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세 가지의 난치 병자(160)

근와(槿瓦) 2015. 10. 21. 01:37

세 가지의 난치 병자(160)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다라(多羅)의 가섭은 또 물었다.

“뭇 사람들에게 네 개의 독시(毒矢)가 있어 병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과 진에와 우치와 교만인 것입니다. 이 인이 있기 때문에 여러 병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존께서는 이 인이 없는데도 어찌하여 오늘은 내 등이 아프다고 말씀하시옵니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나에게는 지금 진실로 일체의 병이 없다. 부처는 먼 예부터 일체의 병을 여의고 있다. 가섭이여, 부처는 사람 중의 사자(獅子)라고 하지만 부처는 실은 사자가 아니다. 사자라 함은 부처의 비밀교인 것이다. 내가 지금 병중의 몸이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의 비밀교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가섭이여, 세상에 세 사람의 낫기 어려운 병자가 있다. 첫째는 대승(大乘)을 비방하는 자, 둘째는 다섯 가지의 역죄(逆罪)가 있는 자, 셋째는 선근을 끊은 자이다. 이 셋은 세간의 극히 무거운 병이다. 부처를 두고 다른 자의 힘으로는 아무리해도 낫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섭이여, 보살은 뜬세상을 버리면, 금계를 받아 위의를 소홀히 하는 일 없이 나아감에도 머무는 데도 안상(安祥)하게, 작은 죄에도 두려움을 품고 계를 지키는 마음은 금강과 같이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섭이여, 어떤 사람이 한 개의 부낭을 메고 대해를 건너려고 했는데 바다 속에 있던 도깨비가 ‘그 부낭을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이것을 주는 날이면 자신은 빠져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설사 내가 살해되더라도 이것을 줄 수는 없다’고 답하였다. 도깨비는 ‘네가 만약 그 전부를 주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그 반이라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래도 따르려고 하지 않으므로 도깨비는 다시 말했다. ‘네가 만약 그 반을 줄 수도 없다면 제발 그 3분의 1이라도 나에게 달라.’ ‘그것도 싫다면 하다못해 손바닥만큼이라도 좋다. 아니 티끌만큼이라도 좋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아무리 해도 듣지 않고 말했다. ‘네가 지금 구하는 것은 참으로 근소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바다를 건너는데 전도가 먼 것인지 가까운 것인지, 아직 분간조차 못한다. 만약 너에게 조금이라도 이것을 주게 된다면 공기가 새어 내가 빠지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는 이 대해를 건널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죽는 도리밖에 없지 않는가.’

 

가섭이여, 도를 구하는 사람이 금계를 지키는 것도 이와 같지 아니하면 안 된다. 도를 구하는 사람이 금계를 지킬 때에는 모든 번뇌의 도깨비가 ‘너는 나를 믿는 것이 좋다. 나는 조금도 너를 속이지 않는다. 너는 살생, 투도, 사음, 망어의 네 가지 중요한 금계를 깨뜨린다면 편안하게 열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고 한다. 도를 구하는 사람은 그때 바로 이와 같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설사 이 금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간 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더라도 이를 범하여 천계에 태어나고 싶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각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를 구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굳게 이러한 금계를 지키고 마음을 금강과 같이 굳혀 크고 작고를 불문하고 중히 하여 차별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하면 곧 근본의 청정한 계를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성스러운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와 같이 하고서 비로소 신심과 금계와 참괴와 다문(多聞)과 지혜와 번뇌를 여의는 바의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를 가지고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가섭이여, 도를 구하는 사람은 참으로 사성제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째는 고제(苦諦)인데 인세의 모든 괴로움이 닥치는 모양인 것이다. 생, 노, 병, 사는 어떤 사람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가섭이여, 여기에 한 사람의 미련한 여자가 있어서 의복을 꾸며 입고 어떤 집을 찾았더니 그 집 주인이 물었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공덕천(功德天)이라는 행운의 신이다. 나는 찾아가는 집마다 복을 쌓게 만드는 자이다.’ 이 말을 듣자 주인은 기뻐하며 그 여자를 응접실로 안내하여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며 접대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여자가 문전에 서 있었다. 참으로 천한 형장으로 살갗은 터지고 옷은 더로운 때로 꾀죄죄했다. 주인이 물었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흑암천(黑闇天)이라고 하는 화신(禍神)이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저는 제가 찾는 집마다 그곳의 보물을 없애는 자이다.’ 이 말을 듣고 주인은 칼에 손을 대면서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여자는 ‘아아, 당신은 어리석은 자이다. 지금 너희 집에 들어간 것은 나의 언니이다. 나는 언제나 언니와 떨어져 있을 수 없으므로 나를 쫓아내면 당신 집에 있는 나의 언니까지 함께 쫓아내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주인은 안으로 달려가서 이 일을 공덕천에게 물었다. 공덕천은 ‘과연 그러하다.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여동생도 돌봐 주십시오.’ 이런 말을 듣자 주인은 끝내 두 사람을 쫓아내 버렸다. 두 여인은 다음에 어떤 가난한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기쁘게 두 여자를 불러들였다. 가섭이여, 생이 있으면 늙음이 있고 또 늙음이 있으면 죽는 일도 있다. 어리석은 자는 이에 애착을 갖지만 도를 구하는 자는 이에 애착을 갖지 않는 법이다.

 

가섭이여, 만약 금강의 비가 내린다면 나무도 풀도 모두 상하고 말것이다. 그렇지만 금강만은 상하지 않는다. 죽음의 비는 모든 사람을 상하게 하지만 열반의 경지에 있는 보살만은 상하게 할 수 없다. 가섭이여, 죽은 자는 무서운 곳으로 간다. 게다가 먹을 것도 얻지 못하며 길은 멀고 또 동반자도 없다. 밤낮을 언제나 걷고 또 걸어서 가지만 그 행선지는 가이없다. 또 희미한 어둠인데다가 등불조차 없다. 참으로 죽음은 커다란 괴로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섭이여, 둘째는 집제(集諦)인데 그것은 사랑의 갈증인 것이다. 원래 사람에게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는데, 선한 사랑은 부처가 구하는 것이며 악한 사랑은 범부가 구하는 것이다. 그 범부의 사랑을 집(集)이라 이름 붙이며, 보살의 그것은 집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왕이 외출할 때에는 신하들이 모두 이에 따르듯이 사랑의 갈증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여러 가지 번뇌가 따르는 것이다. 습지에서는 싹이 쉽게 나듯이 사랑의 목마른 습지에서는 번뇌의 싹이 튼다. 또 사랑의 목마름은 귀녀(鬼女)와 같은 것이다. 귀녀는 자식을 낳으면 모조리 이것을 먹어 치우고 끝내는 그 남편까지도 잡아먹는다고 듣고 있는데, 사랑의 갈증은 꽃의 줄기에 숨어 있는 뱀과 비슷하다. 사람이 꽃을 사랑하여 그 줄기에 독사가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가까이 취하나 끝내는 독사에게 물려 그 독이 옮겨져서 죽어 간다,

 

사람들은 오욕(五欲)의 꽃을 탐내어 끝내는 사랑의 목마름의 독에 찔려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보살은 번뇌의 불을 끄고 적멸의 청한(淸閑)에 드는 것이다. 번뇌가 없어지면 즐거움이 있으며 망집된 세상의 고뇌를 받는 일도 없다. 그것이 세 번째의 멸제인 것이다. 마지막인 도제(道諦)라 함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가섭이여, 등불이 있어야 비로소 물건을 볼 수가 있듯이 보살은 대승에 살며 여덟 가지 정도에 인하여 모든 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섭이 세존께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혹은 신심을 도라고 설하시며, 혹은 방일하지 않음을 도라고 설하시고, 혹은 정진, 선정, 몸의 부정을 관조(觀照)하고 만물이 무상함을 생각할 일 또는 계를 유지할 일, 지혜의 칼로 모든 번뇌를 단절하는 일 등을 도제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지금 여덟 가지 정도가 바로 도제라고 말씀하심은, 이상의 말씀이 모두 허위라고 하시는 것이옵니까?”

 

세존이 가섭을 칭찬하시기를,

"좋은 질문을 해 주었구나! 그러한 것은 모두 도제 속에 섭취되고 있다. 선남자여, 이 도는 단지 하나이지만 부처는 갖가지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 설해 들려 주었을 뿐이다. 일화(一火)일지라도 나무에 붙으면 산불이라고 하며 풀에 붙으면 들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또 일물(一物)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빛이라고 하고 귀에 들리는 것을 소리라 하며 코로 맡으면 향기, 혀로 음미하면 맛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 불도에 있어서도 하나의 물(物)은 가지가지로 일컬어진다. 다만 그것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갖가지로 나눌 뿐이다. 이와 같이 하여 설해 들려 주노니 만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도 끝내는 망집을 넘어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 문수 사리 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세존이 설하신 세간의 속제(俗諦)와 부처의 득도하신 진제(眞諦)와의 내력을 들려 주시옵소서.”

 

“속제는 그대로 진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제(諦)는 없는 것처럼 생각되옵니다.”

 

“사람들에게 평소의 분별에 따라서 두 가지의 제가 있다고 설했던 것이다. 문수여, 명(名)만이 있고 그 실이 없는 것이 속제이며 명과 실이 따르는 것이 진제인 것이다.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간의 법이 알려졌다면 이것을 진제로 이름 붙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實諦)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문수여, 실제란 실로 있는 것을 말한다. 만약 물(物)이 참이 아니라면 실제라고는 이름 붙이지 않는다. 실제에는 도착(倒錯)이 없다. 실제에는 허위가 없다.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문수여, 실제란 하나의 길이며 청정한 것으로서 두 가지가 없는 것, 상주와 상락(常樂)과 상세의 아와 청정함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러나 외도에서도 그것을 말하옵니다만, 그것도 역시 실제인 것이옵니까?”

“모든 외도에는 변천하는 것을 상주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며 실은 무상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인연이 있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만물 자체가 자신은 홀로 있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모름지기 변천하여 무상한 것이므로 그것은 괴로움이며 무아, 곧 자유가 없고 부정한 것이다. 이 속에 있어서 단지 불성만이 생도 없고 멸도 없고 떠나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으며, 상(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육신이나 감각이나 감각에 비치는 것과 같이 변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상세에 머무르는 것이다. 따라서 영세의 낙인 것이며 아(我), 곧 자재의 주된 것이고 또 참된 청정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외도에서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이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참된 상주, 참된 상락, 참된 자유 있는 아(我), 참된 청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따라서 그것은 진제라고는 더욱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여러 사람 속에 무구장(無垢藏)이라는 신자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며 세존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의 지혜에는 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르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교단에 의해야만 비로소 이 위 없는 정진(正眞)의 도가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무구장이여, 소로부터 젖을 짜내고 젖에서는 낙(酪)을 만들고 낙에서는 생소(生酥)를 만들고 생소에서는 숙소(熟酥)를 만들고 숙소에서는 제호(醍醐)를 만든다. 그 제호는 참으로 위 없는 것으로 모든 약이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만약 복용하게 되면 누구나 모든 병이 제거될 것이다. 부처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로부터 여러 가르침이 나와 그 속에서 최후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제호와도 같은 것이다. 제호는 불성에 비유하는데 그 불성이란 실로 부처를 말함이다.”

 

가섭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참으로 이 가르침은 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능히 힘써 몸의 가죽을 벗겨 종이로 삼고 피를 내어 먹으로 삼고 뼈골을 짜서 물로 하고 뼈를 붓으로 대체하더라도 이 가르침을 뻬끼겠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이 영원히 널리 세간에 전해지도록 그 의를 설하여 펴려고 생각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탐욕이 강한 자가 있다면 저는 첫째로 그에게 재물을 주고 그리고서 이 가르침을 권할 것입니다. 만약 신분의 귀한 자가 있다고 하면 첫째 기분에 들만한 말을 사용하여 그 뜻을 맞춘 다음 이 가르침을 권할 것입니다. 또 뭇 사람에게는 위세를 나타내어 모두가 이 가르침을 지니도록 하고, 교만한 자에게는 그의 복사(僕使)가 되어 기뻐하게 하고 그리고 이 가르침을 권하려고 생각하옵니다. 또 만약 불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이를 잘 설복시켜 이 가르침을 권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대승을 기뻐하는 자가 생기면 저는 그 사람의 거처에 가서 이를 공경하고 찬탄할 것이옵니다.”

 

세존은 이 말을 들으시고 탄복하시기를,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너는 대승을 사랑하는 자이다. 너는 이 인연에 의하여 무량 보살에 앞서 도를 성취하리라.”

 

이렇게 밝히시고 다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