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44)-44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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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민타산(民陀山)의 굴 속이나 파리야다(波梨耶多)의 깊고 험한 산 속이나 빙산의 극히 찬 곳이나 혹은 마라야산(摩羅耶山)의 매우 험난하고 독이 많은 산에 태어나서 사는데, 거기는 물이 없고 독약이 많으며, 추우면 얼음이 얼고 더우면 독이 왕성하며, 매우 두려운 무더기 돌·높은 바위·사자와 호랑이가 사는 곳에 태어난다. 추운 고통의 심한 고민은 남보다 백 배나 더하고 여름날의 뜨거운 고통도 남보다 백 배나 더하다. 한여름에는 닷새 동안 공중에서 불을 내려 그 몸을 태우고 한겨울의 추위가 닥치면 닷새 동안 허공에서 칼을 내리는데, 악업 때문에 공중에서 불을 내리고 또 칼을 내리는 것이다. 그들은 험난한 곳에 살면서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이 그 몸을 태우므로, 부르짖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독약을 스스로 먹는데 먹으면 곧 죽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면 굶주리고 목마름이 먼저보다 배나 더하다. 그리하여 외치고 슬퍼하면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새가 와서 눈을 쪼므로 큰 고통을 받으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외치며, 새가 쪼아 먹으면 눈은 다시 생긴다. 이렇게 고통을 받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네거리에서 살아가되 악업의 훈습 때문에 독약으로 남을 해치다가, 도로 활지옥 등의 큰 지옥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광야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그 중생을 안다. 즉 전생에 물이 없는 광야의 험난한 곳에 햇빛이 불꽃처럼 뜨거우므로, 복을 구하는 어떤 사람이 나무를 심고 못을 만들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보시할 때에, 어떤 도적 떼들이 그 못물을 끊어 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피로하고 목말라 기력을 약하게 하고, 그를 겁탈하여 그 재물을 빼앗고도 질투가 마음을 덮어 보시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타비(阿毘)라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리하여 큰 불이 그 몸을 태우는 것은 마치 불로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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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햇빛이 불꽃처럼 내리 쪼이므로 광야로 내달아 부르짖으면서 물과 음식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며 스스로 살아간다. 그런 아귀는 악업 때문에 멀리서 아지랑이를 보고는, 그것을 맑은 물이 고요히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빨리 달려가 그 물을 마시려 한다. 그러나 심한 피로는 헤아릴 수 없고 가는 곳에서는 다만 물이 없는 빈 땅만 본다. 왜냐 하면 아지랑이는 원래 물이 없는 성질인데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귀신은 매우 두려워하여 광야로 달리면 가시의 모진 바늘은 두 발을 찔러 뚫고, 피로는 극도에 이르러 물을 바라면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지마는, 악업의 힘 때문에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나 굶주리고 목마른 고민은 먼저보다 열 배나 더하다. 땅에서 미처 일어나기 전에 솔개·독수리 따위의 새들이 와서 그 눈을 다투어 쪼고 그 몸의 살을 먹되, 쪼개고 찢어 그 몸의 뼈를 부수어 흩으면 세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닥쳐 큰 고통을 받지마는, 돌아갈 곳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으므로, 서로 슬피 알리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솔개·독수리 등의 나쁜 새들이 금강의 날카로운 부리로 내 몸을 쪼고 움켜잡아 찢고 부수어 완전한 곳 없나니 이렇게 온갖 고통 받아도 구호해 줄 이 없다. 온갖 악업은 그림자같이 몸을 떠나지 않아 옛날의 악업 그대로 지금 과보 받는다. 나는 옛날에 길 가는 이 해쳤거니 그러므로 지금에 큰 고뇌 받는다. 업의 울타리에 둘러싸이고 업의 그물에 걸려 아무리 보아도 벗어날 만한 곳이 없는데 오직 지은 악업이 모두 부서진 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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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이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악업은 능히 모든 중생 잡나니 업은 끌어 이 무서운 곳에 이르게 하고 악업은 능히 어디로 가나 따라오나니 그 결과 받을 때 되어 나쁜 업은 익는다. 업에 묶인 중생은 삼계에 노닐면서 끝없이 생사를 거듭하여 쉴 때가 없구나. 만일 선업 행하고 온갖 악을 버리면 그는 곧 이익 없는 온갖 고통 떠나리. 만일 누구나 온갖 악업 즐기지 않고 그것을 불처럼 보아 탐착하지 않으면 그는 이 아귀의 세상에 이르지 않고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에 타지 않으리. 잠깐도 쉬지 않고 항상 늘고 자라나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은 생각생각 생기나니 온몸에 붙는 불은 산골짝을 비추어 마치 큰 불이 산림을 태우는 것 같구나. 들불이 큰 산림을 태우더라도큰 용이 비를 내리면 끌 수 있지만 겁의 불이 한 번 일면 바닷물도 마르나니 내 불도 그와 같아 끌 수 없구나. 업의 섶나무 인연으로 이 불이 생겨났고 애욕의 바람에 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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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업의 불은 내 몸을 태우나니 두루두루 둘러싸서 빈 틈 없구나. 계율과 정진과 지혜의 물 등 보시의 병에 그것을 담고 열반한 큰 사람은 그 물을 갖고 삼계의 업의 불을 능히 잘 끈다. 만일 세 가지 업의 부림 받으면 세 가지 그 업으로 흘러다니며 온갖 곳에 태어난다. 그가 나쁜 세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런 세 가지 법에 속했기 때문이다. 서른여섯 가지 그 업에 휘몰리면 마흔 가지 행을 떠나지 못하나니 아흔여덟 가지의 온갖 번뇌 있어서 그런 따위 법으로 삼계를 다닌다. 백 여덟 가지의 밝은 지혜로열두 가지 깊은 이치 생각하나니 누구나 법과 법이 아님을 능히 안다면 그 사람은 한량없는 즐거움 얻으리라. 만일 누구나 두 가지의 모양 알고 열여섯 가지의 뛰어난 행 생각하면 열여섯 가지의 뛰어난 행 생각한 뒤에는 그는 온갖 나쁜 길 멀리 떠나리. 만일 누구나 두 가지의 도를 볼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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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네 가지의 법을 완성한 사람이요.이미 네 가지 흐름의 바다를 건너뛰면 그 사람은 깨달아 아무 고뇌 없으리. 여덟 가지 거룩한 도 잘 수행하고 열 가지 힘의 이치 잘 보아 알며 두 가지의 고통의 인연을 잘 알면 그 사람은 생멸이 없는 곳에 이르리. 만일 누구나 두 가지 진리[二諦]의 이치를 잘 알고 사념처를 잘 생각하며 과거와 미래 세상 잘 관찰하면 그는 악마의 그물 장애 받지 않으리. 나는 그 나쁜 업의 부림을 받아 온갖 좋은 깨끗한 법 멀리 떠나고 이 온갖 아귀의 세계 속에 왔나니 스스로 악업을 짓고 우치에 미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여러 아귀들은 날카로운 근기와 지혜가 있고 또 조그만 선업이 있으므로 본래의 행을 생각하고 계속해 아귀들을 꾸짖는다. 이렇게 아귀들을 꾸짖지마는 그 악업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며,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험한 산을 다니며, 사슴떼를 쫓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무덤 사이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어떤 믿는 사람이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보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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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보고, 그 꽃을 훔쳐다 팔아 자기가 쓴다.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귀 속에 떨어지되 무덤 사이에 사는 아귀의 몸을 받는다. 그리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심한 번뇌 때문에 항상 죽은 사람을 태운 뜨거운 재와 흙을 먹는데, 한 달에 한 번 먹거나 혹은 먹지 못할 때도 있다. 머리에는 쇠의 꽃다발을 썼는데 불꽃은 한꺼번에 일어나 얼굴과 두개골이 모두 타서 문드러지고 타면 다시 생긴다. 다음에는 쓰는 쇠의 꽃다발은 목 위를 꿰뚫고 불꽃이 다시 일어 목구멍과 가슴을 태우며, 온몸 안에서 불이 일어 그 몸을 두루 태운다. 그것은 전생에 부처님의 꽃다발을 훔쳤기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받은 몸은 추악하고 몸에서는 불이 일며 온갖 벌레가 뜯어 먹는다. 또 어떤 나찰은 거기 와서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그 몸을 벤다. 그는 고통이 심해 부르짖으며 세 가지 고통을 받는다. 세 가지란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쇠의 꽃다발이요, 셋째는 나찰이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베는 것이다. 그는 악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민하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나는 굶주리고 목마름의 온갖 고통 받는데 쇠 꽃다발은 몸을 꿰고 불은 맹렬히 타며 칼과 몽둥이로 때리고 베는 것은 셋째 고통으로서 이런 온갖 고통을 모두 받는다. 나는 내 마음의 속임을 받고 온갖 악업과 우치에 미혹 되어 오늘에 이 아귀의 고통 받나니 좋은 벗과 친족들 아주 떠났다. 내 업의 결박의 고통을 구할 이는 벗도 아니요 또 아내도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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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권속들도 아니거니 그 업은 힘이 세어 뺏을 수 없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업 때문이요, 남이 지은 것 아니다. 내가 지금 받는 이 세 가지 업은 보시와 계율과 법을 듣고 도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치의 그물에 덮였기 때문에 가지가지의 온갖 악업을 짓고 가장 나쁜 그 업의 인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큰 고통의 과보 받는다. 만일 지금 내가 이 아귀 세계의 크게 괴로운 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이러한 나쁜 업은 미래 세상에 내지 목숨 잃더라도 짓지 않으리. 그 때에 아귀는 이렇게 말한 뒤에 큰 고통에 눌리면서 본래 지은 업을 후회한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백정의 집에 떨어져 백정으로서 살생하는 일을 맡아 송장을 지고 다니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나무 속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사람이 멀리 여행하는 사람과 병으로 곤란한 사람을 위해 복덕의 나무를 심은 것을 보고,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베어 재목을 취하고, 또 사찰의 나무를 베었으므로 그는 그 나쁜 인연으로 몸이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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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비리차(毘利差)라는 아귀들 속에 떨어져 나무 속에 산다. 그리하여 그 악업 때문에 추울 때에는 매우 춥고 더울 때에는 매우 더우므로, 그 핍박에 몸이 눌려 적목충(賊木虫)처럼 큰 고통을 받으며, 몸은 시들어 개미 따위의 벌레들이 그 몸을 뜯어 먹는다. 혹 그 나무에 버리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먹으면서 스스로 살아간다. 아귀 속에서 온갖 고통을 받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약초와 재목·꽃잎 등을 팔아 살아가며, 남의 심부름꾼이 되어 자유를 얻지 못하면서 큰 고통을 받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하고 어떤 아귀가 네거리에 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이름을 삼은 것을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부수어, 남의 여행에 쓸 양식을 훔치고는 웃음을 머금고 그를 버리고 떠나므로 그 사람은 양식을 잃고 광야에 가서 큰 굶주림과 목마름을 받는다. 그런 사람은 그 악업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차다파타(遮多波他)라는 아귀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악업 때문에 자연히 쇠톱이 생겨 그 몸을 끊되 가로 세로 사방으로 뚫으며, 굶주리고 목마름은 몸을 태운다. 세상 사람들은 병이 많기 때문에 네거리에 제사를 차린다. 범부들은 어리석어 인과를 알지 못하고 나쁜 소견으로 네거리에 제사한 뒤에 병이 나으면 그것을 귀신의 은혜라 생각한다. 그 네거리의 아귀는 그 제사 밥으로 목숨을 구제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한다.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지는 않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하천하며 염소를 잡는 백정의 집에 태어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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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중생들은 삿된 도를 행하고 아첨하고 간사하여 악을 지으며 악의 인을 행한다. 그리하여 삿된 소견의 법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진리라 말하고 바른 법을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마라(魔羅)의 몸을 가진 아귀 속에 떨어진다. 비구들이 다닐 때나 음식을 먹을 때나 혹은 좌선할 때에 그 마라의 아귀는 마음을 어지럽혀 장애하는 일을 짓는데, 나쁜 소리를 내어 그들을 두렵게 하거나 혹은 나쁜 꿈을 보인다. 그런 아귀는 악마에 포섭되어 바른 법을 미워하고 오로지 포악한 짓을 행한다. 그는 현재에 악업을 지은 인연으로 크고 뜨거운 쇳덩이가 입으로 들어가 지옥 사람과 다름이 없이 뜨거운 쇠를 먹어 삼키면서 큰 고통을 받되 조금도 쉼이 없고, 그 마라가야(魔羅迦耶)의 아귀 속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많은 겁 동안 고통을 받되 10겁이나 혹은 20겁을 채운다. 이렇게 결정코 세 가지의 나쁜 세계에 있으면서 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몽둥이에 맞으며 남에게 먹히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장님이나 벙어리나 귀머거리로 아는 것이 없으며, 온갖 쇠약과 한량없는 병의 고통으로 그 몸을 장식하며 빈궁하고 하천한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하고, 들어 얻은 지혜로 이렇게 대강 말한 아귀의 처소를 관찰하였지마는, 만일 분별하여 설명하면 한량없는 종류의 아귀 권속이 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 살기도 하고 바닷가에 살기도 하며 염부제에 살기도 하고 구다니에 살기도 하며, 불파제에 살기도 하고 혹은 울단월 등의 큰 세계의 중간의 처소에 사는 것도 있다. 다만 하나의 이름의 문으로 설명하지마는 갖가지 이름의 문이 있다. 즉 나찰이라는 귀신·구반다라는 귀신·비사사라는 귀신들이 있는데 그 귀신들의 미세한 업행도 안다. 즉 각기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행을 하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런 아귀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태어나는가? 즉 그들은 모두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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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를 항복 받지 못하여 그 행이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코끼리의 귀처럼 가만히 있을 때가 없고, 숲에 있는 새가 사람의 화살을 받고서도 울면서 가지로 옮겨 갈 때 한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로 가는 것처럼, 모든 경계를 쉬지 않고 항상 엿보며, 또 마치 큰 바람에 불려 움직이는 티끌들과 같다. 이 마음의 두렵기는 사자와 같고 범이나 표범 같으며 뱀이나 독약 같은데, 그래도 그것들은 항복 받을 수 있지마는 이 마음의 다루기 어렵기는 그것들 보다 더하다. 그 지은 바 업을 따라 그 업과 같은 과보를 받는데, 이 마음은 이렇게 깨달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더러운 마음은 중생을 결박하지마는 만일 그 마음이 청정하면 곧 해탈을 얻는다. 이 마음은 왕과 같고 모든 감관은 그것을 둘러싼 권속이 되어 있다. 마음이 업을 짓고 업의 인연으로 과보가 있으며, 과보의 인연으로 다섯 가지의 길이 있다. 마음은 기관과 같고 모든 감관은 실과 같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감관과 그 마음을 잘 다루지 않으면 나쁜 도를 행하고, 그것을 잘 다루면 온갖 선업을 지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며 나아가서는 움직이지 않는 열반을 증득한다. 그 비구는 이렇게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법대로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한 뒤에는 생사에 대해 큰 염증을 낸다. 그 비구는 먼저는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여 생사를 싫어하고, 다음에는 아귀 세상의 갖가지 고통을 관찰하여 괴로움의 진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괴로움의 진리의 걸림이 없는 행은 얻었지마는 아직 걸림이 없는 도는 증득하지 못하였다. 다시 수행하는 사람은 안으로 법을 관찰하고 그 법을 따라 수행한다. 즉 그 비구는 있는 그대로 업의 과보를 관찰하되, 먼저는 분별하여 지옥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모든 아귀의 길의 차별을 관찰하여 온갖 생사의 근심의 매우 나쁘고 천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렇게 관찰한 뒤에는 악마의 경계를 떠나고 생사를 싫어해 버리고는, 정진의 힘을 일으켜 열반을 구하여 그것을 원만히 성취하여 15지(地)를 얻었다. 그것을 성취하였을 때에 땅의 신과 야차들은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여 허공.....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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