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반게(半偈)의 값어치(161)

근와(槿瓦) 2015. 10. 22. 00:33

반게(半偈)의 값어치(161)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가섭이여, 먼 옛날, 아직 이 세상에 부처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설산에 살면서 보살행을 닦고 있었다. 땅에는 약초가 번무하고 갖가지 새가 그 사이에 보였고, 시냇물은 정갈하고 과일은 달고 모든 향기로운 꽃은 피어 한창이었다. 당시 나는 널리 대승의 가르침을 구하고 있었으나 아직도 얻지 못했었다. 그때 여러 신들이 나를 달리 보고 서로 이야기하기를 ‘이 사람은 욕의 번거로운 생각을 떠나 조용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이욕(離欲)의 사람이다. 대개 내세에는 제석의 신이라도 되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고.

 

한 신이 말했다. ‘세간에는 대사(大士)라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온갖 수행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계획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망집의 위에 과구(過咎)를 보는 것이므로 설사 땅에 재보가 차 있더라도 더러운 침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조금도 탐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육친인 처자나 종이나 집까지 버리거나 또는 신의 세상의 영화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비유할 데 없는 도를 성취하여 일체의 사람들에게 베풀 것만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러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자 제석천이 말하였다. ‘만약에 그대의 말하는대로라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모든 사람들을 구해 내어야 할 것이다. 신들이여, 세상에 만약 의지할 부처의 나무 그늘이 있을진대 사람들의 고뇌는 모조리 풀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부처가 될 사람이라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 놓고 그를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백천의 사람들이 도에 뜻을 세워 그와 같이 원했지만 모두 근소한 연(緣)에 저촉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물에 깃든 달 그림자가 수면에 출렁이는 잔물결에 마저 흔들리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그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결심이 어느 만큼의 것인가를 시험하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제석천은 신의 자리에서 사라져 부처가 있는 설산에 나타나 세상에서도 무서운 귀신의 모습으로 바꾸어, 참으로 낭랑하게 노래하였다.

 

제행(諸行)은 무상의 관례(慣例), 나고 죽는 것은 세상의 정리(定理).

 

가섭이여, 이 반게(半偈)를 듣고 나는 목마름에 물을 얻고, 수인(囚人)이 갑자기 사면을 얻은 것과 같이 기뻐 날뛰었다. 존귀한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는 어김없이 세상의 진제를 전한 노래였던 것이다. 이야말로 대승의 법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이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둘레를 둘러 보았다. ‘대체 누가 이 존귀한 노래를 불렀을까! 오랜 동안 구하고 또 구했던 선도해 주실 스승은 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비친 것은 세상에도 무서운 몰골을 한 귀신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반게를 부른 것은 이 귀신이었던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저 무서운 형상을 한 도깨비 입에서 어떻게 그 존귀한 부처님 법음(法音)이 새어 나오리오. 그것은 마치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햇볕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그 귀신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귀신이 옛날에 부처를 만나 저 게문(偈文)을 듣고 외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도깨비에게 물어 볼 결심을 했다.

 

나는 도깨비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당신은 어디서 이 존귀한 반게를 얻었단 말인가’고 물었다. 도깨비는 ‘아니, 그런 일이라면 묻지 말라. 나는 이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여기저기 먹이를 찾아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얻어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여 생각없이 부른 것이 그 반게이다. 특별히 마음이 있어 부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청했다. ‘그러지 말고 제발 가르쳐 주시오. 나의 생애 동안 반드시 당신의 제자가 되리라. 당신이 지금 읊은 게문은 참으로 존귀한 것이었지만 아깝게도 말이 중간에서 끊어져 뜻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재물의 시혜는 다하는 일도 있지만 법의 시혜에는 다함이 없다고 한다. 제발 가르쳐 주오’라고 말했다. ‘너는 다만 자기 일만 생각하고 먹지 못하여 배고픈 내 사정은 조금도 염려해 주지 않는구나. 나는 지금 극도로 굶주리고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법을 설하고 견딜 수 있는 형편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먹이는 무엇인가?’ ‘묻지 말라. 만약 듣기만 하면 누구나가 놀라 자빠질 테니까.’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나뿐이다. 아무도 무서워할 사람은 없으므로 제발 당신의 먹이를 말해 주오.’ ‘그렇다면 말하지. 나의 먹이는 인간의 따스한 살이고 나의 음료는 인간의 뜨거운 피, 그것이 내가 먹을 음식물이다.’ ‘그렇다면 제발 나머지 후렴 반게를 설해 주오. 그러면 언젠가는 죽을 이 육체이므로 나에게는 조금도 소용이 없소. 죽어서 호랑이나 치효(鴟梟 : 올빼미)에 먹히는 것보다는 지금 당신에게 공양하여 존귀한 법에 귀의할 수 있다면 참으로 나의 진심어린 희망이오. 나는 지금 이 썩어 없어질 육체를 버리고 길이 불변할 견고한 법신을 얻고자 소원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그러한 말을 하더라도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기와나 자갈을 버리고 칠보기를 잡듯이 이 썩어 없어질 몸을 버리고 금강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아직 믿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모든 신들과 부처들께 서약하여 그 증거를 세우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뒷부분의 반게를 설하리라’고 도깨비가 말했다. 가섭이여, 이리하여 귀신은 의젓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옷을 벗어 귀신을 위해 법좌를 깔아 주고 ‘그럼 모쪼록 뒤의 반게를 설해 주십시오’하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그러자 귀신은,

 

생멸에 사로잡힐 것인가. 그 마음, 멸하면 적정의 즐거움이 있도다.

 

고 설하고 ‘보살이여, 나는 모든 게문을 설했다. 너의 소원은 채워졌으니 만약 사람들에게 시혜할 생각이라면 나에게 그 몸을 베풀어 주시라’고 말했다.

 

가섭이여, 나는 깊이 그 게문(偈文)의 뜻을 음미하였고 게다가 그 게문을 돌이나 벽이나 혹은 나무나 길의 곳곳에 써넣고는 그리고 다시 옷을 걸치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수신(樹神)이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고 나에게 물었다. ‘게를 받은 사례로 이 몸을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노래에 무슨 덕이 있는가?’ ‘이야말로 참으로 삼세 부처들의 바른 도인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답하고 다시 ‘모쪼록 여러 인색한 사람들이나 또 약간의 시혜를 하고 우쭐대는 사람들에게 지금 내가 반게(半偈) 때문에 소중한 몸마저 풀을 베듯이 던지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하자마자 나무에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직 몸이 땅 위에 이르기도 전에 그 귀신은 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나의 몸을 공중에서 받아들고는 지상에 조용히 내려 놓았다. 그리고 모든 신과 함께 나의 발밑에 부복하여 찬탄하였다. 그리고 ‘높은 뜻이로다. 이야말로 참된 보살이다. 능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모쪼록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만약 비길 수 없는 도를 성취했을 그날에는 반드시 이러한 저마저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나의 발에 예를 드리고 떠나갔다.

 

가섭이여, 나는 이와 같이 반게 때문에 이 몸을 던졌으나 그로부터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도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섭이여, 내가 가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은 모두 부처의 정법을 공양해 드린 갚음인 것이다. 너도 또한 지금 비길 데 없는 도에 마음을 세웠다. 이제는 항하의 모래처럼 수많은 보살보다도 초월해 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