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창녀 암바바리(菴婆波利)의 공양(150)

근와(槿瓦) 2015. 10. 11. 00:43

창녀 암바바리(菴婆波利)의 공양(150)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그로부터 비사리를 향하여 아난과 함께, 길을 재촉하여 성 어귀의 수원에 머무르셨다. 수원은 성의 창녀 암바바리의 소유였으나 그녀는 세존이 그 동산에 오셨음을 듣고 깨끗하게 차려입고 5백 명의 창녀를 거느리고 수레를 달려 성을 나와 세존의 좌하로 향하였다.

 

세존은 멀리 이것을 어람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지금 그 마음을 단정하게 함이 좋다. 오히려 맹호의 밥이 되고, 광인의 칼날 아래 서고, 혹은 불에 단 쇠창으로 두 눈을 도려낼지라도 욕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건전하게 제어하라. 이미 생겼던 악을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일어나지 않게 하며, 이미 생겨난 선은 기르고 아직껏 생기지 않은 선은 일으키도록 함이 좋다. 이리하여 능히 그 마음을 수습하라. 만약 처음 동안에 그치지 않으면 뒤에 가서는 억제하기 어렵게 된다. 때문에 다만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정진의 활과 지혜의 창을 들고 정념의 갑옷을 입고서 오욕과 결전을 함이 좋다. 나는 도를 구한 이래 마음과 싸우기에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거듭했다. 그것은 간사한 마음에 따르지 않고 정려하여 끝내 정각을 얻었던 것이다. 제자들이여, 그 마음을 바르게 하라. 너희들의 마음은 오랜 동안 구예(垢穢) 속에 있었다. 이제야 스스로 그 속에서 빠져 나와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태어나서 죽는 것으로 정해진 것은 밖을 봐도 괴롭고 안을 봐도 모두 괴로움에 차 있다.”

 

이윽고 암바바리는 멀리서 세존께 절하고 기뻐하며 수레에서 내려 세존의 어전에 나아가 예하고 옆에 앉았다. 세존이 물으시기를,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냐?”

 

암바바리가 답하기를,

“저는 지금 세존이 여러 신들보다도 뛰어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때문에 가르침을 받고서 밤이나 낮이나 스스로 힘써 어떻게 하든지 사도에 떨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너는 여자가 된 것을 기뻐하는가?”

“신이 저를 계집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하등 기뻐하고 있지 않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 기뻐하지 않는다면, 누구가 너에게 5백의 창녀를 기르게 했던 것인가?”

“저의 어리석은 소행입니다.”

 

“착하다, 암바바리여, 행을 함부로 하는 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은 더럽혀지고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받으며 두려움과 의심을 품는 일이 많아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며, 이어서 축생의 상(相)을 받을 것이다. 모두 이것은 욕심 때문인 것이다. 또 행이 맑은 자에게는 다섯 가지 복이 있다. 이름은 찬양되고 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몸은 편하여 죽어서 천계에 태어나고 이어서 청결한 각의 도에 서게 되리라. 그러니 스스로 불쌍히 여겨 교계(敎戒)를 행하라. 그러면 청정한 도를 얻게 될 것이다.”

 

세존이 여러 가지로 법을 설하시자 암바바리의 마음은 환희에 넘쳤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마음은 이미 청정하다. 사내가 법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다지 이려운 일은 아니나 여자가 법을 즐기게끔 된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어렵다. 더구나 나이가 젊고 집도 풍족하며 용색이 갖추어진 자로서는 더한층 그러하다. 암바바리여, 재물과 색과는 영겁의 보물은 아니다. 다만 도만이 존귀한 것이다. 몸이 아무리 굳세더라도 병에는 어찌할 수가 없고 젊음은 늙음으로 옮겨지고 생명은 죽음 앞에 괴로워하며, 사랑하는 자와는 헤어지고 원수와는 이웃하게 되어 구하는 바는 대개 뜻대로 되는 수가 없다. 그러나 도만은 마음대로인 것이다. 이를 행하면 범접되는 일이라고는 없다.”

 

암바바리는 감사의 말을 올리고 자리를 피하여 무릎 꿇고 말하기를,

“내일 아침 사소한 공양을 바치고자 하옵니다. 모쪼록 여러 성중(聖衆)과 함께 저의 집에 광림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세존의 허락을 얻자 그녀는 크게 기뻐하며 절한 다음 곧 떠나갔다.

때에 성에 사는 리차인들은 세존을 배례하리라 생각하고 일족 5백 명과 함께 수레로 줄지어 성을 나섰다. 때마침 암바바리가 그 창녀들과 함께 세존의 좌하를 물러나 귀가를 서두르는 일행과 마주쳤다. 그들의 수레와 암바바리의 수레가 닿아, 굴대와 굴대가 부딪치고 바퀴와 바퀴가 마찰하여 리차인들의 번개(幡蓋)가 그 때문에 망가졌다. 리차인들이 암바바리의 무리들에게 책하기를,

“어째서 그대들은 우리들의 수레를 망가뜨리는 것을 돌보지 않는 것이냐?”

 

암바바리가 대답하기를,

“내일 아침 세존과 그 성중(聖衆)을 제 집에 초대하는 허락을 얻었으므로 정신없이 길을 서둘다가 예를 잃었습니다.”

 

하고 사과하였다. 리차인들은 놀라며 말하기를,

“그대는 벌써 세존의 허락을 얻었단 말인가. 암바바리여, 잠시 그대의 초대를 우리들에게 양보해 주오. 우리들은 그 대신 백천 냥의 돈을 그대에게 주리라.”

 

“저의 초대는 벌써 정해졌습니다. 공자들의 요구를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백천 냥을 16배를 더한 돈을 줄 터이니 모쪼록 우리들에게 차례를 양보해 주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승낙하지 않았다. 리차인들은 손을 내저으며,

“이 여자 때문에 우리들은 시초의 복을 놓쳤다.”

고 한탄하면서 재차 행렬을 갖추고 그 길로 수원의 동산으로 세존을 찾아뵈었다.

 

세존은 이것을 바라보고 제자들에게 고하시기를,

“너희들이 신들의 영광을 알려고 한다면 이 리차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 위의는 이와 비슷하다. 제자들이여,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모든 위의를 갖추어라. 신(身)과 수(受)와 마음과 법을 관(觀)하며, 힘써 게을리 하지 말며, 가야할 곳에 가고, 머무를 곳에 머무르며 승복과 바리때를 갖는 데에나 탕약을 사용하는 데에도 모름지기 격식을 잃지 않으며, 앉는 데에도 눕는 데에도 이야기하는 데에도 침묵하는 데에도 언제나 마음을 가라앉혀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그때 리차인들은 수레에서 내려 세존의 좌하에 절하면서 앞사람은 무릎을 꿇고 중간 사람은 머리를 숙이며 뒷사람은 합장하면서 모두 자리를 잡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그대들은 왜 이곳에 왔는가?”

 

그들이 답하였다.

“세존이 여기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배례하기 위해 왔사옵니다.”

 

이윽고 세존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방일하면 이(利)와 명(名)을 얻지 못하고 보시함을 좋아하지 않으며, 도를 닦는 자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세사(世事)와 말을 좋아하고 수면과 희론을 좋아하며, 악우에게 다가가서 나태를 좋아하고 남에게 업신여겨지고 들은 일을 잊고 변지(邊地)에 사는 것을 좋아하며, 마음을 단정히 할 줄을 모르고 음식에 족함을 모르며 한적함을 좋아하지 않고 따라서 그 보는 바도 바르지 않다. 선남자여, 세간의 법도 세간을 초월한 불법도 방일하지 않는 곳에서 생긴다. 만약 도를 얻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힘써 방일하지 않는 법을 닦아라. 방일한 자는 그 몸은 부처와 제자에게 다가간다 하더라도 각에서 아득히 먼 자인 것이다.”

 

리차인들은 말하기를,

“저희들은 자신들이 방일함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세존은 저희들의 처소에 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리차인들 중에는 빈기야라는 사람이 있어, 리차인들에게 이야기하기를,

“그대들의 말하는 바는 옳다. 빈바사라왕은 커다란 이익을 얻었다. 세존이 그 나라에 나신 것은 마치 못에 신묘한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들을 방일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욕에 빠져서 부처께 다가가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세존이 마갈타에 광림하신 탓이 아니다. 그것은 부처란 해나 달과 같은 것으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 나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어나 세존 앞에 나아가서 물끄러미 성 안을 우러러보았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빈기야가 말하기를,

“세존의 대덕은 큰 산이 솟는 것 같고 천상 천하에 그 유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세존을 우러러보고 청정한 가르침에 순복하여 고뇌는 조금도 없습니다.”

 

세존이 밝히 말씀하셨다.

“나를 잘 봄이 좋다. 저절로 복을 얻으리라.”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의 염(念)이 열릴 것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세존이 이를 허락하시자 빈기야가 게송을 읊었다.

 

앙가의 임금은 보주(寶珠)의 갑옷을 입었네. 마갈타의 임금은 크게 부하도다. 부처님이 이곳에 나셔서 그 위덕은 천하마저 움직이신다. 불명(佛名)의 나타나심은 설산과 같으며 향기의 훌륭함은 연꽃과 흡사하도다.

그 빛을 배례하건대, 해가 동산에 뜨는 것과 같고 달이 창공에 노니는 것과 닮았도다.

세존이시여, 이 빛으로써 세상을 비추고 중생에게 밝은 눈을 베푸시고 모든 의문을 불식하셨도다.

불지(佛智)는 높고 신묘하며 그리고 밝아서 먼지도 없네. 칠흑 속에서 뜰의 모닥불을 보는 것만 같도다. 원컨대 저는 청신계(淸信戒)를 받들어 스스로 삼보에 귀의하여 받드리라.

 

5백의 리차인들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동하여 말하였다.

“빈기야여, 너의 덕은 크다. 모쪼록 거듭하여 그 게송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빈기야가 세 번 이것을 게송하자 사람들은 그 화려한 의복을 벗어 그에게 보냈다. 그는 또 이것을 모조리 세존께 바쳤다.

 

세존은 그 뜻을 거두시고 사람들에게 고하셨다.

“리차인들이여, 교만을 제거하고 법광(法光)을 더하라. 재물도 빛도 향기도 꽃도 계의 장엄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신을 영화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음을 고르게 하는 데에 있다. 만약 여기에 도를 즐기는 생각을 더한다면 덕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즐겨 현자를 모아서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하고 바르게 반성을 기르고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금후 덕은 길이 흘러 궁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보옥은 땅에서 나고 계는 많은 선에 연유하는 바이다. 지혜있는 자는 청정한 계를 닦아 망집의 광야를 나아가야 한다. 아의 견식을 여의여라. 교만은 참괴를 멸하고 모든 선을 멸하며 모든 공덕을 잃게 한다. 용색도 벌족(閥族)도 모두가 무상하다. 움직여 잠시도 머물지 않고 언젠가는 끝내 멸해 갈 것이다. 어떻게 자랑할 수가 있겠는가.

 

또 욕은 큰 환이다. 그것은 원수처럼 사위(詐僞)로 접근해 와 아무도 모르게 해치는 것이다. 참으로 안에서 일어난 그 세의 무서움은 세간의 불(火)보다도 무섭다. 불은 세차게 타더라도 물은 이것을 끈다. 그러나 탐의 불은 쉽게 끄기가 어렵다. 맹렬한 불이 들을 태우더라도 초근은 이윽고 또 이듬해 봄에 나게 되지만 탐화가 마음을 태우면 정법이 생기기란 어렵다. 탐은 세상의 즐거움을 구하고 세상의 즐거움은 오독을 증가시키며 오독은 자신을 악도에 떨어뜨린다. 참으로 원기(怨氣)중에는 탐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또 탐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욕을 익히게 하며 욕은 모든 괴로움을 초래한다. 악은 탐을 웃도는 것이 없다.

 

리차인들이여, 또 진에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 노여움은 바른 얼굴빛을 부수고 밝은 눈을 가려 친함을 끊고 세간의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러니 노여움을 버려라. 만약 스스로 금할 수가 없다면 회한과 근심의 불이 수반하여 일어나, 첫째는 스스로를 태우고 이어서 남까지도 태우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자를 보면 탐을 일으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보면 노여움을 일으킨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다 함께 잊어 버린다면 탐과 노여움은 다 함께 제거할 수가 있을 것이다.

 

리차인들이여, 부처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심히 희귀한 일이다. 능히 부처의 정법을 밝게 아는 자도 부처님의 정법을 성취하는 자도 심히 희귀하며 듣고 믿는 자도 심히 희귀한 것이다. 그리고 부처의 정법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아는 자도 또한 희귀한 것이다. 리차인들이여, 스승에 순종토록 하라. 그 앞에서는 공경하고 보지 않는 곳에서는 칭찬하며 그 몸이 떠난 뒤에는 항상 이를 염함이 좋다.”

 

세존이 말씀하신 바를 다 듣고 리차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드리고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과 성중(聖衆)에 공양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쪼록 청허해 주십시오.”

“나는 먼저 암바바리에게 공양을 허락하였다.”

 

리차인들은 손을 휘두르면서 말하였다.

“그녀는 우리들의 선수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세존의 성의가 일률적으로 미침을 알고 진심으로 감사하며 각자 세존의 발에 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암바바리는 밤을 세워 음식을 갖추고 방을 꾸미어 자리를 준비한 후 새벽에 이르러 세존의 좌하에 나아가 때를 알려드렸다. 세존은 바리때를 가지고 여러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성으로 들어가셨다. 성 안의 많은 사람들은 나와서 세존 일행을 배례했는데, 세존은 명월과 같고 제자들은 명성과 같다고들 이야기했다. 이윽고 세존은 암바바리의 집에 들어가 착석하시자 그녀는 손수 바리때를 받쳐들고 국물을 세존께 권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바리때를 치우자, 황금의 항아리를 가져다가 어수(御手)에 부으면서 말하기를,

 

“이 성의 많은 동산 가운데 제 것이 가장 훌륭합니다. 저는 지금 이것을 세존께 바치고자 생각합니다. 모쪼록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받아 주십시오.”

 

세존은 이것을 허락하시면서,

“암바바리여, 탑을 일으키고 정사를 세워 청량원(淸凉園)을 갖추고 다리와 배로써 사람을 건너게 하며, 또는 광야의 풀에 물로써 시혜하고 집을 지어 숙소를 제공함이 좋다. 암바바리여, 베푸는 자에게는 원한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그 이름은 사람들의 찬양을 얻고 그 몸은 편안할 것이다. 청정한 계는 세상의 숭상하는 바로, 가는 곳마다 경애하지 않는 자가 없다. 욕은 근심인 것이며 부정이다. 서둘러 이곳에서 나가도록 힘씀이 좋다.”

 

세존은 암바바리의 마음이 드디어 아늑해지면서 쉽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 것을 보고 그녀를 위하여 사성제의 요점을 설하시었다. 그녀는 신심이 아름다워 마치 백모(白毛)의 천이 물감을 받기 쉬운 것처럼 당장 법을 보고 법을 터득하여 무외(無畏)의 지위에 들어갔다.

 

이때 암바바리는 세존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에 귀의하고 정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여 받드옵니다. 모쪼록 저를 신자 속에 넣어 주십시오. 저는 금후 살생, 투도, 음란, 망언, 음주함을 그만 둘 것이옵니다.”

세존은 이것을 허락하셨다. 암바바리는 이때까지의 습관을 버리고 부정(不淨)에서 헤어나 청정해졌다.

 

세존은 성의(聖意)대로 비사리에 머무신 후 아난에게 의복을 갖추게 하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죽방(竹芳)의 마을로 향하셨다.

 

죽방의 마을은 비사리에 가까운 작은 언덕의 기슭에 있었다. 세존은 이 마을에 들어가 그 북쪽 숲에 머무르셨다. 마을에 비사타야(毘舍陀耶)라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세존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교답마의 명덕(名德)은 세상에 퍼져 청정한 행이 갖추어지고 설하는 바는 처음도 중간도 끝도 모두 진리라고 일컫는다. 지금부터 가서 뵈오리라’ 작정하고, 이윽고 좌하에 예하자 세존은 그를 위해 도를 설하셨다. 그는 기쁜 나머지 이튿날 아침 세존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청할 수 있을까를 타진했다. 세존은 그 집에 이르러 식사를 마치고 비사타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옷이나 밥 혹은 좌구를 수계한 사람에게 베푼다면, 커다란 보답을 얻으리라. 이 덕은 바로 진(眞)의 동반자이다. 도처에 그림자처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선근을 심어 후세에 양식으로 함이 좋다. 덕에 의거하면 사람은 안존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 집을 떠나셨다.

 

때에 이 마을은 기근으로 곡식 값이 비쌌다. 더구나 마을이 작았으므로 세존 일행은 밥을 얻는 것도 어려웠다. 세존은 여러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비사리 또는 발기(跋耆)로 가서 지인을 찾아라. 그러면 먹는데에 걱정은 없으리라. 나는 아난과 함께 여기에 머물겠다.”

 

여러 제자들이 명에 따라 출발하려 하자 세존은 거듭하여 설유하셨다.

“제자들이여, 첫째 극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물건을 얻더라도 그 물건에 빠져서는 안 되며 나쁜 것을 얻더라도 근심하지 말라. 식이란 그저 몸을 지탱하는 것으로서 탐해서는 안 된다. 탐하기 때문에 망집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니 몸을 절제함을 알고 능히 나를 이기는 자는 곧 적정을 얻게 되리라.”

 

제자들은 기뻐하며 세존께 절하고 각자 헤어져서 사방의 도시로 향하였다.

세존은 아난과 함께 이곳에 머물었으며 45년 째의 안거에 들어가셨다.

 

때마침 세존은 병이 나서 온 성체는 심상치 않은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제자들은 지금 이곳에는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내 걱정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멸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곳은 내가 멸도에 들 곳이 못된다. 때문에 애써 마음을 격려하여 생명을 머물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동안에 병은 다소 가벼워졌으므로 방을 나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으셨다. 아난도 이때 나무 밑에 있었는데, 이를 보자 급히 세존께 다가와서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병세는 어떠하옵니까? 저는 병환이 나셨다는 것을 알고는 걱정이 되어 숨이 막힐 듯 놀랐습니다만 이제 조금은 기력을 회복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왜 이제는 사람들을 교화하려 하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이여,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슨 기대를 하겠다는 것이냐. 만약, 스스로 남들에게 기대한다든가 중생을 제도한다고 했다면 그 사람 역시 중생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나는 그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르쳐야 할 이유는 없다. 아난이여, 부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나에게는 감추는 바가 없다. 나의 도에는 쥐어진 주먹이라는 것은 없다.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모든 도를 너희들에게 시현했던 것이다. 전후 설한 바는 모두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다. 너희들은 다만 이것을 행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여러 제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 된다.

 

아난이여, 나의 몸은 이미 노후했고 나의 나그네 길은 벌써 종장에 다가오고 있다. 나이는 바야흐로 80길에 다가섰다. 모양은 낡은 수레와 같고 견고함도 강한 것도 없다. 나는 일찍이 너희들을 위하여 설했지 않았던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때가 있어 태어나서 죽지 않는 자라고는 없다. 나는 세상에 나와 널리 열반의 대도를 열고 망집의 뿌리를 끊었다. 너희는 내가 떠난 뒤에도 이 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

 

아난이여,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귀의처로 하되 남을 귀의처로 해서는 안 된다. 법을 등불로 하여 법을 귀의처로 하되 남을 귀의처로 해서는 안 된다. 아난이여, 몸을 바라볼 때는 그 부정을 염하되 탐하지 말고 마음이나 몸의 감수(感受)를 관(觀)하여 그 괴로움의 인(因)임을 염하되 탐닉하지 않으며, 법 자체를 볼 때에는 무아임을 염하되 헤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리라. 만약 내가 죽은 후에 이와 같이 교도(敎道)를 닦는 자가 있다면 아난이여, 이야말로 나의 참된 제자, 나의 자손인 것이다. 그는 이 위 없는 득도의 지위에 오르리라. 나는 천상 천하에 사는 모든 사람의 몸을 근심하여 군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이제는 부처가 되어 대체적으로 세상을 구하였다. 너희들도 유감없이 그 몸을 근심하여 서둘러 모든 악을 끊음이 좋다.”

세존은 이곳에서 우기를 보내시는 동안에 당신의 승복을 손질하셨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