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의 멸도 후(17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이 입멸하신지 얼마 후, 아난은 왕사성에 들어가 지난 날 스승을 모시고 법문을 나누던 그리운 죽림 정사에 머물렀다. 그때 아사세왕은 파초타왕에 대비하여 왕사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고 있었다. 아난은 어느 날 아침, 탁발하기 전에 고오파카와 목건련 바라문의 작업장을 찾아갔다. 고오파카는 자리를 마련하여 아난에게 권하면서,
“아난이시여, 교답마께서 부처님이 되실 법을 항상 갖추고 있었던 세존과 같은 분이 현재도 있는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없소. 세존은 없던 도를 일으키신 분이요, 알려져 있지 않은 도를 알린 분으로 도의 스승이시며 도를 알고 도에 신비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제자는 지금 그 도의 뒤를 좇아 가고 있을 뿐이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에 마갈타의 대신인 우행 바라문이 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를,
“아난이여, 세존이 입멸하신 후에 이 사람을 의지하라고 명하신 분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아난이여, 그렇다면 교단에서 상의하여 세존이 입멸하신 후에 이 사람을 의지하라고 정한 사람은 없는지요?”
“그도 없습니다.”
“아난이여, 의지할 곳이 없다면 교단은 어떻게 화합(和合)하나요?”
“바라문이여, 우리들이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을 의지처로 하면 된다. 바라문이여, 세존은 지자(知者), 견자(見者), 응공자(應供者), 정등각자(正等覺者)이시며, 우리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셨다. 우리들은 포살의 날에 결계(結界)안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참회하고 범하는 곳이 없으면 법에 따라 처치를 취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처치한다는 것입니까? 아난이여, 교단 안에는 당신들이 존경하는 분이 있는지요?”
“그야 있습니다. 세존이 설해 주신 열 가지의 환희법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우리들은 공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계를 바르게 지닐 것, (2) 많이 듣고 바르게 기억할 것, (3) 족함을 알 것, (4) 자유롭게 모든 선정(禪定)에 출입할 것, (5) 신통을 지닐 것, (6) 천이(天耳)를 가질 것, (7) 남의 마음을 알 것, (8) 숙명을 알 것, (9) 천안(天眼)을 가질 것, (10) 누진(漏盡)을 아는 분입니다.”
그때 우행 대신은 우바난타 장군을 돌아보며,
“이분은 참으로 공경할 사람들을 공경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시 아난을 향하여,
“존자는 지금 어디에 사십니까?”
“죽림 정사에 삽니다.”
아난이 이렇게 대답하자,
“죽림은 인가에서 떨어져 있어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에 적당한 곳이죠.”
“바라문이여, 그대로이다. 당신이나 고오파카의 수호에 의하여 한층 살기 좋은 조용한 곳이 되었습니다.”
“아난이여, 참으로 죽림은 조용한 곳입니다. 그래서 존자들은 또 선정을 즐기고 계십니다. 어느 때, 나는 비사리 대림의 중각 강당으로 세존 교답마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세존께서 모든 선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세존은 모든 선정을 찬탄하는 분이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세존은 모든 선정을 찬탄하시는 것이 아니오, 곧 탐욕, 진에, 수면, 도회(悼悔), 의문을 품은 선정을 찬탄하지 않았으며, 욕과 불선(不善)을 여의고 네 가지 선정을 찬탄하셨던 것이오.”
“아난이여, 세존은 참으로 비난해야 할 선정은 이를 비난하고 찬탄해야 할 선정은 찬탄했던 것입니다. 존자여, 우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우행 대신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고오파카가 아난에게 말했다.
“내가 질문한 것은 아직도 대답하지 않았지 않은가?”
아난 : “바라문이여, 나는 이미 세존과 같은 분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들 제자들은 그 도에 따라 그 도의 뒤를 따라 갈 뿐이다.”
어느 때 마하가전연이 마도라 나라의 군다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반지(阿盤厎) 국왕의 아들인 마도라국의 왕은 가전연이 그 나라에서 명성이 높은 것을 듣고 아름답게 수레를 꾸며 군다의 숲으로 향하여 가전연을 만나 이야기하기를,
“존자여, 바라문의 성을 가진 사람은 바라문의 계급이 가장 뛰어나, 다른 계급은 모두 보잘 것 없다고 합니다. 바라문 계급은 청정하며 범(梵=신)의 입에서 낳은 범의 실자(實子)로 그의 상속자라고 말씀합니다. 존자는 이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것은 그저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왕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여기에서 찰제리(刹帝利) 계급이 금은 재보로써, 바라문, 비사(毘舍), 수다라(首陀羅)들을 부리는데,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늦게 자게 하여 갖가지 일을 시키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존자여, 그것은 가능합니다.”
“대왕이여, 다음은 바라문들이 금은 재보를 가지고 마찬가지로 다른 세 계층의 사람들을 부린다면 되겠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그리고 비사도 수다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왕이여, 그것에 의하여 네 계급은 모두 평등한 것이며 아무런 구별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라문이 유달리 수승하다는 것은 빈 메아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음에 찰제리 종족들은 살상한다, 투도를 한다, 사음을 한다, 망어나 악구(惡口) 또는 이간어(離間語)를 말한다거나 탐욕, 진에, 사견을 품는다고 하면, 대왕이여, 이 사람은 죽어 지옥에 떨어지겠지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것을 성자로부터 듣고 또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라문, 비사, 수다라의 경우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누구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일이요, 대왕이여, 그러니 이러한 이유로 해서 네 계급은 평등한 것이며 아무런 구별도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대왕이여, 또 다음은 마찬가지 이유로 네 계급의 어떤 사람일지라도 살생을 하지 않고 투도를 하지 않고 사음을 하지 않고 탐욕을 떠나고 진에를 떠나서 올바른 생각을 품게 된다면 모두가 천계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 마찬가지 이유로 네 계급의 누구나가 집을 버리고 청정하게 행을 닦고 계를 지키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대왕의 존경을 모으게 될 것입니다.”
“존자여,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경배하고 자리를 권하며 공양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러한 이유에서 능히 네 계급은 모두 평등한 것이며 하등의 차별도 없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마드라 국왕은 크게 마음이 움직여 가전연에게 말하기를,
“존자여, 참으로 훌륭하옵니다. 비유컨대 뒤덮여진 것을 나타내고 미망한 자에게 길을 가리키고 눈 있는 자에게 물건을 보게 하기 위하여 어둠 속에 빛을 재래케 함과 같이 존자는 법을 미묘하게 설하셨습니다. 나는 존자와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생애 동안 신자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대왕이여, 나에게 귀의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귀의하는 세존께 귀의하셔야 합니다.”
“존자여, 세존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대왕이여, 세존은 열반의 구름 속에 숨으셨습니다.”
“존자여, 세존이 재세하셨다면 천 리 길도 멀다 않고 예배하러 찾아뵈었을 것입니다. 존자여, 나는 열반의 구름 속에 숨으신 세존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존자여, 모쪼록 저로 하여금 신자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구마라 가섭은 5백 명쯤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교사라국의 세타부야 읍에 도착하여 그 북교(北郊)의 신사파 숲에 체류하였다. 세타부야 읍은 주장(主長)인 바야사(波耶斯)가 교사라 국왕으로부터 봉함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읍으로, 바야사는 ‘후세는 없다, 화생(化生)하는 사람은 없다, 선악의 결과도 없다’라는 사견을 품고 있는 자였다.
세타부야 읍 사람들은 구마라(鳩摩羅) 가섭의 명성이 높고 현명한 학자로 화술이 뛰어남을 듣고 있었으므로, 떼를 지어 북진하여 신사파 숲으로 향하였다. 바야사는 그때 높은 누각에 있었는데 낮잠을 자고 있다가 이 모양을 보고 수위를 불러 그 이유를 듣고 말하였다.
“이 사람아, 그렇다면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 가보겠다. 구마라 가섭은 이 어리석고 지혜 없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 화생의 사람이 있다, 선악의 업의 결과가 있다고 머리에 주입시킬 것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바야사는 세타부야의 사람들과 함께 구마라 가섭을 찾았다. 인사가 끝나자 바야사가 말했다.
“존자 가섭이여, 나는 다른 세상은 없다, 화생의 사람은 없다, 선악의 업의 결과도 없다는 의견을 품고 있습니다.”
“바야사여, 나는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옵니까? 아무튼 나는 당신께 묻겠으니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대답해 주시오.”
“그 월륜(月輪)이나 일륜(日輪)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인가, 또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인가, 또 사람인가 신인가?”
“대덕이여, 둘 다 다른 세상의 것으로서 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유로 미루어 다른 세상이 있다, 화생의 사람이 있다, 선악의 업의 결과가 있다고 보아 좋겠는가?”
“대덕이여, 저 역시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견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는 것인가?”
“대덕이여, 나의 친척과 친구 중에 살생을 하고 투도를 하고 싸움을 행하고 망어, 기어(綺語), 욕, 이간어를 말하며, 탐욕과 진에와 사견을 품고 있는 자의 임종 때에 나는 그의 머리맡에서 그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출가자들의 말한 바에 따르면 그러한 사람들은 죽은 뒤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또 너는 현세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 만약 출가자들의 말한 바가 진실이라면 너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정말 떨어지거든 제발 부탁이니 ’다른 세상은 있다, 화생의 사람은 있다, 선악의 업의 결과는 있다’고 알려 주기 바란다. 나는 너를 믿고 있으니 모두에게 너의 본대로를 알려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탁을 몇 사람에게 했었는데도 그들은 모두 그러마고 대답은 했지만, 오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또 이와 반대로 이러한 열 가지 악을 범하지 않은 자에게도 그 임종 때에 천계에 태어나거든 이러한 사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 역시 아무런 소식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의 의견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장이여, 도둑이 붙들려 읍의 남쪽 사형장에서 목을 벨 즈음에 ‘기다려 주세요. 이러이러한 친족에게 알릴 일이 있으므로 다녀 와야겠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하고 말했다고 해서 허락될 것 같은가?”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주장이여, 지옥에 떨어진 자가 옥졸에게 ‘기다려 주세요, 인간계의 친구에게 알릴 일이 있으므로 잠시 인계에 다녀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하고 말했더라도 허가가 될 까닭은 없다. 또 천계에 태어난 경우라도 그대로일 것이다. 예를 들면 더러운 뒷간에 빠진 남자를 끌어내어서 마당비로 쓸어내고 겨를 뿌려 닦아내어 기름을 바르고 향분을 발라 몇 번이고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빗기며 좋은 옷을 입혀 화환을 걸어 주고 향수를 뿌려 높은 누각에 청하여 관현악을 듣게 한다. 주장이여, 이 남자가 재차 더러운 뒷간에 빠지려고 원하겠는가?”
“대덕이여,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악취가 나는 징그러운 그 더러운 곳에 다시 돌아가려고 원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주장이여, 마치 그와 같이 인간은 더러운 것으로 신들이 백 리나 달아나게 하는 악취가 있다고 일컫는다. 지금 인간계를 떠나 천계에 들어간 자가 다시 인간계에 되돌아 오려고 생각할 리는 없다. 주장이여, 장님한테는 흑백이 없으며 청황(靑黃)빛도 없으며 별도 달도 태양도 없다. 그렇다고 흑백도 청황빛도 별도 달도 태양도 없다는 말은 정당한 것일까? 천계가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천계는 없다고 하는 것은 정당한 말은 아닙니다.”
“대덕이여, 그렇지만 나는 계행이 훌륭한 출가자도 역시 사는 것을 바라고 죽는 것을 싫어하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함을 보았습니다. 만약 죽은 후의 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 때문에 독을 마시든가, 검으로 찌르든가 하여 죽지 않는 것이옵니까?”
“주장이여, 여기에 두 사람의 처를 가진 바라문이 있는데 한 사람의 처에게는 13,4세의 사내아이가 있고 다른 아내는 임신중이다. 바라문이 죽자 사내아이는 한쪽 부인에게 가서 이 집의 모든 것은 모조리 내 소유이다 하고 말한다. 그 부인은 ‘내 뱃속의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재산의 일부는 내 아이의 것이다. 만약 여자라면 네 말대로 따르리라’고 말한다. 몇 번이고 재산의 소유에 관해 공격을 받자 그 부인은 자기 배를 째고 아이의 성별을 알았다고 하자. 이와 같은 바르지 못한 수단으로 사물을 구해 보았자 불행과 파멸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무 일이나 때의 성격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계행이 훌륭한 출가자는 조용히 일의 성숙됨을 기다려 살아가는 동안, 덕을 쌓고 일세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그렇지만 나는 때때로 죄인을 죽여 그 영혼이 나오는 것을 보려고 했지만 끝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죄인을 산산조각으로 썰어서 영혼의 소재를 찾았지만 그것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것도 나의 의견을 주장하는 한 이유인 것입니다.”
“주장이여, 소라고둥은 부셔보아도 음을 찾아낼 수는 없다. 부싯돌을 부셔보아도 불을 찾아낼 수는 없다. 바르게 구할 때에 소라고둥은 미묘한 음색을 내며 부싯돌은 불을 뿜어 내는 것이다. 주장이여, 당신은 잘못된 방법으로 다른 세상을 구하고 그릇된 견해를 품고 있다. 장야(長夜)의 불리와 고뇌를 초래하지 않도록 그릇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
바야사는 구마라 가섭의 간곡한 가르침을 받고 대충 그 뜻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그 그릇된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섭은 계속하여 많은 비유를 설하고 바야사를 바른 생각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이 인도를 받은 후로는 공양을 좋아하는 유덕한 사람이 되었다.
그 즈음 박구라(薄拘羅)는 왕사성의 죽림 정사에 있었다. 그가 재가할 때의 친구였던 무의 가섭은 박구라를 찾아가서 인사를 마치고 그 옆에 앉아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박구라여, 당신은 세상을 버린지 몇 해나 되는가?”
“벌써 80년이 된다.”
“박구라여, 당신은 이 80년 동안에 몇 번 여자와 사귀었는가?”
“가섭이여, 그대는 나에게 그와 같은 물음을 해서는 안 된다. 가섭이여, 이와 같이 묻는 게 좋다. ‘박구라여, 당신은 이 80년 동안에 몇 번쯤 욕의 염을 일으겼는가?’ 가섭이여, 나는 이 80년 동안 아직껏 일찍이 진(瞋)의 생각을 일으킨 것을 알지 못한다. 또 재가 사람들의 입는 옷을 받은 일, 가위로써 옷감을 자른 일, 바늘로써 옷을 기운 일, 물감으로 옷을 물들인 일, 동학인의 옷을 깁는 것을 도운 일을 알지 못한다. 또 초대를 받은 일, 누가 나를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일으킨 일, 재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앉아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사로잡힌 일들을 모른다.
부인에게 법을 설하는데 단 네 귀절의 게를 설한 일조차 없다. 비구니의 주거에 가서 비구니에게 법을 설한 일, 견습하는 비구니나 어린 비구니에게 법을 설한 일조차 없다. 또 이 80년 동안, 나는 남을 출가시킨 일도 부처의 제자로 만든 일도 없다. 또 남에게 조력한 일도 어린 제자에게 심부름을 시킨 일도, 온탕에서 목욕한 일도, 비누를 써서 씻은 일도, 같은 동료의 몸을 쓰다듬은 일도 하지 않았다. 또 80년 동안 병에 걸린 일도 하리륵(訶梨勒)의 약을 사용한 일도 알지 못한다. 기댄다든지 옆으로 누워본 기억도 없다. 우기의 삼 개월을 마을 주거에서 보낸 일도 알지 못한다. 친구여, 나는 불제자가 되어 1주일까지의 죄의 때(垢)낀 몸으로 나라의 포시식(布施食)을 먹었는데 8일째에는 각을 열었던 것이다.”
“박구라여, 나는 이상과 같은 일을 박구라의 기행(奇行)으로서 기억할 것이다. 박구라여, 나도 또한 이 법과 율 속에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리하여 무의 가섭은 자청하여 제자가 되었으나 얼마 후에 번뇌를 멀리 떠나 각을 열고 성자가 되었다.
박구라는 그 후 상의를 들고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존자들이여,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는 오늘 멸도에 들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망의 세상을 떠났다. 이것도 박구라의 희귀한 작별의 향기로써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발타는 아난을 따라 파련불(巴連弗)의 계원사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선정을 닦고 법을 설하는 한편 때때로 아난에게 길을 물었다.
“벗이여, 더럽혀진 행이란 무엇인가?”
“발타여, 그것은 사특한 견해와 사특한 생각과 사특한 말과 사특한 업과 사특한 명(命)과 사특한 염과 사특한 정진을 말한다.”
“그렇다면 청정한 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와 반대로 정견과 정사와 정어와 정업과 정명(正命)과 정념과 정정진이다.”
“벗이여, 이 청정한 행을 닦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탐욕과 진에와 우치가 없어지는 것, 곧 열반이다.”
“벗이여, 세존이 계를 정하고 제자들에게 지키게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몸(身)과 수(受)와 마음과 법의 네 가지를 생각하는 주처(住處)를 닦기 위한 것이다.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부정(不淨)으로 관하고, 수를 괴로움으로 보고 마음을 무아로 보고, 법을 무상으로 보고 탐욕과 진에를 없이하기 위한 것이다.”
“친구여, 세존이 열반의 구름에 숨으신 뒤 우리들은 여하히 해야만 정법이 길이 이 세상에 머무르고 쇠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착하도다, 벗이여. 그 물음은 참으로 훌륭하다. 우리들은 열심히 몸과 수(受)와 마음과 법의 네 가지를 관찰하고 탐욕과 진에를 멸한다면 정법은 길이 이 세상에 머무르고 빛을 더할 것이나, 이 네 가지 염에 주하는 수행을 게을리 한다면 정법은 쇠퇴하게 될 것이다.”
찬나는 교단에서 범단죄(梵檀罪)의 형을 받은 후회로 마음을 괴로워하다가 참회 끝에 용서되어 성실하게 도를 닦아 조용히 마음을 구하고 종내에는 상좌(上座)의 제자에게 법을 물었다.
“존자여, 모쪼록 저에게 가르침을 내리시어 법을 보여 주소서.”
“찬나여, 몸은 무상이며, 마음도 무상이다. 그리고 이 몸과 마음에는 아가 없다.”
이 가르침을 듣고 찬나는 생각하였다.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무아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갈애를 다하고 욕을 떠나 번뇌의 적정과 각에 기울어지지 않는다. 아가 없다면 나도 견법(見法)할 수 있을 텐데 그럼 나는 누구일까? 아, 이 완고하고 신심이 엷은 나를 누가 건져 주실 것인가’라고 했다.
그때 찬나는 아난을 생각했다. ‘그 존자는 오랜 동안 세존을 섬기고 세존을 예찬한 분이시다. 존자는 지금 교상미의 구시나라의 계신다고 하니 찾아가서 가르침을 듣자.’
그는 즉시 의발을 손에 들자 그곳으로 향하여, 아난을 찾아 자신의 고뇌를 호소했다. 아난이 말하기를,
“찬나여, 나는 네가 그와 같이 똑똑히 털어 놓고 완고한 마음을 격파했음이 참으로 기쁘다. 귀를 기울여라. 기특하게도 너는 법을 알려고 소망하는구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쁨에 넘친 찬나에게 다시 고하기를,
“찬나여, 나는 세존이 가전연에게 대한 가르침을 친히 들었지만, 세간에는「유」와「무」와의 두 가지의 치우친 견해가 있다. 물(物)이 생성하는 것을 보면 무의 견해는 분쇄되고, 물이 멸하는 것을 보면 유의 견해는 분쇄된다. 집착을 하기 때문에 망집을 일으킨다. 물에도 자신에게도 집착되지 않고 괴로움이 발생하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괴로움이 멸하면 멸한 것으로 보아 의심하지 않고, 남에게 의하지 않고 스스로 바르게 아는 것이 바른 견해이다. 있다고 하는 것도 변견(邊見), 없다는 것도 변견, 부처는 이 두 가지의 변견을 떠나서 법을 설하시는 것이다. 곧 무명에 의하여 행이 있고 행에 의하여 식(識)이 있고, 또는 생에 의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이것이 모든 고온(苦蘊)의 기생(起生)인 것이다. 무명이 남김없이 멸하면 행도 멸하고 식도 멸하고 그리고 생도 노사도 없고 일체의 고온은 없어지는 것이다.”
찬나는 이 가르침에 법성(法性)을 보고 크게 아난의 정을 기뻐했다.
나라타가 파련불 성(城)의 계원사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문타왕(文陀王)의 애비(愛妃)인 발타가 죽자 왕은 슬픔 때문에 목욕도 하지 않고 머리조차 빗지 않고 식사도 취하지 않으며 정사도 보지 않은 채 밤낮으로 왕비의 몸을 안고 슬퍼하고 있었다. 왕은 전장 대신(典藏大臣)인 피야카를 불러 언제까지나 왕비의 몸을 볼 수 있도록 철통을 만들어 기름을 채우고 유해를 속에 넣어서 쇠뚜껑을 덮도록 했다.
피야카는 왕의 태도에 마음 아파하며 누구든 고덕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왕의 슬픔을 제거해 줄 것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당시 계원사에 머물고 있던 고명한 나라타를 상기하여 왕에게 권했다.
“대왕이시여, 지금 나라타 존자가 파련불의 계원사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존자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현명하고 법을 설함에 교묘한 연로의 성자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만약 존자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면 반드시 슬픔의 화살을 빼내어 주실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나라타 존자에게 알리라. 나는 내 영지에 사는 출가자나 바라문일지라도 알리지도 않은 채 찾아 가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고 피야카는 왕에게 답하고 즉시 계원사로 존자를 찾아 사유를 고백하고 가르침에 의하여 왕의 슬픔을 제거해 주시도록 원했다. 존자는 기분 좋게 그 원을 허락했으므로 피야카는 왕을 재촉하여 존자를 방문했다.
존자는 다음의 가르침을 설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떠한 세상에 살게 되거나 되지 않는 일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늙어가는 몸이면서 늙지 말라는 일, 병들어야 할 몸이면서 병을 피하는 일, 죽어야 할 몸이면서 죽기 싫다는 일, 다해야 할 몸이면서 다하지 않으려는 일, 멸해야 할 것임에도 멸하지 말라는 일이 그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어떻게 해도 이루지 못합니다. 대왕이여, 지혜가 부족한 범상한 사람들은 늙어야 할 자가 늙고 병들어야 할 자가 병들며, 죽어야 할 자가 죽고 다할 자가 다하며 멸할 자가 멸했을 때 쓸데없이 울며 슬퍼하고 미란(迷亂)에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풍부한 불제자는 이러한 경우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러한 늙음이나 병이나 죽음 등은 내 머리 위에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생사의 윤회가 있는 이상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찾아드는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에 대하여 울며 슬퍼하고 미란에 떨어진다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몸은 쇠약해지고 일은 되지 않아 적은 기뻐하고 그리고 내 편은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여 울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범상한 사람들은 독화살에 맞아 스스로 괴로워하고 불제자는 독시를 피하여 근심이 없고 스스로 적정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타왕은 이 가르침을 듣고 말하기를,
“존자여, 이 가르침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가?”
“대왕이여, 슬픔의 화살을 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존자여, 분명히 이 가르침은 슬픔의 화살을 빼는 가르침이외다. 나의 슬픔은 이 가르침에 의하여 발본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야카를 향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왕비의 유해는 불태워 탑을 세우도록 하라. 오늘부터 나는 목욕도 하고 머리도 빗고 식사도 취하여 정사를 돌보리라.”
이리하여 문타왕은 깊이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여 자애스러운 정사를 베푸는 성왕이 되었고 법과 함께 길이 번영하였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지금까지 기록된 자료는 불교성전(부처님 일대기)에서 옮겨온 것이며 이 불교성전은 대한불교조계종수선회
(회장 : 현담스님)에서 펴낸 것임을 밝힙니다. 아울러 증명법사는 남산 정일선사(보광선원장)이십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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