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정혜결사문을 반포하게 된 연유

근와(槿瓦) 2015. 10. 18. 01:02

정혜결사문을 반포하게 된 연유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여러 사람들이 이와 같은 내 말을 듣고 다 그렇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다음날 이 언약을 이루어 숲속에 은거하며 함께 결사(結社)를 이루게 되면 그 이름을 '정혜(定慧)'로 하자고 했다. 이런 연유로 맹세하는 글(盟文)을 지어 뜻을 표시했었다. 그 뒤 우연히 선불장(選佛場)의 이해관계에 대한 일이 벌어져 다들 사방으로 흩어지고 아름다운 기약을 이루지 못한 채 거의 십년이 되었다.

 

지난 무신년(戊申, 1188년) 이른 봄에 동지 가운데 재공선백(材公禪伯)이 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는 그전의 서원을 잊지 않고 앞으로 정혜사(定慧社)를 맺고자 하여 하가산(下柯山)의 보문사(普門寺)로 내게 편지를 보내어 오기를 거듭거듭 간절히 청하였다.

 

내가 비록 오랫동안 숲속에 살면서 스스로 어리석고 둔함을 지켜 아무 일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지만, 예전 약속을 생각하고 또 그 간절한 정성에 감동되어, 그 해 봄 동행한 항선자(舡禪子)와 함께 이 절로 옮겨왔다. 예전에 원을 같이 했던 이들을 불렀지만, 더러는 죽기도 하고 앓기도 하며, 혹은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구하느라고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스님들 서너 사람과 함께 비로소 법의 자리를 열어 옛날의 소원을 이루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건대, 선과 교, 유교나 도교를 가릴 것 없이, 세속을 싫어하는 뜻이 높은 사람으로 속세를 벗어나 세상 밖에 높이 노닐면서 안으로 닦는 도에 전념하는 이 뜻에 공감하는 이는 지난날 약속한 인연이 없더라도 결사문 뒤에 그 이름 쓰기를 허락한다.

 

비록 한 자리에 모여 배우고 익히지는 못할지라도 항상 생각을 거두어 안으로 살피기에 힘쓰면서 바른 인연을 같이 닦는다면, 경에서 말한 '미친 마음 쉬는 곳이 바로 보리이므로, 성품의 맑고 오묘하고 밝음은 남한테서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또 <문수게(文殊偈)>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곧 도량이다. 그러니 그것은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공덕보다 더 뛰어난다. 보배로 된 탑은 언젠가는 부서져 티끌이 되고 말겠지만,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마침내 정각(正覺)을 이룬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생각을 거두어 번뇌를 없앤 인연은, 설사 삼재(三災)가 휩쓸더라도 수행한 업 그대로 의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음 닦는 사람만이 그 이익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덕으로써 축원하나이다.

 

성수(聖壽) 만세하시고 영수(令數) 천세하시며, 천하는 태평하고 법륜이 항상 굴러지이다. 삼세의 스승과 부모와 시방(十方)의 시주와 널리 법계에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영혼이 다같이 법의 비에 젖어 삼악도의 고뇌에서 영원히 벗어나지이다. 큰 광명의 고방에 뛰어들고 삼매의 바다에 노닐면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어리석음을 일깨워 등불과 등불이 서로 잇따라 광명이 다하지 않으면 그 공덕이 법성(法性)과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선(善)을 좋아하는 군자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며 살피기 바랍니다.

 

명창(明昌) 원년 경술(庚戌, 1200년)에 이르러, 결사를 공산에서 강남 조계산으로 옮겼는데, 가까운 이웃에 정혜사(定慧寺)가 있어 이름이 혼동되기 때문에 나라의 허락을 받아 정혜사((定慧寺)를 수선사(修禪寺)로 고쳤다. 그러나 <권수문>이 이미 유포되었기 때문에, 그 옛 이름대로 판에 새겨 인쇄해서 널리 펼친다.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