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2)-12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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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고 또 많은 허물이 있다. 이와 같이 욕심의 과실은 맛은 적고 허물이 많은 것이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욕심을 관찰하고는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 비구는 또 욕심을 관찰한다. 즉 그것은 불꽃과 같고 또 등불과 같다. 밝은 빛은 사랑할 만하지마는 거기에 닿으면 매우 뜨겁다. 저 불나비는 어리석기 때문에 그 밝은 불꽃을 보고는 탐착하고 좋아하며 그 속에 들어가 곧 죽는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그와 같다. 탐욕·분노·우치에 덮여 일체의 욕심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마치 저 불나비가 등불의 밝은 빛을 보는 것과 같고, 혹은 욕심의 등불에 들어가면 곧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니, 마치 저 부나비가 등불에 들어가 죽는 것과 같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고 욕심에서 떠나게 된다. 또 그 비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어떤 결박에 묶여 생사에 윤회하고 있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두 가지 결박에 묶여 이 세상에 매여 있다.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음식의 결박이요, 둘째는 접촉의 결박이다. 음식의 결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씹어 먹는 음식이요, 둘째는 생각의 음식이며, 셋째는 선정의 음식이요, 넷째는 접촉하여 느끼는[觸感] 음식이다. 씹어 먹는 음식이란, 이른바 사람이 사는 네 곳과 욕계의 여섯 하늘과 여덟 개의 큰 지옥과 귀신 세계의 한 부분이다. 둘째의 생각의 음식이란 이른바 고기의 세계요, 셋째의 선정의 음식이란 이른바 선정을 닦는 색계의 하늘 등이며, 넷째의 접촉하여 느끼는 음식이란 모든 새들이다. 어떤 것을 접촉이라 하는가? 접촉이란, 이른바 욕심이니 손을 잡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눈으로 보기는 하는 것으로서 이런 것은 욕심의 접촉에 미혹되는 것이다. 이런 일체의 우치한 범부들은, 이른바 욕계에 사는 것으로서 사람과 아귀·축생·지옥이니, 이들은 다 욕심을 익히기 때문에 욕계라 한다. 또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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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는 삼마발제(三摩跋提)를 반연하여 음식을 삼는다. 그들은 다 이 두 가지 결박으로 항상 세간에 있으면서 욕심을 떠나지 못하고 언제나 일체의 번뇌에 묶여 있는 것이다. 또 그 비구는 여실히 눈을 관찰한다. 즉 눈의 알음알이로 어떤 물질을 보고, 만일 즐거운 촉감이 생기면 곧 즐거움을 반연하는데, 그것은 즐거운 갚음의 업이 아니다. 또 그와 같이 여실히 관찰한다. 눈의 알음알이로 어떤 물질을 볼 때 그것이 언짢은 것으로서 눈의 촉감이 생기면 괴로움을 반연하는데, 그것은 즐거운 갚음의 업이다. 그는 여실히 안다. 즉 왜 눈의 알음알이로 어떤 물질을 보고 즐거움을 반연하면 그것은 즐거운 갚음의 업이 아닌가? 그 법을 그대로 따라 관찰하면 눈으로 어떤 물질을 보고는 좋지 못한 생각과 관찰과 반연이 있어서 그것을 기억하고 거기에 맛을 붙여 즐거운 마음을 내면 현재에는 즐겁더라도 뒤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아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질 것이다. 어떤 업은 현재에는 즐겁지 않은 과보를 받더라도 뒤에는 즐거운 과보를 얻는가? 눈의 알음알이로 어떤 물질을 보고 눈의 촉감이 생길 때, 마음으로 잘 생각하고 관찰하며 반연하여 현세에서 마음이 그것을 즐겨 집착하지 않으면, 현재에는 즐겁지 않으나 그것은 괴로운 갚음의 업이 아니다. 그리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바뀌어 나서 훌륭하고 묘한 즐거움을 받고 마침내는 열반에 이를 것이다. 귀·코·혀·몸 뜻에 있어서도 다 그러하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그 비구는 어떻게 눈의 알음알이로 어떤 물질을 보고 마음에 평등한 법을 행하는가? 이른바 그 비구는 눈으로 물질을 보고는 마음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좋아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탐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바라지도 않고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며, 기억하지도 않고 기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장애를 좋지 않게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평등한 법을 행하나니, 그것은 평등한 자리요 괴롭거나 즐거운 자리가 아니다. 또 그 비구는 제10지(地)와 6지(地)의 행을 얻는다. 이른바 아나함의 첫째 선정의 자리에서 넷째 선정에 이르러 그 자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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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법의 나왔다 사라짐과 나고 멸함을 관찰하고 항상 부지런히 8분성도(八分聖道 : 八正道)를 수행하면서 욕심을 깨닫고 해탈의 문에 이르려고 한다. 그 비구가 이렇게 정근하여 악마의 궁전이 가리워지면, 그 땅의 야차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여 위로 허공의 야차에게 알리고, 허공의 야차는 사대왕에게 알리며, 사대왕은 사천왕에게 알리며, 사천왕은 다시 삼십삼천에게 알리며, 삼십삼천은 염마천에게 알리고, 염마천은 도솔천에게 알리며, 도솔천은 화락천에게 알리고, 화락천은 다시 타화자재천에게 알리며, 자채천은 다시 범천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염부제 안의 어떤 선남자는…….'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8지에서 6지를 껴잡았습니다.' 범천(梵天)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고 다시 선정의 즐거움에서 나와 여실히 그 말을 듣고는 더욱 기뻐한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선한 것이나 선하지 않은 것이나 업의 결과가 모두 다 결정된다. 스스로 업을 지어 스스로 받나니 모두가 그 업의 결박 때문이다. 이와 같이 번뇌의 땅은 처음에는 달다가 뒤에는 쓰나니 독(毒)을 버리듯 요소를 버려라. 아무 이익이 없기 때문이니라. 지혜는 번뇌에 속하지 않고 지혜의 요소에 속하는 것이니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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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나 즐거움 받는다. 지혜는 항상 번뇌를 사르되 마치 불이 저 풀을 태우듯 한다. 번뇌는 지혜의 범천을 덮으므로 부처님은 3보(寶)를 말씀하셨다. 만일 지혜의 요소를 즐겨하면 고요하기는 모니(牟尼 : 聖者) 같지만 만일 번뇌의 뱀에 물리면 그는 모든 것 잃어버리리. 만일 누구나 두 가지 진리 알아용맹스레 분명히 알고 볼 때는 그는 제일의 도를 행하여 생사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리. 만일 누구나 생사를 좋아하고 번뇌의 원수를 기뻐하고 즐기면 그는 언제나 결박을 받고 생존의 좁은 곳을 흘러 다니리. 만일 누구나 벗어날 뜻이 있어 언제나 고요한 행을 행하면 죽어서는 하늘의 무리 속에 나서 범천의 세계에 이르게 되리. 만일 탐욕 따위를 사랑하지 않고 불·법·승 3보에 공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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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사를 떨어 버리기를 바람이 마른 풀을 날리듯 하리. 만일 마음의 부림을 받지 않고 그리고 능히 그 마음을 부리면 곧 번뇌를 없애 버리되 해가 떠서 어둠을 없애듯 하네. 마음의 원수가 제일이어라. 다시 그런 원수 없나니 마음은 언제나 중생을 불사르되 불을 놓을 때의 나무와 같네. 만일 마음이 자유로이 날뛰고 어리석어 그 감관을 다루지 못하면 그는 괴롭고 고요하지 않나니 열반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네. 괴로움과 괴로움의 갚음을 알고 또 능히 괴로움의 원인을 알면 그는 곧 모든 결박 벗어나 모든 번뇌를 떠나리. 지혜는 제일의 밝음이 되고 우치는 제일의 어둠이다. 만일 그러한 광명을 취한다면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리. 우치는 제일 나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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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능히 버린다. 우치를 마음대로 날뛰게 하면 고요한 요소는 얻기 어렵다. 만일 스스로 편안하려 하거든 차라리 큰 불 속에 뛰어들거나 독사와 한 곳에서 머물지언정 마침내 번뇌는 가까이하지 말라. 지혜는 제일의 단 이슬이요 지혜는 제일의 창고이니라. 지혜를 제일의 친구라 하고 지혜를 제일의 보배라 한다. 이와 같은 그 지혜의 불은 언제나 번뇌의 산을 태운다. 만일 번뇌의 산을 태우면 곧 안락한 곳에 이르리. 만일 누구나 지혜 없으면 장님이 어둔 곳에 들어가듯이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고 비법(非法)의 다툼에 갖히리. 만일 누구나 늘 법을 생각하면 사람의 몸을 잘 얻고는 그 마음의 미혹을 받지 않고 반드시 선한 사람 공양 받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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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구는 이와 같이 법과 법 아닌 것을 알고 법에 의해 바르게 행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곧 한량없는 백천의 높고 큰 생사의 산을 부수고는, 다른 기운이 없어 다시는 나지 않고 번뇌의 칼을 떠나 열반에 가까이 간다."
3. 지옥품(地獄品) ①
"또 그 비구는 계속해서 업의 과보의 법을 생각하고 법과 비법을 관찰한다. 즉 어떤 것이 악업으로서 한량없는 갖가지가 모두 마음에 의해 계속 흘러 다니되, 마치 강의 사나운 물결이 중생들을 표류시키는 것처럼, 악업의 과보에 떨어지게 하여 지옥에 있으면서 지독한 고통을 받게 하는가? 그 비구는 선과 불선을 관찰하고 마음으로 자세히 생각해 본다. 즉 이 중생들은 어찌하여 마음의 미혹을 받고 욕망의 미혹을 받아 활(活)·흑승(黑繩)·합(合)·환(喚)·대환(大喚)·열(熱)·대열(大熱) 및 아비(阿卑) 등의 나쁜 지옥 속에 나며, 그 여러 지옥에는 각각 딴 곳이 있고, 거기에는 모두 심판관(審判官)이 있어서 그 업을 따라 모두 증명해 아는가? 또 그 지옥들의 이름은 무엇이며, 중생은 어떤 업으로 어떤 지옥에 가서 어떤 곳에 떨어져 있는가? 그 비구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큰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활지옥(活地獄)이라 한다. 또 거기는 딴 곳이 있는데, 그 딴 곳은 몇 개나 되며 이름은 무엇무엇인가? 딴 곳은 열여섯 개가 있다. 첫째는 시니(屎泥)요, 둘째는 도륜(刀輪)이며, 셋째는 옹숙(瓮熟)이요, 넷째는 다고(多苦)이며, 다섯째는 암명(闇冥)이요, 여섯째는 불희(不喜)며, 일곱째는 극고(極苦)요, 여덟째는 중병(衆病)이며, 아홉째는 양철(兩鐵)이요, 열째는 악장(惡杖)이며, 열한째는 흑색서랑(黑色鼠狼)이요, 열두째는 이이회전(異異廻轉)이며, 열세째는 고핍(苦逼)이요, 열네째는 발두마만(鉢頭摩鬘)이며, 열다섯째는 파지(陂池)요, 열여섯째는 공중수고(空中受苦)니, 이것을 활지옥의 열여섯 개의 딴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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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업을 지으면 그 활지옥에 나는가? 그 비구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살생하되 그것을 즐겨 행하고 많이 지어서 그 업이 두루 퍼지고 완전히 이루어져 화합하고 상응하면 활지옥의 밀바닥에 떨어진다. 살생하는 업에는 상·중·하가 있고,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도 상·중·하가 있다. 그 지옥의 업에서 어떤 것이 상인가? 살생하는 사람으로서 착한 사람, 계율을 받드는 사람 혹은 선을 행하는 사람을 죽이거나, 또 다른 중생에 대해 중생이라는 생각이 있으면서 죽일 마음을 가지고 그 목숨을 끊어 그 업을 완전히 이루어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이 남에게 자랑하면서 그것을 계속하며, 또 남에게 살생을 가르치고 살생을 권하고는 따라서 기뻐하며 살생을 칭찬하고 남을 시켜 살생하면,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짓고 남에게 가르쳐 죄업을 이루었으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는 활지옥에 난다. 그 사람의 50년은 저 사천왕의 하룻밤 하루 낮인데 그 수도 그와 같아서 30일이 한 달이요, 열두 달이 한 해이다. 저 사천왕의 50년은 저 활지옥의 하룻밤 하루 낮이다. 악업의 과보를 받는 시간에도 하·중·상이 있고, 저 활지옥의 수명에도 하·중·상이 있으며, 혹은 중간에 죽는 수도 있다. 그 지은 업의 종자의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따라 활지옥 가운데의 한 곳에서 받기도 하고 두 곳에서 받기도 하며, 세 곳에서 받기도 하고 네 곳에서 받기도 하며, 다섯 곳에서 받기도 하고 여섯 곳에서 받기도 하며, 이와 같이 나아가 열여섯 곳에서 받기도 한다. 그리고 악업이 아직 다 부서지지 않고 썩지도 않아 그 업의 기운이 다하지 않았으면, 그 지옥에서 5백 년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천상의 숫자요 인간의 숫자가 아니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어떻게 그 비구는 활지옥을 관찰하여 딴 곳의 업을 아는가? 마음의 미술가는 자기의 업으로 업의 과보의 자리를 그려 갖가지 다른 마음으로 딴 곳의 고통을 받는데, 백천억 나유타 수의 두려운 나쁜 일이 있으나 그것들은 서로 같지 않고 그 종류는 비유할 수 없다. 활지옥의 각 부분을 관찰할 때에 중생은 어떤 업으로 시니에 나는가?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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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어떤 나쁜 업의 종자로 시니라는 곳에 나는가? 이른바 살생이니 혹은 욕심으로 죽이되, 이른바 새를 시켜 죽이는 것으로는 매를 놓거나 독수리를 놓는 것이다.또 다른 방법으로 죽이는 것은 혹 사슴을 포위하여 죽이고 사냥하여 죽이고도 참회하지 않으므로, 업과 업이 두루 퍼지고 살생의 업이 완전히 이루어져 모이고 상응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는 이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그 지옥에 나되 하나의 딴 곳에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거기는 시니라는 곳으로서 불에 탄 똥은 매우 뜨겁고 그 맛은 매우 쓰며, 구리쇠를 똥에 섞고 똥 속에는 금강의 부리를 가진 벌레가 있어서 똥을 덮는다. 그 죄인들이 그 똥을 먹으면 벌레는 목 안에 들어가 먼저 그 입술을 먹고, 다음에는 그 혀를 먹으며, 다음에는 그 잇몸을 먹고, 다음에는 그 목구멍을 먹으며, 다음에는 그 심장을 먹고, 다음에는 그 폐를 먹으며, 다음에는 그 배를 먹고 다음에는 그 비장을 먹으며, 다음에는 그 밥통을 먹고 다음에는 소장을 먹으며, 다음에는 대장을 먹고, 다음에는 숙장을 먹으며, 다음에는 힘줄과 모든 가는 힘줄을 먹고, 다음에는 살과 피를 먹는데, 그는 이와 같이 그 지옥에서 지독한 고통을 받되 인간의 숫자로 한량없는 백천 년을 지낸다. 살생하는 사람들은 그 나쁜 업을 짓되 포위해서 사슴을 죽이기도 하고 사냥으로 사슴을 죽이기도 하며, 새를 길러 죽이고 혹은 매나 독수리를 놓아 그것들을 죽이게 하고는 그것을 빼앗아 자기가 먹는다. 그 업의 과보로 이렇게 살생한 것을 빼앗아 먹는 그 나쁜 업의 힘으로, 똥 속에 있는 금강의 부리를 가진 많은 벌레들이 그 몸에 들어가 이렇게 그를 먹는데, 그 좋고 나쁜 과보는 그 업과 같은 것이다. 그 죄인으로서 나쁜 업이 다한 사람은 그 시니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데, 마음의 업이 그린 그림의 무늬가 다했으므로 그는 그렇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의 업의 과보가 아직 익지 못했으면 축생 속에 나되, 새의 몸을 받아서는 다른 새에게 죽고 혹은 사슴의 몸을 받으면 포위되어 죽는 것은, 그가 전생에 새를 죽이거나 사슴을 죽이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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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과보를 지옥 속에서 받고, 그 밖의 남은 업으로 축생에 나며, 혹은 뒷기운의 업으로 천상이나 인간에 나더라도 그 업의 인연으로 목숨이 짧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로 받는 활지옥의 둘째 딴 곳인 도륜이라는 곳을 관찰한다. 즉 중생은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보거나 들어서 안다. 만일 마음으로 남의 물건을 탐하면 그 인연으로 중생을 죽이되 그 목숨을 얻으려고 칼로 살생한다. 그는 이렇게 그 인연으로 참회하지 않고 또 남을 시켜 죽이게 하여 업과 업이 두루 퍼지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는 그 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도륜(刀輪)에 난다. 거기는 불이 항상 탄다. 주위의 철벽은 높이가 10유순으로서 언제나 큰 불이 타는데, 인간의 불은 그 불에 비하면 구름과 비슷하다. 그 지옥에는 항상 불붙는 쇠가 있어서 중생들의 몸에 빨리 붙는다. 그 뜨거운 쇳물은 사람의 몸을 쪼개고 부수어 겨자씨처럼 흩어 태우고 찢으며 많은 쇳물을 퍼붓되, 마치 염부제의 여름철의 비처럼 그곳에는 뜨거운 쇳물을 시방(十方)에 두루 퍼부어 많은 고통을 준다. 그 지옥 사람들은 찢기면서도 죽지는 않는다. 그 악업의 과보로 그렇게 몸이 베이면 이내 살아난다. 그 지옥에는 칼로 된 잎을 가진 숲이 있다. 그 칼은 아주 날카롭고, 또 두날 칼이 있는데 칼 머리는 모두 밑으로 향하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숲은 푸르고 즙이 있어서 물과 비슷하다. 그 죄인들은 몹시 굶주리고 목마른데 같은 업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서로 부르면서 달려간다. 그들이 그 숲으로 들어가면 그 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숲은 칼을 두루 퍼부어 그들의 몸을 쪼갠다. 또 그들은 자기의 목숨을 탐하기 때문에 중생을 먹으면서 자란다. 그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니, 그 업의 과보는 이와 같다. 마음의 업의 미술가는 지옥의 옷을 그리고, 그와 같이 나쁜 업을 그리고는 그렇게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그 업에 포섭되어 지옥에서 그렇게 한량없는 백천 년 동안 항상 찢기고, 그러면서 악업이 아직 부서지지 않고 썩지 않고 업의 기운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마음의 업의 미술가가 그린 그......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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