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60-2-입능가경-6

근와(槿瓦) 2015. 10. 7. 01:20

60-2-입능가경-6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1 / 415] 쪽

의식[識]은 능히 식별하기를 마치며

5식은 분별을 드러낸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푸르고 붉은 여러 색깔은

안식이 이렇게 봅니다만,

물과 파도의 상대적인 법은

어이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까?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푸르고 붉은 온갖 색깔은

파도 속에는 모두 없는 것,

전식(轉識)을 마음 가운데에 설함은

범부를 위하여 상(相)으로 말한 것이다.

저 업(業)은 모두 없으니

마음은 취할 것을 떠난 것이며,

취(取)한 바와 또한 취하는 것이

저 파도와 같은 것이다.

몸과 재물이 생하고 머무는 것도

중생이 식(識)으로 보는 것이니,

그러므로 전식(轉識)이 나타나니

파도와 서로 비슷하다.

바다의 물결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을 분별하면서도

 

                                                                                                                           [52 / 415] 쪽

아리야식이 구르는 것은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범부는 지혜가 없기에

아리야식을 바다와 같다고 하여

파도가 움직임은 대법(對法)으로

그를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하늘에 떠오른 밝은 태양은

그 빛이 두루 위아래와

중간의 뭇 중생을

빠짐없이 골고루 비춘다.

여래의 출세(出世)하심이 또한 그러하시니

범부에게 참다움을 말씀하기 위함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구경법(究竟法)을 얻으셨으니

어찌 진실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만약 진실을 말하자면

그 마음이 진실치 못하니,

비유하자면 바다의 파도와

거울 속의 영상과 꿈들이

 

                                                                                                                             [53 / 415] 쪽

일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의 경계도 또한 그렇지만

경계가 갖추어지지 못하므로

차례로 나타나는 것이다.

식(識)이란 인식할 바를 인식하며

뜻[意]이란 그렇지 않음을 그렇다고 하며

오식(五識)은 견해를 나타나게 하나

정(定)에는 이와 같음이 없다.

비유컨대 뛰어난 화가와

그의 제자가

화포(畵布)에 여러 모양을 그리듯이

나의 설법도 또한 이와 같다.

채색(彩色)은 본래 무늬가 없으며

붓도 아니고 그릇 또한 아니지만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보기 좋게 여러 모양 그린다.

말은 진실을 떠나 있으며

진실은 모든 명자(名字)를 떠나 있다.

내가 얻은 진실한 자리는

참으로 마음 속 깊이 아는 것이다.

 

                                                                                                                             [54 / 415] 쪽

그 깨달음과 깨달을 바를 떠났지만,

참답게 말하는 것은

불자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르게 분별하여 말한다.

여러 가지가 모두 환상과 같아

보는 것마다 진실이 아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함은

진실과 진실이 아닌 일을 따라서

이런 사람 위하여 말한 것이니,

말이 그들에게 마땅치 않으면

그들에겐 말하지 않는다.

저 병든 여러 사람에게

좋은 의사가 약을 주듯이

여래가 모든 중생을 위하는 것도

그 마음과 근기를 따라 말한다.

망상의 경계가 아니며

성문의 경계도 또한 아니고

모든 여래 ·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은 경계를 말한다.

 

"또한 대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마음의 허망한 분별과 능히 취함과 취할 바가 경계상(境界相)을 떠난 것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끄러운 것을 떠

 

                                                                                                                            [55 / 415] 쪽

나고 수면개(睡眠蓋)를 떠나고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항상 스스로 수행하는 방편을 깨달아 외도들의 모든 희론(戱論)과 성문(聲聞) · 연각승(緣覺乘)의 상(相)을 떠난다면 그는 마땅히 마음에서 나타나는 허망한 분별상을 알 것이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지혜의 심상(心相)에 머물고자 한다면,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을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할 것이다.

 

대혜여, 무엇이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인가? 이른바 소유하지 않는 모양[無所有相]과 여러 부처님께서 자기 원(願)으로 주지(住持)하는 모양과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서 깨닫는 모양이니, 이를 수행하면 능히 절름발이 나귀의 지혜의 모양을 버리고 곧 보살의 제8지(地)에 들어가서 이 세 가지 거룩한 지혜의 모양을 닦을 것이다.

 

대혜여, 무엇이 소유하지 않는 모양인가? 이는 성문과 연각과 외도를 관찰하는 모양이다.

 

대혜여, 무엇이 여러 부처님께서 자기 원으로 주지하는 모양인가? 이는 여러 부처님께서 처음부터 스스로 원(願)을 닦아 주지한 모든 법이다.

 

대혜여, 무엇이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깨닫는 모양인가? 이는 온갖 법상(法相)에 집착한 바 없이 환(幻)과 같은 삼매를 얻고,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서 수행함이다.

 

대혜여, 이것을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이라 한다. 만약 이 세 가지 모양을 성취한다면 스스로 깨닫는 거룩한 지혜의 경계에 능히 도달하리니,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을 구하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배울 것이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여러 큰 보살 대중의 생각하는 마음을 아시고 여래의 위신력을 받들어 여래께 거룩한 지혜와 행으로 분별하는 법문을 물으셨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거룩한 지혜와 행으로 분별하는 법문(法門)의 체(體)와 108의 소견에 의하여 분별하는 말씀과 여래 · 응공(應供) · 정변지(正遍知)께서 여러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신 자상(自相)과 동상(同相)인 망상 분별의 체(體)와 수행하는데 차별인 법을 말

 

                                                                                                                          [56 / 415] 쪽

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여러 보살은 이 망상 분별의 자체(自體)와 법행(法行)의 차별을 잘 알았으므로 능히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가 깨끗하며, 모든 지위를 잘 알고, 성문과 벽지불의 선정(禪定)인 삼마발제(三摩跋提)의 즐거움을 벗어나고, 여래의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얻어서 수행하기에 5법 자체의 행상(行相)을 떠나고, 부처님의 법신체(法身體)와 진실한 행에 들은 경계로 이룬 것임을 알았으며, 모든 국토에서는 도솔천(兜率天)으로부터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 여래의 법신(法身)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는 삿된 소견으로 공(空)하여 없음에 집착하고 허망한 생각으로 분별하기를, '지혜의 원인이 둘이 있으니, 자체와 자체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며, 토끼의 뿔이 없는 것을 보고 분별하기를, '토끼는 뿔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또한 없다'라고 한다.

 

대혜여, 또 어떤 외도는 사대(四大)의 공덕이 실로 있는 것으로 보지만, 보는 이가 각각 차별의 모양이 있는 것을 보고, '실로 토끼는 뿔이 없다'라는 허망하게 집착하고 망상하며 분별하여 '소는 뿔이 참으로 있다'라고 한다.

 

대혜여, 저 외도들은 두 견해에 떨어져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망상과 분별만 증장시킨다.

 

대혜여,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 등도 오직 마음으로 분별함이다. 그 토끼 뿔을 분별하지 말고, 있음과 없음을 떠날 것이다.

 

대혜여, 또한 모든 법도 분별하지 말고, 있음과 없음을 떠날 것이다.

 

대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있음과 없음을 떠났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토끼 뿔이 있다는 분별을 할 수 없으므로 토끼 뿔이 없다고 하는 분별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서 토끼 뿔이 없는 것을 분별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미세한 미진(微塵)을 분석하고 관찰할지라도 진실한 것은 보지 못하고, 성인(聖人)의 지혜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또한 소뿔이 있다고도 분별하지 말 것이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57 / 415] 쪽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범부가 분별상으로 보지 않고, 추리하는 지혜로서 분별한다면 그 사람은 없음을 보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는 분별하는 마음을 관찰함도 아니며, 그 사람은 없음을 본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허망한 분별심 때문에 뿔에 대한 분별심이 있는 것이다.

 

대혜여, 허망한 뿔에 의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의지하는 바[所依]에 의지한 것이다. 상대적인 법을 떠난다면 그 뿔이 없다는 것도 보지 않는다.

 

대혜여, 만약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도 다시 분별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뿔을 떠나서 있을 것이요, 뿔이 있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혜여, 만약 저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면, 그의 법과 미진을 관찰한다 하여도 진실한 것이 있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이 모두가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니어서 저 법은 마땅히 없는 것이니, 그 두 법의 있음과 없음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어떤 법은 있고 어떤 법은 없겠는가?

 

대혜여, 만약 있음과 없음을 이렇게 보지 아니한다면 있음과 없음을 분별하지 못하니, 이 뜻은 어떠한가? 바로 소는 뿔이 있다고 보며, 토끼는 뿔이 없다고 보는 이러한 분별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이는 원인이 서로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의 뜻[有無義]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니, 외도와 범부와 성문들이 있음과 없음의 뜻을 말하는 두 가지가 모두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대혜여, 또 다른 외도는 물질[色]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망상으로 형태와 모양의 길고 짧은 것에 집착하며, 허공은 형상과 분제(分齊 : 한계, 차별)가 없는데, 물질은 허공과 달라서 분제가 있다고 본다.

 

대혜여, 허공은 곧 물질이니, 물질이 허공에 들어 있는 까닭이다.

 

                                                                                                                           [58 / 415] 쪽

대혜여, 물질이 곧 허공이니, 이 법에 의하여 저 법이 있고, 저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있는 까닭이며, 물질에 의하여 허공을 분별하며, 허공에 의하여 물질을 분별하는 까닭이다.

 

대혜여, 사대(四大)의 종류가 발생함에 제 모양[自相]이 각각 다르고 허공에 머무르지 않지만, 사대 속에 허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토끼 뿔도 또한 그와 같아서 소뿔이 있음으로 인하여 토끼 뿔이 없다고 말함이다.

 

대혜여, 또한 저 소뿔을 분석하여 작은 분자로 만들면, 저 작은 분자의 모양은 분별하려 해도 볼 수 없으리니, 그 어떤 법은 있으며 어떤 법은 없겠는가? 그럼에도 있다 없다고 말한단 말인가?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다른 법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토끼 뿔과 소뿔, 허공과 물질이 다르다는 허망한 소견들을 버려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여러 보살을 위하여 그들에게 토끼 뿔 등의 모양[相]을 떠나라고 말할 것이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자심(自心)의 소견으로 허망하게 분별하는 모양을 알아야 한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서 모든 불자를 위하여 그들에게 스스로 마음에서 일체 허망한 경계를 나타낸 것을 말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물질은 마음속엔 없는 것을

경계에 의하여 있다고 보나니,

속 알음[內識]과 중생의 견해와

몸과 살림살이와 사는 곳과

마음과 뜻과 의식과

자성(自性)과 다섯 가지 법과

 

                                                                                                                           [59 / 415] 쪽

 

두 가지 무아(無我)가 깨끗하다고

여래는 이렇게 말하네.

길고 짧고, 있음과 없음 등이

번갈아 가면서 서로 생기니,

없음 때문에 있음이 이루어지고

있음 때문에 없음이 된다.

작은 미진체(微塵體)를 분별하여도

물질이란 헛된 생각을 아니하고

다만 마음이 안주하는 곳이더라도

나쁜 소견은 깨끗할 수 없으리.

이 허망한 지혜의 경계가 아니며

성문들도 또한 알지 못하니,

여래께서 말씀한 바인

스스로 깨닫는 경계이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자심현류(自心現流)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또한 여래께 청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심현류를 깨끗이 제거합니까? 점차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까? 단번에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자기 마음에 현재 흐르고 있는 번뇌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점차로 깨끗해지는 것이지, 단번에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비유컨대 암마라(菴摩羅)의 과일이 점차로 성숙해진 것이요, 단번에 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대혜여, 중생의 자심현류(自心現流)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된 것이 아니니, 비유컨대 질그릇을 만드

 

                                                                                                                             [60 / 415] 쪽

는 사람이 여러 그릇을 만들 때 점차로 된 것이요, 일시에 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대혜여,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니다.

 

대혜여, 비유컨대 대지(大地)가 모든 숲과 약초와 만물을 자라게 하는데 점차로 자라게 한 것이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대혜여, 부처님께서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하게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은 아니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모든 음악과 노래와 춤과 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는데 점차로 알아진 것이요, 일시에 아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대혜여, 부처님께서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은 아니다.

 

대혜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일시에 모든 색상(色像)을 함께 나타내는 것 같아 여래 · 세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분별함이 없이 중생의 자심현류(自心現流)를 깨끗하게 하지만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이요, 점차로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요하고 분별이 없는 곳에 머무르게 한 것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해와 달의 광명이 일시에 모든 색상(色像)을 두루 비추고 선후(先後)가 있지 않는 것과 같다.

 

대혜여, 여래 · 세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자심(自心)의 번뇌와 습기(習氣)의 허물을 떠나게 하고, 단번에 헤아릴 수 없는[不思議] 지혜와 가장 훌륭한 경계를 보여 준다.

 

대혜여, 비유컨대 아리야식(阿梨耶識)은 현재의 경계와 자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 등을 분별하는데 일시에 아는 것이요, 선후가 없는 것과 같다.

 

대혜여, 보불(報佛)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단번에 중생계(衆生界)를 성숙케 하여 색구경천(色究竟天)의 깨끗하고 훌륭한 궁전에 두어 수행케 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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