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진심의 바른 마음(眞心正信, 眞心直說)

근와(槿瓦) 2015. 10. 17. 01:07

진심의 바른 마음(眞心正信)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화엄경>에 말하였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 모든 선근(善根)을 거기서 길러낸다.'

 

또 <유식(唯識)>에서는 이와 같이 말했다.

'믿음은 물을 맑히는 구슬(水淸珠)과 같은데, 그것은 흐린 물을 맑히기 때문이다.' 온갖 선(善)이 발생하는 데는 믿음이 그 길잡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경 첫 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라고 쓴 것도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다.

 

(질문) 조사문(祖門)의 믿음은 교문(敎門)의 믿음과 어떻게 다른가?

(대답) 그것은 여러가지로 같지 않다. 교문에서는 사람과 천신들에게 인과(因果)를 믿게 한다. 복락(福樂)을 좋아하는 이는 십선(十善)이 오묘한 인(因)이 되어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즐거운 과(果)라고 믿는다. 공적(空寂)을 좋아하는 이는 생멸의 인연이 바른 인이 되고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성인의 과라고 믿으며, 불과(佛果)를 좋아하는 이는 삼겁(三劫)의 육바라밀(六度)이 큰 인이 되고 보리와 열반이 바로 과라고 믿는다.

 

그러나 조사문의 바른 믿음은 앞의 것과 다르다. 모든 유위(有爲)의 인과를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믿는다. 천진한 자성(自性)이 사람마다 갖추어져 있고 열반의 오묘한 실체(妙體)가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므로, 다른 데서 구하지 않고 원래 저절로 갖추어져 있음을 믿는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셨다.

'원만하기 허공과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지만 오로지 취하고 버리는 생각 때문에 그와 같지 않다.'

 

또 지공(誌公)화상은 말하였다.

'상(相)이 있는 몸 가운데 상이 없는 몸이고, 무명(無明)의 길 위에 생멸이 없는 길이다.'

 

또 영가(永嘉) 스님은 말하기를,

'무명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고,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法身)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바른 믿음을 내었다면 마땅히 앎(鮮)을 더해야 할 것이다.

 

영명(永明) 스님은 말했다.

'믿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무명이 더욱 자라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삿된 소견만 더욱 자란다.'

그러므로 믿음과 앎(信鮮)을 겸해야 빨리 도에 들어간다.

 

(질문) 처음으로 신심을 내어 도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어떤 이익이 있는가?

(대답) <기신론>에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미리 겁내거나 나약한 생각을 내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불종(佛種)을 이어 받아 모든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찬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十善)을 행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잠깐동안 이 법을 바로 생각하면, 이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훨씬 많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금강경>에 말하였다.

'한 생각 청정한 믿음을 내면 부처님이 다 그를 알아 보신다. 그런 중생은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다.'

천리를 가고자 한다면 첫걸음부터 올바라야 하는데, 첫걸음이 어긋나면 천리길이 다 어긋나고 만다. 열반의 경지(無爲國)에 들어가려면 첫 믿음이 발라야 한다. 첫 믿음을 잃으면 온갖 선(善)이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기를 '털끝만큼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하늘과 땅처럼 멀어진다.'고 한 것이다.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