하여 울부짖게 하였으니, 그 인연으로 맹렬한 불이 몸을 태워 슬픈 소리로 크게 부르짖게 하되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타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항상 남에게 망하는데, 비록 재물이 있더라도 왕이나 도적의 침노를 당해 빼앗기며, 높은 데 오르거나 혹은 나무에 오르다가 떨어져 몸을 다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항상 사람의 틈을 타고 그 단점을 엿보아 찾으며 어린애를 죽이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악인에게 자기 어린애를 죽이자 크게 성을 내어 곧 맹세하였다.'나는 후생에 야차가 되어 갚음으로 저 아들을 죽이리라.' 그 악인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치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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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蚩陀羅)라는 아귀의 몸을 받아 항상 원수를 생각하고 성을 내어 독을 머금고, 아이를 낳는 여자들을 찾아다니다가 어린애의 틈을 엿보아 그 목숨을 끊는다.그 아귀는 세력이 있고 신통이 자재하여 피 냄새만 맡으면 잠깐 사이에 백천 유순을 가며, 여자가 어린애를 낳으면 미세한 몸으로 그 틈을 찾되 성내는 마음으로 항상 그 틈을 찾아 여러 곳으로 쫓아다니면서 어린애를 죽이려고 그 해칠 틈을 찾는다. 이렇게 그 아귀는 온갖 곳으로 두루 다니면서 어린애의 틈을 구하고 그 인연을 찾다가, 그 어머니가 허물을 범하여 아기를 기르는 법을 잃으면 그 아기의 틈을 얻으며, 혹은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도 그 아귀에게 틈을 준다. 즉 창 틈을 엿보거나 문 안의 대소변이 있는 곳이나 더러운 물가나 주문 가운데서 단점을 찾고 그 사람의 꺼리는 바를 찾는다. 혹은 화상이나 옷이 부정하거나 혹은 불·물·땅·칼이나 혹은 행복을 구하거나 높은 바위에 오르거나 높은 누각에 오르면, 아래위로 그 틈을 찾는다. 이렇게 갖가지로 항상 그 틈을 찾으면서 원한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만일 그 틈을 얻으면 곧 어린애를 죽이고, 그 틈을 얻지 못하면 10년 동안 갖가지로 그 틈을 찾으면서 여전히 죽일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나쁜 생각이 그 마음을 결박하여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면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 틈만 얻으면 곧 그 목숨을 끊는다. 만일 그 어린애에게 강한 선업이 있거나 혹은 선한 신의 보호를 받으면 그를 죽이지 못한다. 그 귀신이 성내는 마음 그대로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며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전생의 업인 분노의 습관으로 원수 맺음의 결박을 받아 아무 인연이 없는 곳도 모두 원수와 같이 보여 갖가지 방편으로 그 단점을 찾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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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념처경 제 17 권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4. 아귀품 ②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가마(迦摩)[가마는 위나라 말로 욕색(欲色)이다.]라는 아귀를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남자나 여자나 혹은 고자로서 갖가지 옷을 입고 스스로 장식하되, 혹은 여자의 옷을 입고 음녀의 법을 행하므로 만일 누구나 정욕이 발동하여 그와 음행하면, 그 일로 인해 재물을 얻었으나 범부에게 그것을 주고, 복밭이 아닌 곳에 더러운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색(色)을 좋아하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그 아귀의 몸을 받은 뒤에는 갖가지로 장식하면 그것은 다 생각을 따라 마음대로 된다. 즉 좋은 것을 원하면 아름답고, 나쁜 것을 원하면 추하게 되며, 좋거나 좋지 않은 것이 되려고 하면 모두 그대로 된다. 남자가 되면 얼굴이 단정하고 여자가 되면 자태가 미묘하며, 혹은 축생이 되더라도 그 모양이 뛰어나다. 이렇게 갖가지 묘한 장엄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으면 잘 먹고 근심이 없으며, 조금이나마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에 능히 미세한 몸이 되어 가만히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구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비사사(毘舍闍) 아귀가 우리 음식을 훔쳐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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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사람의 몸이 되어 남의 명절 모임에 들고, 혹은 새의 몸이 되어 남의 제사 밥을 먹지마는, 그 몸이 미세하여 아무도 보지 못한다. 이렇게 그 아귀는 뜻대로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므로 세상 사람들은 뜻대로의 야차[如意夜叉]라 부른다. 혹은 여자의 몸이 되어 사람과 음행하며 이렇게 갖가지로 장식하여 사람들을 속이면서 세상에 다닌다. 귀신의 세계에 있으면서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가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사람으로 태어나면 광대가 되어 갖가지 옷을 입고 마음대로 유희하면서 생활하기를 구하고, 자기 아내로 하여금 남의 일을 시켜 재물을 구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바닷가의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길 가는 사람이 광야를 지나가려 하는데 병으로 고통하며 극히 피로한 것을 보고는 그 사람에게 많은 삯을 받고 적은 일을 해 주며, 나쁜 탐욕 때문에 교묘한 말로 쓸쓸한 광야로 멀리 가는 사람을 속이면 그 인연으로 바닷가에 태어난다. 그 바닷가에는 나무도 못도 강도 없고 그곳은 매우 더우므로 겨울에도 맹렬하게 더워 인간의 여름의 더위에 비하여도 열 배나 더하며, 오직 아침의 이슬로 목숨이 살아 간다. 비록 바닷가에 산다 하지마는 물을 얻을 수 없고, 악업 때문에 바다가 마르는 것을 보며, 숲을 보더라도 그것은 모두 맹렬히 타면서 큰 불꽃이 일어나므로 희망이 끊어지고 갖은 나쁜 일이 모여 편안하지 않으며,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워 신음하고 슬피 괴로워하며, 자기 마음에 속아서 이리저리 달리면서 슬픈 소리로 울부짖지마는 구원하거나 보호하는 이가 없고 의지하거나 믿을 곳도 없다.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어지럽고 몸은 여위어 모든 핏줄은 드러나 마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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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같으며, 가는 곳은 모두 비어 구원하거나 보호할 이가 없고 의지하거나 믿을 곳이 없다. 그러나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는 하지 않는다.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가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섬에 태어나서, 외발이거나 혹은 발이 짧으며 먹는 물의 곤란을 당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염마라의 막대기를 잡은[閻羅執杖]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인색과 질투 때문에 스스로 그 마음을 부수어 국왕·대신이나 호귀한 사람들을 친하여 오로지 포악한 짓을 행하고,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도리를 행하지 않아 어질고 착한 사람의 업신여김과 비방을 받는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염마라왕의 막대기를 잡은 귀신의 몸을 받아 귀신의 세계에서 염마라왕을 위해 쫓아 다니는 심부름꾼이 된다. 어떤 중생으로서 온갖 나쁜 업을 지을 때에는 염마라왕은 그 귀신을 시켜 그 사람의 정신(情神)을 기록하게 한다. 그 귀신은 몸이 추악하여 두렵고 손에는 칼과 막대기를 들었으며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어지러워 흐트러진 머리털은 몸을 덮고 긴 입술은 밑으로 처졌으며, 귀는 처지고 배는 크며 높은 소리로 크게 외쳐 모든 귀신을 두려워하게 하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죄인들을 겨누며, 죄인의 손을 뒤로 틀어 잡아 노끈으로 묶고 왕에게 끌고 가서 아뢴다. '나는 인간세상에서 이 죄인을 잡아 여기 끌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이 사람은 전생에서 좋지 않은 업을 지었습니다. 즉 몸의 업도 좋지 못하고 입과 뜻의 업도 좋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왕은 꾸짖으소서.' 이 때에 염마라왕은 곧 다음 게송으로 그를 꾸짖는다. 너는 바로 인간의 우치한 무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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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의 악업으로 스스로를 꾸몄다. 너는 본래 어찌하여 선행을 닦지 않았던가 마치 보배의 섬을 헛되이 지난 것 같다. 좋은 업의 인연으로 즐거운 과보 얻고 즐거운 과보의 인연으로 착한 마음 생긴다. 일체의 법은 마음 따라 구르나니 흘러 도는 생사는 언제나 끊이지 않네.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덧없어 마치 물거품이 견고하지 않은 것 같다. 만일 능히 이렇게 바른 법을 닦으면 그는 오는 세상에 훌륭한 과보 얻으리. 만일 누구나 항상 좋은 업 닦고 일체의 나쁜 업을 버려 떠나면 그는 내 있는 여기에 오지 않고 층계를 타고 올라 하늘 과보 받으리라. 누구나 우치하여 깨달음 없고 나쁜 업을 즐기면 나 있는 곳에 온다. 나쁘고 좋지 않은 업을 버리면 그 사람은 가장 좋은 길을 가리라. 만일 이 세상의 온갖 업의 과보 보고 또 저 천상의 갖가지 즐거움을 보고도 그래도 그와 같은 방일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는 자기 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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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 나쁜 업을 지어 몸과 입과 뜻의 모두를 마음대로 놀렸던가. 그런 사람의 행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너는 지금 그 업의 갚음으로 나 있는 곳에 왔다. 너는 갖가지의 나쁜 업에 속아서 결정코 험난한 길을 간다. 만일 누구나 즐겨 나쁜 업을 지으면 장래에 사람의 몸을 얻기 매우 어려우리라. 만일 누구나 온갖 악을 멀리 떠나고 기꺼이 좋은 업 행해 마음으로 즐기면 그는 현세에서 언제나 안락하고 반드시 해탈 열반의 과를 얻으리라. 만일 중생으로서 착한 행을 익히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날 것이요, 누구나 좋지 않은 업을 익혀 배우면 그것은 모든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이다. 누구나 지혜 있어 선을 행하면 처음·중간·나중의 나쁜 법을 떠나고 만일 온갖 나쁜 업을 지어 익히면 그는 지옥에 들어 괴로운 과보 받으리. 좋은 법으로 모든 감관 잘 다루면 이 세상의 깨끗하고 훌륭한 법을 얻을 것이요,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날 때에는 위로 천궁(天宮)에 나서 쾌락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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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 너를 결박한 것은 매우 튼튼하나니 그것은 염라왕의 사자가 가진 것으로 온갖 나쁜 두려운 그 길로 보내나니 염라왕의 세계는 매우 괴로운 곳이니라. 너는 전생에 온갖 악업 지었거니 그 업을 지금에 도로 받는다.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고 남 때문 아니다. 만일 남이 지었다면 너의 갚음 아니다.이렇게 염마라왕이 그 죄인을 꾸짖은 뒤에 사자는 그를 끌고 나간다. 그 죄인은 스스로 악업을 짓고 그 업에 스스로 속았기 때문에, 그를 끌고 나가 갖가지 고통을 받게 하면서 혹독하게 그를 다스리므로, 굶주리고 목마름의 핍박을 받지마는 다만 바람 기운만 먹고,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변방의 수자리 사는 곳이나 깊은 강·험한 언덕 등의 위험하고 두려운 곳에 있으면서 길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죄의 과보를 받는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안으로 법을 관찰한다. 비구는 어떻게 5지(地)를 관찰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의 밝은 눈으로 열 가지의 색입(色入)을 관찰한다. 열 가지란, 첫째는 안입(眼入)이요 둘째는 색입(色入)이며 셋째는 이입(耳入)이요 넷째는 성입(聲入)이며, 다섯째는 비입(鼻入)이요 여섯째는 향입(香入)이며, 일곱째는 설입(舌入)이요 여덟째는 미입(味入)이며, 아홉째는 신입(身入)이요 열째는 촉입(觸入)이다. 비구여, 눈은 어떻게 빛깔과 모양을 반연하는가? 비구는 관찰한다. 즉 눈은 빛깔을 반연하여 의식을 내고, 그 세 가지 법이 화합하여 촉(觸)을 낸다. 촉은 수(受)·상(想)·사(思)·식(識)과 함께 하는 것으로서 닿임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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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촉이요 깨달음의 모양이란 수(受)이며, 앎의 모양이란 상(想)이요 길고 짧음과 사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 같은 것들이 현재에 서로 대등한 것을 보는 것은 사(思)이지마는, 의식(意識)은 하나의 인연을 알아 각각의 모양이 있다. 그 각각의 자체가 있는 것은 열 가지 대지법(大地法)과 같다. 열 가지란 첫째는 수(受)요 둘째는 상(想)이며, 셋째는 사(思)요 넷째는 촉(觸)이며, 다섯째는 작의(作意)요 여섯째는 욕(欲)이며, 일곱째는 해탈(解脫)이요 여덟째는 염(念)이며, 아홉째는 삼매(三昧)요 열째는 혜(慧)이다. 하나를 반연하여 각각의 모양이 있고 의식 등의 열한 가지 법도 그와 같다. 마치 햇빛이 한번 나면 여러 빛의 자체가 각기 다른 것과 같고, 의식의 자체가 다른 것처럼 사(思)도 그와 같다. 그 비구는 색입(色入)을 여실히 알고, 눈은 공하여 아무 것도 없으며 견고한 것도 없고 실체도 없음을 관찰한다. 비구는 이렇게 여실히 도를 알고는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그 눈은 어리석음의 번뇌를 떠난다. 진실로 그 눈을 볼 때 그것은 다만 살덩이로서 우치하여 아는 것이 없고, 그것은 다만 눈물의 구멍임을 여실히 안 뒤에는 욕심을 떠난다. 눈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무상한 것임을 알면 그것은 다만 살덩이로서 구멍 안에 있는 것이다. 그 눈을 여실히 알 때 그것은 힘줄과 핏줄이 얽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안입(眼入)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눈이란 보는 것도 없고 나도 없으며, 알음알이도 없고 내지 고통도 그와 같다. 안입을 관찰하고는 욕심을 떠난다. 그 비구는 여실히 안입을 관찰하고 다시 분별하여 색(色)을 관찰한다. 그 색이란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거나 모두 무기(無記)인 것으로서 분별로써 생기는 것이다. 즉 어떤 법을 보고 무엇이 깨끗하며 무엇이 항상 되고 무엇을 탐할 것인가? 그 비구는 생각하고 관찰하여 여실히 색을 안다. 즉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즐거운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빛깔과 모양을 관찰하면 그것은 견고한 것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으로서 다만 분별로 생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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