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세존의 최후와 교계(敎誡) (168)

근와(槿瓦) 2015. 10. 28. 23:12

세존의 최후와 교계(敎誡) (168)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밤은 점차로 깊어갔다. 달은 밝고 별도 맑으며, 바람도 자고 시냇물은 고요한데, 숲속은 적적하여 아무 소리도 없다. 세존은 널리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또 간략히 법의 요제(要諦)를 설하셨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내가 멸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정법은 여기서 영원히 끊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때까지도 너희들을 위하여 계를 정(定)하고 법을 설해 왔다. 너희들은 내가 멸한 후에도 반드시 이를 공경하여 어둠에서 등불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은 것 같이 존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말로 너희들이 대사(大師)됨을 알고 나의 재세 때와 마찬가지로 지켜야만 한다.

 

제자들이여, 축양(蓄養), 간착(懇鑿), 점복(占卜), 산계(算計) 등은 모두 너희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몸을 절제하고 정시(定時에 먹고 청정하게 자활하는 것이 좋다. 뜬세상의 일에 섞이어 왕자의 사명을 다하고 주술을 행하며 선악을 논하고 호사(好事)를 귀인과 맺어 친압(親狎)해서는 안 된다. 의복, 음식, 와구(臥具), 탕약(湯藥에 능히 양을 알고 족함을 알아 헛되이 축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간략히 계를 지니는데 대한 요(要)를 설한 것이다. 戒란 이야말로 바로 해탈에 이르는 근본인 것이다. 선정과 지혜는 여기에서 생한다. 그러하니 너희들은 바르게 계를 지니되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능히 계를 지니면 곧 선인 것이다. 계가 없으면 모든 선도 공덕도 모두 생할 수가 없다. 계는 비길 데 없는 안온한 공덕의 주처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이 이미 훌륭하게 계에 주(住)한다면 마땅히 오근(五根)을 제어하고 오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치기는 채찍을 취하여 소를 몰되, 소로 하여금 사람의 모종(苗)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오근을 멋대로 하면 고삐를 잡아 제압하지 않는 사나운 말이 사람을 치어 함정에 떨어뜨리듯이 단지 오욕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억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세(時世)의 화를 입는 것과 같은 일은 그 괴로움이 당세만으로 끝나지만 오근의 적(賊)의 화는 세(世)를 거듭 핍박하여 대단히 무겁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억제하여 이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원수와 같아서 함부로 하게 버려 두지 않는다. 설령 이것을 제멋대로 두더라도 모두 얼마 후에는 멸하는 것이 지혜 있는 짓이다.

 

이 오근은 마음을 주로 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마음을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주인이 소를 길들여 부리듯이 자기 마음을 곧게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욕의 마음을 두려워함은 독사, 맹수, 원수보다도 심하게 해야 한다. 큰 불의 치성함도 비유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손에 꿀을 담은 그릇을 들고 그저 꿀만 보고 달리다가 넘어져, 깊은 구멍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예를 들면, 미친 코끼리에게 갈고랑이가 없고, 원숭이가 나무 위로 뛰어다니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희들은 마음이 꺾여 방일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음을 함부로 하면 선이 없어진다. 이것을 주의해야 한다. 마음, 이것을 일처(一處)로 억제하면 무슨 일이나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나아가서 마음을 절복(折伏)함이 좋다.

 

너희들은 가지가지의 음식물을 받는 것을 마치 약을 복용함과 같이 하라. 좋아하는 자에게나 미워하는 자에게나 공덕에 증감의 염을 두어서는 안 된다. 겨우 몸을 지탱하고 기갈을 면하면 족하다. 벌이 꽃을 찾았을 때는 다만 그 맛만을 취하고 그 빛과 향기를 훼손하지 않듯 너희들도 또한 남의 공양을 받았으면 애써 자신의 고뇌를 제거함이 좋다. 많이 구하여 착한 마음의 파괴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현인이 소의 힘을 헤아려 이를 부리고 정도를 지나쳐 그 힘을 지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들은 낮에는 선을 닦는데 힘쓰되 때를 잃지 않도록 하라. 초저녁에나 후야(後夜)에나 이 마음가짐을 버려서는 안 된다. 밤중에는 경을 읽은 뒤에 쉬는 것이 좋다. 수면 때문에 일생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무상의 불은 모든 세간을 불태우고 있다. 너희들은 이것을 생각하여 하루 빨리 스스로를 제도할 것을 구해야 한다. 잠을 깨도록 하라. 모든 번뇌의 적은 항상 틈을 엿보아 사람을 해치려 하고 있다. 어찌하여 잠을 탐하여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번뇌의 독사가 너희들 마음 속에 잠자고 있다는 것은 마치 흑사(黑蛇)가 너의 방에서 잠자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드시 지계(持戒)의 갈고랑이로써 빨리 이것을 제거함이 좋다. 뱀이 이미 나가 버렸다면 안심하고 그곳에서 잠잘 수 있을 것이다. 아직껏 나가지 않았는데 잠잔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참괴의 의복은 모든 장엄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이다. 참괴는 강철의 갈고랑이처럼 능히 중생의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억제한다. 때문에 참괴하여 잠시도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함이 지당하다. 만약 참괴를 버린다면 곧 모든 공덕을 잃는 것이다. 참괴를 아는 자에게는 선이 있고 참괴를 모르는 자는 금수와 동일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토막토막 난도질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너희들은 스스로 마음을 닦아 노여워하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또 반드시 입을 수호하여 악언을 토해서는 안 된다. 만약 노여움을 함부로 하면 곧 스스로 도를 방해하고 공덕의 이(利)를 잃게 된다. 인(忍)의 덕은 지계도 고행도 미치지 못한다. 능히 인을 행하는 것을 힘이 센 대인(大人)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악매(惡罵)의 독까지도 기꺼이 참을 수가 없다면, 이 사람을 도에 든 사람, 지혜있는 사람이라고는 이름할 수 없다. 노여움은 덕의 원수이며 그 해는 능히 모든 선을 파괴하며 좋은 이름을 해치고 중생들은 그와 만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진에는 맹화보다 무섭다. 그러하니 덕을 애중히 하고 원심을 품지 않으며 항상 방호(防護)하여 노여움이 침입할 틈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공덕을 빼앗아 가는 적 가운데는 진에보다 심한 것이 없다. 도를 행하는 사람으로 진에를 품는 것은 좋지 않다. 설령 청량한 구름 속에 벽력의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너희들은 반드시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는 것이 좋다. 이미 꾸밈을 버리고 괴색의<壞色衣 : 가사(袈裟>를 몸에 걸치고 바리때를 들고 음식을 받아 자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만약 또 교만이 일어났다면 재빨리 이것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만을 증장시킨다는 것은 재가자라도 좋지 않다. 더군다나 세간을 버리고 도에 들어 해탈을 위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비하하고 음식을 받는 신분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제자들이여, 아첨하는 마음은 도에 어긋난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 마음을 바르게 함이 좋다. 참으로 아첨은 기만이며 도에 든 사람으로서는 조금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하고 곧음을 바탕으로 하여 한결같이 법을 염하되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이여, 욕심이 많은 사람은 바라는 일이 많으므로 고뇌도 또한 많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으므로 근심도 적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하는 마음으로 남의 뜻에 영합하는 일도 없다. 또 눈과 귀의 욕망 때문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마음은 평탄하여 근심은 없고 일에 손을 대더라도 여유가 있어 항상 불만스런 일이 없다. 곧 여기에 열반이 있다.

 

너희들도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반드시 족함을 알아야 한다. 족함을 아는 법은, 곧 번영과 안온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족함을 아는 사람은 땅위에 누워 있어도 또한 안락한 것이며 족함을 모르는 자는 천당에 살더라도 뜻에 맞지 않다. 족한 것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한 것이며, 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는 부할지라도 가난하며 항상 오욕에 이끌린다.

 

너희들이 적정한 안락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끄러운 곳을 떠나 고요한 곳에 처함이 바람직하다. 고요한 곳에 있는 사람은 신들도 다 함께 공경하는 바이다. 때문에 자신과 남과 동료들을 떠나서 홀로 고요한 곳에 주하며 고의 근본을 멸하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많은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곧 모든 고뇌를 받게 되리라. 예컨대 많은 새가 모이면 큰 나무라도 시들 우려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간의 계박은 너희들을 모든 괴로움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속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함정에 떨어질 것이다.

 

너희들이 만약 힘써 행한다면 어떤 일이든 어려울 것이 없다. 작은 물줄기라도 계속 흐르면 능히 바위를 뚫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면려해야 한다. 만약 행자의 마음이 자주 게을러지면 마치 부시를 쳐서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사이에 꺼져버려, 끝내 불을 얻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너희들은 정념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너희들의 좋은 벗이다. 착한 수호자이다. 항상 정념하고 있으면 모든 번뇌의 적도 침입할 수가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정념으로 수습해야 한다. 정념을 잃으면 모든 공덕을 잃는다. 만약 염력이 강하면 갑옷을 입고 진중에 들어가듯 오욕의 적 속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워하는 일이 없고 또 해를 받는 일도 없다.

 

제자들이여,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은 선정 가운데 있게 된다. 마음이 선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상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힘써 선정을 익히는 것이 좋다. 선정을 얻으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예컨대 물을 아끼는 자가 능히 제방을 쌓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또한 지혜의 물을 위해서는 훌륭하게 선정을 닦아 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자들이여, 지혜가 있으면 탐착은 없다. 너희들은 항상 스스로 살펴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나의 법에 의하여 해탈을 얻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인도 아니고 재가자도 아니어서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참된 지혜는 생, 노, 병, 사의 대해를 건너는 큰 배와 같다. 무명의 암흑(闇黑)에 빛나는 큰 등불이며 일체 병고의 양약(良藥)이며 번뇌를 베는 도끼이다. 때문에 너희들은 반드시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써 자신을 시혜함이 좋다. 지혜가 밝다함은 육안까지도 밝게 꿰뚫어 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갖가지 희론(戱論)을 즐겨 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리하여 출가를 하더라도 해탈은 얻지 못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속히 희론을 버리고 번뇌가 멸한 적정의 즐거움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항상 일심으로 모든 방일을 버리고 원적을 멀리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방일하지 않으므로 정각에 들었다. 무량한 선은 방일하지 않는데서 생한다. 너희들은 다만 면려하여 이를 행하도록 하라. 산간에 있거나 늪에 있더라도, 또 나무 아래에 있거나 조용한 방에 있을지라도 항상 받은 법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부지런히 이를 닦아야만 한다. 헛되이 죽으면 후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설하는 바는 양의가 병을 알고 약을 주는 것과 같다. 이것을 알고 복용하지 않음은 의사의 죄가 아니다. 또 친절한 안내자가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음은 인도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너희들이 만약 고, 집, 멸, 도의 사성제에 대해서 의심이 있다면 서둘러 묻도록 하라. 의문을 품고 결단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존은 이와 같이 세 번 말씀하셨지만 회중에서 한 사람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나율은 대중들의 마음을 헤아려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갑게 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의 도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시는 괴로움은 참으로 고(苦)이며 즐거움일 수 없으며, 고집(苦集)은 이야말로 인(因)이며 다시 다른 인은 없습니다.

 

고(苦)가 만약 멸하면 곧 이는 인(因)의 멸이며 인이 멸하면 과(果)도 멸하므로, 고를 멸하는 길은 참으로 이것이 바로 진실한 도입니다. 다시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중생들은 사성제에 대하여 전혀 의문은 없습니다. 다만 이중에 아직껏 각을 얻지 못한 자는 세존의 멸도를 보고 슬퍼할 것입니다. 처음으로 도에 들어온 자는, 밤에 번갯불을 보고 길을 아는 것과 같이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모두가 구제될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만약 이미 깨닫고 괴로움의 과(果)를 건너간 자라면, 다만 이 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의 멸도는 어찌하여 이렇게도 빠른 것이옵니까?”

 

아나율이 이와 같이 말씀드렸는데 세존은 여러 제자를 불쌍히 여겨 더욱 굳게 도에 나아가도록 염려하여 대비의 마음으로써 또 대중들을 위하여 설하셨다.

 

“너희들은 슬픔과 고뇌를 품어서는 안 된다. 설령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 일겁(一劫)이라 하더라도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나고 헤어지지 않는 이치는 없다.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법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설령 내가 오래 머물더라도 이 이상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리라. 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천상(天上)이나 인간이나 모두 이미 다 구했다. 아직 구제되지 않은 자도 후세에 구제될 만큼의 인연을 지었다.

 

앞으로 모든 제자들이 서로 전하여 이를 행한다면 곧 이는 부처의 법신이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은 것과 같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세간의 무상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 비, 고, 뇌를 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간의 상(相)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항상 힘써 해탈을 구하고 지혜의 빛으로써 모든 치암(癡暗)을 멸하고 속히 별리(別離)가 없는 집에 이르러야 한다.

 

세간은 참으로 위태롭고 취약하다. 단단한 것이라고는 없다. 내가 지금 멸도에 들어가는 것은 나쁜 병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응당 버려야 할 죄악과 같다. 임시로 이름하여 몸이라고는 하지만 뜬세상의 생, 노, 병, 사의 대해에 떠 있는 구름이나 일엽주와 같은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이것을 제거하여 원적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는 것인가.

 

너희들은 일심으로 면려하여 속히 망집의 불구덩이를 떠나야 한다. 일체 세간의 법은 모두 무너지는 것이다.

 

너희들은 잠깐 조용히 하라.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때는 왔다. 나는 멸도에 들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계(誡)이다.”

 

이와 같이 밝히고 조용히 적정에 들어가셨다. 법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아난이 아나율에게 물었다.

 

“세존은 이미 열반에 드셨습니까?”

“아니 아직 드시지 않았다.”

 

이미 세존은 모든 선정을 겪으시고 조용히 천상에서 내려오신 모후 마야부인에게 배례하고 끝내 멸도에 드시었다. 그때 아나율은,

 

“세존은 바야흐로 멸도에 드시었다.”

고 했으므로, 아난은 널리 이것을 대중에게 전하였다.

 

이때에 대지는 흔들리고 공중에서는 북소리가 울리며 사라수꽃이 비처럼 쏟아졌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