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31)-31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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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본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삿된 음행이 있다. 혹 술이 취했기 때문에 음욕이 왕성하여 누이나 여동생과 음행하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발괴오라는 곳에 태어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고통이니,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는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뜨거운 불꽃의 구리쇠 화로에 떨어져 그 몸이 녹았다가 다시 모이고, 그 화로 안에서 다시 녹았다가 살아나면 다시 죽고,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나면서 항상 고통을 받는다. 염마라 사람이 두 개의 풀무로 그 화로 안을 불면 화로의 불과 죄인을 분별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화로 안에서 구우면 그것은 인간에서 금을 단련하는 것과 다름이 없이 그 지옥에서 그렇게 타고 삶긴다. 그리하여 그 악업을 행한 사람이 혹 그 화로 안의 악업을 벗어나 그 구리쇠 화로에서 나오더라도 염마라 사람은 그를 쇠다듬잇돌 위에 놓고 쇠망치로 두드리는데, 그것은 대장장이가 망치로 쇳덩이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때릴 때에는 목숨을 마쳤다가 망치를 들면 도로 살아난다. 그 지옥 사람은 언제나 타고 구워지면서 무수한 햇수를 지내지마는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염마라 사람은 그를 북 안에 둔다. 북 안에 두면 악업 때문에 북은 무서운 소리를 낸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심장이 부서져 흩어졌다가 다시 생기고 생겼다가는 다시 흩어진다.그는 이렇게 죽었다가는 다시 살고 살아났다가는 다시 죽으면서, 내지 지어 모은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마는 비록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6백 생 동안은 축생 속에 태어나고,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마음이 항상 놀라고 두려워하되, 저 들사슴들이 마음이 놀라 불안한 것처럼, 항상 관리들의 억울한 결박을 두려워하고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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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주 짧으며 마음이 처음부터 불안하다. 그것은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에 또 어떤 곳이 있는가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비고후(悲苦吼)라는 다른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열셋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삿된 음행이 있다. 이른바 어떤 사람이 누이나 여동생과 함께 재를 할 때에 나쁘고 삿된 법을 보고 음행하는 것이다. 즉 바라문들에게서 이런 삿된 법을 듣는다. 즉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데도 남자가 듣지 않으면 큰 죄를 받는다고 그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을 깨뜨리고 죄를 받는다.' 이렇게 삿된 말을 듣고 나쁜 법에 속아서 삿된 음행을 행하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비고후라는 곳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고통이니, 그 고통을 여기서 다 받는다. 그리고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곳의 염마라 사람이 뜨거운 불꽃의 쇠절굿공이로 몹시 찧고 치면 온몸은 모두 부서져 몸에는 쌀이나 콩만큼도 완전한 곳이 없이 온몸이 다 부스럼이다. 그 몸은 모두 부스럼으로서 뜨거운 고통을 받지마는 고독하여 짝이 없고 맹렬한 고통을 받으면서 셀 수 없는 장구한 세월을 지낸다. 그리하여 만일 그 업의 인연이 다하면 그 뜨거운 불꽃의 쇠절굿공이를 벗어나더라도 이리저리 휘몰아 달리다가 다시 쇠땅에 들어가면 그 쇠는 불꽃에 탄다. 그는 거기 들어가서는 곧 떨어져 큰 고통을 받고 큰 소리로 외치다가 다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숲을 본다. 그 숲은 푸른 구름과 같고 두루 고요하며 새 소리가 많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못이 있어서 그 물은 깨끗하여 즐길 만하다. 그 지옥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것은 가장 고요한 숲이요 또 맑은 못물이다. 나는 저기서 안락을 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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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을 것이다.' 그가 구원을 바라고 돌아갈 곳을 찾아 그 숲을 향해 달려가면 거기는 불꽃 무더기인 뜨거운 불꽃의 쇠땅이다. 죄인은 또 그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새가 있는 것을 본다. 그 지옥 사람은 안락이 있기를 바라 그 숲을 향해 달려가서 구원을 바라고 돌아갈 곳을 찾는다. 그리하여 그는 매우 큰 고통을 받는다. 그가 그 숲에 갔을 때에는 그 보는 것은 본래 보던 것과 달라 모두가 나쁘고 매우 두려운 것이다. 이른바 입이 큰 용이 있는데 그 용은 머리가 천 개요, 그 눈은 불꽃으로 타며 독기는 왕성한데 그것은 아까 보던 나무들이요, 아까 듣던 뭇 새소리는 지금은 다 지옥 사람들의 온몸이 불에 타면서 외치는 소리며, 아까 멀리서 듣고 새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다 사나운 용이 지옥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갖가지 고통을 주는 것이다. 죄인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그 용이 불꽃 입으로 먹으면 죄인은 용의 입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자기 업의 지은 바로서 용 입 안에서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나며 살아났다가는 다시 죽는다. 이렇게 항상 먹히되 셀 수 없는 많은 세월 동안을 먹히면 다시 살아나고 먹히면 다시 살아난다. 용의 입 안의 업이 다하여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갈증이 매우 급해 다시 다른 곳에 있는 못물을 보고 빨리 달려가면, 그 못물은 어둠에 덮여 그 못 안에 가득 차고 지옥의 왕성한 불은 깊이가 1유순이나 된다. 그 지옥 사람은 거기 가서 그 안에 들어가고, 들어가면 곧 빠져 큰 고통을 받되 그 업과 같아서 다른 업으로 비유할 수 없으므로 그 받는 고통은 그것과 같은 것이 없으며, 내지 그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받는다.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7백 생 동안 아귀나 축생들 속에 태어나고, 또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남에게 부림을 당하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며 키가 작다. 그것은 다 그 업의 과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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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에 또 어떤 곳이 있는가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대비처(大悲處)라는 다른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열넷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어떤 훌륭한 사람이 남에게 나아가 경론(經論)을 읽고 외우며 혹은 그에게서 경론의 설명을 들을 때 그는 애욕이 많아 그 아내나 첩과 음행하며, 진실로 정숙한 선생의 부인 등을 꾀고 속여 음행하면서 항상 남에게는 말하기를 '저이는 우리 어머니이다'고 한다. 선생의 부인이 어머니와 비슷하기 때문에 우치한 마음으로 믿음을 어겨 그렇게 음행하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대비처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고통이니,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는다.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 지옥에는 뜨거운 쇠평상이 있다. 그 평상에는 모양이 칫솔 같은 날카로운 칼이 있어서 죄인은 거기서 항상 급히 긁혀 온몸의 가죽·살·힘줄·혈맥·뼈·골수·피가 모두 한데 뭉친다. 그렇게 긁히면서 슬피 부르짖고 울면, 다른 지옥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괴로워하여 자기 자신의 고통은 깨닫지 못하며, 그는 그렇게 긁히면서도 언제나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백천 년 동안 긁히면서 항상 살고, 내지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6천 생 동안 아귀나 축생들 속에 태어나고, 또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태어나더라도, 태 안에서 죽거나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으며, 앉기 전에 죽거나 걷기 전에 죽으며, 혹은 걷고 난 뒤에 죽거나 달리다가 갑자기 죽기도 하며, 어디서 태어나거나 불구자가 된다. 그것은 다 그 악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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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에 또 어떤 곳이 있는가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무간암(無間闇)이라는 다른 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열다섯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며느리와 음행한다.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무간암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고통이니,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는다. 그리고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곳은 쇠땅으로서 불꽃이 뜨겁게 끓는다. 염마라 사람은 그 지옥 사람들을 붙잡아다 그 뜨거운 땅에 두고 아래위로 번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서로 위에 있기도 하고 밑에 있게 하기도 하되, 백번 천번 번복하고 한데 모아 구워 한덩이로 만들어 털끝만한 빈 틈도 없다. 그렇게 그들이 한 덩이가 되면 염마라 사람은 절굿공이로 찧어 다시 다른 덩이로 만들어 먼저 덩이보다 더 단단하게 한다. 그렇게 세밀히 찧고 세밀히 섞어 분별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맹렬한 고통을 받고, 내지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9백 생 동안 아귀나 축생들 속에 태어나고 또 혹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눈먼 거북이 널빤지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나더라도 빈궁하고 항상 앓으며 늘 원수에게 파괴되고 나쁜 국토에 태어나며, 바다 가운데의 오랑캐가 되어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하천하며 또 오래 살지 못한다. 그것은 다 그 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에 또 어떤 곳이 있는가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다시 목천처(木轉處)라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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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옥의 열여섯째 딴 곳이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술 마시기·거짓말·삿된 소견 등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었기 때문이니, 그 업과 과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어떤 사람은 남에게서 그 목숨의 구원을 받는다. 즉 병 따위로 앓다가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 남의 구원을 받거나, 혹은 죽음을 당했을 때 남의 구원을 받는다. 그런 은혜가 있는데도 그는 그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그 아내와 음행하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지되 저 지옥의 목전처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고통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활지옥 등에서 받는 고통이니, 그 모든 고통을 여기서 다 받는다. 그리고 다시 더 심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거기는 대규환이라는 큰 강이 있다. 그는 그 강에서 뜨거운 백랍 물에 타고 삶기며 떠 흐른다. 그 지옥의 죄인은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그 강에 떠돌며 삶긴다. 그 지옥 사람들은 그 강 가운데 함께 떠돌고 있다. 너무 급히 떠돌기 때문에 머리가 밑으로 물 속에 들어가 빠지면 다른 죄인과 겹쳐서 서로 누르므로 분별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지옥은 아래위로 죄인들을 눌러 밑으로 보내므로 그들은 뜨거운 백랍에 타고 삶겨 외치면서 간단 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지옥 사람은, 그 악업 때문에 다시 마갈수(魔竭受)라는 큰 고기가 있어서 그 몸을 먹는데, 먹으면 다시 생겨 그 목전처의 큰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장구한 시간 고통을 받는데 그 악업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받으며, 내지 그 악업이 부서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아 업의 기운이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그치지 않고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만일 악업이 다하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더라도 5백 생 동안 아귀나 축생들 속에 태어나고, 또 거기서 벗어나 혹 인간의 업이 같은 곳에 태어나더라도 모든 여자의 미움과 천대를 받고, 그 부모·형·처자들이 모두 꺼리고 미워하며 5백 생 동안 음욕을 행하지 못한다. 그것은 다 그 악업의 남은 과보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대초열의 큰 지옥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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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직 그 열여섯의 딴 곳이 있을 뿐이요, 열일곱째의 딴 곳은 볼 수 없다. 모든 데를 두루 관찰하여도 오직 열여섯 곳뿐이다. 이 아주 극악한 대초열의 큰 지옥은 이렇게 끝이 없다. 자기 업의 과보를 그 지옥에서 받아 타고 삶기는 죄인이 받는 큰 고통은 그 업과 같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지어 다른 사람이 받는 고통이 아니요, 자기가 지었으므로 잃지 않는 것이니, 짓지 않았으면 받지 않는 것이며, 자기가 지은 업 그것과 같은 과보를 받아 자기가 지은 업으로 난 것이다. 중생은 이와 같이 그 지은 업과 같이 자기 업으로 과보를 받는 것으로서 좋거나 좋지 않거나 그 업과 같은 과보를 받는다. 그 비구는 이렇게 지옥의 과보와 지옥의 업을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생사를 싫어한다. 거기서는 어떤 즐거움도 볼 수 없고 항상된 것이나 나라는 것이나 깨끗한 것도 볼 수 없고, 오직 모든 생사가 덧없고 괴로우며 비고 나 없음만을 본다. 그렇게 보고는 일체의 욕심을 떠나고 욕심의 결박과 욕심의 행과 욕심의 뜻과 욕심의 원인을 떠나 욕심의 나쁜 허물을 보고, 더욱더 두려워하는 마음을 낸다. 그리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훌륭한 업을 바로 거두어 잡아 악마가 틈을 타지 못하므로 악마에 매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닦아 생사를 늦추고 계속하는 악의 사슬을 부수고 흩어 버린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저 비구는 참으로 희유하다. 왕성한 힘이 있어서 11지(地)를 얻었다.' 그 땅의 야차는 그 비구의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왕성한 힘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다시 위로 허공의 야차에게 알리고, 허공의 야차는 사대왕에게 알리며……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렇게 차례로 대범천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염부제 안의 어느 나라, 어느 마을의 어떤 선남자로서 이런 종성과 이름을 가진 아무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떠나 악마의 경계에 머무르기를 즐기지 않고 애욕의 마음과 함께 머무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번뇌의 뱀을 좋아하지 않고 남의 고통을 보고는 세상의 모든 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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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깊이 염증을 내었습니다.'그 범신천(梵身天)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악마의 몫은 줄어들고 바른 법의 벗은 늘어났다.'그 수행하는 사람은 하늘눈으로 관찰하여 그 비구가 이미 제11지(地)를 얻어 바른 도를 보고 업보의 법을 분명히 보고, 몸의 업·입의 업·뜻의 업을 분명히 본 것을 본다. 여러 비구들은 이런 세 가지 미세한 몸의 업·입의 업·뜻의 업을 낱낱이 자세히 안다. 그러나 하늘 세상이나 악마의 세상, 범천의 세상이나 혹은 사문의 세계, 바라문의 세계 등 이런 하늘 사람도 이렇게 낱낱이 자세히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저 외도 차라가파리바사가(遮羅迦波利婆闍迦)로서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오직 내가 알고 내게서 들은 제자가 그렇게 잘 알며, 미세한 세 가지 업을 낱낱이 자세히 안다. 너희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나 혹은 저 외도 차라가파리바사가가 그렇게 묻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그렇게 하면 그렇게 물은 저 외도 차라가파리바사가들은 그 마음이 아득하여 너희들에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비구들이여, 모든 생사에 포섭된 중생으로는 행할 바가 아니요, 그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들은 거칠게 알고 바로 알지 못하며 경솔히 알고 더럽게 알며 조금 안다. 저 세 가지 업, 즉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말하는 그들의 말은 남에게 파괴 되며, 그들은 생·노·병·사와 걱정·슬픔·울음 등의 모든 고통을 끊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깨닫지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최상의 도가 아니요, 고요한 법이 아니며, 안락의 법이 아니요, 천상에 나는 도가 아니다. 그들은 몸·입·뜻의 세 가지 업의 도를 생각하고 오직 교만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비구들이여, 저 외도 차라가파리바사가는 제 마음대로 기뻐하면서 마음으로는 모든 허물과 공덕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매우 나쁘다. 그들은 조금도 나와 같은 점이 없다. 마치 열반과 생사가 조금도 같지 않아 이치가 서로 아득히 먼 것처럼 저들이 아는 세 가지 업과 내가 아는 세 가지 업은 조금도 같은 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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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저들의 물음에는 오직 말만이 있지마는 부처에게는 바른 길의 아주 고요한 열반이 있다. 일체의 생사는 덧없이 부서지는 것이요, 모두 괴롭고 즐거움이 없다.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물질으로서 항상된 것이 없고 물질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물질으로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물질으로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 비구들이여, 그 수행하는 사람은 그 비구를 볼 때, 그 비구는 그렇게 몸의 업·입의 업·뜻의 업을 갖가지로 분명히 보고 열반의 성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관찰한다. 즉 저 비구는 어떻게 12지(地)를 얻는가? 그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그 비구를 본다. 즉 그 비구는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다시 악업의 과보인 일곱의 큰 지옥과 그 딴 곳을 분명히 관찰하고, 업보의 법을 자세히 관찰한 뒤에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아비(阿鼻)라는 최대 지옥이 있다. 일곱의 큰 지옥과 또 그 딴 곳을 모두 하나로 만들어도 아비지옥은 천 배나 더 괴롭다.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 지옥에 나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즉 어떤 사람이 모진 마음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고 또 나쁜 마음으로 부처의 몸에 피를 내고 화합한 승단(僧團)을 깨뜨리며 아라한을 죽이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아비의 큰 지옥에 나서 1겁이 지나도록 머무르고 혹은 감겁(減劫)에 머무른다. 업이 이미 평등하게 되었는데도 감겁에 머무르는 것은 그 겁의 중간에 악업을 지어 아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감겁에서도 아비에서 태워지고 삶긴다. 왜냐 하면 시간은 이미 지나면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감겁에서 태워지고 삶기는 것으로서 그 고통이 맹렬한 것은 많은 악업을 적은 시간에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비의 업을 지을 때 단단한 마음이 아니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지으면 받는 고통이 심하지 않고, 만일 아비의 업을 짓는 사람이 모진 마음으로 지으면 그는 심한 고통을 받는다. 모든 짓는 업과 그 업의 과보는 모두 마음과 심수법(心數法)의 작용이다. 마음은 다 자재하고 화합하며 마음은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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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행한다. 다시 여섯 가지 결박이 있어 중생을 결박한다. 마음이 고요하면 중생은 해탈한다. 그런 까닭으로 아비지옥 속에서 고의 인연으로 받는 고통에는 그 몸의 거칠고 부드러움이 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역죄(逆罪)를 범한 사람은 지옥에서 그 몸이 장대하여 5백 유순이요, 네 가지 역죄를 범한 사람은 4백 유순이며, 세 가지 역죄를 범한 사람은 3백 유순이요, 두 가지 역죄를 범한 사람은 2백 유순이며, 한 가지 역죄를 범한 사람은 1백 유순이다. 또 그 비구가 아비의 큰 지옥을 관찰할 때 그것을 모기(毛起)라 한다. 최대 지옥에는 대개 몇 곳이 있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안다. 그 지옥에는 두루 열여섯 곳이 있다. 열여섯이란, 첫째는 오구(烏口)요, 둘째는 일체향지(一切向地)며, 셋째는 무피안상수고뇌(無彼岸常受苦惱)요, 넷째는 야간후(野干吼)며, 다섯째는 철야간식(鐵野干食)이요, 여섯째는 흑두(黑肚)며, 일곱째는 신양(身洋)이요, 여덟째는 몽견외(夢見畏)며, 아홉째는 신양수고(身洋受苦)요, 열째는 양산취(兩山聚)며, 열한째는 염바파도(閻婆巴度)요, 열두째는 성만(星鬘)이며, 열셋째는 고뇌급(苦惱急)이요, 열넷째는 취기부(臭氣覆)며, 열다섯째는 철첩(鐵)이요, 열여섯째는 십일염(十一焰)이다. 그 아비의 최대 지옥에는 두루 이런 따위의 열여섯의 딴 곳이 있다. 또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다. 즉 사람이 죽으려 할 때, 내지 중유(中有)로서 어떻게 아비지옥에 가서 거기서 고통을 받고 다시 괴로운 곳에 나는가? 그는 본다. 즉 어떤 중생은 탐욕·분노·우치 등에 덮여 악업을 짓고 아비지옥의 나쁜 행을 성취한다. 그렇게 아비지옥의 악업을 지어 행하는 사람은 하늘에 가기 위해 큰 불로 그 어머니를 태워 죽이고, 또 어떤 사람은 높은 산이나 험한 언덕에서 어머니를 밀어 떨어뜨려 죽이며, 또 어떤 사람은 물 속에 넣어 어머니를 죽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굶겨서 그 어머니를 죽인다. 나쁜 도를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 나쁜 말에 속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이고 탐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나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어머니를 죽이되, 굶겨 죽이고 산 위의 험한 곳에서 밀어서 죽이며, 불에 태워 죽이고 혹은 물 속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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