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40)-400

근와(槿瓦) 2015. 11. 1. 17:27

정법념처경(40)-40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91 / 1802] 쪽

만일 누구나 존재에 대한 사랑을 끊고 존재를 희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나고 늙고 죽는 고통에 대해 조그만한 집착도 내지 않으리.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나쁜 업 짓고 온갖 악을 짓고는 더욱 자라게 하지만 욕심이란 독과 같아 친할 것이 아니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버려야 하느니라. 만일 누구나 온갖 욕심 버리고 언제나 해탈의 결과를 즐겨 구하면 그 사람은 불선(不善)을 남김 없이 없애는 것 마치 햇빛 비치어 어둠을 없애는 것 같으리. 이와 같이 훌륭한 법을 가까이하는 이는 항상 온갖 불선을 모두 버리고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을 잘 생각하리라. 이렇게 간략히 말하였노니 너희들은 알라.이렇게 그 비구는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생각하여 지혜로써 이익되게 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뒤에는 지혜로써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며,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여서는 일체 중생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고 자비를 닦아 행하며, 모든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이 핍박하는 곳을 자세히 관찰한 뒤에는 업의 과보를 알고, 업의 과보를 알고는 거기에 염증을 내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이 중생들은 왜 갖가지 나쁜 길의 매우 두려운 곳에 빠져 생사의 광야 속을 다니고 있는가?'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자비의 마음을 내어 아귀의 길의 험악한 업을

 

                                                                                [392 / 1802] 쪽

안다. 즉 그것은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속이면서 재물을 탐하고 아껴 쌓아 두며, 늘 부자 되기를 바라 온갖 악을 널리 쌓고 나쁜 탐욕에 덮여 보시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문·바라문과 병자·장님·빈궁한 사람에게도 보시하지 않고, 와서 구걸하는 사람이 있어도 인색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으며, 공덕을 짓지 않고 계율을 가지지 않아 이 세상이나 다른 세상에서 이익이 없이 쇠하고 고민하며 처자와 노비들에게도 인색하여 주지 않으며 탐하고 질투하여 스스로 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아귀 속에 떨어지는데 여자들이 많이 아귀의 길에 떨어진다. 왜냐 하면 여자의 성품은 질투가 많아 남자가 따라 주지 않으면 곧 질투를 일으키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여자들은 많이 아귀의 길에 난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즉 아귀는 어떤 곳에 사는가? 이렇게 관찰하고는 곧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거기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두 가지란 첫째는 인간에 살고, 둘째는 아귀의 세계에 산다. 인간에 사는 아귀는 밤에 다니는 사람을 보는 것도 있고, 아귀의 세계에 사는 것은 염부제 밑의 5백 유순에 사는데 길이는 3만 6천 유순이요, 그 밖의 아귀로서 나쁜 길의 권속은 그 수가 한량없고, 악업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염부제에서 가까이 사는 것도 있고, 멀리서 사는 것도 있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한량없는 종류의 모든 아귀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대략 서른여섯 종류의 아귀를 관찰한다. 즉 일체의 아귀는 모두 간탐과 질투의 인연으로 그곳에 나는데, 갖가지 마음으로 갖가지 업을 짓고 갖가지 행을 행하여 그 갖가지 사는 곳에서 갖가지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스스로 그 몸을 태운다. 이렇게 그 서른여섯 종류를 대략 말하리니, 서른여섯 종류란, 첫째는 가바리(迦婆離)로서 몸이 가마솥만한 아귀요, 둘째는 소지목거(甦支目佉)로서 입이 바늘 구멍만한 아귀며, 셋째는 반다바차(槃多婆叉)로서 토한 것을 먹는 아귀요, 넷째는 비사타(毘師陀)로서 똥을 먹는 아귀며, 다섯째는 아바차(阿婆叉)로서 밥이 없는 아귀요, 여섯째는 건타(揵陀)로서 기운을 먹는 아귀며, 일곱째는 달마바차(達摩婆叉)로서 밥을 먹는 아귀요, 여덟째는 바리

 

                                                                                [393 / 1802] 쪽

람(婆利藍)으로서 물을 먹는 아귀다. 아홉째는 아사가(阿迦)로서 바라는[稀望] 아귀요, 열째는 기타(企)로서 침을 먹는 아귀며, 열한째는 마라바차(摩羅婆叉)로서 꽃목걸이를 먹는 아귀요, 열두째는 라흘타(囉訖)로서 피를 먹는 아귀며, 열셋째는 몽사바차(瞢娑婆叉)로서 살을 먹는 아귀요, 열넷째는 소건타(蘇揵陀)로서 향기로운 연기를 먹는 아귀며, 열다섯째는 아비차라(阿毘遮羅)로서 빨리 다니는 아귀요, 열여섯째는 치타라(蚩陀邏)로서 틈을 엿보는 아귀며, 열일곱째는 파다라(波多羅)로서 땅 밑의 아귀요, 열여덟째는 의리제(矣利提)로서 신통을 부리는 아귀다. 열아홉째는 사바례(闍婆隷)로서 불타는 아귀요, 스무째는 치타라(蚩陀邏)로서 어린애의 틈을 엿보는 아귀며, 스물한째는 가마(迦摩)로서 색(色)을 탐하는 아귀요, 스물두째는 삼모타라제파(三牟陀羅提波)로서 바닷가의 아귀며, 스물셋째는 염라왕사(閻羅王使)로서 막대기를 잡은 아귀요, 스물 넷째는 바라바차(婆羅婆叉)로서 어린애를 먹는 아귀며, 스물다섯째는 오수바차(烏殊婆叉)로서 사람의 정기를 먹는 아귀요, 스물여섯째는 바라문(婆羅門)으로서 나찰 아귀며, 스물일곱째는 군다화로(君茶火爐)로서 구워 먹는 아귀요, 스물여덟째는 아수바라타(阿輸婆囉他)로서 더러운 거리의 아귀다. 스물아홉째는 바이바차(婆移婆叉)로서 바람을 먹는 아귀요, 서른째는 앙가라바차(鴦伽囉婆叉)로서 숯불을 먹는 아귀며, 서른한째는 비사바차(毘沙婆叉)로서 독을 먹는 아귀요, 서른두째는 아타비(阿毘)로서 광야의 아귀이며, 서른 셋째는 사마사라(摩舍羅)로서 무덤 사이에 살면서 뜨거운 재흙을 먹는 아귀요, 서른넷째는 비리차(毘利差)로서 나무 속에 사는 아귀며, 서른다섯째는 차다파타(遮多波他)로서 네거리의 아귀요, 서른여섯째는 마라가야(魔羅迦耶)로서 몸을 죽이는 아귀다. 이것이 대략 말한 서른여섯 종류의 아귀요, 자세히 말하자면 한량이 없다. 심한 마음으로 악을 짓되 업의 행이 각각 다르지마는, 갖가지 인색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탐하는 마음으로 갖가지 몸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모든 아귀들이 크게 굶주리고

 

                                                                                [394 / 1802] 쪽

목마름을 받아 스스로 그 몸을 태우는 것을 관찰한다. 즉 그들은 전생에 질투를 많이 일으켜 나쁜 마음으로 부수고,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과 열 가지 좋지 않은 업을 두루 지어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는 열 가지 좋지 않은 업을 지은 인연으로 온갖 고통을 받는다. 악업 때문에 아귀들 속에 나고 악업이 이끌기 때문에, 업이 근본이 되기 때문에 나쁜 길에 들어가 거기에 결박되고, 그 업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이 없는 그 때부터 원숭이의 마음이 시끄러이 날뛰고 경솔히 굴기 때문에 험난하고 막힌 곳으로 다니면서 갖가지의 그물과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빨리 오가며 생사의 산으로 가서 바윗굴 속에 자는 등 다닌 곳을 다 알지 못한다. 마음의 원숭이를 관찰하면 빨리 달리면서 잠깐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하면 그것은 중생을 끌고 매우 두려운 곳으로 가므로 중생들은 큰 고통을 받는다. 이 마음의 원수는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에 굴러다니게 한다. 비구는 이렇게 마음을 생각한 뒤에 생사에 대해 더러운 욕심을 떠나게 되고 생사의 고통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의 생사는 모두 고통이다.' 그 비구는 생각하고 분별한다. 즉 아귀에는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낱낱이 분별한 뒤에 그 모든 업보를 관찰한다. 즉 그것은 원인이 없이 생긴 것이 아니다. 괴롭고 즐거움이나 좋고 더러움이나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이나 선과 악이나 귀하고 천함이나 높고 낮음이나 나고 죽는 모든 것은 다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 비구는 이렇게 모든 아귀를 관찰하고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관찰한다. 즉 몸이 가마솥만한 가바리(迦婆離) 아귀를 어떻게 관찰하는가? 그 몸은 장대하여 사람의 두 배가 넘고, 얼굴과 눈·손·발·구멍 등이 없어 마치 가마솥 발과 같으며, 뜨거운 불이 그 안에 가득하여 그 몸을 태우되, 불이 숲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굶주리고 목마르는 뜨거운 번뇌가 있다. 그것은 업보의 결박으로 구원할 사람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으며 믿을

 

                                                                                [395 / 1802] 쪽

곳이 없다. 아무리 근심하고 고통하지마는 구호할 사람이 없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본다. 즉 이 중생은 전생에 재물을 탐하였기 때문에 남을 위해 살생을 하되, 삯을 받고 살생하고는 지방과 살을 저미면서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 또 탐하는 마음으로 살생하는데 살생하고는 기뻐하며, 악업을 지어 모으고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가바리 아귀의 몸[가바리가(迦婆離迦)는 위나라 말로 확신(鑊身)이다.]을 받아 땅 밑의 5백 유순에 살고,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갑자기 매우 두렵고 어두운 곳에 나며, 거기 나면 위아래의 두 산이 한꺼번에 모여 그 몸을 눌러 짜므로 그는 큰 고통을 받는다. 몸은 자꾸 커져 1유순에 차며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그 몸을 태운다. 아귀의 길에서 5백 년을 지내는데, 아귀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은 이 염부제의 햇수로는 10년을 지낸다. 그런 5백 년을 1생이라 하지마는 조금 넘고 많이 줄어드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수명은 일정하지 않다. 또 둘째의 업으로 아귀 속에 떨어진다. 즉 어떤 중생이, 남이 맡기는 물건을 받고도 거절하여 돌려주지 않으면 그는 저곳에 나서 재물도 보시하지 않고 법도 보시하지 않으며 두려움이 없음도 보시하지 않는다. 남자나 여자나 이 세 가지 보시를 행하지 않고 항상 간탐과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인연으로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또 그 비구가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를 관찰할 때,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들을 관찰한다. 즉 어떤 업으로 저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소지목거(蘇支目佉) 아귀[소지목거는 위나라 말로 침구(針口)이다.]를 관찰하고 그 중생을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재물로 사람을 고용하여 살생하게 하고 간탐과 질투로 보시하지 않되, 의식도 보시하지 않고 두려움 없음도 보시하지 않으며 법도 보시하지 않았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의 몸을 받고, 그 아귀의 몸을 받으면 자기 업에 속아서 그 받은 몸의 입

 

                                                                                [396 / 1802] 쪽

은 바늘구멍과 같고, 배는 큰 산과 같아서 항상 걱정하고 근심하며, 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그 몸을 태우면서 몸 안으로는 온갖 고통을 받고, 몸 밖으로는 추위와 더위가 있으며, 모기·등에 등의 나쁜 벌레와 열병 등의 고통이 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으로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아귀 세계의 하루 낮 하루밤은 인간의 햇수에 비하면 10년이 넘는데, 그런 목숨을 받아 5백 년을 채우지마는 그 수명은 일정하지 않으며, 남자나 여자나 그 속에 태어난다. 또 둘째의 업으로 이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 속에 난다. 즉 어떤 남자가 그 아내에게 명령하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을 주라 하면, 그 아내는 실로는 음식이 있는데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 남편에게 말한다.'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으로 사문과 도사에게 주라 하십니까?'이렇게 그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재물을 아껴 보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것은 악업을 많이 지어 쌓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여자가 많이 아귀 세계에 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여자는 탐욕과 질투가 많기 때문에 남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여자는 마음이 작고 마음이 가볍기 때문에 남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아귀들 속에 나고, 내지 질투하는 악업이 없어지지도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으면 그 아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축생들 속에 나되, 차타가(遮迦)라는 새[이 새는 다만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만 먹으므로 우러러 입을 벌리고 하늘의 빗물을 받아 마시며, 다른 물은 먹지 못한다.]의 몸을 받아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뇌하면서 큰 고통을 받는다. 축생으로 죽으면 인간에 나더라도 남은 업 때문에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곤란을 당하면서 그 받는 고통은 끝이 없고 항상 다니면서 걸식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남은 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모든 아귀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토한 것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이 중생들은 어떤 업으로 이런 아귀의 몸을 받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이 중생

 

                                                                                [397 / 1802] 쪽

은 전생에 여자의 몸이 되어 그 남편을 속이고 저만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간탐과 질투로 그 자식을 미워하여 음식을 주지 않았고, 혹 어떤 남자는 그 아내가 딴 마음이 없는데도 질투하는 마음을 내어 혼자서만 맛난 음식을 먹고 처자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인연으로 반다(槃多) 아귀[반다바차(槃多婆叉)는 위나라 말로 식토(食吐)이다.] 속에 떨어진 것이다. 아귀의 몸을 받고는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이 그 몸을 태우는데, 그 몸은 광대하여 키는 반유순으로서 광야에서 사방으로 빨리 달리면서 물을 구하고 큰 소리로 외치되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말한다. 이 중생은 전생에 재물과 두려움 없음을 보시하지 않고 법을 보시하지 않았다. 그 인연으로 아귀 속에 태어나서 수명이 긴 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5백 년을 지내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부서지거나 무너지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한 것을 먹는 아귀 속에 있으면서 항상 토한 음식을 구하여도 조금도 얻지 못하고,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축생들 속에 나더라도 또한 토한 것을 먹으면서 굶주리고 목마름의 고통을 받고, 축생 속에서 죽으면 인간에 나더라도 남은 업의 인연으로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면서 거리에서 세상 사람들이 먹다 버린 밥을 주워 먹으며, 혹은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서 구걸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남은 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모든 아귀들을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이 중생은 전생에 탐욕과 질투를 많이 행하고 항상 인색하여 보시를 행하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보시하여 그 사문이나 바라문이 부정한 음식인 줄 알지 못하고 곧 그것을 먹으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똥을 먹는 아귀들 속에 난다. 수명의 길고 짧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5백 년 동안 굶주리고 목마름이 그 몸을 태우므로 똥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데, 업의 힘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고 더러운 곳에서 구더기와 똥 속을 달리면서 찾아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며 목숨이 다하지 않는 동안은 항

 

                                                                                 [398 / 1802] 쪽

상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일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업을 따라 흘러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온갖 나쁜 몸을 받는다. 그리하여 혹 인간에 나더라도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아침밥을 빌어 먹으면서 살아가며, 한량없는 불행으로 장식[嚴飾]을 삼고, 그 몸이 찢어져 더럽고 냄새 나므로 남의 천대를 받으며, 입에는 비린내 나고 그 치아는 검다.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인색하고 질투하는 아귀들이 사는 곳을 관찰할 때, 일체의 아귀들은 인색과 질투로 근본을 삼는다. 이 중생들은 어떤 업으로 먹을 것이 없는 아귀들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아귀는 전생에 인색과 질투로 그 마음을 덮어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제 힘을 믿고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여 옥에 가둔 뒤에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여 그를 죽게 한다. 그를 죽이고는 유쾌히 여겨 후회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며, 다시 남을 시켜 악업을 짓게 하고도 조금도 뉘우쳐 고치지 않는다. 그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음식이 없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남자나 혹은 여자로서 그 속에 태어나면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더욱 왕성하여 산의 깊은 물에서 솟는 물결의 힘과 같이 뱃속에서 불이 일어나 그 몸을 태워 남음이 없고, 없어지면 다시 생기며 생기면 다시 태운다. 두 가지 고통이 있다.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불에 타는 것이다. 그가 고통의 핍박을 받아 외치고 슬피 괴로워하면서 사방으로 돌아 달리면, 자기 업의 나쁜 과보는 불가사의하여 그는 이렇게 안팎의 고통을 받아 온몸은 업의 불에 탄다. 몸 안에서 불이 생겨 그 몸을 태우는 것은 마치 큰 나무 속이 비고 말랐을 때 어떤 사람이 거기 불을 던지면 맹렬히 타는 것처럼, 그 아귀가 불에 타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온몸이 두루 탄다. 그가 슬피 부르짖고 울면 입 안에서 불이 생겨 두 개의 불꽃이 그 몸을 태운다.

 

                                                                                [399 / 1802] 쪽

그가 두려워하여 길을 찾으면 땅에서 가시가 나서 모두 불에 타면서 두 발을 꿰찌르면 그 고통은 참기 어려우므로 슬피 부르짖고 외치면 불은 그 혀를 태워 모두 익어 녹는 것은, 마치 엉긴 소(酥)를 태우는 것과 같아서 없어지면 다시 생기며, 악업으로 말미암아 돌아다니면서 물을 찾아 여러 못물이 흐르는 근원으로 가면 물은 이내 말라 버린다. 그가 나쁜 업으로 숲 속의 놀던 곳으로 가면, 높은 언덕이나 혹은 늪 속에는 뒤바뀐 소견 때문에 다만 모두가 큰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산의 나무들이 모두 불에 타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물가를 보면 물을 지키는 귀신이 무기를 들고 그 머리를 때려 그는 큰 고통을 받는데, 그것은 다 전생에 탐하고 질투한 마음의 원수에 속았기 때문이다. 수명이 매우 길어 5백 년을 지내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이 악업으로 항상 먹을 것이 없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일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악업에 불려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어머니 태에 있을 때에 어머니가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의 몸을 여위고 추하게 하며, 살생한 업 때문에 어머니 태에서 떨어지고 태에서 떨어져 일찍 죽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몸이 더러워 밉게 하고 불선을 행하기를 즐기며, 나게 되면 수명이 짧고 어려움이 많으며, 왕의 법에 걸려 감옥의 고통을 받고 굶주리고 목말라 죽는데, 그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기운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많은 맛난 음식을 먹되, 저만 먹고 처자와 그 밖의 권속에게는 주지 않으므로, 처자는 다만 그 냄새만 맡고 그 맛은 알지 못한다. 처자들 앞에서 혼자 먹을 뿐 아니라 인색과 질투 때문에 업이 같은 권속에게도 주지 않으며,

 

                                                                                [400 / 1802] 쪽

또 남을 시켜 그 처자에게 주지 않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 이런 허물을 자주 짓고도 뉘우쳐 고치지 않고 또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기운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고, 거기 태어난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신음하고 외치며 슬피 울고 괴로워한다. 다만 믿는 것은 절이나 또 하늘에 제사하는 신심이 있는 사람의 베푸는 공양뿐인데, 그것도 다만 그 냄새와 다른 냄새만 맡고 그것으로 살아간다. 또 냄새를 맡는 아귀들은 세상 사람이 병이 많기 때문에 물가나 숲 속이나 거리에 제물을 차리면 그 냄새를 맡고 살아간다. 이런 냄새를 맡는 아귀들은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죽지는 않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며,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몸이 추한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법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은 법의 인연으로 몸을 부지하고 또 세력이 있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그 아귀는 인간으로 있을 때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많은 성질이 있어서 살아가기 위하여, 또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면서 마음으로 존경하지 않고 계율을 범하고 신심이 없으며, 중생들을 항복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한 법을 말한다. 즉 살생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얻는다고 말하고, 억지로 남의 재물을 빼앗아도 죄가 없다고 말하며, 여자를 남에게 주면 큰 복덕을 얻고, 한 마리의 큰 소를 놓아주는 것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이런 깨끗하지 못한 법을 남에게 설명하여 재물을 스스로 공양하면서도 보시는 행하지 않고 온 창고에 쌓아 두면, 그는 그 질투가 마음을 덮어 목숨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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