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경계를 따르고 마음은 등지는가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혹 앉아 있는 동안에 천인(天人)이나 보살상,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나 단정한 남녀, 혹은 무서운 모양이나 갖가지 허깨비와 미혹시키는 일을 말하는 것을 본다. 또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더라도 자기 마음 속에 악마의 일을 그대로 따라 나쁜 소견 등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그때 가서 정신이 어지러워 살피지 못하고, 스스로 구제할 지혜마저 없어 악마의 그물에 걸리고 말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신론>에 말하지 않았던가.
'오직 마음(唯心)임을 생각하면 경계가 곧 사라져 끝내 괴롭지 않다.'
또 이렇게 말하였다.
'수행자는 항상 지혜로 관찰하여 그 마음을 삿된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언제나 정념(正念)을 가져 집착하지 말라.'
가르친 뜻이 이런데 어째서 경계를 따르고 마음을 등지면서 부처님의 보리(菩提)를 구하려고 하는가.
요즘 수행자들은 흔히 말하기를, 다만 염불하여 왕생한 다음에는 무엇이 또 있는가 라고 하지만, 그것은 구품(九品)의 오르고 내림이 다 자기 마음을 믿고 아는, 크고 작기와 밝고 어둠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경전에 이렇게 말했다.
'으뜸가는 진리(第一義諦)를 알고 열심히 수행해 나아가는 것을 상품(上品)이라 했는데, 어찌 총명하고 영리한 마음으로 둔한 근기를 좋아해 최고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명호만을 부르는가.'
<만선동귀집>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품 왕생에는 상하가 다 통한다. 화토(化土)에 놀면서 부처님의 응화신(應化身)을 보기도 하고, 보토(報土)에 나서 부처님의 진실한 몸을 보기도 한다. 혹은 하루 저녁에 문득 상지(上地)에 오르기도 하고,여러 겁을 지나서야 비로소 소승을 깨닫기도 하며, 예리한 근기와 둔한 근기, 안정된 뜻과 흩어진 뜻이기도 하다.'
고금에 통달한사람들은 비록 정토를 구하더라도 진여(眞如)를 깊이 믿고 선정과 지혜에 전념하였다. 그러므로 저 빛깔이나 모양 장엄 같은 것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기 때문에, 분별을 떠나 오직 마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며, 진여를 떠나지 않음을 안다.
범부와 이승(二乘)들이 변전하는 의식(轉識)이 나타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알고 빛깔의 분별을 두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똑같이 정토에 난다고 할지라도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의 수행하는 모습은 하늘과 땅 사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승의 유심법문을 배워 선정과 지혜에 전념하는 것이 어찌 범부와 소승의 마음밖의 빛깔의 분별을 취하는 소견과 같을 수 있겠는가.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법정스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불교의 희망과 시련 (0) | 2015.10.15 |
---|---|
국자는 국맛을 모른다 (0) | 2015.10.11 |
마음이 모든 부처님의 근원 (0) | 2015.09.29 |
마음과 부처를 함께 잊으라 (0) | 2015.09.23 |
잘못된 소견 (0) | 2015.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