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수행신심분)

근와(槿瓦) 2013. 8. 27. 02:15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목숨을 바쳐 귀의하옵니다.

어디서나 어느 때에나

가장 훌륭한 일을하시며

모르는 것 없이 다 아시며

구애됨이 없이 자유 자재하시고

세상을 건지려고

큰 자비를 베푸는 이시여.

 

목숨을 바쳐 귀의하옵니다.

지혜로운 몸이여

자비로운 모습이여

저 바다와 같은 진리여.

 

목숨을 바쳐 귀의하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의

씌어 있는 그대로

생활하는 수행자들이여.

 

모든 중생의 의혹을 없애고 그릇된 고집을 버리게 하며, 大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일으켜 깨닫는 자가 끊어지지 않고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다. 어떤 법이 대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가? 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논은 다섯 부분으로 나눈다. 다섯 부분은 첫째 因緣分, 둘째 立義分, 세째 解釋分, 네째 修行信心分, 다섯째 勸修利益分이다.

 

六三

修行信心分

이것은 신심이 바로 정해지지 않은 사람(未入正定聚衆生)을 위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신심을 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신심은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근본을 믿는 것이니(信根本), 이를테면 일체 사물의 근본이 진여라고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진여법을 깨달은 이에게는 무량한 공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니(信佛有無量功德), 항상 그를 가까이하여 공양 · 공경하며 선근을 일으켜 일체 지혜를 願求하기 때문이다.

세째, 그가 가르친 교훈을 실천하면, 큰 이익이 있다고 믿는 것이니(信法有大利益), 항상 모든 波羅蜜多를 생각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네째, 스님들은 바른 수행을 한다고 믿는 것이니(信僧能正修行), 그들은 자리와 이타를 겸행하며, 항상 모든 보살들을 가까이하기를 즐거워하여, 거짓이 없는 참다운 생활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행에 있어서는 다섯 가지 길이 있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수행은 위의 신심을 성취하게도 한다.

다섯 가지 수행이란, 

베풀어 주는 것(施), 

윤리를 지키는 것(戒),

참고 용서하는 것(忍),

부지런히 힘쓰는 것(進),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관찰하는 것(止觀) 등이다.

 

六四

베풀어 주라는 길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누구든지 와서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있는 재산을 능력에 따라 주고, 스스로 인색하고 탐하는 마음을 버려, 구하러 온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재액을 만나서, 공포와 위협을 당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그 어려움을 받아 감당하고, 그 사람을 공포에서부터 구출해야 한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진리를 구해 오거든 자기 아는 대로 좋은 방편을 써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의 명리나 존경받기를 구해서는 안된다. 오직 나와 남의 공동 이익을 염원하여, 올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마음을 돌려야 한다.

 

六五

어떻게 윤리를 지킬 것인가?

열 가지 좋지 않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1) 죽이지 말라.

(2) 도둑질하지 말라.

(3) 간음하지 말라.

(4) 이간질하지 말라.

(5) 악한 말을 하지 말라.

(6) 거짓말하지 말라.

(7) 번지르르하게 꾸며 말하지 말라.

(8) 탐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9) 시기 · 질투 · 분노하지 말라.

(10) 그릇된 주장을 가지지 말라.

 

만약 출가자라면 모든 번뇌를 물리치기 위해서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물며, 욕심을 줄이고 만족하는 태도를 배우고 금욕 · 고행 등을 익혀 작은 죄를 짓더라도 두려운 마음을 일으켜 뉘우치고 고치며, 불타께서 제정한 계율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남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六六

어떻게 참고 용서하는 길을 실천할 것인가?

남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참고, 마음속에 원수갚을 생각을 품지 않으며, 또 자기를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훼방하거나, 칭찬하거나, 나아가 고통을 주거나, 안락을 준다 해도 이러한 모든 것을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六七

부지런히 힘쓰는 길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모든 좋은 일에는 마음에 게으름을 피우다 물러서지 말고 뜻을 굳게 가지며, 겁을 집어먹고 비겁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기를 과거 오랜 옛부터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았으나 아무런 이익은 없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모든 공덕을 닦아, 나와 남, 모두가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고통을 벗어 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범부들은 신심을 실천하지만, 과거로부터 많은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있기 때문에 사악한 번뇌에 덮이기도 하며, 세상의 갖가지 일들에 쫓기기도 하며, 혹은 병의 고통을 당하는 등, 이와 같은 많은 장애가 있다.

그러므로 더욱 더 용맹정진하여, 장애에서 벗어나 선근을 증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참회하며,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청하고, 또 기뻐하며, 온 마음을 깨달음에 바쳐, 항상 쉬지 않아야 한다.

 

六八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관찰할 것인가?

止라는 것은 일체의 대상 세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니,〈샤마타〉관의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이다.

觀이라는 것은 무슨 원인과 동기로 이와 같은 마음의 동요가 생겼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없어지는가 하고 분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을 범어로는,〈비파샤나〉라 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법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둘 다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六九

샤마타(止)의 실천을 익혀 배우는 자는 고요한 곳을 찾아 단정히 앉아 마음을 바르게 하고, 호흡의 수를 세거나, 인간의 몸은 더러운 뼈와 해골, 피나는 모습, 또는 공이라거나, 지수화풍이니, 그 밖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생각마다 모든 망념을 다 없애며, 이러한 생각을 없앴다고 하는 생각까지도 없애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본래 집착할 만한 그러한 것이 아니니, 잠시도 그러한 생각을 일으켰다 없앴다 하지 않아야 한다. 또 외계의 사물에 마음을 흘려 보내지도 말며, 고요한 마음으로 산란한 마음을 없애야 한다. 만약 마음이 바깥으로 내달으면 곧 안으로 끌어들여 올바른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올바른 생각이란, 외계의 사물은 오직 마음의 소산임을 알고, 이 마음은 어떤 모습이 없으므로 그 마음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七十

앉았다 일어나거나, 가고 오고 하는 일체 행동, 모든 때에 있어서 그것 모두를 방편으로 생각하고, 잘 관찰하여 오랫동안 익히고 닦으면,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면 곧 진여삼매의 경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번뇌는 없어지고 신심은 증장되어 참다운 인간성을 이루고 물러남은 없을 것이다. 오직 의혹과 불신과 비방과 중죄와 오만과 해태는 제거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사람은 참되고 한결같은 인간성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七一

또한 어떤 사람이 이 삼매에 의하여 수도하는 자는 온 세계가 오직 진여의 한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체의 깨달은 자, 곧 법신과 중생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줄 알게 되니, 이것을 一行三昧라고 한다. 진여한 마음이 이 삼매의 근본이며, 만약 수행을 계속하면 점점 무량한 삼매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七二

혹 중생에게 선근의 힘이 없으면 갖가지 마나 외도, 귀신들의 유혹을 받아 마음을 어지럽게 할 것이며, 앉아서 참선하는 중에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 공포를 주고, 또 단정한 사나이 또는 계집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음을 산란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어 오직 진여만 생각하면 대상 세계는 없어지고 모든 잡된 번뇌도 사라질 것이다.

참선 중에 혹은 천인의 모습, 또는 보살의 모습, 나아가서는 숭고한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陀羅尼를 설하며, 혹은 六波羅蜜을 설하며, 혹은 평등하고, 공하고, 아무것도 없으며, 원하는 것도 없고, 원수도 친한 이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으며, 절대적으로 공적한 것이 참다운 열반이라고 한다.

혹은 참선 중에 지난 옛일과, 미래의 일을 다 알게 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알도록 하고, 자유 자재한 변재를 갖도록 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을 세상의 명리를 탐착하도록 하고, 또 성내고 기쁘게 하여 원칙이 없도록 한다.

혹은 인정이 많기도 하고, 잠과 병이 많아 그 마음을 게으르게도 하며, 또 갑자기 정진을 시작하고는 곧 그만두거나 불신감을 일으켜 의심하게도 한다. 또 훌륭한 수행을 버리고, 다시 잡된 일을 하며 세상의 명리에 집착하여 여러가지로 얽매이기도 하다.

또 삼매를 얻게도 한다. 이것은 다소 비슷할 뿐이며, 모두가 외도들이 얻는 것으로 참다운 삼매가 아니다.

혹은 하루나 이틀, 나아가서 칠일 정도 고요한 선정에 들어 아름다운 음식을 취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배고프거나 목마르지도 않게 되나 이것은 애착의 동기가 될 뿐이며, 음식을 먹는데 절제가 없이 많이 먹기도 하고 적게 먹기도 하여 안색이 변하게도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항상 지혜로써 관찰하여, 그릇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항상 바르게 생각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그릇된 행위에서 오는 장애는 없어질 것이다.

 

七三

외도들의 삼매는 자기 중심인 집착과 오만을 떠나 있지 않으면 세상의 명리와 공경을 탐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眞如 三昧란 고집도 없으며, 고정한 대상도 없는 것이며, 또 삼매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태만하지 않고, 모든 있던 번뇌도 점점 적어진다. 만약 범부들이 이 삼매를 익히지 않고서 참다운 인간성을 찾는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유행하는 이러한 삼매를 익혀 거기에 맛들이고 집착하여, 자기라는 고집으로 이 세상을 얽는 것은 외도와 같은 것이니, 만약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못하면 외도의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七四

또한 마음을 다하여 부지런히 이 삼매를 닦으면 곧 열가지 이익이 나타날 것이다.

첫째, 그는 항상 어디에나 있는 불 · 보살의 보호를 받는다.

둘째, 모든 악귀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세째, 그는 갖가지 이단이나 귀신의 유혹을 받지 않는다.

네째, 그는 심오한 진리를 비방하지 않으며, 지은 바 죄업의 장애가 점점 적어진다.

다섯째, 그는 모든 의심과 오해가 없어진다.

여섯째, 그는 참다운 인간의 본모습에 대한 신심이 더욱 증장된다.

일곱째, 그는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현실 생활에서 용맹스럽고 비겁하지 않게 된다.

여덟재, 그는 마음이 유화하며 교만함이 없고 다른 사람의 괴롭힘을 받지 않는다.

아홉째, 그는 아직 완전한 선정에는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번뇌는 줄고, 세속적 쾌락을 즐

           기지 않는다.

열째, 만약 삼매를 얻으면, 외부 세계의 어떠한 소리에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七五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사마타(止)만 닦고 마음이 가라앉거나 마음이 게을러져 착한 일을 기피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비파샤나(觀)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비파샤나의 실천을 익히는 자는 세상의 모든 유위법은 항구불변하는 것이 없다고 관찰해야 하고, 또 인간의 생각과 행위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므로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또 우리가 생각해 내는 모든 의식은 과거의 것은 꿈과 같고, 현재의 것은 번개와 같고, 미래의 것은 구름과 같아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육신은 부정한 것이며 갖가지로 더럽혀 있으므로 하나도 즐길 만한 것이 없다고 관찰해야 한다.

 

七六

또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중생은 근본적으로 모두 무명의 훈습 때문에 마음이 생멸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게 되며, 지금도 계속해서 한없는 핍박을 받고 있으며, 미래에도 한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실로 버리기 어렵고 여의기 힘들어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중생은 이처럼 심히 불쌍한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용기를 내어서 원을 세워야 한다.

「원컨대 내 마음에서 모든 분별하는 의식을 없애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선행을 다하고, 또 무량한 방법으로 일체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여 최대의 기쁨인 열반을 성취토록 하겠다.」고.

이러한 원을 세우므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모든 선행을 능력껏 실천하며, 수학하기를 버리지 않고, 마음은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오직 앉아서 샤마타에 전념할 때를 제하고는 항상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관찰해야 할 것이다.

 

七七

만약 가거나 마물러 있거나 누워 있거나 또는 일어나 있거나 간에 지와 관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 사물은 그 체성이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서로 연결되어 선과 악, 고와 낙의 결과를 초래하므로 이러한 인과응보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한편 인과와 선악의 관계를 생각하면서도, 그 선악 등의 자성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를 실천하는 사람은 범부들이 세상의 사물에 집착하는 것을 대치하며, 이승들의 나약하고 비겁한 견해를 버리게 해야 하며, 관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승들이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좁고 용렬한 생각을 대치하며, 범부들이 선근을 심지 않는 것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 · 관의 실천은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지와 관, 둘을 갖추지 않는다면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七八

중생이 처음으로 이 진리를 배우고 바른 신심을 구하고자 하나 그 마음이 나약하고 겁이 많으면 어지럽고, 혼탁한 세계에서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공양하기를 가능할까 하고 스스로 두려워하며 신심을 성취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하여 의욕을 감퇴시킨다.

그러나 여래는 뛰어난 방법으로 신심이 나도록 보살펴 주니, 오직 전념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 원하는 데로 불국토에 나서 항상 부처님을 뵈옵고 영원히 나쁜 곳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또 그가 닦은 선근을 회향하여 그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곧 왕생하여 항상 부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영원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여한 법신을 보고 부지런히 닦고 익혀, 결국 왕생을 얻어 선정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전 : 대승기신론(馬鳴菩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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