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29)-29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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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의 불은이 삼계를 모두 다 태우거니 어떤 즐겁지 않은 법을 보았기에 지금 그리 마음으로 후회하는가. 염마라 사람은 그 지옥의 대비처에서 이렇게 그 지옥 사람을 꾸짖고 다시 갖가지 고통을 준다. 그 죄인은 거기서 벗어나 다시 무비암처(無悲闇處)지옥에서 삶긴다. 거기서는 불이 그 지옥 사람을 두루 태워 그 빛은 마치 견숙가(甄叔迦)나무와 같다. 그 죄인은 거기서 벗어나 다시 목전(木轉)지옥에서 삶긴다. 그 지옥 사람은 그 지옥의 열여섯 곳에서 삶긴다. 그것은 삿된 소견에 포섭되어 비구니를 범한 그 악업의 죄로서, 그는 거기서 무수한 햇수로 오랫동안 늘 타되, 내지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준다.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아귀나 축생들 속에 나서 한량없는 천 생 동안 굶주리고 목마르며 불타고 삶기며, 서로 잡아먹어 백천의 몸을 먹는다. 이런 축생은 그 나쁜 삿된 소견으로 다시 깨끗한 행의 비구니의 계율을 범한다. 그리하여 그가 사람의 몸을 얻기는 저 눈먼 거북이 널빤지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5백 생 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내가 된다. 그것은 비구니를 범한 좋지 못한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을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사람의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으로서,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청정한 우바이(優婆夷)의 계율을 헐고 범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일체방초열처(一切方燋熱處)에 나서 큰 고뇌를 받는다. 이른바 고뇌란, 그 지옥은 모두가 끊임이 없고, 내지 허공도 다 타서 바늘 구멍만큼도 타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불 속에서 손을 펴서 위로 향하고 소리를 내어 외치면서 가장 격렬하고 힘이 세며 견고한 괴로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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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불에 타서 그 재도 얻기 어렵다. 그리고도 다시 살아나는데,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언제나 그치지 않고 탄다. 거기서 벗어나면 구원을 바라고 돌아갈 곳을 찾아 다른 곳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달리면 염마라 사람은 다시 그를 잡아 두루 타는 쇠노끈으로 다리에서 시작해 묶어 머리에 이르고, 차례로 잔뜩 묶으면 피는 모두 위로 흘러 머리 속에 모인다. 그 다음에는 다시 불꽃이 타는 쇠갈고리를 머리 위에 박아 턱 밑으로 나오게 하고, 다시 쇠갈고리를 잡고 급히 돌리고 되게 비틀다가 다시 뽑으면, 죄인의 몸에서 나는 피는 붉은 구리 쇳물과 같고 뜨거운 불꽃이 왕성히 타는데 그것을 그 몸에 쏟는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피를 그 몸에 쏟고 태우고 삶으면, 죽어서는 다시 살아나고 죽어서는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악업의 힘 때문에 언제나 이렇게 타고 삶기되, 내지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준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다시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은 아귀나 축생들 속에 나는데, 만일 아귀로 나면 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을 받고, 축생 속에 나면 서로 잡아먹는 고통이 있으며, 또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남에게 잡아먹힌다. 그 악업을 지은 사람이 그런 고통을 다 받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항상 남에게 괴로움을 받고 마음이 어지러워 그치지 않으며, 또 목숨이 길지 못하고 4백 생 동안 고자[不男人]가 된다. 그것은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을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사람의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으로서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깨끗한 행의 사미니의 계율을 헐고 범하면, 그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대신악후가외처(大身惡吼可畏處)에 나서 큰 고뇌를 받는다. 이른바 고뇌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그 모든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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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 대신악후가외처에서 모두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 죄인의 몸은 1유순의 분량으로서 가장 부드러워 생소(生酥) 덩이와 같다. 염마라 사람은 그 몸을 붙잡고 아주 작은 집게로 그 털을 두루 뽑되 살까지 껴잡아 뽑고, 발에서 머리까지 두루 뽑아 겨자씨만큼도 뽑지 않는 곳이 없다. 그가 이렇게 부수는 고통을 받고 소리를 내어 크게 외치면, 다른 지옥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부서지고 찢어져 다 흩어진다. 그는 마음의 원수에 속아 악업을 짓고 자기 업에 속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그 지옥의 죄인이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 염마라 사람은 그를 꾸짖으며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욕심에서 달콤한 말이 나오고 달콤한 말을 듣고 욕심이 생긴다. 욕심의 말은 바로 큰 죄악이라, 지금에 이러한 과보 받는다. 욕심의 말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로서 그 칼날로 스스로 그 몸 베나니 차라리 스스로 그 혀를 벨지언정 음욕의 말은 하지 말라. 욕심에 유혹된 그 중생들은 분노가 급하고 맹렬히 타며 어리석은 마음에 붙잡혔으므로 그 음욕의 달콤한 말을 한다. 음욕은 그 즐거움 지극히 적고 짓는 나쁜 업은 너무나 많다. 어리석은 사람은 욕심에 붙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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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괴로움을 얻는다. 음욕의 즐거움은 한 생각 사이라, 즐거움도 아니요 항상됨도 아니다. 몸을 바꾸면 극심한 고통 받나니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 욕심에 덮인 사람은 지옥의 집에 머무르나니 만일 욕심에 붙잡히지 않으면 그는 곧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일 누구나 나쁜 업을 지으면 그는 결정코 고통 받나니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비열한 범부여, 무엇 때문에 울부짖는가. 악행을 행한 지옥 사람도 그 업이 다해야 벗어나나니 그렇게 많이 부르짖는다 해서 해탈을 얻을 리 만무하니라.누구나 욕심을 마음대로 행하게 되면 즐겁지 않은 나쁜 업을 짓거니 어리석은 사람아, 지금에사 고통 받으면서 울부짖은들 무슨 이익 있으랴. 만일 미래의 과보를 보아 현재에 착함을 기뻐하고 즐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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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큰 소리로 울부짖지 않으리니 마치 너의 오늘 아침 해와 같으리. 염마라 사람은 이렇게 악업을 행한 사람을 꾸짖고 다시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을 주되, 내지 그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준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한량없는 천 생 동안은 아귀나 축생들 속에 나고, 또 거기서 벗어 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목숨이 짧고 빈궁하며 마음이 어지러워 바르지 못하고 그의 말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으며 4천 생 동안 고자가 된다. 그것은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을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화계처(火髻處)라는 다른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셋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본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짓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어떤 사람이, 위의를 지니고 바르게 행하는 여자와 삿된 음행을 행하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화계처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되 열 배나 더 심하고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 지옥의 화계처에는 악업 때문에 많은 나쁜 벌레가 있는데, 이름을 사계(似髻)라 한다. 그 지옥에 있는 그것은 길이는 활줄 같고 그 독은 매우 무서우며 그 치아는 극히 날카롭다. 염마라 사람은 지옥 사람을 붙잡아다 손발을 묶고 그 몸을 펴서 뜨거운 쇠갈고리가 있는 뜨거운 쇠땅에 둔다. 그 지옥 사람은 이런 고통을 받고 부르짖고 울면서 먼저 그 등을 태우고 지독한 고통을 받는다. 염마라 사람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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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충을 가져다 그 항문에 둔다. 그 사계충의 모양은 활줄과 같아서 그 몸에 들어가 제일 견고하고 독하며 급한 고통을 준다. 그 촉각은 불과 같아서 처음에는 항문을 태워 먹고 항문을 먹고는 다시 위로 올라가 숙장에 들어 그것을 태워 먹으며, 숙장을 먹고는 다시 위로 올라가 생장에 들어가 그것을 태워 먹고, 이렇게 먹고는 차례로 다시 소장·대장에 들어가 그것을 태워 먹는다. 이렇게 다 먹고는 그 몸 안에 있으면서 곳곳으로 돌아다닌다. 죄인의 몸 안은 흰 비둘기 새끼 같지마는 그래도 그는 죽지 않는다.그 나쁜 벌레는 숨통을 향해 달려가다가 미처 가기 전에 그 심장을 태워 두루 먹는데, 그 지옥 사람은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외치고 부르짖는다. 그는 이렇게 두 가지 불에 탄다. 즉 몸 안에는 사계충이 있어서 먹고 몸 밖에는 지옥의 큰 불이 있다. 그 사계충은 숨통을 다 먹은 다음에는 얼굴을 향해 달려간다. 얼굴에 가서는 먼저 그 혀를 태우고, 혀를 태워서는 그것을 먹는다. 그렇게 먹고는 다시 귀를 향해 달려가 그 귀를 먹고, 그 귀를 먹고는 다시 두개골을 향해 달려가 그 뇌수를 먹고, 그것을 다 먹은 뒤에는 머리를 부수고 나온다. 그래도 그 지옥 사람은 죽지 않는데 그것은 그 악업의 힘 때문이다. 온몸에 구멍이 있어서 그 나쁜 벌레는 다시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다시 지옥의 큰 불에 타므로 온몸의 안팎이 모두 탄다. 그 악업 때문에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먹히고, 다시 먹히며 먹혀서는 다시 생기고 생겨서는 다시 먹히며, 죽어서는 다시 산다. 그 죄인은 이렇게 큰 고통을 받는데 그것은 그 악업을 지어 모은 세력 때문이다. 그 지옥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 다시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다가 큰 뱀들이 한꺼번에 오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하여 또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 뱀들은 악업으로 된 것으로서 바람처럼 빨리 달려 그 죄인을 향해 간다. 거기 가서는 그 죄인의 온몸을 두루 감고는 매우 날카롭고 모진 독이 있는 어금니로 그 죄인을 깨문다. 그는 백천 가지의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지옥 사람은 또 세 가지 불에 탄다. 첫째는 굶주리고 목 마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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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요, 둘째는 뱀의 독의 불이며, 셋째는 지옥의 불이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항상 불에 타는데 햇수도 없이 시절은 장구하며, 내지 그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준다. 그리하여 만일 그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서는 한량없는 천 생 동안 아귀와 축생들 속에 태어나는데, 아귀 속에서는 주림과 목마름에 몹시 타고, 모든 축생들 속에 두루 태어나되, 태어날 적마다 항상 남에게 죽고 죽어서는 먹힌다.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5백 생 동안은 셋째 사람[第三人]이 되는데, 이른바 고자[不男]다. 그것은 다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을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우사화(雨沙火)라는 다른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넷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본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삿된 음행이 있다. 즉 사미니와 음행을 한 뒤에 마음으로 기뻐하여 계속해 즐기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우사화처에 있으면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고, 그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이른바 그곳에는 5백 유순의 큰 불이 가득 차서 모두가 다 타고, 또 금강 모래가 그 안에 두루 찼는데 부드럽기는 물과 같지마는, 능히 사람을 태우므로 오히려 빠질까 두려워하거늘 하물며 중한 악업을 지은 지옥 사람이겠는가? 그 지옥 사람이 거기 들어가면 마치 물에서처럼 곧 빠지고 악업의 인(因) 때문에 빠져서는 다시 나온다. 그 금강 모래는 삼각형의 덩어리인데, 불에 타는 그 날은 매우 날카로워 죄인의 몸을 깎되 내지 뼈까지 없애고 없어지면 다시 생기며, 생기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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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고 깎으면 다 없어지며, 없어지면 다시 생기고 죽어서는 다시 산다. 그러나 구원할 이가 없다. 그는 불꽃 모래 속에 떨어져 외치고 부르짖으며 슬퍼하고 울지마는 악업 때문에 그 괴로운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구한 시간을 지낸다. 그러다가 만일 그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비록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한량없는 백천 생 동안 아귀와 축생들 속에 태어난다. 만일 아귀로 태어나면 주리고 목마름에 볶이고 타며, 축생 속에 태어나면 서로 잡아먹으면서 천 생 동안 늘 남에게 죽으며,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만일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면 항상 가난하고 늘 앓으며, 남이 믿지 않고 고자가 된다. 그것은 다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에 또 어떤 곳이 있는가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내열불(內熱沸)이라는 딴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다섯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본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어떤 사람이 삿된 소견과 삿된 음행으로 5계(戒)를 지키는 우바이(優婆夷)에게 가서 억지로 법 아닌 일을 행하여 그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깨뜨리게 하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계율을 깨뜨려도 죄가 없다.' 이렇게 업과 과보를 믿지 않는 그는 이런 나쁜 뜻과 나쁜 행의 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내열불처에 있으면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고,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거기에는 다섯 개의 화산(火山)이 있어서 그 안은 모두 끓는다. 이 다섯 개 화산이 두루 쌌으므로 지옥은 다 끓는다. 첫째는 보소(普燒)요, 둘째는 극심무저(極深無低)이며, 셋째는 암화취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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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闇火聚觸)이요, 넷째는 할절(割截)이며, 다섯째는 업증(業證)이다. 그 지옥을 두루 싼 이 다섯 산은 천 유순으로서 보륜산(普輪山)과 대륜산(大輪山)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다. 그 지옥 사람이 그 다섯 산을 볼 때 거기는 우발라화(優鉢羅華)와 많은 나무숲과 못물이 갖추어져 있다. 그는 거기 가서 안락을 얻으려고 빨리 달려간다. 그러나 그들 산 안에 있는 불이 모진 바람에 불려 더욱 맹렬하게 붙어 그 지옥 사람을 태우면 그는 온몸을 뒤틀고 뒹군다. 그렇게 타고는 다시 푸르고 큰 산을 본다. 이미 타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다시 달려가면서 구원을 바라고 돌아갈 곳을 찾는다. 그 산에 이르자 그 가운데 떨어지는 것은 마치 쇠뇌의 줄에서 떠난 쇠화살이 개미집을 쏘아 들어가는 것 같고, 그렇게 들어가서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지옥 사람이 내열불의 화산 속에 빠져 자취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그 지옥 사람은 거기서 그렇게 타고 볶이고 구워진 뒤에 다시 암화취촉의 나쁜 산 속에 들어가서는 모든 감관이 다 막혀 온갖 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마치 언덕이 화살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모든 악업의 과보를 다 받는다. 이와 같이 죄인은 악업을 지어 모아 암화취촉의 나쁜 산 속에서 이런 과보로서의 급하고 모진 고통을 받지마는 주인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으며 짝도 없어서 자기 업의 열매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지독한 고통을 받되 항상 타고 항상 삶기며 업의 바람에 불린다. 그래서 그 열불처에서 온몸이 익고 거기서 나오더라도 다리에 힘이 없기 때문에 달아나지 못한다. 염마라 사람은 다시 그를 붙잡아다 할절산에 두고 불꽃의 쇠톱으로 그 생식기를 켜는데, 켜면 다시 생기고 새로 생겨 부드러운 것을 다시 켠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번을 켜서 그는 큰 고통을 받는다. 그는 다시 업증산 속에 들어가 큰 고통을 받아 다음 게송으로 부르짖으며 말한다. 내가 스스로 업을 지은 그대로 나는 이렇게 그 과보 받나니 욕심의 원수가 나를 불사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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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기 이 지옥에 왔다. 방일의 땅은 좋지 않나니 욕심의 불은 사람 몸을 태운다. 그 그물은 나를 결박하기에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곳에 왔다. 나는 이전에 그것을 몰랐구나. 욕심의 결과가 이처럼 괴로울 줄. 어리석음에 속임을 당해 내가 지어 지금에 내가 받는다. 자비스런 마음 없는 모진 사람이 나를 데려다 이곳에 두었나니 끝이 없는 괴로움의 이 바다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업이란 고통 중의 고통인 것을 나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받고 조그만 즐거움도 보지 못하겠거니 지옥의 괴로움은 끝이 없어라. 그 지옥 사람은 잿불 지옥에서 가장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 지옥 사람은 언제나 큰 고통을 받고, 내지 그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준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한량없는 백천 생 동안 아귀와 축생들 속에 태어나는데, 아귀 속에 태어나서는 서로 주림과 목마름에 몸을 태우는 것을 보고, 축생 속.....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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