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비유리왕과 가비라 성의 멸망(146)

근와(槿瓦) 2015. 10. 7. 01:23

비유리왕과 가비라 성의 멸망(146)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에 앞서 세존이 사위성에 유화(遊化)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바사닉왕은 제자들과의 사이에 친교가 적기 때문에 세존의 근친에서 왕비를 맞이한다면 제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사신을 보내어 가비라 성에서 규수를 구하게 하였다. 왕의 마음 속에는, 한편 이렇게 해두면 당시의 이름 높은 가문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왕의 사신은 가비라 성에 그 취지를 전했다. 이로써 석가족들은 모여서 이 일을 의논했지만, 설사 큰 나라의 왕이라고는 하나 계도가 바르지 못한 바사닉왕에게 석가족의 공주를 출가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왕은 군사의 힘을 믿고 쳐들어 올 것이 명백했다. 그래서 일족의 장자인 마하나마(摩訶那摩)가 시녀에게 낳게 한 딸을 혈통이 바른 여자로 속여 바사닉왕에게 출가시키기로 했다. 사신은 왕의 명령에 의하여 그 규수가 아버지인 마하나마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마음을 놓고 돌아갔다.

 

이윽고 이 왕비에게서 왕자가 태어나 비유리 태자라고 이름하였다. 왕은 왕자를 애지중지 길러 왕자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궁술(弓術)을 배우게 하기 위해 가비라 성으로 보냈다. 왕자는 조부인 마하나마의 집에 머물러 궁술을 익히고 있었는데, 석가족의 공회당이 새로이 완성되어 당번(幢幡)을 세우고 나망(羅網)을 치는 등 화려하게 꾸미고서 세존의 낙경(落慶) 공양을 기다려 사용하기로 정하고 있었다. 왕자는 동배인 어린이들과 공회당에 들어가 놀았는데, 석가족들은 크게 화를 내어 팔을 잡아 끌어냈으며, 거룩한 이 공회당에 종년의 자식인 주제에 어째서 들어갔느냐고 꾸짖었다. 왕자는 이 뜻하지 않은 모욕에 어린 몸이 타버릴 만큼 화를 내며, 내가 만일 왕위에 오르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가비라 성을 쳐서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리라고 굳게 마음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왕자는 사위성으로 돌아가 한 바라문에게 이 원한을 하루에 세 번 노래하도록 하여 그 노여움을 새로이 하면서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것을 알게 된 장군 데가가라야나 또한 보복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유리왕은 이미 왕위를 빼앗아 이제야말로 때가 이르렀다고 신하들을 모아 놓고서,

“지금 백성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대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부(四部)의 군사들을 모아라. 지금부터 가비라 성을 공략하려고 한다.”

 

왕의 명령대로 사부의 군사가 모였고 왕은 이들을 거느리고 가비라 성을 향해 나아갔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놀라서 세존에게 말씀드렸다. 세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비라 성으로 가는 길가에서 메말라 죽어가는 가지도 잎사귀도 없는 한 그루의 나무 아래 앉아 비유리 왕을 기다렸다. 왕은 진군하는 도중에 세존을 뵙자 수레에서 내려 세존 앞으로 다가가서 세존께 아뢰옵기를,

 

“세존이시여, 니구로타의 나무 등 지엽이 무성한 나무가 주위에 많이 있는데 왜 이와 같이 메마른 나무 아래 앉아 계시옵니까?”

“왕이여, 친척의 그늘은 시원한 것이다.”

 

비유리왕은 세존의 마음 속을 헤아리고 회군하여 성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역시 그 전에 노래를 부르도록 명을 받은 바라문은 왕의 노여움을 새로이 하는 노래를 잊지 않고서, 하루에 세 번씩 노래하여 왕의 결심을 환기시켰다. 왕은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가비라 성으로 향했다. 세존은 다시금 그 고목 아래 나타나셨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수레를 돌려 성으로 돌아갔다. 이 일이 세 번 되풀이 되었다. 네 번째에 왕이 진군을 명했을 때에는 세존도 숙연(宿緣)은 막지 못할 것을 아시고 이젠 조용히 법을 관하시며 정사에 머물러 계셨다. 왕은 진군하여 가비라 성에 육박했다.

 

가비라 성의 주민은 궁술에 뛰어나 있었으므로 비유리왕의 군을 맞이하여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나 그 화살은 혹은 귀에 상처를 내고 혹은 상투에 맞고 활에 맞고 활시위에 맞아 전력을 둔하게 했지만,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도 해치는 일이 없었다. 어지간히 나이가 젊고 기백이 날카로운 왕도 성안 사람들의 교묘한 궁술에 두려움을 품고 한번은 물러서려고 했지만, 다시금 바라문의 노래에 노여움을 일으키고, 또한 바라문이,

 

“석가족들은 지금 계행을 지키고 벌레도 죽이지 않으므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잃는다면 석가족을 멸할 때가 없습니다.”하고 권하는 것을 듣자 전진을 명하였다. 석가족들은 성내로 물러나 굳게 문을 닫고 지켰다. 왕은 성 밖에 있으면서 크게 부르짖되 문을 열어라, 만일 열지 않는다면 일족을 모두 죽이리라고 위협했다.

 

석가족에 사마(奢摩)라고 불리는 나이 젊은 동자가 있었다. 비유리왕이 성문 곁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 갑옷을 걸치고 검을 잡고 혼자 성 밖으로 나가 왕에게 싸움을 걸었으며, 사납게 날뛰는 마왕마냥 병사를 베고 왕에게 육박했다. 왕도 동자의 기세에 대적하지를 못하고 도망쳐 달아났지만 석가족의 장로는 사마의 활동을 듣고 불러들여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는 연소한 몸으로 어찌하여 가문을 욕되게 하는 것인가. 석가족들은 누구나 모두 선을 행하고 벌레의 목숨까지도 뺏지 않는 바이다. 물론 비유리왕의 군세를 패하기란 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걸 겁내는 것이다. 우리의 부처님은 죽이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살생의 고과(苦果)는 지옥에 떨어지든가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수명이 극히 짧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가. 그대는 이 가문의 법을 깨뜨린 자이다. 성을 나가 어디론지 가는 게 좋으리라.”

사마 동자는 하는 수 없이 쫓겨나 다른 곳으로 갔다.

 

비유리왕은 다시 성문에 와서 문을 열라고 재촉했다. 순순히 열면 굳이 싸움을 즐기는 자도 아니므로 죽이지 않겠고, 만일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무력에 의해 문을 부수고 일족을 전멸시키겠다고 꾸짖었다. 석가족들은 물론 문을 열 뜻은 없었으나 악마가 한 석가족으로 둔갑하여 연신 문을 열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비유리왕의 입성을 허락하게 되었다. 왕은 성내에 들어가 먼저 석가족을 잡도록 하고 많은 사람을 베는 것도 번거롭다고 구덩이를 파서 생매장했으며 큰 코끼리로 하여금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오백 명의 아름다운 여자를 붙잡아 포로로 삼고 그 밖에는 모두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생명을 빼앗으려고 했다.

 

왕의 외조부 마하나마는 세존께 귀의한 신자였었다. 왕의 처소에 이르러 말하기를,

“부디 단 한 가지 저의 원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어떠한 원입니까?”

“제가 물에 들어가 떠오르는 짧은 시간만, 이 성내의 백성이 자유롭게 성을 빠져 달아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수면에 나오거든 또 죽이더라도 하는 수가 없습니다.”

 

왕은 그 정도의 일이라면 좋다고 이를 허락하였다. 마하나마는 기뻐하며 물 속에 들어가 머리를 풀어 나무 뿌리에 묶고 그곳에서 거룩한 죽음을 마쳤다. 이 동안에 석가족은 사방의 성문을 빠져나와 달아났지만, 이미 각오를 한 그들은 달아나는 척 하고서는 다시 성 안으로 돌아왔다. 북으로 나간 자는 남으로 들어오고 동으로 나간 자는 서로 돌아왔다.

 

마하나마가 물 속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왕은 탐지케 하여 조부의 죽음을 알았고, 그로 인하여 비유리왕은 뉘우치게 되어 성내 백성의 생명을 살리고, 오백 명의 석가족 부녀들만 데리고 왕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어버이와 헤어지고 남편과 헤어진 석가족의 부녀들은 하다못해 포악한 왕의 손에서 몸을 지키리라 마음을 작정하고 한 사람도 왕의 명을 따르는 자가 없었다. 왕은 노여워하며 이 여자들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홀로 회군하여 왕성으로 들어갔다. 성이 가까워졌을 때, 왕은 오묘한 음악 소리를 들었다. 왕의 형인 기타 왕자(祇陀王子)는 앞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지금 또 동생이 가비라 성을 쳤다는 말을 듣고서 시름에 잠겨 겨우 음악소리로 마음을 위안하며 궁전 안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왕은 기타 왕자의 내전으로 들어가 문지기를 베고 스스로 형의 방에 들어갔다.

 

“무엇 때문에 형님께서는 우리들의 원정을 돕고 기녀와 희롱하고 있습니까?”

“나는 중생의 생명을 해치는 일이 싫어서이다.”

 

왕은 노여움이 치미는 대로 형님을 베었다. 사람들은 착한 기타 왕자의 덕을 찬양하고 그 죽음을 애도했다.

 

지상에서는 왕의 아들, 하늘에서는 신의 아들, 이 모두가 선행의 보답, 기타(祇陀)의 덕이야말로 거룩하여라. 이승의 근심, 내세의 근심은 악을 범하는 악한 보답.

현세의 기쁨, 내세의 즐거움, 공덕을 쌓으면 공덕의 보답.

지상에서는 왕의 아들, 하늘에서는 신의 아들. 이 모두가 선행의 보답, 기타 왕자의 덕이야말로 거룩하여라.

 

오백 명의 석가족 부녀들은 손발이 묶여져 구덩이에 던져진 채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염하였다.

“세존은 저희들의 종족에서 나시어 널리 법우(法雨)를 천하에 내리십니다. 저희들은 지금 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들을 구해 주십시오.”

 

세존은 제자들을 데리고 이 비참한 싸움터에 나타나셨다. 오백 명의 부녀들은 세존을 우러러보며 기쁨과 함께 그 알몸을 부끄러워했다. 세존을 모신 제석신은 옷을 주고 비사문신(毘沙門神)은 음식을 베풀어 굶주린 배를 채워 주었다. 세존은 조용히 성(盛)한 자는 반드시 쇠잔하고 산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이치를 설하고 이 몸이 있으므로 오욕이 있고, 오욕이 있으므로 집착이 일어난다. 이것을 알고서 생노병사의 두려움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부녀들은 이 가르침으로 진구(塵垢)를 여의고 청정한 법안을 얻었으며 기꺼이 죽음에 임하여 모두 신의 세계에 태어났다.

 

세존은 제자들을 불러 성의 동문으로 향하며 성중에 뭉게뭉게 불타고 있는 큰 불을 보시고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상(常)이 없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정한 이치, 생사를 여의면 항상 즐거움이 있으리라.

 

세존은 또 일찍이 세존과 세존의 교단이 주처(住處)하던 니구로타의 숲에 들어가 어제와 다른 오늘의 광경을 바라보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사위성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왕과 왕의 병사는 7일 안에 죽어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소문이 났다. 왕은 두려워하며 바라문과 의논하고 6일 동안은 몸을 삼가 하여 무사할 수가 있었으나 7일째 되는 날, 아지라벌제하(阿脂羅伐帝河)에서 놀고 그날 밤은 강변에서 숙박했는데, 밤중에 소나기와 폭풍이 일어나서 병사와 함께 왕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다. 궁전도 또한 벼락 때문에 불타고 말았다.

 

세존은 이 일에 관하여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신구의(身口意)로 악을 지어 목숨이 짧고 이승에 괴로워하고 내세에 괴로워한다. 집에 있으면 불에 타고 물에 있으면 물에 빠져 목숨이 끝나고 지옥의 불에 태워진다.

 

또 세존은 다음의 이야기를 하셨다.

“제자들이여, 옛날 왕사성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은 모두 성 밖의 큰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연명했다. 그 호수의 물고기 중에 구소(拘璅)와 양설(兩舌)이라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어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아무런 죄도 없고 또 성 안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침범도 한 바가 없건만 우리는 사람들 등쌀에 잡아먹히고 있다. 둘이서 마음을 합하여 이 원한을 풀지 않겠는가’라고. 그때 그 마을에 여덟 살 가량된 한 어린이가 있어, 스스로 물고기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땅 위에 던지면 괴로워하고 뛰다가 죽어가는 것이 재미있어 기뻐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제자들이여, 인과의 이치는 가공할 정도의 확실한 보가 온다. 구소인 비유리 왕은 양설인 바라문에게 선동되어 가비라 성의 백성들에게 그 원한을 풀었다. 이리하여 원한은 원한을 거듭하여 윤회의 바퀴 자국은 깊이 파지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두통을 느끼고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는 것 같지만, 이것도 씻을 수가 없는 하나의 업보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