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의 탑을 세운 바사닉왕의 만년(145)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하루는 세존이 녹자모 강당에서 한낮의 더위를 보내시며 해질녘에 선정에서 나와 목욕한 뒤 등을 말리기 위해 앉아 계셨다. 아난은 손으로 세존의 몸을 주무르며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세존의 그 아름다우신 살갗이 거칠어지고 매끄러운 몸에 주름살이 나타나고 허리는 앞으로 굽고 눈도 귀도 어두워졌습니다.”
“아난이여, 그대의 말대로이다. 젊음에 늙음이 있고 건강에 병이 있고 생에는 죽음이 따르는 것이다. 나도 나이 80세가 되어 살갗은 거칠어지고 주름살은 나타나며 눈과 귀는 어두워져 가고 있다.
늙음에 저주 있으랴. 늙음은 아름다움을 해치고 보기 좋은 모양을 짓밟는다. 백년의 수명을 거듭하더라도 죽음은 모면하지 못하리. 그 무엇도 제외되는 일 없이 모조리 짓밟는다.
이 가르침을 수시(垂示)하고 있을 때에 바사닉왕은 아름다운 수레를 갖추어 세존을 정사로 방문하고, 수레에서 내려와 세존 곁으로 나아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생물 중에서 늙음과 죽음을 모면하는 것이 있을까요?”
“대왕이시여, 늙음과 죽음이 없는 생물이란 없다. 대왕이여, 집이 부유하고 번창하고 무슨 일이라도 뜻대로 되는 바라문이라도 또 찰제리라도 늙음과 죽음을 떠나고서 살 수가 없다. 번뇌를 모두 멸하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치며 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청정한 목적을 달성한 성자의 신체일지라도 이 파멸을 모면할 수는 없고 드디어 버려지는 것이다.”
세존은 왕이 타고온 아름다운 수레에 눈길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왕의 수레도 망가지고 이 몸도 늙어 가누나. 오직 정법만이 멸하지 않으니, 이는 세세(世世)의 부처가 밝히신 바이거늘.
바사닉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예를 올리고서 돌아갔다. 세존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세간의 중생들은 네 가지의 일을 기뻐하고 네 가지의 일을 미워하고 있다. 그들이 기뻐하는 네 가지의 일이란 젊음과 건강과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다. 미워하고 있는 네 가지의 일이란 젊음이 늙음으로 바뀌고 건강은 병으로 바뀌고 삶은 죽음으로 바뀌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이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또 네 가지의 일이 있으니 이를 깨달으면 위의 네 가지를 여읠 수가 있고 깨닫지 못하면 영구히 위의 네 가지를 여읠 수가 없다. 그것은 무엇인가? 계와 선정과 지혜와 해탈이다. 제자들이여, 생로병사를 여읜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일에 세상의 무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보다 앞서 바사닉왕 밑에는 반도라는 장군이 있었다. 강직하며 백성의 귀의를 받고 있었으나, 왕은 노년에 이르러 단 한 사람의 위안자이며 의논 상대였던 말리 부인을 잃었기 때문에 이 장군을 대우하는 법을 그릇치고 참언을 믿고서 그와 그의 아이들을 속임수로 죽이고 말았다. 나중에 왕은 크게 뉘우치고 앙앙불락(央央不樂)했으며 그의 생질인 데가가라야나를 발탁하여 장군으로 삼아 그나마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세존이 석가족의 고을인 메다르바란 곳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바사닉왕은 볼 일이 있어 나가라가에 와 있었는데, 가라야나를 불러,
“수레를 준비해라. 동산에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다.”고 명하자 노부(鹵簿)는 정숙하게 거리를 지나 동산으로 들어갔다.
왕은 동산의 숲속을 소요하면서 조용하고도 인기척이 없이 혼자 살기에 알맞은 아름다운 나무 밑을 보고 세존의 생각을 하며, 이러한 곳에서 세존의 시중이라도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가라야나여, 나는 이와 같은 조용하고 미려한 나무 밑에서 세존의 시중을 들었으면 한다. 세존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대왕이시여, 세존은 지금 메다르바라는 석가족 고을에 계십니다.”
“이 고을에서 메다르바까지 얼마만큼의 거리인가?”
“대왕이시여, 별로 멀지는 않습니다. 30리 정도로 해질 무렵까지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레를 준비하여라. 세존을 만나뵈러 가리라.”
이리하여 왕은 아름다운 수레로 고을을 떠나 해질 무렵에 메다르바에 이르러 정사로 갔으며, 정사 앞에서 내려 도보로 들어갔다. 그때 많은 불제자들이 빈터에서 소요하고 있었기에 왕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세존을 만나 뵙고 싶은데 지금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대왕이시여, 세존은 저 문이 닫혀 있는 방에 계시오니 조용히 다가가서 툇마루에 올라 헛기침을 하고서 문을 두드리신다면 세존께서 문을 여실 것입니다.”
왕은 검과 왕관과 왕의 표적인 다섯 가지의 것을 모두 벗어서 가라야나에게 건네 주고 가르쳐 준대로 혼자 나아가 세존의 방문을 두드렸다. 세존이 문을 여셨다.
왕은 방으로 들어가 세존의 발을 받들고서 입을 맞추고 어루만지며 이름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교사라왕 바사닉입니다.”
“대왕이여,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새삼스러운 인사를 하며 마음의 공양을 하는 것이요.”
“세존이시여, 세존께 대하여 바른 신심을 가집니다. 그것은 세존이 정각자이며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세간에서 10년, 20년, 30년, 40년, 스스로 청정한 행을 닦으면서 목욕하고 난 뒤 기름을 바르고 머리와 수염을 손질하고 오욕에 탐닉하며 즐기는 출가자나 바라문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여기서는 생명이 있는 한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닦고 있는 불제자를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교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듯 청정하고 원만한 수행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도 제가 세존과 법과 승가에 대하여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왕은 왕과 다투고 찰제리는 찰제리와 다투고 바라문은 바라문과 다투고 거사는 거사와 다투고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아버지와 다투고 형제 자매가 서로 다투고 붕우가 서로 다투는 이승에서 이 교단만은 제자들이 서로 화합하여 마치 물과 젖처럼 다투는 일 없이 자애의 눈으로써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교단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이 화목한 단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제가 세존을 대하는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원림을 순례하자, 어떤 출가자는 야위고 쇠약하여 얼굴빛이 창백하고 핏줄이 굵게 드러나 사람을 보는데도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청정한 행을 즐기지 않음이라. 혹은 또 무엇인가 나쁜 일을 하고 그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수척하고 사람을 보는데도 눈동자가 흐려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저는 그 사람들한테 가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들은 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즐거운 듯이 수행을 하며 겸허하고 공손히 사슴과 같이 착한 마음에 주(住)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이 대덕(大德)들이 세존의 가르침에 있어 수승한 점을 본받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것도 제가 세존께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관정(灌頂)을 한 찰제리의 성을 가진 왕이기 때문에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면 죽이고, 살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살리고, 추방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추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건만 저는 회의를 할 때, 제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입을 열어 참견하는 자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하라고 말해도 제자 이야기하는 중에 지껄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는 세존이 수백 명의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계시더라도 제자들 중에서 재채기나 기침하는 자조차 없습니다.
일찍이 세존이 수백 명의 회중에게 설법하셨을 때입니다. 어떤 제자가 기침을 하자 동학자가 무릎으로 밀어붙이면서 ‘존자, 조용히 하십시오.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스승이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실로 수승한 일이다. 검도 쓰지 않고 몽둥이도 쓰지 않고서 이 회중이 이렇듯 잘 조복(調伏)되어 있다’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 교단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이 잘 조복된 회중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도 제가 세존께 바로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이와 같은 일을 보았습니다. 혹 밝고 영리하여 털끝이라도 쪼개듯이 교묘한 논의에 익숙한 찰제리의 성 가진 자들이 남의 의론을 멋지게 격파하면서 편력하였으며, 또 그들은 세존이 어디어디에 도착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문제의 준비를 한다거나, 교답마의 처소에 가서 이 질문을 하자, 이렇게 질문을 받고서 이렇게 대답한다면 이와 같이 논의를 걸어보자고. 그러나 그들이 세존의 처소에 가까이 가면, 세존은 법을 설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해주십니다. 그들은 그 법화(法話)에 의해 질문도 못하고 논의도 못하고 반드시 세존의 제자가 될 것을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도 제가 세존께 대하여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마찬가지로 다른 어떠한 어진 사람들도 세존 앞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으면 격려되고 기쁨을 얻게 되어, 세존의 허락을 얻어 이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들은 어느 것이나 조금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자이기 때문이다’고. 세존이시여, 이것도 제가 세존께 대하는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이시다타와 푸라나의 두 사람의 영좌(領座)는 저의 녹을 먹고 저로부터 생계의 수단을 얻고 명예를 얻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존께 하듯이는 저에게 대해서 존경을 보이지 않습니다. 일찍이 제가 흰 모래를 운반해 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만, 이시다타와 푸라나를 알아보았는데 그들 두 사람은 어떤 번잡한 집에 숙박하며 밤이 깊도록 법화를 나누고, 그리고 나서 세존이 계신 곳을 묻고 세존 쪽으로 머리를 향했으며 저의 쪽에 발을 두고서 잤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이 두 사람은 나의 녹을 먹으면서도 세존께 하듯이 나를 공경하지 않는다. 실로 이들은 세존의 가르침에 특별한 수승한 점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세존이시여, 이것도 제가 세존께 대하는 바른 신심이 있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도 찰제리, 저도 찰제리, 세존도 교사라인, 저도 교사라인, 세존도 80세, 저도 80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로 보아 저는 세존께 더할데 없는 공경을 드리고 마음의 공양을 하는데 알맞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저는 이만 작별을 하겠습니다.”하며 우로 돌아 그곳을 떠났다.
세존은 왕이 떠나자 곧 이어 제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이여, 교사라의 왕 바사닉은 법의 탑을 세우고서 갔다. 제자들이여, 이 법의 탑을 받아 지녀라. 이것을 되풀이하며 배우고 이것을 전하여 지니도록 하라. 제자들이여, 법의 탑에는 이익이 있어 실로 수행의 시작이다.”
바사닉왕이 세존께 바른 신심을 아뢰고 있는 동안에 데가가라야나는 다섯 개의 왕장(王章)을 갖고서 사위성으로 달렸고, 비유리(毘瑠璃)태자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세존의 앞을 물러나온 왕은 이것을 알고 이미 사위성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약간의 시종의 수호를 받으면서 남으로 내려갔고 사위인 아사세왕에게 의뢰하려 했다. 그러나 노쇠한 왕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도중에서 병을 얻어 이 세상을 떠났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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