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희망과 시련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수행자들이여, 정치권력 앞에 의젓하고 당당하게 처신하라. 그런 수행자라면 종교적인 기능 또한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행자를 세상에서는 귀하게 여긴다.
1993년 10월 10일 재불 신도들의 추진으로 프랑스의 파리에서 1시간 거리인 토르시(Torcy)에 송광사 파리 분원인 길상사가 문을 열었다. 법정은 2년 전 유럽 여행길에 파리에 들렀을 때, 이곳 교민과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몇 차례 집회를 가진 바 있었다. 그때 오고간 이야기들이 씨앗이 되어 이런 조촐하지만 뜻 깊은 사찰이 들어선 것이었다.
이날 법정은 80여 명의 재불 신도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길상사는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로 조용한 주택가의 대지 200평. 연건평 80평의 2층 양옥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구입과 수리에 약 5억 2천만 원(당시)이 들었다.
프랑스에는 파리를 중심으로 재불 신도들의 모임인 불자회(회장 한혜명화)가 5년 전에 결성됐으나 법당이 없어 그동안 가람식당 등 장소를 옮겨 가며 매주 법회를 열어 왔었다.
건물 수리에는 최준걸 불자회 부회장과 김우준, 김동건, 강대룡 등 회원들의 지난 여름 동안 노력 봉사를 했고 건물 물색과 매입 교섭 등에는 재불화가 방혜자 씨가 애를 썼다. 불자회 회원은 약 120명이며 유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길상사 정문에는 국어와 불어로 절 이름과 함께「명상의 집」이라는 간판도 함께 붙여졌다. 법정의 뜻대로 종교의 근본이 명상이므로 프랑스 사람들도 명상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법정은 회주가 되었다.
법정은 이 절을 짓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유럽의 관문인 파리에 한국 절이 생겼다는 것은 한국 불교의 유럽 진출이라는 외형적인 사실보다도, 우리 한국인의 종교적인 의지와 그 삶의 모습이 유럽 사회에 선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명상의 집은 현지 불교 신자만의 집합 장소로 그치지 않고 우리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유럽 사회에 알리고 심는 역할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물질문명의 여파로 인간의 설자리가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암담한 오늘,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은 동양의 지혜인 명상을 생활화함으로써 그 통로가 열리리라고 기대됩니다.”
종교의 의미와 길에 대해 묻기 위해 다시 홀로 지낸 법정에게 있어 파리 길상사의 개원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의 수행이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1,600년 간 종교로서 우리나라와 함께 성장해온 불교는 21세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아직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1994년 3월 29일. 서울 조계사에서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 지지파와 서 위원장의 3선을 저지하려는 반대파 간에 난투극이 일어났다. 반집행부 측 승려와 학생 등 476명이 연행되었다. 당시 조계종의 폭력사태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법정은 1970년대 초반 서울 강남 봉은사 인근 부지를 매각한 종단 정책에 반대한 뒤부터 종단 일에는 연을 끊고 살아왔었다. 스승인 효봉 스님의 ‘교단 정화운동’의 유지와 사형인 구산 스님의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에 대한 물음에도 쉽게 답하지 못했던 그였다. 단지 자신에게 허락된 지면을 통해 자신의 뜻을 글로 옮겨 알렸을 뿐 현실의 종단 일에는 좀처럼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1994년에는 달랐다. 법정은 조계사 폭력사태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다. 청정하고 신성해야 할 수도와 교화의 도량에 짐승들도 흉내낼 수 없는 살벌한 폭력이 난무하고 한 나라의 공권력이 함부로 침입하여 폭언과 폭력으로써 짓밟고 더럽힌 처사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출가정신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인사들에 의해, 종단의 크고 작은 행정사무직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종종 야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만 하더라도 그 발단은, 현 원장측이 종단의 전체적인 의사를 무시하고 3선 연임을 무리하게 강행,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한 데서 일이 벌어진 것은 국민 누구나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벼슬...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직위나 명예가 출가수행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세속적인 자리에 연연하여 버젓이 조직적인 폭력배까지 끼어들도록 한 것은 일찍이 없었던 수치스럽고 한심스런 작태다.”
당시 한국불교는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불교 종단의 행정 사무승들은 전체의 의사를 무시하고 정치 권력의 사주를 받아 걸핏하면 지지 성명과 관제 시위에 앞장을 섰다. 선거 때만 되면 불교 종단에서는 공공연히 여당 후보의 선거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물론 이것은 불교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몇몇 교회, 몇몇 성당 등 한국의 모든 종교단체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법정은 좀 더 강렬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에 이 말을 덧붙였다.
“수행자들이여, 정치권력 앞에 의젓하고 당당하게 처신하라. 그런 수행자라면 종교적인 기능 또한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행자를 세상에서는 귀하게 여긴다.”
법정의 이 같은 주장은 조계종의 장외 원로회의의 여러 스님들과 일맥상통한다. 장외원로 대열에는 서옹 스님(전 종정, 백양사 조실), 관응 스님(직지사 조실), 월산 스님(불국사 조실), 석주 스님(전 총무원장, 칠보사 조실), 월하 스님(통도사 방장), 일타 스님(전계화상) 등 종단의 내로라하는 스님들이 앞장섰다.
그러자 법정은 다시 한 번 언론 앞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말문을 열었다.
“종단 안팎에서 잘 알다시피, 나는 어떤 계층이나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입장이다. 순수한 충정에서 드리는 제언이다.”
그의 제언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번 폭력사태에 대해서 설사 직접적인 관여는 없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현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집행부는 전원 사퇴하는 것이 상식이요 일반적인 통념이다.
둘째, 현 집행부가 퇴진한다고 해서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차제에 불합리한 종권구조와 종회제도, 나아가 승단의 구조 등에 일대 개혁이 단행되어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결함과 모순을 안고 있는 한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셋째, 현 중앙종회는 전국 승려대회에서 선출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자체 해산을 실시하는 것이 청정승가의 전통적인 가풍이다. 수치스런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이 땅의 모든 불교도들은 순수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거듭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온갖 종류의 폭력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과제임을 상기할 때, 종교계에서의 폭력은 자멸행위임을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이번과 같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도 불교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불교는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한국불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려면 다 함께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내용을 보면 한 평생 종교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법정이 왜 현실의 종단 일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력에 빌붙어 수십 년 동안 종단의 일을 함부로 다뤄왔던 개혁의 대상은 반성과 자기 성찰이란 단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출전 : 무소유의 행복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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